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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하게, 정기고

정기고는 갑자기 찾아온 인기에도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그것은 단단하게 자신의 음악을 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담담함이었다.

UpdatedOn February 13,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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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셔츠는 제이쿠, 반지는 락킹에이지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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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터틀넥 워머 니트는 참스, 팬츠는 아브, 흰색 셔츠와 구두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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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고를 만나면 다음 두 가지 때문에 놀란다. 하나, TV 화면에서 보던 것보다 키가 굉장히 크고 상당히 남자다운 체격의 소유자라는 것. 둘, 굉장히 시원시원하고 외향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 알면 알수록 놀라운 남자, 정기고는 큰 키를 꾸벅 접어가며 씩씩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요즘 ‘정주행’ 중인 드라마 이야기를 듣다가 잠시 깜빡할 뻔했지만 그는 2000년대 초반, 한국 땅에 블랙 뮤직 신이 태동하던 그 시절 인피닛플로우와 이루펀트, 더콰이엇 등 다양한 힙합 뮤지션들의 음악에 피처링으로 참여해 음악 활동을 시작한 베테랑이다. 벌써 16년 차 뮤지션이 된 그에게 2014년은 굉장한 터닝 포인트가 됐다.

씨스타의 소유와 함께한 ‘썸’이 메가 히트를 기록하면서 정기고라는 이름 석 자를 또렷하게 대중에게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모두가 힘 있는 고음을 뽑아내며 한국적 R&B를 부를 때 그는 팔세토 창법을 뽐내며 담백하게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나만 알고 싶었던 홍대 오빠 정기고’가 대한민국의 음악 방송과 음원 차트를 ‘올킬’하고 나자 내심 그에게 어떤 변화가 찾아올 거라 짐작했지만, 틀렸다. 그는 늘 그랬듯 담담하게 자신만의 바이브를 유지했다. 크게 흔들리지 않고 하고 싶은 음악과 대중의 기대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음에 대한 부담을 덜어내고 그는 다시금 무던하게 노래를 부른다. 여태까지 그래 온 것처럼.


어려 보이는 외모 덕에 많은 이들이 ‘요즘 젊은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되게 ‘오빠’인 걸로 알고 있다.
하하. 요즘 젊은이는 확실히 아니다.

2002년에 데뷔해 벌써 16년 차 가수다. 당시 언더그라운드 블랙 뮤직 신의 시작을 함께한 사람으로서 그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그때는 어려서 그랬는지 마냥 재밌었다. 뭔가를 이루어야겠다는 생각보다 친구들과 “이 곡 어때? 같이 할까?”라는 식으로 노래를 불렀다. 당시에는 그저 재미로만 하는 것이 가능했다. 한국에 흑인 음악 신이 막 태동할 때라 저변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나보다 형들이 더 고생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여건이 참 좋아졌다. 흑인 음악에 대한 대중의 이해도 넓어지고 즐기는 이들도 많아지고 말이다.

예전 인터뷰 사진을 찾아봤는데, 그때의 긴 머리보다 지금의 짧은 머리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다시 2000년대 초반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바꾸고 싶은 게 있나?
좀 더 빨리 솔로 앨범을 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한다. 그런데 아마 그때로 다시 돌아가도 앨범을 일찍 내진 않았을 거다. 하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욕심이 크게 없었다. 내 이름을 걸고 하는 작업물보다 친구들 음악의 피처링으로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오롯이 내 결과물을 발표하는 것에 대한 욕심이 없었는데,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 스스로를 채찍질해보겠다.

어쨌거나 첫 싱글을 2008년에 발표했다. 활동을 시작한 지 거의 6, 7년이 지났을 무렵이다. 전혀 조급하지 않았나?
현실을 확실히 못 봤던 거 같다. 매 순간이 즐거우니까 앨범을 언제 낼지 뚜렷한 계획을 세우진 않았다. 물론 이런 생각은 확실히 있었다. 친구들 음악의 피처링으로 서서히 인정받고 나서 그다음 단계를 밟아야겠다는 것. 인지도를 충분히 쌓은 후 내 앨범을 내고, 그 앨범을 통해 인정받고 나서 소속사를 정해야겠다고 말이다. 회사가 나를 만들고 키워주는 입장이 아니라 좀 더 동등한 입장에서, 내 음악을 듣고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무작정 회사에 들어가서 ‘저 앨범 내주세요’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도 없었고. 나름대로는 순차적인 단계를 밟은 건데 내 성격이 느긋한 탓에 너무 오래 걸렸다.

