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분노’란 단어가 자주 보인다. 아침마다 보는 뉴스에서 유독. 보복 운전의 원인이 분노. 층간 소음이 부른 폭력도 역시 분노. 불특정 다수를 공격한 이유도 분노로 해석할 수 있다. ‘분노사회’라는 단어도 익숙하다. 몇 년 전부터 널리 쓰였다. 사실 누구나 분노한다. 기뻐하거나 분노하거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자주 접하는 뉴스는 자연스럽지 않다. 거북목 증후군이 떠오른다. 컴퓨터가 보급돼 알게 된 병명. 분노도 현대 사회의 부산물일까. 분노조절장애라는 낯선 병명도 횡행한다. 일상이 겁난다. 그럴수록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그러라고 했으니까. 약은 약사에게, 역시 병은 의사에게 물어봐야 한다. 물어봤다. 첫 답변부터 제대로 알게 됐다.
Answer 01. 제대로 알자
우선 명칭부터 수정해야 한다. 정신건강의학과 하태현 교수가 말했다. “‘분노조절장애’라는 질병은 없다. 적어도 국제적인 공식 진단 체계에는 존재하지 않는 병명이다.” 뭔가 속은 기분이다. 그가 덧붙였다. “‘외상후격분장애(Post-traumatic Embitterment Disorder)’라는 유사한 질병 개념이 제안된 바는 있다. 2000년대 들어 독일 정신의학자 린덴(Linden)이 제안했다.” 증상은 이렇다. 부정적인 사건을 경험한 후 ‘부당함’이 깊숙하게 자리 잡은 상태가 지속된다. 이후 그 사건이 떠오르면 격분 혹은 정서적 각성으로 반응한다. 물론 부정적인 사건 전에는 이런 상태를 보이지 않았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있다. 하태현 교수가 말했다. “외상후격분장애는 폭력 같은 공격성 표출이 주 문제가 아니다. 부수적 문제일 수는 있다. ‘세상에 대한, 그리고 불공정에 대한 분노’가 주 문제다.” 현대 사회에 분노가 더 또렷해진 이유일 수 있다. 현대 사회는 복잡해졌다. 그런데도 정보는 빠르다. 비교하고 파악할 통로가 널려 있다. 절로 자신이 보이고, 남이 보인다. 그 간극에서 부당함과 불공정은 언제나 곰팡이처럼 피어난다. 발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그림자. 분노와 현대 사회를 엮는 이야기가 딱히 음모론은 아닌 셈이다.
Answer 02. 분노와 폭력은 다르다
분노조절장애와 관련한 폭력은 다른 병명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역시 하태현 교수가 말했다. “타인을 대상으로 한 폭력과 관련해선 ‘간헐적폭발성장애(Intermittent Eplosive Disorder)’가 있다. 일부 언론에서 전하는 분노조절장애는 간헐적폭발성장애를 지칭하기도 한다. 언어적 또는 비언어적 공격성이 증상의 특징이다.” 분노 상태는 외상후격분장애가, 분노에 따른 폭력은 간헐적폭발성장애로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가지가 전부는 아니다. 분노는 더 복잡하고 다양하게 돌출된다. 그가 덧붙였다. “분노와 공격성이 드러날 수 있는 대표적 인격장애는 편집형인격장애, 반사회적인격장애, 경계선인격장애, 자기애성인격장애 등이 있다. 우울증이나 조증도 흔히 분노를 표출할 수 있다.” 다양한 인격장애에서 분노는 한식 속 마늘처럼 스며들어 있다. 이제 분노를 달리 봐야 한다. 그러니까 명백한 병이다.
Answer 03. 인식을 바꿔야 한다
한 전문가가 정신 질환을 이렇게 설명했다. 살이 쪄서 고혈압이 생겼으면, 살도 빼고 고혈압 약도 먹어야 한다. 단지 살만 뺀다고 고혈압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분노 관련 정신 질환은 ‘치료’해야 한다는 뜻이다. 분노를 일으키는 환경을 개선하는 건 둘째 문제다. 치료는 약물 요법과 정신 치료로 나뉜다. 하지현 교수가 말했다. “약물 요법으로 불합리하게 증폭된 감정이나 충동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 (경중에 따라) 정신 치료로 감정이나 충동을 다스리는 기법을 훈련할 수도 있다.” 익히 생각하는 정신 질환 치료다. 정신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가는 건 낯설다고? 이미 몇 년 전부터 정신 질환을 호소하고 치료받는 사람이 늘었다. 2009년 3천7백20명에서 2013년 4천9백34명으로 늘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발표다. 5년 사이 32.6% 증가했다. 정신 질환을 터부시하지 않고 대면하기 시작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현대 사회의 강퍅한 공기가 병을 키운 점도 있을 테다. 약물 치료 기간은 2~6주 정도 걸린다. 반면 정신 치료는 가늠하기 힘들다. 수개월에서 수년까지 천천히 길게 봐야 한다.
Answer 04. 거리가 필요하다
지금 이 글을 보고 자기가 분노조절장애, 정확히 말해 외상후격분장애나 간헐적폭발성장애라고 깨닫는 사람은 없을 거다. 그런 사람이라면 이미 반응이 나타나 병원에 갔을 테니까. 그러기 전 예방하는 단초가 더 절실하다. 성인병 예방하려면 운동하라고 한다. 운동이 치료와 동의어는 물론 아니다. 다만 운동으로 각종 병을 예방할 몸을 만들라는 뜻이다. 정신 질환도 비슷하다. 하태현 교수가 조언했다. “일반적으로 정신 건강을 증진시키는 모든 방법이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명상 같은 자연스레 떠오르는 것들. 그가 덧붙였다. “특히, 분노에 관해선 순간적인 감정이기에 일단 거리 두는 방법을 권한다. 당장 감정을 표출하기보다는 물리적으로, 시간적으로 한 걸음 물러선 후에 감정을 어떻게 처리할지 ‘판단’하는 것이 좋다.” 전문 용어로, 인지적 통제력을 길러주는 방법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으레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한 걸음 물러서면 감정의 강도는 약화되니까. 그러고 나서야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으니까. 흔히 감정을 다 쏟아내면 편해질 거야, 한다. 하지만 하지현 교수는 카타르시스 기법은 경계한다. “감정 표현이 오히려 감정을 증폭시키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즉각적 표현, 억압, 무시 등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감정 강도가 감소하길 기다린 후 내용과 타당성, 목적 등 사고력을 동원해 조절하는 게 가장 좋다.” 꼭 사회생활의 지침으로도 들린다. 그만큼 현대 사회에서 분노는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지금 분노를 직시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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