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명도 참 기가 막히다. ‘전설’이라니. 보스턴 컨설팅 그룹을 다니던 존이 성을 ‘전설’로 바꾸고, 진로를 노래로 변경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번 세기에 중요한 플레이리스트를 놓치게 됐을 거다. 2005년에 카니예 웨스트의 첫 레이블 굿 뮤직을 통해 데뷔 앨범 <Get Lifted>를 발표한 존 레전드는 특유의 묵직한 목소리로 단숨에 스타가 됐다. 당연하다.
한 소절만 들어도 귀를 뗄 수가 없으니 말이다. 11년 전 데뷔 앨범을 지금 다시 들어도 전혀 촌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그는 아주 세련된 감각을 가졌다. 반짝 유행하고 사라지는 그런 것 말고, 아주 섬세하게 세공한 음악이 그의 전매특허다. 데뷔와 동시에 그래미를 석권한 존 ‘전설’ 씨는, 2006년 두 번째 앨범 <Once Again>으로 달콤한 낭만을 맘껏 뽐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분위기 잡고 싶을 때 이 앨범만 한 ‘부스터’도 없다. 노력하지 않아도 절로 사랑에 빠지게 되는 마법 같은 노래들을 마구 쏟아내더니 3집 <Evolver>(2008)에서는 갑자기 신시사이저를 적극 수용하면서 일렉트로닉과 R&B의 뜨거운 만남을 주선했다. 힙합 밴드 루츠와 함께 지난 세기를 빛낸 솔 음악을 탐구한 앨범 <Wake Up!>(2010)의 인상적인 활동 덕분에 그는 또다시 그래미의 부름을 받았다.
위대한 모던 솔 음악을 만들고 싶다던 그의 야심은 <Love In The Future>(2013)에서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아름다운 솔의 유산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현해내는 데 성공했다. 바비 카드웰 곡을 커버한 싱글 ‘Open Your Eyes’만 들어봐도 그가 왜 이 시대를 빛낸 솔 뮤지션인지 알 수 있을 거다. 솔직히 타고난 목소리가 워낙 훌륭해서 기본만 해도 늘 평타는 칠 수 있었을 텐데, 이름값을 하기 위해서인지 존 레전드는 한 번도 허투루 음악을 선보인 적이 없다.
늘 솔과 R&B에 뿌리를 두고 새로운 시도와 모험을 강행한다. 이번 겨울엔 존 레전드의 이름이 유독 자주 보인다. 간만에 새 앨범 <Darkness And Light>를 발표했고, 영화 <라라랜드>에서는 연기와 노래를 동시에 해내는 존 레전드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비긴 어게인>에 애덤 리바인이 있다면 <라라랜드>에는 존 레전드가 있다. 그는 귀여운 보조개를 뽐내며 라이언 고슬링과 연기 대결을 펼쳤다.
과거의 망령 같은 재즈 대신 미래적인 재즈를 하자고 설득하는 극 중 존 레전드는 실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과거의 유산 같은 솔을 근사하게 현대 예술로 만들어낸 전력이 있는 그라면, 아마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의 새 앨범 역시 그가 가장 잘하고 제대로 할 수 있는 음악들로만 가득 채웠다. 요즘 제일 잘나가는 래퍼 ‘챈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가 피처링으로 참여한 ‘Penthouse Floor’가 바로 그가 생각하는 솔 음악의 미래일지도 모르겠다.
전설의 OST
알고 보면 영화 사랑이 대단한 남자, 존 레전드가 참여한 영화 OST.
<라라랜드>
꿈처럼 아스라한, 찬란하고도 씁쓸한 사랑을 담은 영화 <라라랜드>를 봐야 할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재즈 피아노를 치는 라이언 고슬링, 달콤하게 노래하는 에마 스톤 그리고 알고 보니 연기파였던 존 레전드 때문이다. 감독 데미언 셔젤의 각별한 재즈 사랑은 OST에 고스란히 담겼다.
<장고-분노의 추적자>
‘살생 천재’ 쿠엔틴 타란티노의 명작 중 하나인 <장고>는 그의 모든 영화들이 그러하듯 OST 듣는 재미가 쏠쏠한 영화다. 제이미 폭스가 복수 하나만을 가슴에 품고 돌진할 때 흐르는 음악들이 다 좋지만, 특히 존 레전드가 부른 ‘Who Did That To You’는 영화 전반에 만연한 ‘멋있음’을 한껏 고조시켜준다.
<셀마>
마틴 루터 킹의 실화를 영화로 만든 <셀마>. 1965년 흑인의 투표권을 위해 아주 평화적인 투쟁 방법인 ‘셀마 행진’을 계획한 마틴 루터 킹의 이야기는 요즘 시대 상황과도 묘하게 맞물린다. 이 좋은 영화에 존 레전드가 빠질 수 없다. 그는 래퍼 커먼(Common)과 함께 영화 삽입곡 ‘Glory’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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