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M 레코드사(이하 ECM)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에 매거진 촬영 건으로 색소폰 연주가 얀 가르바레크(Jan Garbarek)의 사진을 찍었다. 얀 가르바레크의 ECM 앨범 발매를 앞둔 촬영이었다. 이후 그 사진이 실린 매거진을 독일로 보냈고, 한동안 잊고 지냈다. 한국에서 ECM 전시를 기획한 김범상 씨가 준비를 위해 독일 ECM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내가 찍은 얀 가르바레크 사진이 붙어 있다더라.
ECM의 누군가가 당신 사진을 마음에 들어했나 보다. 후에 만프레트 아이허는 당신의 포트폴리오가 ECM이 추구해온 미적 철학과 맞닿아 있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당시 주변 사람도 내 사진이 ECM 커버와 결이 비슷하다는 말을 종종 했다. 나는 ECM 앨범들을 1980년대부터 즐겨 들었고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아 비슷한 감성을 가졌는지도 모르겠다. 얀 가르바레크를 촬영한 2001년 이후로 두 번 정도 포트폴리오를 보냈다. 답변이 없었다. 그러다 2013년 ECM 수장인 만프레트 아이허가 한국을 찾았다. ECM 전시를 위해서였다.
제목이 <침묵 다음으로 아름다운 소리>였다. 멋진 전시였다.
그즈음 한국 ECM 사장이 연락을 했다. 만프레트 아이허의 사진을 찍어달라더라. 그를 만나 촬영하고 찍은 사진을 CD로 줄까 하다 인쇄해서 줬다. 당시 만프레트 아이허의 나이가 일흔을 넘었으니까 인쇄된 사진을 더 좋아할 것 같았다. 6~7컷 정도 됐는데 컷들 사이에 나의 풍경 사진을 몇 장 끼워서 줬다. 만프레트 아이허의 한국 일정은 일주일 정도였다. 그와 촬영한 날이 둘째 날, 사진을 보낸 날이 셋째 날이다.
다섯째 되는 날 새벽에 한국 ECM 사장이 전화했다. “만프레트 아이허가 당신을 보자고 한다”고 했다. 그렇게 만났다. 그는 내 사진이 좋다고, 매년 포트폴리오를 독일로 보내라고 했다. 2014년 정명훈의 ECM 앨범 커버에 내 사진이 실렸고, 안야 레흐너(Anja Lechner), 안나 구라리(Anna Gourari)를 거치며 8개의 앨범 작업을 했다. 그런데 나는 더 많이 하고 싶다.
1년에 발매되는 ECM 앨범은 많아야 20개다. 2014년부터 3년 동안 8개면, 적은 숫자는 아니지 않나. 전 세계 수많은 창작자가 ECM 커버 아트워크의 후보자인데.
그렇긴 하지. 그래도 만족스럽지는 않다. 이번 전시를 하면서 만프레트 아이허에게 내 전시에 대한 글을 요청했다. 고맙게도 몇 줄 써주더라.
이 대목이 좋았다. ‘안웅철의 포토그래피는 정적인 순간을 누구보다도 섬세하게 담아내며 동시에 역동적인 움직임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만프레트 아이허는 정말 골 때리는 아저씨다. 타협을 안 하고 검은색, 회색 옷만 입는다. 자기 세계가 아주 완전히 형성되어 있는, 밖으로 삐져나온 구석이 조금도 없는 사람이라고 하더라. 오죽하면 음악계의 스티브 잡스라고 하겠나. 하지만 실제로 만났을 땐 그런 걸 잘 모르겠더라. 나에게 까칠하게 대할 이유가 없었지만.
당신의 이번 전시 제목이
맞다. 실제로 ECM의 전시, ECM을 위해 작업한 사진들을 기반으로 했다. 피아니스트 이루마와 협업을 통해 보여준 사진들도 있다. 음악을 모티브로 한 작업은 앞으로도 해야 할 작업이다. 나만이 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내가 온전히 할 수 있는 작업이라는 말이다.
음악에서 얻은 영감을 작업의 원천으로 삼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음악을 아주 좋아하고 많이 듣는다. 내 사진을 통해 소리와 음악적 감흥을 느꼈으면 한다. 최근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이루마가 내 사진에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앨범 하나를 냈다. 그의 9집 앨범 수록곡 전부는 내가 촬영한 제주도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것이다.
이루마의 9집 제작 노트에 쓰여 있더라. ‘있는 그대로의 풍경을 담은 사진가 안웅철의 사진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고.
