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피아트 500C
피아트 창업자, 조반니 아넬리는 무엇 하나 아쉬울 것 없이 자란 상류층 자제였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의 관심은 늘 대중 곁을 맴돌았다. “자동차는 부자의 전유물이 되어선 안 된다”는 신념이 있었다. 그의 소신이 낳은 대표적 소형차가 500이다. 이탈리아어로는 ‘500’을 뜻하는 ‘친퀘첸토’로도 널리 알려졌다. 피아트는 500을 1957년부터 1977년까지 만들었다. 2007년, 피아트는 원조 데뷔 50주년을 맞아 신형 500을 부활시켰다. 지금 국내에서 판매 중인 바로 그 500이다. 안팎은 과거의 500을 재해석해 디자인했다. 반면 구동계는 RR(뒤 엔진, 뒷바퀴 굴림)이던 원조와 달리 FF(앞 엔진, 앞바퀴 굴림)로 바꿨다. 500C는 2009년 나왔다. 500의 컨버터블 버전으로, 천장과 뒷유리를 접을 수 있다. 도어 프레임과 필러는 꼿꼿이 서 있지만, 하늘 내려 담고 달리는 즐거움은 여느 컨버터블 못지않다. 국내 판매 중인 500C는 직렬 4기통 1.4L 가솔린 엔진과 6단 자동변속기를 얹고 앞바퀴를 굴린다. 출력은 102마력으로 평범하다. 성능도 고만고만하다. 그러나 차체가 워낙 앙증맞다. 때문에 요리조리 휘두르는 재미가 끝내준다. 가격은 2천7백90만원.
이런 사람이라면 작고 귀여운 차에 끌리는 이라면 500을 외면하기 어렵다. 게다가 ‘오픈 에어링’의 꿈을 꾼다면 500C가 유일한 답이다. 수입 컨버터블 가운데 제일 저렴하다.
2. 미니 쿠퍼
‘불경기로 꽁꽁 닫힌 소비자의 지갑을 열어라!’ 미니는 이런 미션을 받고 태어난 차다. 수에즈 운하 사태로 경제가 마비된 영국에서 1959년 데뷔했다. 엔지니어 알렉 이시고니스가 개발을 주도했다. 미니는 데뷔와 동시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저렴한 값과 기막힌 패키징 때문만은 아니었다. 빼어난 운전 재미가 인기에 날개를 달아줬다. 자동차광 알렉 이시고니스는 레이싱카 엔지니어 존 쿠퍼와 손잡고 미니의 ‘화끈이’ 버전도 내놓았다. 미니 쿠퍼의 시작이었다. 미니는 2001년 BMW 품에서 신형으로 부활했다. 미니 고유의 디자인과 운전 재미를 빠짐없이 계승하면서 원조를 넘어서는 인기를 끌고 있다. 그동안 미니엔 많은 변화가 스몄다. BMW 품에서만 세 차례나 진화하면서 다양한 형제를 늘렸다. 하지만 역시 미니의 중심은 쿠퍼다. 현재 미니 쿠퍼는 1.5L 가솔린 엔진을 얹고 136마력을 낸다. 엔트리 모델이라고 얕잡아봤다간 큰코다친다. 3기통 심장으로도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 가속을 7.8초에 마친다. 또 승차감과 운전대 답력 등 기존 고객의 피드백을 꼼꼼히 반영했다. 그 결과 BMW가 낳은 어떤 미니보다 편안하다. 물론 자극적인 운전 재미엔 변함이 없다. 가격은 2천9백70만원부터.
이런 사람이라면 미니의 디자인과 전통, 문화를 선망하는 이라면 중고차 시장 기웃거릴 필요 없다. 엔트리 등급이라도 미니는 미니다.
