Tara Donovan, ‘Composition(Cards)’, 2017, Styrene cards and glue, 99.7×99.7×10.2cm, Pace Gallery.
이영주 페이스 서울 디렉터
Tara Donovan, ‘Composition’
미국 태생의 타라 도노반은 투명하거나 검은 단추, 종이 플레이트, 이쑤시개, 핀 등 무채색의 일상 오브제들로 작업한다. 겹겹이 쌓고 붙이고 더해서 이 단일한 소재를 계속 확장하고 키워 나간다. 그만의 조각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일상적인 소재들은 타라 도노반의 손을 통해 스케일을 갖는다.
유명한 현대 미술 작가들 중 몇몇은 공장에서 자신이 원하는 모양을 담아내고 찍어내기도 한다. 타라 도노반은 그 반대의 작업을 해왔다. 시판되는 소재를 이용해서 선과 면과 양감을 구현하고 스케일을 형성한다. 공간에 놓인 어떤 작품은, 그 공간을 완전히 다르게 만들기도 한다. 타라 도노반만이 가진 재주다. 그처럼 세련되고 유려한 미적 감성을 가진 작가는 거의 없다. 타라 도노반은 노동 집약적인 작업을 꾸준하게 해오는 작가 중 가장 알려진 이름이다. 작가 솔 르윗의 영향을 받은 듯하지만 타라 도노반은 확실히 다른 세계를 그린다.
‘Composition’은 올해 처음으로 발표한, 타라 도노반의 새로운 시리즈다. 옅은 물결처럼 보이는 이것은 카드 수만 장을 모아 만들었다. 옆면이 하얀 카드를 빼곡하게 붙여 하얗게 채우거나 그림자가 보이도록 배열했다. 그렇게 꼭 추상화 같은, 조각 같은 페인팅을 만들었다. 그의 다른 작품들인 조각이나 설치와 비교하면 컬렉터들이 수집하기에도 훨씬 더 수월하다. 수공예적인 노력을 가했음에도 평면적인 형태를 띤다는 것, 평면에서 끝나지 않고 조각이 된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Mark Bradford ‘Untitled’
요즘 블랙 아메리칸 작가들이 대세다. LA 출신의 마크 브래드퍼드는 그중 최고 위치를 점한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로,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미국관 대표였다. 잘생기고 키도 크고 목소리도 좋은데, 가장 훌륭한 것은 물론 그의 작품, 작품 세계다. 갤러리든 미술관이든 예술 작품을 관람할 때 지루해지면 그냥 지나치는데, 실제로 본 마크 브래드퍼드의 작품은 발길을 붙들고 움직일 수 없게 했다. 실제로 본다면 그 디테일과 임팩트에 놀랄 것이다. 작품의 디테일이 살아 있고 오라가 엄청나서 그가 살아온 세월 동안 축적한 에너지와 감정이 강하게 드러난다. 작품은 단순한 페인팅이 아니라 여러 가지 종이를 쌓은 구조를 이룬다. 밀린 잡지와 전단지를 모아서 지도처럼 만들기도 하고 텍스트를 써놓고 시사적인 표현을 하기도 한다. 마크 브래드퍼드야말로 현대 미술사에서 가장 이름을 크게 남길 작가가 아닌가 생각한다. 단지 흑인이어서가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페인팅 하나를 손에 넣으라면 마크 브래드퍼드의 작품을 선택할 것이다.
Tomoo Gokita, ‘Happy Family’
뉴욕에 갔다가 우연히 어느 갤러리에서 토무 고키타의 작품을 봤다. 특이했다. 전혀 본 적 없는 작업이었다. 모노톤으로 인물 추상을 그렸는데 형체는 모두 해체시켰다. 옛날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피카소의 그림 일부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력이 궁금해 조사해봤더니 일러스트레이터 출신이다. 토무 고키타의 작품에는 세고, 우울하고, 묘한 정서와 유머러스함, 섹슈얼한 이미지가 혼재한다. 실제로 보면 영정 사진 같기도 하고 무섭고 괴기스러운데 굉장히 재미있는 구석이 많다. 그는 언제나 인물을 그리지만, 화폭 어디에도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최근에는 패턴도 복합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물감의 농도와 터치를 조절해 수채화와 같은 효과를 내기도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작가들, 이를테면 무라카미 다카시와 요시모토 나라 등이 1세대라면 토무 고키타는 그 뒤를 따르는 2세대 그룹으로, 지금 매우 활발하게 페인팅 작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 더 좋은 작가로 성장할 것 같다. 미국의 작가 조합인 카우스(Kaws)의 작가들과 친하고 활동도 같이 한다. 그의 작품 가격은 몇 년 새에 많이 올랐다. 예전에는 1m 정도 크기의 작품이 2만~3만 달러였는데 지금은 경매에서 20만 달러에 이른다.
이정민의 작업은 보는 각도에 따라 변화한다. 건축물의 실내 또는 외관, 구조물이 있는 풍경 등과 같은 인공적인 환경을 담아낸다. 일상에서 무심하게 지나친 오브제에게 자신의 역할과 존재감을 드러내도록 하여 건축물 속 풍경 안에서 쉽게 스쳐 지나가버릴 소소한 일상을 아카이빙하는 작업이다.
