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진풍경이었다. 유니클로가 질 샌더의 힘을 빌려 만들어낸 +J 라인이 매장에 데뷔하던 날, 내가 목격한 장면 말이다. 때는 바야흐로 2009년 10월 2일,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날. 나는 취재의 홍수 속에서도 짬을 내 명동에 갔다. 이유는 단 하나, 유니클로 +J 라인을 거머쥐기 위해서. 명색이 패션 에디터인 내가 한정 수량으로 전 세계에 동시 판매되는 신상을 하나 정도는 입어줘야, 아니 취재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사명감 비슷한 게 발동한 거다. 그런데 세상에, 매장 앞에는 사명감으로 활활 불타오르는 젊은이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오픈 1시간 전에 도착했는데도 불구하고 인파가 만들어낸 줄이 200m는 족히 넘었다! 유니클로의 사전 홍보력이 맹위를 떨쳤을 테고 질 샌더라는 네임 밸류가 한몫했겠으나, 이런 광경은 H.O.T. 공연 이후 처음인지라 ‘훅’ 하고 숨이 막혀왔다. 맹렬히 비등점을 향해 끓던 인파는 매장 오픈과 함께 그 전투력을 폭발시켰고, 물건은 2시간 만에 완전히(!) 동이 났다. 유니클로는 지난 추석 연휴 3일간 6억5천만원어치 물건을 팔아 치웠다고 한다. 지금도 생각난다.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매장에 서서 바지를 갈아입던 한 남자. 그날의 긴박함을 상징하는 이미지쯤 되겠다. 이런 일이 서울에서만 벌어진 건 아니다. 거의 비슷한 날에 +J 라인을 공개한 파리 오페라점은(그날은 오페라점 오픈일이기도 하다) AFP 기자가 출동해 사진을 찍을 정도로 생난리였다. 건물을 두어 번 휘어감은 긴 줄에는 사토리얼리스트의 사진가 스콧 슈만도 있었다고 한다. 옷 잘 입은 사람들만 하이에나처럼 찾아 다니던 그가 나타났다는 건, 그곳에 그의 사냥감이 될 만한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도하게 패션 도시를 운운하던 파리지엔들이 4만9천원짜리 셔츠를 사기 위해 그 난리를 부렸다니. 유니클로는 전 세계에 집단 최면이라도 건 모양이다. 근처 영국이라고 다르진 않았다. +J 라인이 나오기 며칠 전부터 카운트다운 표시를 매장 전면에 내걸었던 그들. 드디어 10월 1일 디데이, 옥스퍼드 거리는 아침 8시부터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당일 밤 이베이에는 +J 라인들이 쫙 업데이트되어 있었다. 2배가량 프리미엄이 붙어 불티나게 팔려나간 유니클로의 최신 전리품들.
서울, 파리, 런던이 이 지경인데 유니클로의 고향인 일본은 오죽했으랴. 뭐 말할 것도 없이 앞의 도시들보다 가장 과격한 전투가 펼쳐졌다. 결국 그날의 쇼핑 전술은 ‘손에 잡히면 무조건 사고 보자’는 식. 무엇이, 옷을 보지도 않고 손에 잡히는 대로 계산대에 올리게 만들었을까. 가격 대비 좋은 질은 유니클로가, 질리지 않는 디자인은 질 샌더가 보장한 것이다. 이런 적절한, 소비자의 의표를 찌르는 조합을 만들어낸 유니클로의 신기술이 바로 그들이 추앙받는 이유다. 유니클로가 경제 위기 속에서도 31.6%라는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하고, 일본 최고 부자로 꼽히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질 좋고 싼 것도 고마운데, 흠모하는 디자이너의 손길까지 느끼게 해주니 어찌 달려가 절하지 않을 수 있을까. 11월 초, 질 샌더의 +J 라인이 또다시 반짝 판매된다. 이제부터 당신이 할 일은 팔힘을 기르는 거다. 아귀다툼 속에서도 내 물건을 사수할 수 있는 강한 뚝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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