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류를 아는 자전거 | 풍류 커스텀 대표 이승기
지금 하는 일은?
‘자전거 튜닝’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이해가 빠를 거다. 도색부터 자전거 외관에 관한 모든 일을 한다. 디자인과 그림, 패션에 기반을 두고 다양한 일을 해오다 23세쯤 ‘픽스드 기어’ 자전거를 접했다. 와, 자전거가 그렇게 비싼 줄 그때 처음 알았다. 브레이크도 없고 간단하니 재미있어 보여서 1백50만원에 한 대 구입했다. 혼자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고장 나면 고치고 하다가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고 싶었다. 한 5년 전만 해도 자전거 도색 같은 ‘커스텀’ 문화가 발전하기 전이라 희소성 있는 일이 될 것 같았다. 수색에서 처음 ‘풍류 커스텀’ 이름을 걸고 시작했는데 거슬러 올라 그때를 생각하니까 힘든 기억이 떠올라 지금 코가 찡해지려고 한다.
자전거를 색칠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전반적인 디자인을 구상하는 일이다. 자전거도 사람의 얼굴처럼 각기 개성이 있다. 그래서 성형외과 의사 같은 마음으로 작업에 임한다. 눈을 고칠 필요가 없는데 쌍꺼풀 수술을 한다거나, 혹은 코를 세워야 하는데 소유주가 모른다면 코를 고치라고 진단해주는 거다. 하하. 자전거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깊어야 좋은 디자인이 나온다. 어떤 색상을 원하고, 어떤 부분을 고치고 싶어 하는지 고객의 의견을 들어보고 적정선을 찾아주는 것이 나의 일이다.
취미를 직업으로 삼으니 어떤가?
사람들이 종종 말한다.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만 남겨두는 것이 좋다고. 나는 반대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기 위해선 생각보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파고들어 실력을 키우고 내 일을 하며 살 수 있어서 좋다. 욕심 부리지 않고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풍류 커스텀의 고객 만족 철칙이 있다면?
2012년형 자전거를 2016년형으로 바꿔달라는 요구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들에게는 도색 비용에 조금 더 보태 2016년 새 자전거를 사라고 말해준다. 그런 의미 없는 도색 작업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커스텀’은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것’을 원하는 이들에게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문화다. 작업을 의뢰한 사람들의 이니셜을 새겨주는 것도 세상에 하나뿐인 내 자전거를 갖는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다.
자전거가 참 인기다. 이곳 문래동 공방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느껴지나?
자전거 도색을 결심한 사람들은 사실 ‘자전거로 갈 데까지 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하하. 완전 마니아층인 셈이다. 이제 막 자전거의 맛을 알게 된 입문자는 보통 커스텀은 생각하지 않는다. 대중적 인기, 일반적 관심만으로 이곳을 찾기는 힘들기 때문에 큰 변화를 느끼지는 못한다. 하지만 열풍이 자리 잡으면 더 깊게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겠지.
최근 몰두하고 있는 작업은?
커스텀 문화를 이해하고 함께 즐기는 친구들이 있다. 영상, 시각, 제품 등 다양한 분야의 디자인을 하는 친구들인데 이들과 모여서 새로운 영감을 주고받는다. 또 예전부터 관심 있게 지켜본 것이 래핑 페인트다. 도색 후 질리면 스티커처럼 떼어낼 수 있는 페인트다. 재미있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계속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재미있을 때는 지났다. 하하. 자전거를 2~3주씩 붙잡고 색다른 디자인으로 탈바꿈해 출고하면 자식을 떠나보내는 느낌이 든다. 모든 작업을 손으로 하다 보니 정이 쌓인다. 마냥 싫지만은 않다. 오래된 연인 같다고나 할까. 막상 헤어지려니 자신이 없다. 하하.
새로운 자전거 실험실 | 디토비치 대표 김성태
자전거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순간?
2008년, 미국과 일본에서 화제가 된 픽스드 기어 자전거가 한국에 처음 상륙했을 때부터였다. 바퀴나 핸들을 바꿔서 내 입맛대로 ‘커스텀’해 탈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픽스드 기어 자전거를 타는 사람의 여유와 멋스러움도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기존 자전거를 고치는 수준에서 시작했다. 고물상에 버려진 자전거를 한 트럭 실어와 분해하고 조립하고 색을 칠하면서 공부했다. 자전거 만드는 일을 ‘프레임 빌딩’이라고 하는데 국내에는 아직 프레임 빌더가 많이 없어서 고생 좀 했다. 컨테이너 박스로 시작해 조금씩 늘려가다 2013년에 서울 서교동으로 올라왔다.
일산에도 공방이 있다. 커스텀 자전거를 찾는 수요가 그만큼 늘어났다는 의미인가?
서교동은 매장이고, 실직적인 작업은 일산 공방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이는 고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개발하고 싶은 자전거가 많아져서다. 접이식 자전거나, 바퀴가 둥글지 않은 자전거 같은 특이한 구석이 있는 자전거를 연구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어떤 자전거를 찾나?
