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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감독, 배우 그리고 사생활

홍상수 감독은 그간 자신의 영화에서 보여준 세계관을 몸소 현실로 보여주었다. 또 솔직함이 언제나 옳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보여주었다.

UpdatedOn September 0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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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의 스캔들이 화제다. 영화감독과 그의 작품에 출연한 여배우 사이라는 점, 그 둘의 나이 차이가 20년이 넘는다는 점, 무엇보다 홍상수 감독이 유부남이라는 점은 둘의 사생활을 모두의 관심사로 만드는 요소다. 거기에 덧붙여 배우 김민희가 영화 <아가씨>를 통해 미모뿐만 아니라 연기력까지 인정받으며 경력에 큰 성취를 이룬 시점이라 스캔들의 파급력은 더욱 컸다.

세간의 평은 부정적이다. 가장 큰 이유는 유부남의 불륜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홍 감독 부인을 통해서 알려진 세부 사실들, 두 사람이 부인에게 던진 말의 내용은 더욱 그들의 비도덕성과 오만함을 부각시킨다. 하지만 나는 두 사람의 사생활이 그렇게 비난받을 일인가 싶다.

보통 이런 일에 대해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변론은 예술가의 사생활과 그의 작품을 구별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 사안에는 전혀 안 어울린다. 그보다는 솔직한 사람은 믿을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홍상수 감독은 솔직한 사람이다. 모든 예술가가 그렇듯, 그 역시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관조하며 자기만의 관점과 이야기하는 방식을 찾아낸 사람이다. 그는 데뷔작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남자 지식인의 위선과 가식, 그리고 너무도 간절해서 추접스러움을 넘어서는 욕망을 그려왔다.

나는 아직도 1996년 그의 첫 작품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았을 때의 충격을 기억한다. 대학원 박사 과정에 들어서기는 했으나 갈 길을 못 찾고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불안감에 시달리던 당시 나에게 이 영화는 말 그대로 공포의 총합(sum of all fears)이었다.

소위 가방끈 길다는 남자들이 자신도 그렇게 될까봐 두려워하면서도 어느새 늪에 빠진 것처럼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음을 얼핏얼핏 느끼는, 어떤 막연한 인간상이 홍상수 영화 속에서는 생생히 살아 움직인다. 그는 자신의 위선과 자의식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직하게 노출함으로써 더 이상 위선이 아닌 예술로 만들었고, 그 예술적 성취를 통해 이번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었다. 스캔들은 그가 만든 작품이 자신의 본심을 솔직하게 드러낸 것임을 증명한 셈이다.

배우 김민희는 또 다른 면에서 솔직함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홍 감독과의 관계를 위해서 포기한 것들을 생각해보자. 우선 꾸준히 들어오던 광고 출연료는 전부 날아갔다. 배우로서도 일반적인 대중 영화에 출연 기회는 한동안 주어지지 않을 것이다.

드라마나 방송 출연도 마찬가지다. <아가씨>를 통해 새로이 형성되려던 팬덤도 위태롭다. 오히려 도덕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이 모든 것을 포기하거나 감수하고 그녀는 홍상수 감독을 선택했다. 그녀는 이 선택을 통해 자신의 가치 순위를 정직하게 보여준 셈이다.

물론 홍 감독이 의미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단지 그것이 단순히 경제적인 부나 세간의 평가는 아닐 것이라 추정할 뿐이다. <뜨거운 것이 좋아> <화차> 그리고 <아가씨>를 통해 그녀는 하이틴 스타에서 벗어나 한 명의 훌륭한 여배우로 성장했다.

작품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영화 <여배우들>에서 김옥빈 앞에서 ‘시간은 빨리 가는데 좋은 작품에 출연할 기회는 적다’라고 내뱉던 그녀의 한탄은 그냥 대사가 아니라 심정을 표현한 것처럼 들렸다. 나는 그래서 그녀의 선택을 한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로서 그 감독의 예술관과 작품 세계에 전적으로 동의한 결과라고 믿고 싶다. 여배우 김민희가 얼마나 간절히 예술가의 세계로 들어서길 원하는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솔직함은 신뢰와는 정반대 방향에 있다는 점이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의 감정에는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울며불며 잘못했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빌던 아이가 몇 분 후에 다시 똑같은 짓을 저지른다. 그 아이는 거짓말을 한 게 아니다. 울며 반성할 때의 감정도 진짜였고, 용서받은 후에 처음으로 돌아간 감정도 역시 진짜였다. 감정은 원래 그렇다.

따라서 감정에 솔직할수록 우리는 제멋대로 움직인다. 세상에서 가장 믿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순간에 충실하게 살겠다’는 사람이다. 이는 일종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자기 감성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수용하는 능력은 예술적 창조의 핵심이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는 데 솔직함은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폭탄이다. 사회생활의 핵심인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만과 거짓말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 우리가 어른이 되고 철이 든다는 건 결국 자신과 남을 속이며 사회적 관계를 지키는 법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 기만에 찌들어버린 인간에게 가끔 해방감을 맛보여주는 것이 예술의 역할 아니던가.

세상에는 정직한 자기 성찰을 통해 예술적 성취를 이룬 수많은 예술가들이 있다. 그들 중에는 이번 스캔들은 약과라고 할 만큼 제멋대로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고, 반대로 현실과 작품 세계를 엄격하게 분리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건 내 일이 아니다. 나는 단지 두 사람의 새로운 예술적 행보를 지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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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Words 장근영(심리학자)
Editor 서동현

2016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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