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합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면 자연스레 이런 질문이 따라온다. “그래서 요즘엔 누가 제일 좋아?” 그러면 망설임 없이 답한다. “다이나믹 듀오”라고. 약간 당황한 목소리로 거듭 질문이 날아온다. “아니, 요즘 말이야, 요즘.” 음원 차트에 입성한 수많은 힙합 뮤지션들 중 굳이 ‘17년산’ 다이나믹 듀오를 ‘요즘 힙합 뮤지션’으로 꼽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들은 늘 ‘동시대적’ 음악을 만들어 들려주기 때문이다.
올해 초 <무한도전>에서 개코가 선보인 ‘당신의 밤’을 들어보라. 트렌디한 비트 위로 서정이 흘러넘친다. 이 곡으로 개코에게 ‘역시는 역시’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2015년 말, 다이나믹 듀오의 정규 앨범 <Grand Carnival> 이후 활동이 뜸하던 그가 올해는 여기저기 모습을 보일 계획이라고 했다. 그 시작은 4월 발매한 새 싱글 앨범이 될 터였다. 힙합이 대세가 된 요즘, ‘전설의 형님’이 아닌 ‘현역 뮤지션’으로 활동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를 을지로의 아주 ‘힙’한 공간으로 불러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대한민국 힙합 역사를 함께해온 그가 얼마나 ‘컨템퍼러리’한 음악을 들려줄지 몹시 기대됐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사진 찍는다는 사람치고 너무도 자연스럽게, 개코는 어제도 이런 화보 2개 정도는 소화한 사람처럼 촬영을 마쳤다. 인스타그램 스타인 아름다운 아내의 남편, 두 아이의 아빠이자 아메바 컬쳐의 대표, 그리고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를 만났다.
한동안 얼굴 보기 힘들었다. 뭐하면서 지냈나?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요즘엔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아도 시간이 훅 지나간다. 그동안은 사무실에 자주 나가고 회의에도 참여하면서 회사원처럼 지냈다. 지금은 일주일에 몇 번씩 우리 회사 소속 아티스트들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직원들도 만난다.
면담을 자주 하는 사장인가 보다?
면담이라고 하면 너무 딱딱하게 들린다. 그냥 회사에 나가서 애들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나는 이제 가정이 있으니까 주말에는 꼭 집에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이렇게 저렇게 따져보면 일주일 중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5일뿐이니 내 작업을 할 시간이 촉박하다. 빨리 뭔가를 보여주기보다, 한 곡 한 곡 신중하게 완성도를 높여 재밌게 내자고 마음먹었다.
이번 새 싱글 앨범의 주된 메시지가 ‘마이웨이’라고 들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마이웨이’였으면서, 너무 새삼스러운 주제 아닌가?
내가 만든 음악을 말로 설명하는 게 제일 어렵다. 일단 ‘모든 것이 과잉인 시대’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노래다. 정보도 너무 많이 쏟아지고 자극적인 콘텐츠도 너무 많다. 나 역시 어느 순간 노출을 많이 하다 보니 빛이 있는 만큼 그림자도 생긴 것 같았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음악을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만족시켜주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어떤 기준과 수준을 향해 스스로 몰아붙이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 순간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냥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내가 하고 싶고 재미있고 잘할 수 있는 일을 재미있게 하자는 생각에서 출발해 완성한 노래다.
2000년대 초반부터 활동을 시작했으니까, 17년이 넘었다. ‘살아 있는 전설’이 아니라 ‘현역’으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런 점을 늘 고민하나?
맞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과 잘할 수 없는 것을 확실히 구분하려고 한다. 예전에는 우리가 음악 신 안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그저 어떤 게 멋있는지를 매 순간 치열하게 고민하기 바빴다면,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음악 외에도 주어진 과업이 많아졌다. 그 과정에서 일정 부분은 포기해야 하더라. 그런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친구들과 협업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에는 뭐든지 직접 하고 싶었다.
그땐 내가 온전히 쓸 수 있는 24시간이 있었으니까 더더욱 그랬다. 그만큼 흐름을 따라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고. 지금은 시간이 부족하니까,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선택해서 집중하기로 한 거다. 시간을 투자하지 못한 부분은 튀는 아이디어와 하루에도 몇 개씩 비트를 만들어내는 젊은 친구들과 협력하는 거지. 지금 흐름에 맞는 사운드를 그 친구들에게 빌리고, 우리는 그 위에 완성도 있는 이야기를 만들자는 거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참 이상적인 리더 같다.
근데 힘들다. 내가 음악 프로듀싱만 하는 게 아니라 회사도 운영해야 하니까. 정해진 시간 안에 결과물이 나와야 할 때도 있고, 멋있는 것만이 아니라 돈이 되는 것도 해야 할 때가 있다. 나도 겪어봤지만, 뭔가 안 풀리기 시작하면 1년 내내 매달려도 안 될 때도 있고 말이다. 그래서 무조건 몰아붙이기도 힘들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앨범은 내야 하고. 이런 줄다리기에서 가장 많이 피로를 느낀다.