유럽과 일본은 자전거가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그래서 한 번 사면 오래도록 사용하는 ‘생활 자전거’로 애용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취미 생활 혹은 패션 아이템으로 이어져 유행을 많이 탄다. 자전거 인구가 자연스레 늘어나다 보면 자기만의 자전거라든가 빈티지한 자전거를 선호하는 흐름으로 바뀔 것 같다.
그럼 본인이 선호하는 자전거는?
평상복을 입고 도심을 달릴 수 있는 ‘생활 자전거’를 좋아한다. 일상에서 편안하게 탈 수 있고, 오래도록 탈 수 있는 클래식한 디자인이면 더 좋겠다.
기존의 자전거 숍에서 할 수 없지만 디토비치에서는 할 수 있는 건?
기성품은 사람들의 평균적인 신체 사이즈에 맞게 제작한다. 디토비치는 개인의 신체 특징을 살린 제품을 만든다. 팔다리가 지나치게 길거나 신체 사이즈가 평균과 다른 사람, 남성에게 맞는 자전거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여성이 이곳을 많이 찾는다. 요즘 나오는 로드 자전거는 캐주얼한 차림과 어울리지 않아서 출퇴근용으로 ‘샤방샤방’하게 탈 수 있는 자전거를 의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커스텀은 신체적 특징을 감안하는 것은 기본이고, 본인의 라이딩 스타일을 고려해 자전거 구성을 조금씩 변경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무래도 입문자는 자전거를 오래 타지 않아서 자신에게 맞는 용도를 잘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디토비치를 찾는 사람들은 자전거를 어느 정도 타봐서 대부분 본인의 불편한 사항을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의 생각을 뛰어넘는 자전거를 만들고 싶은 건가?
북미에서 ‘핸드메이드 페어’가 열린다. 그런 페어에 나갈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개성 있고 실험적인 자전거를 개발하고 있다. 새로운 자전거로 바이크 쇼에 나가서 입상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2016년 디토비치의 행보는?
올해 공방을 이전하면서 더 많은 장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그간 작업이 많이 밀려서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했는데, 기발하고 재미있는 신제품 개발에 집중하고 싶다. 그래서 올 해 소망은 내가 만들고 싶고 타고 싶은 자전거를 될 수 있는 한 많이 출시하는 거다. 그런 제품들로 바이크 쇼 나가서 입상하게 된다면 정말 좋겠지.
꼼꼼한 프레임 빌더 | 루키바이크 대표 이정훈
자전거 프레임 빌더니까 당연히 자전거를 좋아하겠지?
일주일에 6일은 자전거를 탔다. 눈 오는 날이나 비 오는 날은 무조건 결석을 했다. 그런 날은 자전거를 못 타니까. 그 정도로 좋아하다 보니 자전거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자전거 숍을 운영하거나 정비를 하거나, 자전거 회사에서 영업 혹은 디자인을 할 수 있더라. 그런데 좀 더 찾아보니 자전거를 직접 만드는 ‘프레임 빌더’라는 직업도 있는 거다. 손으로 하는 일을 좋아해 무작정 해보자고 생각했다.
무작정 뛰어들어보니 어떤가?
처음부터 자전거 공방이 잘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하.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는데, 역시나 그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만약 지금 프레임 빌더를 결심한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섣불리 시작하지 못할 것 같다. 하하.
어떤 종류의 자전거든 다 만들 수 있나?
로드 바이크, 픽스드 기어 바이크, 여행용 자전거를 주로 만든다. 전통적 다이아몬드 프레임 자전거는 대부분 만들 수 있다. 산악용 자전거 같은 특수한 것은 제작이 조금 어렵다.
혼자서 뚝딱뚝딱 만들다 보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정말 빠르게 만들면 5~6주 정도 걸린다. 프레임 제작에만 열흘 정도 걸리니까. 재료들도 죄다 수입품이라 주문하는 데도 일주일이 걸린다. 도금 혹은 도색에 빠르면 2주 걸리고. 조립까지 마치고 나면 한 달은 훌쩍 지나갈 수밖에 없다.
요즘 길거리에 자전거가 참 많이 보인다. 루키바이크 고객도 많이 늘었나?
의뢰하는 분들이 많아지긴 했다. 그런데 우리는 고객이 특정 다수다. 딱 정해져 있다. 요즘 워낙 자전거 가격이 높다 보니 맞춤 자전거와도 별 차이가 없어 구매하고 싶다고 오는 분도 있는데, 먼저 말씀드린다. 대부분 맞춤 자전거를 제작해 평생 탈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것이라고. 내 몸에 맞게 제작한 거라 남에게 쉽게 되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맞춤 정장을 다시 팔 수 없지 않나. 아무리 좋아도 내 몸에 맞춘 것을 다시 팔 순 없다. 그런 점을 충분히 이해시켜드린다.
루키바이크가 좀 더 잘되려면 자전거 문화가 더 발전해야 할 것 같다.