내가 정말 원하는 방식의 작업이다. 사진가인 내가 음악에서 영감을 받는 것처럼 음악가도 사진에서 영감받을 수 있음을 그와 함께한 이번 작업으로 증명한 셈이다.
음악에는 언제부터 심취했나?
누구에게 영향을 받아 형성된 취향은 아니다. 부모님이 음악을 많이 듣던 분은 아니었거든. 기억하기로 처음에는 그냥 라디오에서 들려온 소리에 관심이 생겼다. 그러면서 친척 형, 누나들 따라 듣다가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어울리며 록 음악을 들었다.
그 시절 대중적인 음악이라면 록보다는 팝 아니었던가?
맞다. 우리는 더 진보적인 음악을 듣겠다며 록을 들었다. 그때 어울리던 친구들과 음악적 영향을 꽤 주고받았다. 대학 다니면서는 음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음반을 팔면서 카페도 같이 하는 곳이었다. 당시 가수들이 많이 찾았다. 양희은, 조동진, 들국화… 모두 그때 알게 된 가수들이다. 나는 디자인을 공부하던 미대생이었고 사진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다. 1988년도부터 그렇게 알게 된 가수들을 찍기 시작했다.
가장 처음 음반 사진을 찍은 가수는 강인원이다. 장필순과 김현식의 사진도 찍었고, 김광식의 커버 작업도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음악은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집에 음반도 굉장히 많다. 가리지 않고 다 듣는다. 컴퓨터나 휴대기기로는 안 듣는다. CD나 LP로 집에서 듣는다.
사진 작업을 음악과 함께 시작한 거네.
그랬다. 1989년부터 1994년까지는 모 대기업 홍보실 디자이너로 있었다. 그러다 신년 휴가로 뉴욕을 짧게 다녀왔다. 내가 뉴욕을 정말 좋아하거든. 번잡하고, 다양하고, 있을 것 없을 것 다 있잖나.
이 여행이 내 인생 첫 해외여행이자 가장 중요한 여정이 됐다. 뉴욕을 다녀오면서 직업을 바꾸기로 마음먹었거든. 뉴욕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당시 아끼는 후배 녀석 한 명과 양희은 씨가 뉴욕에 살고 있었다. 머물 곳이 있었기에 여행 갈 마음을 쉽게 먹었다. 1992년 12월 30일 밤 뉴욕에 도착했는데 JFK 공항에 마중 나온 사람이 내 후배였다. 나는 그를 따라 뉴욕의 온갖 희한한 장소에 갔다. 센트럴파크나 동물원, 자연사 박물관 같은 곳은 안 갔다. 뉴욕 사람들도 잘 모르는 작은 갤러리, 살벌하고 이상한 분위기의 골목… 심지어는 게이 바까지 가봤다. 그때 내 인생 최고의 비주얼 쇼크를 받은 것 같다. 전부터 사진을 취미 활동으로 했고 뉴욕 여행 중에도 열심히 찍었다. 그러면서 마음먹었다. 사진을 업으로 삼자고.
왜 사진인가? 비주얼에 대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일이 일생일대의 주제라고 말한 적이 있다. 디자인이 아니라 사진을 그 방법으로 택한 이유가 무엇이었나?
내게 그래픽 디자인은 직선적인 작업이었다. 사진은 원에 가깝다. 조금 더 자연스럽다는 말이다.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비주얼 작업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픽 디자인보다 사진 작업을 좀 더 자연스러운 행위로 느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사실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건 그림이다. 비주얼에 대한 나의 욕망을 거의 완전하게 충족시킬 수 있는 작업일 것이다. 하지만 그리는 것은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 능력을 다시 끌어올리기 어려울 것 같고… 언젠가는 훌륭한 사진가이자 화가로 기억되고 싶다.
사진과 그림이 맞닿는 지점에서 뭔가를 할 수도 있겠지. 사진과 그림 사이에 있는 어떤 것을 말이다.
그렇다. 지금은 그래픽적인 요소를 사진과 접목하고 있지만 그림과 매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로버트 라우션버그나 피터 블레이크, 앤디 워홀 같은 이들의 작업처럼 사진을 베이스로 그림에 가까운 비주얼 작업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분명 있을 테니까.
당신이 하는 작업이 사진으로 시작해 사진으로 끝나길 바라지는 않는 것 같다.