요즘 노래 ‘썸’을 통해 정기고를 알게 된 사람들은 당신을 트렌디하고 감성적인 음악을 하는 뮤지션이라고 생각할 것도 같다. 꽤 오랜 시간 지켜온 정기고의 음악적 중심을 이야기해본다면?
음악적 단어나 장르의 특징으로 내 중심을 설명하긴 어렵다. 그때그때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왔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적 중심을 이야기한다면 ‘나’라고 답하겠다. 어릴 때부터 흑인 음악을 좋아해왔고 그 안에서 계속 음악을 해오고 있긴 하지만 그게 내 중심이고 뿌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장르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가 가장 중요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있어야 음악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유난히 좋아하는 감성이 있다. 감정이 과잉 같다 싶어야 호소력 있다고 느낀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정기고는 너무 담백하다. 바로 그 지점이 정기고의 음악을 세련되게 만들어주는 포인트 같다. 동의하나?

동의라기보다는 감사하다. 내 가사를 쓰고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니까, 더더욱 노래에 내 성격이 묻어나는 것 같다. 소울 맨이라고, 노래를 정말 잘하는 친구가 있다. 근데 이 친구가 원래 성격도 센데 노래를 하면 엄청 세진다. 예전에 정인과 둘이 듀엣 하는 걸 봤는데, 진짜 맹수 두 마리가 싸우는 줄 알았다. 하하. 나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보니 상대방이 소리를 높이면 빠지려고 한다. 한국 대중가요에서 도드라지게 앞으로 튀어나오려면 목소리가 크고, 울어주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 요즘 많이 방송되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을 봐도 어찌됐건 그것이 점수를 받을 수 있는 포인트이기도 하고. 그런데 나의 길은 아닌 거 같다.

생각보다 적응력이 엄청 좋은 것 같다. 오늘 사진 촬영도 그렇고, <인기가요> 같은 음악 방송도 그렇고, 꽤 능숙하게 잘해내는 편이다.

음악 방송은 소유의 역할이 컸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 출연한 음악 방송이었는데, 소유와 함께 활동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내가 소유에게 의지도 많이 하고, 음악 업계의 베테랑인 우리 회사 직원들과 매니저들 덕에 적응하기가 한결 수월했다. 내 적응력이 좋다기보다, 최대한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노력한 거다.

가요 프로그램 1위, 음원 차트 1위. 이런 엄청난 결과도 담담하게 잘 받아들인다.
성격이 덤덤한 면도 있고, 사실은 크게 와 닿지 않았다. 나는 평생 순위를 생각하면서 음악을 한 적이 없었다. ‘썸’으로 음악 방송에서 1위를 했을 때 옆에서 소유가 막 우는 거다. 나도 너무 좋긴 한데 ‘이게 울 일인가?’ 싶어서 매니저에게 물어봤다. 그랬더니 ‘1위 하기가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그러더라. 갑자기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지 뭔가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지금은 알 것 같다. 감사하고 아주 벅찬 일이라는 걸. 그때 무덤덤하게 보였다면 뭘 잘 몰라서 그랬던 거다. 1위 하면 진짜 좋다.

아까 ‘요즘 젊은이인 줄 알았더니 되게 오빠’라는 것처럼, 정기고에 대해 사람들이 크게 오해하는 건 뭘까?

음악만 들었을 때는 수줍거나 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성격도 엄청 조용하고 집에서 책만 보고 그럴 거라고 예상하시는 분들도 많다. 그래서 공연을 보고 실망하는 친구들도 있다고 들었다. 노래를 마치고 여운 좀 느끼게 10분만 조용히 해주면 안 되겠냐는 요청도 있고. 그리고 또 실제로 보기 전에는 사람들이 내가 이렇게 덩치가 큰지 잘 모른다. 생각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좋다. 뭐 그 정도?