예전에 신문을 구독하면 자전거를 주지 않았나? 어른에게 자전거는 그런 ‘덤’ 같은 거다. 개인이 자전거를 만든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자전거로 할 수 있는 재미난 놀이나 문화가 발전할 차례다. 자전거 영화제나 ‘트위드 소재 옷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트위드 런(Tweed Run)’ 행사 등이 활성화되면 좋겠다. 자연스레 커스텀 문화도 조금씩 커질 거라고 생각한다.
오랜 시간 자신만의 솜씨를 갈고닦은 스승이 없어서 힘들진 않나?
한국에 교육기관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학교처럼 몇 년에 걸쳐 배우는 게 아니라 자전거 한 대를 만들어보는 체험 학습 정도라 5주 정도 배운 것 같다. 그때부터 혼자 공부하면서 외국 서적 사보고, 미국 포럼 사이트에 접속해 모르는 것도 물어보고 그랬다. 해외 유명 프레임 빌더들은 이메일로 궁금한 점을 질문하면 친절하게 답변도 해준다. 답을 찾기 어려울 때는 자전거 공방을 하시는 두부공 대표님에게 전화로 물어보기도 한다.
자전거를 만드는 것과 타는 것, 뭐가 더 재미있나?
에이, 그래도 자전거는 타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 요즘엔 주말에나 겨우 탄다. 한강이나 팔당대교 쪽을 달린다. 아무리 일이 재미있어도 노는 게 좋다. 암만 그래도 일은 일이다.
자전거 타고 마시는 커피 | 비씨커피 대표 이재훈
어떤 일을 하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커피를 판다. ‘바이시클’과 ‘커피’를 합쳐 비씨커피라고 이름 붙였다. 원남동의 비씨커피는 자전거와 사람이 쉬어갈 수 있는 정거장 개념이다. 자전거와 커피, 두 가지가 내 인생의 주제다. 자전거로 서울 곳곳을 다니며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 팔고 있다.
이야기만 들으면 꽤 낭만적이다. 실제로도 그런가?
커피를 파는 건 허가된 장소에서만 가능하다. 예전에는 정처 없이 다니기도 했는데, 요즘은 커피가 많이 팔릴 것 같은 장소나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는 곳을 찾아간다. SNS에 미리 오늘은 어디에서 커피를 판다고 올린다.
자전거를 인생에서 어떻게 사용하고 있나?
어렸을 때 네발자전거나 세발자전거를 배워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거다. 어린 시절 놀이가 나이를 먹으면서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누군가에게 자전거는 고급 레저일 수도 있고, 장사를 하는 생계 수단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출퇴근 시 요긴한 교통수단 혹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나에게 자전거는 일상을 즐겁게 채워주는 레저와 실용의 목적 그 어디쯤이다. 내가 자전거를 타고 길거리 나가서 커피 파는 것은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란 걸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나는 어떤 것이든 경계를 두고, 카테고리를 나누는 것은 후지다고 생각한다. 어떤 목적으로 어떤 자전거를 타건 자기에게 맞게 재미있게 타기만 한다면 모두 친구가 될 수 있다. 자전거를 타는 행위보다 자전거 그 자체에 초점을 두는 것을 좀 비딱하게 받아들이더라. 되게 비싼 자전거를 타고 되게 멋없어 보이고 싶지는 않다.
비씨커피는 어떤 자전거를 사용하나?
처음에는 오래된 로드 자전거를 커스텀해서 사용했다. 말이 커스텀이지 녹슨 부분을 페인트로 칠한 수준이었다. 내가 타고 다니는 것도 별로 비싸지 않은 로드 바이크다. 비씨커피 크루도 로드와 싱글 기어 구분 없이 다양한 종류의 자전거를 탄다. ‘바이크 파티 서울’ 친구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주제를 정해 자전거로 행진하는데 그들 역시 자전거 종류와 상관없이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한다.
자전거가 여러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매개가 된다.
비씨커피 정거장을 찾는 사람들의 첫마디는 대개 이렇다. “자전거 좋아하시나 봐요?” 우리 로고도 자전거 프레임을 형상화한 데다, 매장 곳곳에 자전거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을 섞고 나면 금세 친구가 된다.
비씨커피와 비슷한 곳이 조금씩 생기고 있지 않나?
홍대 쪽에도 이와 비슷한 곳이 있고, 지방에도 있다고 들었다. 나는 콘셉트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비씨커피는 자전거 콘셉트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자전거와 커피가 있는 곳이다. 느리지만 천천히 우리가 가진 진정성을 보여주고 싶다. 처음에 시작할 땐 원두를 갈아서 뜨거운 물을 부으면 커피를 팔 수 있으니 정말 쉽다고 생각했다. 6개월이 지나니까 조금씩 현실이 보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 일이 나에게는 가치 있고 소중하다. 나이를 더 먹고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하고 싶은 일이다. 이 정도의 마음을 먹지 않으면 계속 할 수 없다.
자전거와 커피의 공통점은?
커피 맛을 알아야 자신의 취향이 생기듯, 자전거도 타봐야 알 수 있다. 어떤 자전거가 유행이라고 해서 그게 꼭 나에게 맞는 자전거란 법은 없다. 취향과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에서 자전거와 커피는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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