어떤 록밴드 뮤지션이 ‘요즘 어린 친구들이 힙합만 멋있는 장르라고 생각할까봐 걱정된다’는 말을 하더라. 고등학생 래퍼를 뽑는 경연 프로그램까지 방송되는 요즘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일단 시대가 선택한 큰 흐름을 바꾸긴 힘들 것 같다. 너도나도 신드롬처럼 좋아하기 때문에 힙합 신이 더 커지는 측면도 있다. 공급 과잉 상황에서도 잘하는 친구들이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어 이 흐름을 한마디로 설명하긴 어렵다. 미디어에 노출되는 힙합의 부분적인 색깔, 이를테면 ‘디스’ 같은 것이 극대화되어 재미있는 싸움 구경하듯이 힙합을 접하는 이들도 많다. 그런데 듣다 보니 좋은 요소가 있어서 팬이 되기도 한다. 10년 전쯤 이런 비슷한 현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특정 장르가 유행처럼 번졌다 사그라지는, 그런 시기가 있었다. 지금의 이 열기도 언제 식을지 모른다. 언젠가는 대중의 관심이 다른 음악으로 향할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지금은 미디어의 순기능이 있다고 믿는다. 색깔 있고 실력 있는 친구들이 미디어를 통해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으니까 생각보다 오래갈 것 같다는 희망이 있다. 그럼 우리도 좀 더 오래 할 수 있겠지?(웃음) 물론 다양한 장르가 사랑받으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한 게 아쉽기는 하다.
몇 년째 힙합 열기가 지속되다 보니 다양하고도 많은 힙합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다. 다이나믹 듀오라면, 당연히 섭외 1순위일 텐데 아직까지 방송으로는 만난 적이 없다.
‘심사위원’이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있었다. 누군가 예술을 심사할 순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리 힙합 음악을 오래 해왔기로서니 어떻게 누굴 판단하고 가르치나, 여태껏 우리가 노래한 것과 다르지 않나 싶었다. 그런데 요즘 경연 프로그램은 기성 뮤지션과 신인이 함께 음악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더라. 그래서 그런 프로그램에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쨌거나 방송을 통해 음악을 만들고 발표하며 경제 활동을 하는 거니까. 어떻게 보면 영리하게 서로 이용하는 것 같다. 미디어가 새로운 뮤지션을 노출시키고 그 뮤지션의 캐릭터와 서사를 만들어 팬들을 음원으로 유입시키는 일종의 도구 같은 거지. 우리보다 젊은 친구들이 똑똑한 거다.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일 수 있지만, 점점 더 다채로운 예술 영역으로 관심사를 확장하는 것 같다. 종합 예술인이 목표가 된 건가?
그 반대인 것 같다. 예전에는 내가 직접 모든 분야, 앨범 커버 아트와 뮤직비디오 작업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다 무엇을 느꼈냐면, 인간이 모든 걸 다 잘할 순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어느 정도 능력이 있는지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투머치’였다.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잘 그릴 수 있는 사람을 만나 함께 작업하면 된다. 그리고 그렇게 재능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상상도 못한 결과물이 나온다. 개인이 가진 색깔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비트 작업을 하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소리가 반복되는 게 느껴지더라고. 너무 재생산하고 있는 건 아닌가, 반성도 하게 됐다. 그래서 전방위적인,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는 랩과 노래를 더 잘할 수 있는 방법, 무대 위 퍼포먼스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해당 분야 고수에게 부탁하려고 한다.
힙합을 처음 듣는 사람에게 입문 과정으로 다이나믹 듀오의 2집 <Double Dynamite>를 추천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멜로디와 랩이 적절하게 어우러져서 힙합이 친숙하게 들린다는 이유였다. 다이나믹 듀오 초기 앨범과 요즘 앨범을 비교해본다면 어떻게 자평할 수 있나?
사운드의 변화는 있겠지만, 우리 이야기를 쉽게 쓰려고 한다는 골조는 변함이 없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렵게 쓰지 말자고 늘 생각한다. 지적인 허영을 위해 어려운 단어를 쓰면서 ‘난 이렇게 멋진 한 줄을 썼어!’라고 하긴 싫었다. 음악은 결국 상호 작용인데 내 음악을 듣고 상대방이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 다이나믹 듀오도 먼 길을 돌아 돌아 오는 중인데, 한때는 ‘있어 보이는 단어’를 쓰려고 시도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좀 더 쉽고 솔직하게, 이 감정을 이런 쉬운 단어로 쓸 수밖에 없다면 이게 맞는 거다.
아메바 컬쳐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표로서 원하는 인재상이 있다면?
본능적으로 보는 것이 있다. 아티스트로서 정체성이 있는지, 그것이 얼마만큼 발전 가능성이 있는지를 본다. 인성을 단번에 파악할 순 없지만, 함께 있으면 죽이 잘 맞고 열려 있는 사람을 선호한다. 뛰어난 재능으로 혼자서도 성공할 수 있지만 우리 회사가 구축해놓은 시스템을 영리하게 잘 이용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좋다. 내가 못하는 부분을 인정하고 한 팀이 되어 같이 가보자는 생각도 중요하다. 또 한 가지, 만약 랩을 하는 친구라면, 16마디를 미친 듯이 잘하는 걸 원하진 않는다. 1절에 랩을 하다 후렴도 만들 줄 알고, 기승전결의 흐름을 알고 있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역시 입사가 어려울 거 같다. 소속사 사장인 다이나믹 듀오는 올해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나?
지금 계속 얘기하는 것이 있다. 작년 내내 매체에 많이 노출되지 하지 않아서 최자랑 ‘올해는 좀 빡세게 해보자’고 말했다. 그래서 어딘가에서 볼 수 있을 거다. 만약 어떤 프로그램에 투입된다면, 최대한 집중해서 최고의 결과물을 내려고 한다. 이것저것 다 하다 이도저도 아닌 것은 싫다. 예전엔 에너지가 넘쳐서 뭐든 다 할 수 있었는데, 이젠 힘들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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