사진은 나에게 시각 작업이다. 시각 작업의 모태를 사진으로 삼고 싶다. 그 모태가 그림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다. 내가 계속 그림을 그렸다면, 지금쯤 더 잘 그리기 위한 사진 작업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림을 그리지 않으니, 그 순서가 바뀐 거다. 언젠가 그림 같은 작업을 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이다.
사진가 안웅철을 대표하는 작업은 역시 풍경 사진이다. 침묵에 가까운 혹은 리드미컬한 자연의 얼굴. 자연을 담아내는 일에 몰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머니가 자연을 좋아하셨다. 정원 있는 집에 살고 싶어 하셨는데 그러지 못했다. 아파트나 빌라에 화분을 한껏 들여놓고 가꾸며 살았다. 빌라 옥상도 정원처럼 꾸몄다. 그러면서 나도 자연스럽게 자연에 심취했고, 사진을 찍으면서도 풍경에 남다른 애착과 시선을 던지게 된 것 같다. 다른 사진 작업도 물론 한다. 도시는 안 찍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도시 작업도 굉장히 많이 했다.
왜 지금은 풍경을 집중적으로 보여주나?
출발점은 소리다. ECM 커버 작업을 하면서 생각하게 된, 소리와 사진 간의 연계.
자연이 가진 멋과 아름다움을 풀어내기 위해 당신은 어떤 자세를 취하나?
언젠가부터 사진을 급하게 찍지 않게 되더라. 인물 사진을 찍을 때, 피사체와 촬영 전에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나누면 그렇지 않을 때와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자연도 마찬가지다. 급하게 다가서려 하지 않고 오래도록 지켜본다. 그러면 정지돼 있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미세하게 변화하는 게 보인다. 냄새와 질감도 달라진다. 눈에 보이는 시각적 정보 외의 감각까지도 온전히 느끼려고 노력한다. 그런 다음 서서히 카메라를 꺼낸다. 많은 컷을 찍지도 않는다. 그게 내가 자연을 대하는 방법이다.
남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풍경도 있나?
물.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찍다 보니 물 사진이 많더라. 따로 모아서 전시를 할 수 있을 정도다. 물이 가진 어떤 속성이 나를 당겼을 테지. 극도로 클로즈업하거나 멀리 떨어져 바라보면서 드라마틱한 장면을 담는 편이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물 사진은 물이 바위에 부딪쳐 물보라가 올라오는 장면을 클로즈업해 찍은 것이다. 아이슬란드에서 촬영했지만 아이슬란드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장면이지.
심지어는 수면 아래에서 찍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앵글조차 모호하다.
중요한 건 그거다. 시점이나 앵글 등을 쉽게 눈치 채지 못하게 찍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런 추측, 이미지에서 어떤 팩트를 명료하게 찾아내려는 생각 등을 안 하게끔 하고 싶다.
예상할 수 있는 범위의 것들을 제거하면서?
맞다. 시커먼 물결만 담은 사진은 템스 강이다. 템스 강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태아 사진 같다고 한다.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해 계속 작업 중인 시리즈물이 있다. 제주도의 곶자왈 사진이다. 사진가 안웅철 하면 떠오르는 시리즈가 하나 있었으면 해서 시작했다. 곶자왈의 묘한 풍경에 반해서 시도했는데, 곶자왈의 숨은 이야기를 알게 되면서 더 애착을 갖게 됐다.
점점 소멸되는 중이라던데.
지금은 전체 곶자왈 중 60퍼센트가 없어진 상태다. 게다가 곶자왈이라는 지형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제주도에만 존재한단다. 또 소리와도 연관이 있다. 곶자왈에 들어서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 마구 달려든다. 묘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어느 날에는 온통 안개로 덮인다. 걷다 보면 어느 순간, 진공 상태에 놓인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부연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굉장히 ‘미스틱’한 기운이 있다. 아직까지 곶자왈을 필름 사진으로만 작업한다. 파노라마 카메라로.
오래도록 풍경 작업에 몰입한다는 것은 상업적인 영역과 먼 곳에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돌아다니느라 돈 쓰고, 그만큼 벌지는 못하고. 하하. 배고픔을 견디는 일이었던 것 같다. 사진 공부가 참 더디다. 10년, 20년 찍어서는 사진가라고 말하기도 어렵더라. 나도 마찬가지다. 내공이 깊은 사진가의 작업에서는 그가 쏟은 세월이 느껴진다. 오랫동안 찍었다는 건 대상을 오래 봐왔다는 얘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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