3. 닛산 알티마
혹자는 말한다. 종종 이름이 운명을 결정 짓는다고. 닛산의 중형 세단 알티마가 그런 경우다. ‘궁극의’를 뜻하는 ‘얼티밋(Ultimate)’에서 영감 얻어 지은 이름이다. 단지 작명만으로 생색 낸 다짐은 아니었다. 닛산은 알티마로 세단 성능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했다. 특히 운전 재미로 동급 최고를 지향했다. 오죽하면 경쟁 업체 엔지니어가 뿌듯한 표정으로 “알티마를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았다”고 슬쩍 털어놓을 정도일까. 닛산은 알티마 고유의 개성을 오늘날까지 흔들림 없이 지켜오고 있다. 네 글자로 요약하면 ‘운전 재미’다. 지금의 알티마는 2012년 나온 5세대를 기본으로 지난해 안팎 다듬은 5.5세대. 국내엔 지난달 데뷔했다. 부분 변경치고는 변화 폭이 상당하다. 가령 헤드램프엔 앵그리버드처럼 굵은 눈썹을 씌웠다. 앞뒤 범퍼는 과감하게 주물렀다. 보이지 않는 곳도 꼼꼼히 다듬었다. 앞 서스펜션을 새로 설계하고, 뒤 서스펜션은 부싱 소재를 개선했다. 날카로운 핸들링 성능을 유지하되 승차감을 보다 매끈하게 다듬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운전자뿐 아니라 가족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세단으로 거듭났다. 나아가 2.5의 가격 하한선을 2천만원대로 끌어내렸다. 가격은 2천9백90만원부터.
이런 사람이라면 가족 때문에 못 이룬 스포츠카의 재미를 중형 세단으로 맛보고 싶은 가장. 동급에서 가장 발 빠른 중형 세단을 원한다면, 알티마가 유일하고 바람직한 답이다.
4. 폭스바겐 폴로
“작은 차 잘 만드는 브랜드가 진짜 실력파지.” 자동차 기자 초년병 시절, 존경하던 선배의 지론이었다. 당시엔 그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안다. 마진 빠듯한 작은 차 잘 만들려면 탄탄한 내공이 필수다. 폴로는 1975년 선보인 이래 40여 년 동안 진화를 거듭해왔다. 최근 폭스바겐 폴로가 다시 한 번 새 단장 마치고 국내 시장에 돌아왔다. 핵심은 좀 더 고급스러워진 안팎. 그래서 이름도 ‘폴로 프리미엄’이다. 앞뒤 조명에 LED를 심고, 천장엔 파노라마 선루프를 뚫었다. 엔진은 이미 지난해 ‘다운사이징’으로 거듭났다. 배기량을 1.6L에서 1.4L로 낮추고, 실린더도 하나 떼어냈다. 하지만 힘은 기존 수준으로 맞췄다. 여기에 자동 7단 DSG(듀얼클러치) 변속기를 짝짓고 앞바퀴를 굴린다. 신형 폴로의 가속엔 묘한 중독성이 있다. 가속페달 밟을 때마다 앞쪽으로 쭉 잡아당긴 고무줄에 빨려가듯 휘리릭 달려 나간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나긋하고 가벼운지 기특해서 슬며시 웃음이 난다. 폴로 운전 감각의 또 다른 백미는 경쾌한 몸놀림이다. 아마도 그래서, 거리를 달리다 종종 만나는 폴로의 움직임은 주위 교통 흐름보다 유독 활기차고 용맹스럽다. 가격은 2천8백70만원.
이런 사람이라면 일단 작은 차에 대한 애착이 필수다. 동시에 운전 재미에 대한 갈망도 커야 한다. 여기에 독일 차에 로망까지 갖고 있다면 폴로가 딱이다. 게다가 전통마저 남다르다.
5. DS 3
작아서 더 빛나는 명품이 있다. 자동차에서 그런 예를 찾는다면, DS 3가 제격이다. DS 3는 길이가 채 4m도 되지 않는 ‘꼬맹이’. 하지만 위트 넘치는 외모와 톡톡 튀는 컬러로 어딜 가든 시선을 잡아끈다. DS는 시트로엥의 서브 브랜드다. 그런데 같은 PSA 그룹 내 푸조나 시트로엥과 신분이 다르다. DS는 도도한 귀족을 꿈꾼다. 가까운 중국에선 모터쇼 때 DS 별도 부스를 꾸민다. 어찌나 화려한지 보석 브랜드를 연상시킬 정도다. 지난해부터 PSA 그룹은 시트로엥과 DS를 분리했다. 국내에서도 관성적으로 시트로엥을 붙일 뿐, 사실 공식 홈페이지엔 DS 브랜드를 따로 묶어놓았다. DS 3은 DS 브랜드의 막내다. 플랫폼과 1.6L 디젤 터보 엔진, 클러치 없는 반자동 5단 변속기 등 주요 얼개를 푸조 208과 나눈다. 명품은 실용성에 목매지 않는다. DS 3 역시 그렇다. 가령 뒷좌석은 누군가에게 권하기 미안하다. 대신 화려하다. 둥글게 흐르는 선과 변화무쌍한 곡면으로 가득하다. 주행 감각은 이란성 쌍둥이 푸조 208과 판박이. 출력은 겸손하되 움직임은 당차고 맛깔스럽다. 또 작은 차지만 워낙 화려해서 고급 식당이나 호텔에서 발레파킹 맡길 때도 머쓱하지 않다. 가격은 2천7백90만원부터.