롱 코트는 레지스탕스, 팬츠는 플랙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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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틀넥 니트는 김서룡 옴므, 팬츠는 아브, 셔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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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도 매일 꾸준히 곡 작업을 하고 있나?

<시크릿 가든>을 보고 있다.

갑자기 왜? 요즘엔 다들 <도깨비>를 보는데.

SNS를 보다 누가 드라마의 한 장면을 올렸기에 뭐냐고 물어봤더니 <시크릿 가든>이라는 거다. 원래 집에 TV가 잘 안 나와서 드라마를 안 봤는데, 호기심이 생겨서 한번 찾아봤다. 근데 너무 재미있는 거다. 며칠째 그것만 보고 있다. <내 이름은 김삼순> 때부터 현빈 씨를 되게 좋아했는데 이 드라마에서도 너무 멋있더라. 아, 물론 그것만 보는 건 아니고. 하하. 주로 새벽에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든다. 정서적으로 차분해지는 시간이 그때니까.

2016년은 어떻게 보낸 것 같나?

나는 한 번도 좋지 않은 해가 없었다. 뭔가 도약을 시작한 해다. 작년 9월부터 싱글을 꾸준히 선보였는데, 사실 그전에 방송 활동을 하고 거창하게 앨범을 발표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다. 회사와 내가 함께 만족할 수 있는 타이틀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회사에서는 너무 좋다고 한 곡도 있었는데, 내가 과연 한 달 넘게 방송국에서 즐겁게 이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자문했다.

그랬더니 이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게 반복되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 그래서 아예 방송에 대한 부담을 없애고 내가 만들어둔 곡을 싱글로 발표하면서 천천히 원래 내가 하고 싶었던 ‘바이브’를 찾자고 마음먹었다. 만약 이런 생각을 좀 더 빨리 했다면, 부담을 덜었을 것 같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나왔으면 됐지, 뭐. 더 늦지 않아 다행이다.

역시 긍정왕이다. 그렇지만 이런 순간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만족스러운 곡인데, 대중의 반응이 내 예상과 어긋날 때 말이다. 이런 상황은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나?
일단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상황이 좀 다르다. 지금처럼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기 전에는 아무리 열심히 노래하고 음악을 만들어도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통로가 제한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땐 딱히 예상이나 반응이랄 게 없었다.

나를 좋아해주던 팬들이 늘 기다려주고 기대해주었지만 불특정 다수의 리스너는 없었던 거다. 지금은 그때보다는 훨씬 더 좋은 조건에서 음악을 들려줄 수 있게 된 반면, 불특정 다수의 리스너도 생겼다. 그래서 예전보다 음악을 만드는 데 부담이 없지 않다. 그런데 그것 또한 ‘그러려니’ 한다. 모두가 다 내 음악을 좋아할 순 없으니까.

어떻게 보면 정기고에 대한 기대치가 예전과 달라진 것일 수 있다.

맞다. 예전에는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썸’을 발표하고 메이저 시장에서 음악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만족도는 예전과 같을 수 없다. 하지만 곡 자체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전혀 없다.

아까부터 느꼈는데 말을 되게 잘한다. 막 연륜이 묻어나고 그런다.
<시크릿 가든> 얘기는 더 잘할 수 있다. 하하.

이러다 그 드라마에 영감을 받아서 노래 한 곡 만드는 거 아닌가?
그건 아니다. 그냥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돈이 많고 싶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부잣집 아들내미로 태어나서 백화점 하나쯤은 가져보고 싶다.

좋은 곡 많이 만들면 그렇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옷차림도 현빈 같다.
아, 왠지 지금 나 ‘먹이는 것’ 같은데? 하하.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서동현
PHOTOGRAPHY 레스
STYLIST 서가영
HAIR 강호(강호 더 레드 카펫)
MAKE-UP 문한음(강호 더 레드 카펫)

2017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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