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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 막걸리와 홍어찜 | 할매집 |
당혹의 연속. 첫 번째 놀라움. 수십 년 음주 경험자들을 상대로 막걸리 맛집을 취재해보았으나, 단 한 집도 중복되지 않았다. 모두 제 단골집이 최고라고 박박 우겨대는 통에 나 또한 내가 아는 집을 찾아가게 됐다. 결론은 언제나 신당동 할매집이다. 두 번째 놀라움. 내겐 놀랄 일도 아니나, 이 집을 처음 가는 사람은 누구나 스산한 마음을 떨칠 길이 없으리라.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골목에 무림을 평정할 공력의 막걸리집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있다. 할매집은 황학동 문짝거리 골목 깊은 곳에 있다. 입구에선 30년 전통의 홍어찜을 강조하는 붉은색 글자가 형광등 불빛의 힘을 빌려 발광 중이다. 그렇다. 할매집의 주 메뉴는 홍어찜이다. 막걸리가 주인인 집은 없다. 할매집은 메뉴판에 막걸리 석 자도 올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 집의 찹쌀막걸리 맛을 따라올 막걸리는 단연코 없다. 한 잔 마셔본다. 딱 옛날 막걸리 맛 그대로다. 첫째, 달지 않다. 둘째 뒷맛이 당긴다. 이게 뭔 말인고 하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막걸리 맛이 그저 그렇다는 뜻이다. 그런데 막걸리 사발을 내려놓자마자, 무언가에 홀린 듯 또다시 주전자를 들어 콸콸 사발을 채우고 꿀꺽꿀꺽 마시게 된다. 할매집의 막걸리는 홀 뒤에 있는 미니 막걸리공장에서 할머니 손에 의해 처음부터 끝까지 제조되고 있다. 누룩곰팡이 배양통, 걸음통, 보관통이 모두 이 공간에 있다. 발효실답게 퀴퀴한 냄새에 곰팡이를 사랑하는 날벌레들도 만만치 않게 날아다니고 있다. 막걸리를 아무나 만들지 못하게 했던 시절, 숙명여대 앞 관철동에서 몰래몰래 마시던 ‘밀주’ 제조 현장이 바로 이곳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 어떤 첨가제도 없이 찹쌀과 누룩이 만나 스스로 숙성, 심심하면서도 중독성 있는, 세상에 하나뿐인 막걸리가 완성 된다. 놀라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할매집의 메인 메뉴인 홍어찜 때문이다. 할매의 홍어찜은 파주산 고춧가루 양념과 홍어 한 점을 양배추에 싸서 ‘막걸리식초’로 만든 소스에 찍어 먹는데, 이 막걸리식초 맛이 죽인다. ‘아!’ 세상에 이런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은 시대의 축복이다. 이건 모두 할매의 우직함 덕분이다. 할매는 이 자리에서 42년 동안 똑같은 홍어찜과 막걸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간판의 30년 전통은 12년 전에 붙인 것이다. 이제 마지막 당혹을 말하겠다. 당신이 할매집에서 홍어찜에 찹쌀막걸리 한 주전자를 마셨다면, 한 블록 옆에 있는 청계천을 한 시간 이상 산책하든지, 미리 준비한 새 옷으로 갈아입든지, 대리 기사를 불러 창문을 활짝 열고 달리든지 해야 한다. 맛이 최고인 만큼, 냄새 후유증 또한 따라올 음식이 없기 때문이다. words 이영근(여행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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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셔벗과 치즈와 젓갈 | 친친 |
막걸리는 예스럽지만 촌스럽다. 이를테면 <전원일기>에 어울리지, 절대로 <아가씨를 부탁해>와는 매치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막걸리집 하면 나무 탁자에 찌그러진 주전자만을 떠올렸더랬다. 실제로 나 같은 20대들이 비라도 내리는 날 가끔 찾아가는 막걸리집에는 어김없이 ‘민속’주점이라는 간판이 달려 있었다. 한데 요즘에는 막걸리가 대세란다. 살짝 기분 나쁘게도 일본에서 먼저 알아봤고, 역으로 우리가 그들의 트렌드를 따랐다. 압구정동부터 차차 모던한 막걸리집들이 문을 열더니 최근에는 홍대까지 그 영역을 넓혔다. 무이무이가 압구정동을 대표하는 최신 트렌드의 막걸리집이라면 홍대에는 친친이 있다. 사실 친친은 와인을 즐기던 맛집으로 꽤나 유명한 곳이었다. 그런데 이 집이 막걸리의 메카로 확 바뀐 것이다. 메뉴는 그대로인데, 와인 대신 막걸리를 ‘주 무기’로 삼는다. 친친에서는 여느 막걸리집처럼 “여기 막걸리 한 사발이요” 하고 외쳤다간 난감한 상황에 부딪힌다. 메뉴판을 받아 드니 꼭 와인 바의 메뉴판처럼 ‘배혜정 막걸리’ ‘익산 막걸리’ ‘송명섭 막걸리’ 등 막걸리 종류부터 선택하란다. 그 종류가 무려 20여 종이니 주문이 생각보다 까다롭다. 그래도 이것저것 맛보며 나에게 가장 잘 맞는 막걸리를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실 이 집에서 막걸리보다 더 유명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디저트다. 심지어 디저트의 이름에까지 막걸리라는 세 자를 올렸는데, 그중 막걸리 셔벗은 이름부터가 우아하다. 본디 막걸리는 발효주 특유의 냄새 때문에 시원하게 먹어야 하는 술. 막걸리 셔벗은 아예 얼려서 나오니 냄새는 당연히 없고, 얼음과 조화를 이루어 ‘이게 술 맞나’ 싶을 정도로 달콤하다. 원래는 유리병에 나오는데 손님이 원하면 ‘시크하게’ 마티니잔에도 세팅을 해준단다. 술기운이 적당히 올라올 때쯤 맛보는 셔벗은 후끈했던 온몸의 열기를 살짝 가라앉혀준다.
‘안주 없이 그냥 퍼 먹으면 되냐고?’ 셔벗이 워낙 달콤해 그냥 먹어도 무방하지만 기가 막히게 어울리는 안주를 공개하니, 그 이름도 찬란한 ‘치즈와 젓갈의 새로운 만남’ 되겠다. 솔직히 이름만 보고 좀 역했더랬다. 어찌 치즈와 젓갈을 같이 먹을 수 있을까. 백문이불여일견. 입에 넣는다. ‘헉’ 맛있다.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린다. 젓갈의 짠맛을 크림치즈가 부드럽게 잡아주는 것이다. 와인을 발효 식품 치즈와 곁들여 먹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데 그만큼 환상의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도 김치, 젓갈, 홍탁 등과 같은 발효 음식과 막걸리를 즐기지 않았던가. 발효주는 발효 음식과 먹어야 제 맛이란다. 한데 이건 동서양의 대표 발효 음식을 합체했으니 어찌 막걸리와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Words 이승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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