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우어퐁당
경리단 사잇길에 컴퍼스처럼 서서 뱅그르르 돌면 입에 침이 고이기 시작한다. 더부스, 맥파이, 우리슈퍼가 어깨동무하며 모여 있는 이곳은 맥주를 싫증 날 만큼 진탕 마시고 싶은 날 어김없이 향하는 곳이다. 아주 춥던 지난겨울부터였나? 씁쓸한 홉 향기로 가득하던 이곳에 곰팡이 핀 지하실이나 시골 장독대에서나 맡아봤을 법한 쿰쿰한 냄새가 엉기기 시작했다.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따라가면 예전 비어포긱스 테이스팅룸 자리에서 발걸음이 멈춘다. 간판에는 ‘사우어퐁당’이라 적혀 있다. 사우어퐁당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오로지 사워 맥주만을 판매하는 공간이다. 속이 훤히 보이는 냉장고에 줄을 딱딱 맞추어 서 있는 80여 종의 보틀, 10개의 탭에서 매일같이 콸콸 쏟아지는 드래프트 맥주까지 모두 사워 맥주다. 심지어 무알코올 맥주까지도.
맥주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는 홍콩, 일본에 앞서 아시아 최초로 국내에서 사워 맥주 전문 펍이 생긴 데는 이곳의 사장 이승용 덕이 크다. 그는 퐁당 크래프트비어컴퍼니 대표로, 맥주 케그에 한바탕 빠졌다 나온 듯 얼굴빛이 발그레한 남자이자 엄청난 사워 맥주 ‘덕후’다. 이승용에게 사워 맥주에 대해 영 모르겠다고 고백하면 냉장고에서 맥주 몇 가지를 척척 꺼내올 것이다. 초심자가 마셔도 부담스럽지 않을 것으로. 계절이 봄으로 기울기 시작하면 아마 제주 감귤을 넣어 빚은 ‘제주 아일랜드 탠져린 고제’를 내오지 않을까? 잘 만든 디저트 같은 이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켜고 나면 마냥 퀴퀴할 것이라는 사워 맥주에 대한 편견이 박박 지워진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녹사평대로54길 6
2 버번스트릿
작년 한 해 싱글 몰트위스키에 대한 찬사를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어서인지 괜한 반항심이 생긴다. 와이낫, 몽키숄더, 커피바 케이… 늦은 밤 한남동 골목을 느릿느릿 걸으며 몰트 바란 몰트 바는 그저 스쳐 지나친다. 그럼에도 위스키가 간절하지만 통조림 속 정어리처럼 모르는 사람과 어깨를 맞댄 채 술을 마시고 싶은 기분이 아닐 때엔 버번스트릿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지하 1층을 널따랗게 홀로 차지한 버번스트릿에서는 국내 수입되는 거의 모든 종류의 버번위스키를 홀짝일 수 있다.
물론 싱글 몰트위스키도 있고 럼, 진, 보드카도 있지만 백바의 허리를 차지하는 것은 버번위스키다. 바 체어에 앉아 참을성 있게 그 수를 세어보면 종류만 70가지. 오너 바텐더 이영호는 백바에서 능수능란하게 버번을 꺼낸 뒤 ‘새저랙’ ‘뵈외카레’ 등의 클래식 칵테일 또는 ‘캡틴 버번’ ‘잭 피아’ 같은 창작 칵테일을 만들어주기도 한다. 엘라 피츠제럴드, 루이 암스트롱을 좋아하는 그 덕분에 언제 가도 재즈를 안주 삼아 버번을 홀짝일 수 있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대사관로31길 31 지하 1층
3 작
전통주를 파는 곳이라고 하면 왜 이런 것들부터 떠오르는지. 옆으로 드르륵 밀고 입장해야 하는 창호문이나 어딘가에서 졸졸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실내용 물레방아…. 지난 12월 역삼동에 조용히 문을 연 ‘작’은 전통주에 얽힌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격파하는 우리 술 전문 바다. 주점이 아닌 바라 부르는 이유는 작의 사장이자 직원, 그러니까 이곳을 홀로 운영하는 강병구의 말을 빌려 설명할 수 있다.
“굳이 우리 술이라고 해서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는 거죠.” 작에서는 매끈한 디자인의 전통주 병들이 못생긴 업소용 냉장고에 갇히는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는다. 대신 노란빛이 옅게 깔린 백바에 전통주를 가지런히 정렬한다. 도수가 낮은 약주, 탁주도 있지만 작의 메인은 증류주다. 델 것처럼 뜨거운, 40℃ 이상의 증류주를 잔술로 판매한다. 유리잔에 담긴 동그란 아이스 볼을 굴리며 전통주를 홀짝이면 머릿속에 커다란 물음표가 절로 그려진다. 왜 이전까지 이런 시도가 없었을까?
주소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95길 14
4 화이트 바
술이 재즈라면 조니 워커, 발렌타인, 시바스 리갈 같은 스카치위스키는 스탠더드 넘버라 할 것이다. 그에 반해 보드카, 진, 테킬라 등의 화이트 스피릿은 마일스 데이비스를 좀처럼 따라잡을 수 없었던 쳇 베이커와 비슷하다고 할까? 이 말에 돌을 던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둘 중 하나다. 쳇 베이커의 팬이거나 빠르게 바 문화를 흡수하는 사람이거나.
런던, 뉴욕, 도쿄 등 바 문화를 주도하는 도시에서는 사실 오래전부터 화이트 스피릿이 화르르 타올랐다. 불씨가 서울로도 튀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때 지난해 청담동에서 오로지 화이트 스피릿만을 파는 ‘화이트 바’가 문을 열었다. 화이트 바가 꾸민 작당은 간단하다. 백바에서 위스키란 위스키는 모조리 치우고 그 자리에 화이트 스피릿만을 퍼즐 맞추듯 채우는 것. 특히 진의 라인업이 좋다. 국내 정식 수입되는 40여 종의 진은 물론 그동안 국내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35종의 진까지 들여왔다. 보통 전대미문이라는 수사는 이런 때 사용하지 않나?
주소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80길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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