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서핑 포인트
서프스업
주말 서퍼들에게 바다가 없는 평일 서울은 허전하고 심심하다. 이미 강원도 양양에서 파도 좀 타본 이들은 다 아는 서핑 숍 ‘서프스업’이 갑자기 서울 압구정 한복판에 등장했다. 눈을 감으면 파도가 어른거리는 도시의 서퍼들은 물론, 아직 바다의 참맛을 모르는 이들에게도 서핑 문화를 소개하고자 지난해 11월 4일 문을 열었다.
양양 서프스업의 대장인 김성호, 일러스트레이터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승태, 그리고 주말 서퍼로 살다 회사를 그만두고 합류한 정재용. 이 세 사나이를 서프스업에서 만날 수 있다. 1층엔 카페, 2층엔 서핑 용품과 서핑 아트워크를 전시해놓는 공간으로 조성해 서프 아트를 하는 예술가들의 사진과 드로잉,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일 계획이다.
여름에 반짝 유행했다 사라지는 레저 스포츠 말고, 역사와 문화가 있는 서핑 그 자체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어 세 남자는 아주 크게 마음먹었다. 눈뜨면 바다가 보이던 양양에 살다 삭막한 도시로 거처를 옮긴 거다. 서프스업 대장 김성호는 “먹고는 살아야겠고 파도는 타고 싶고. 서핑에 빠진 모든 이들이 자연스럽게 이런 고민을 한다. 그 고민의 결과가 바로 서프스업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프스업은 양양에서부터 젊은 서퍼를 후원하며 그들의 재능과 열정이 현실의 장벽에 막히지 않도록 도왔다.
재작년부터 서핑 전시를 기획해 지속적으로 작품전을 열고 있는 김승태는 요즘 관련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를 열심히 찾고 있다. “아직까지는 서핑 문화의 저변이 넓지 않아 더 많은 작품을 소개할 수 없어 안타깝다.” ‘작품에 영혼을 담겠다’는 의미로 지은 ‘소울셀러(Soulseller)’가 그의 또 다른 이름이다. 너무 어린 시절에 정한 닉네임이라 이제 와서 바꾸기도 민망한 이 이름이 레게 음악과 서핑을 좋아하는 이들에겐 익숙할 수도 있다.
승태는 “외국에 파도를 타러 갔다가 만난 서퍼들의 삶을 통해 시야가 넓어졌다. 출근하기 전에 잠깐 파도 한 번 타고 일하러 가는 모습이 내게는 이상적인 삶의 형태였다. 나 역시 그런 삶을 살고 싶어서 서프스업 서울에 합류했다”고 했다. 정재용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었다.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서프스업 서울을 함께 꾸려나가고 있다.”
물론 이들의 도전은 쉽지 않다. 카페와 갤러리가 빼곡한 서울 강남에서, 파도를 타던 서퍼들이 사업을 시작한다는 건 어쩌면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쉽지 않은 일에 도전한다는 건 서핑과 비슷하다. 쉬운 건 재미가 없다. 우리끼리 조금씩 풀어가다 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김성호 대표의 말에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서핑을 매개체로 알게 된 세 남자에겐 야무진 목표가 있다.
서핑에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도 서프스업 서울에 놀러 왔다 서프보드를 짊어지고 양양 죽도 해변의 파도 속으로 뛰어들게 만드는 것. 그래서 곳곳에 서핑을 하며 촬영한 영상과 사진, 아트워크들을 볼 수 있게 걸어두었다. 세 남자는 말한다. “진짜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가 있다. 지금은 우리가 꿈꾸는 목표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 단계다. 꿈에 가까이 가기 위해 바다와는 멀어졌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서프스업 서울은 이들에게 또 다른 의미의 터닝 포인트가 될 거다. 그 좋아하던 서핑 횟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지만 괜찮다. 쉬운 일은 재미없으니까.
호주에서 온 멋있는 커피
듁스커피 쇼룸
당인동 힙스터들만 아는 골목이 하나 있다. 구불구불 골목을 따라 내려가면 어린이집이 하나 보이고, 격이 다른 예술 서적을 전 세계에서 수집해 소개하는 책방 ‘베로니카 이펙트’가 눈에 들어온다. 그 옆에 아주 이질적으로 모던한 공간이 위치한다. 가죽으로 만든 앞치마를 두른 훤칠한 청년들이 향기로운 커피를 내리는 걸 창밖에서 보자면 그냥 카페 같다.
하지만 제너럴 포스트 오피스 이기훈 대표는 이곳을 ‘쇼룸’이라 부른다. 호주의 유명 스페셜티 커피 ‘듁스커피’를 시음하면서 그 맛을 알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커피 애호가 혹은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들이 듁스커피의 다양한 원두를 구입할 수 있는 쇼룸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거다. SNS에서 ‘훈남 사장님’으로 조용히 여성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는 그는 커피를 사랑하는 청년이었다.
그래서 커피를 주제로 세계 일주를 하기 위해 6년 전 호주로 떠났다. 하필 첫 번째 여행지 호주 멜버른에서 듁스커피를 만나는 바람에 세계 일주의 꿈은 여전히 꿈으로 남게 됐다. “듁스커피가 마켓 리더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이 좋은 걸 한국에 가져가서 내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맛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커피 맛도 좋았지만 그에게 신선한 자극을 안겨준 건 새로운 커피 문화였다. “커피를 소개하는 바리스타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누구보다 커피를 잘 아는 전문가로서 고객에게 가장 좋은 맛을 소개하고 권했다. 굉장한 자신감과 자부심이었다. 손님이 돈을 지불하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맞춰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좋은 걸 손님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으로 서비스를 한다는 점이 놀라웠다.” 듁스커피는 ‘커피는 제철 식물이다’라는 점을 늘 강조한다. 그래서 시즌마다 가장 맛있는 원두를 골라 소개한다.
예가체프를 좋아한다고 해서 1년 내내 그것만 마실 순 없다는 거다. 그때그때 좋은 맛을 내는 원두를 선택해 시즌별 최고의 커피를 알려주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당인동에 문을 연 지 1년 남짓, 이렇다 할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찾아오는’ 손님들 덕분에 듁스커피 쇼룸의 바리스타들은 쉼 없이 커피를 내린다. 카페로 만든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편히 앉아서 오래도록 맛과 향을 음미할 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멜버른의 맛을 찾아 방문한다. 이처럼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지만 이기훈 대표는 얼마 전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토요일에 문을 열지 않기로 방침을 정한 것. “여기는 데이트를 위한 장소가 아니다. 우리는 카페 오너 혹은 듁스커피 자체를 궁금해하는 분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평일에도 충분히 교류할 수 있기 때문에 주말에는 카페 투어를 다니는 등 좀 더 창의적인 활동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 공간이 남다른 이유는 또 있다. 세심하게 공을 들여 커피를 추출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것 외에도 이곳을 찾는 모든 이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커피를 더 친근하게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이다. “품질 좋은 원두만으로는 부족하다. 커피는 종이컵의 질에 따라서도 맛이 변한다. 또 어떤 설탕을 쓰느냐도 미묘한 차이를 낳는다. 이런 세심한 과정을 조금씩 업그레이드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
음에는 대표와 2인의 바리스타가 잘생겨서 인기를 얻는구나, 했다. 하지만 제대로 틀렸다. 이기훈 대표가 단단하게 키워온 커피 철학 덕분에 새로움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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