이런 사람이라면 남과 다른 희소성에 가장 큰 가치를 둔다면 DS 3만 한 차도 없다. 거리에서 마주칠 확률이 거의 없다. 단, 대중적이지 않은 만큼 감가상각도 각오해야 한다.
6. 피아트 500X
피아트 500X는 500의 ‘풍선껌’ 버전이다. 바람 불어넣어 지그시 부풀린 것처럼 스케일 키웠다. 하지만 500 고유의 형태와 비율은 간직했다. 그래서 친근하다. 해서 좀 더 넓적해진 눈매와 검정 복대로 가린 옆구리 살 같은 낯선 요소는 눈감게 된다. 속살은 외모를 연상케 한다. 500 고유의 테마로 빚었다. 그래서 500 운전석에 방석 몇 개 겹쳐놓고 앉은 듯한 착각에 빠진다. 실내에선 모난 구석을 찾을 수 없다. 둥글고 유순한 외모처럼 부드럽고 완만한 곡선과 곡면으로 휘감았다. 국내에선 제한적으로 운영하지만, 500X 역시 500처럼 실내를 다양한 컬러와 소재의 조합으로 꾸밀 수 있다. 500X 엔트리 모델은 팝 스타 2.4다. 직렬 4기통 2.4L 188마력 가솔린 엔진과 9단 자동변속기 짝짓고 앞바퀴를 굴린다. 사륜구동은 빠졌지만 어지간한 험로 쏘다니는 데는 문제없다. 최저지상고가 202mm로, 이란성 쌍둥이인 지프 레니게이드보다 오히려 더 높아서다. 운전 감각은 외모가 비슷한 동생 500과 사뭇 다르다. 좀 더 차분하고 정갈하다. 무엇보다 시야가 좋아 운전이 한층 쉽다. 가격은 2천9백90만원부터.
이런 사람이라면 피아트 500 디자인에 꽂혔는데, 공간 때문에 망설였다면 기회가 왔다. 500X는 안팎 모두 500의 감성으로 충만하되 실용성까지 챙겼다.
7. 푸조 2008
아담하되 다목적으로 쓸 수 있는 차. ‘크로스오버 비클(CUV)’은 이 같은 ‘알뜰족’을 겨냥해 자동차 업계가 공들여 기획한 히트작이다. 국산차 중엔 쌍용 티볼리, 쉐보레 트랙스, 르노삼성 QM3(실은 스페인에서 전량 수입해 팔지만) 등이 있다. 그런데 2천만원대에 살 수 있는 수입 차도 있다. 바로 푸조 2008이다. 밑바탕은 푸조 208과 나눴다. 하지만 한층 우람해 보인다. 엄밀히 따지면 뱃바닥 살짝 띄우고, 네 바퀴 머금은 휠 아치에 불끈 힘 줬을 뿐이다. 그런데 착시 현상만은 아니다. 실내가 208보다 확실히 넓다. 시야도 시원시원하다. 푸조는 2008에 거는 기대가 크다. 오죽하면 208의 스테이션 왜건(SW) 버전을 포기했을까. 실내는 어른 넷 또는 어른 둘과 자녀 둘을 품기에 부족함이 없다. 짐 공간도 제법 넉넉하다. 엔진은 직렬 4기통 1.6L 디젤 터보로 99마력을 낸다. 변속기는 싱글 클러치 기반의 6단 MCP. 기어 갈아탈 때 클러치 잇고 떼느라 다소 꿀렁거리는데, 요령이 생기면 가속페달 조작만으로 극복할 수 있다. 나아가 이 정도 수고는 두 가지 빛나는 장점으로 잊을 수 있다. 푸조 고유의 쫀득한 몸놀림과 수시로 놀라게 되는 실주행 연비다. 가격은 2천6백90만원부터.
이런 사람이라면 SUV에 마음이 끌린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가격과 덩치, 먹성이 부담스럽다. 그렇다고 해치백은 옹색하고, 세단은 지루하다. 국산 차는 흔해서 싫고. 답은 빤하다. 푸조 2008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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