정승진 G.갤러리 대표
Holton Rower, ‘Untitled’
홀턴 로어는 지난 2012년, 디자인 마이애미와 바젤에서 합판 위가 아닌 사람의 몸에 물감을 부어 푸어 페인팅(Pour Painting)을 했다. 회화를 퍼포먼스 영역으로 끌어간 것이다.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미술 시장의 관심이 다시 그에게 몰린 계기였다. 그는 회화의 영역을 넓히며, 회화에서 더 먼 곳까지 폭넓게 활동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홀턴 로어가 세간에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그가 알렉산더 칼더의 손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그는 정확히 계산된 양의, 다채로운 물감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작업할 때에는 시간을 엄격히 정하는데, 각기 다른 물감을 부어 만들어내는 조합은 그야말로 보기 드문 예술적 탐구의 결과물이다. 알렉산더 칼더의 손자로 더 유명한 것이 사실이만 그의 작품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가라고 생각한다. 할아버지 이름은 그에게 플러스와 마이너스 작용을 동시에 하는 것 같다. 현재 홀턴 로어는 칼더 파운데이션의 전속 작가다.
Michael Scoggins, ‘I’m a Real Patriot’
마이클 스코긴스는 국내에는 지드래곤의 전시를 통해 많이 알려진 작가다. 지금 그의 작품은 미국뿐 아니라 유럽 각지에서 대거 소개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작가다. 2004년 뉴욕 프리스카 C. 유시카 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
마이클 스코긴스의 화풍은 신선하다. 어른에게 잊고 있던 감성과 감정, 각성을 불러일으킨다. 그는 작품에서 혼란스러운 미국과 세계적 상황을 자주 비판한다. 어른이 된 우리는 미처 진솔하게 던지지 못하는 주제, 한번쯤 여과해 내뱉는 표현을 마치 아이처럼 일체의 망설임 없이 써 내려간다. 자아, 가족, 관계, 사회 그리고 종교 등의 주제를 직접적이고 실체적인 작품으로 표현한다. 마이클 스코긴스는 미술 정치학을 전공했다. 그는 캔버스를 쓰지 않는다. 확대된 노트를 사용한다. 때론 고의로 그 노트를 구기고 찢고 접기도 한다. 일반적인 드로잉으로 남겨두지 않고 3차원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이다. 그는 미술 시장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가다. 지금 한창 다양한 컬렉터층을 형성해나가는 단계다.
이정민, ‘Tangent’
7년 전, 미디어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레이션을 준비하다 이정민을 처음 알게 됐다. 그는 파워포인트와 렌티큘러(보는 각도에 따라 그림이 달라지는 입체판)라는 희귀한 툴로 작업한다. 금호 뮤지엄과 평창 올림픽 등 많은 기관에서 미디어 아티스트 작가로 활동 중이다. 평면으로 작업한 미디어 아트라 소장 가치 면에서도 훌륭하여 최근 개인 컬렉터들이 렌티큘러 평면 작업을 많이 거래한다. 이정민의 작품에는 사진과 페인팅의 긍정적인 요소만이 존재한다. 사진의 현대적인 느낌과 페인팅이 주는 깊이감을 렌티큘러의 움직임으로 보여준다. ‘Tangent’는 그의 작업 중에서도 3번째 렌티큘러 시리즈다. 이전의 렌티큘러 시리즈에는 그래픽적인 표현이 주를 이루었다. 작품 위에 드러나는 화면의 움직임이 다소 과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3번째 렌티큘러 시리즈는 사진의 느낌을 많이 살리고 배경에 움직임을 부여해 작품에 더 집중하게 만든다.
이민주 갤러리 ERD 대표
Gideon Rubin, ‘Ohne Titel’
기드온 루빈은 몇 년 전 아트 페어에 나온 갤러리 카르스텐 그레브(Galerie Karsten Greve)에서 접하게 되었다. 기드온 루빈은 1973년에 태어난 이스라엘 작가다. 중국인 작가와 결혼하여 영국에서 작업한다. 작품에는 그의 배경과 경험이 직간접적으로 드러난다. 계속해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개인전 및 단체전과, 이스라엘 뮤지엄 등 여러 뮤지엄에서 전시를 열었고 얼마 전에는 중국 청두의 MOCA에서 개인전
정승혜, ‘번뇌의 달은 모두 별이 되리’
드로잉에 기반한 정승혜 작가를 좋은 기회에 소개받았다. 정승혜 작가의 드로잉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흥미롭다. 드로잉이 주는 강한 선과 밝은 색감이 자칫 드로잉이라는 점을 놓치기도 하고 밝고 동화적인 이미지가 연속적으로 등장해 그 안에 있는 슬픔, 상처, 외로움 같은 스토리들을 놓칠 때도 있다. 작품 위에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가 귀엽게 산재하는 것이다. 이 모든 장애 요소들을 거쳐 작품 그 자체를 바라보기 시작하면 마치 작가의 삶 전체를 동화로 듣는 것만 같다. 그는 예민한 작가다. 한편으로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무던한 성격을 지니기도 했다. 작품에서는 그가 처한 어려운 상황과 삶의 슬픔, 상처, 고뇌 등을 엿볼 수 있다.
황선영, ‘The Endless Drizzle, Then Shower, Then Drizzle, Then Shower’
우연한 기회에 황선영 작가가 사치 컬렉션에 뽑힌 것을 알았다. 그의 이력과 작품을 접한 후 더욱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는 영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젊은 한국인 작가다. 한국 작가로는 최초로 2016년 영국의 차드웰 어워드에 선정되었다. 추상 회화에 대한 그녀의 집요한 시도와 과정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황선영은 스케치나 드로잉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작업의 모든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한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작가 자신의 삶과 고뇌를 작거나 큰 캔버스 안에서 여실히 보여준다. ‘The Endless Drizzle, Then Shower, Then Drizzle, Then Shower’는 황선영의 신작으로 곧 한국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의 대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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