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울에겐 참 지겨운 이야기겠지만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언급하겠다. 그는 JYP 영재 육성 프로젝트에 선발된 지 15년 만인 작년, 정식으로 데뷔했다. 야심 차게 미국에 진출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무산됐고, 그는 한국행 비행기 대신 뉴욕에 남는 것을 택했다. 그렇게 혼자 10년을 낯선 곳에서 버텼다. JYP가 늘 아픈 손가락이라 말하며 ‘곧 데뷔할 거다’라고 말했지만 실물을 볼 수 없던 탓에 ‘지소울 영혼설’까지 나돌 정도였다.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용돈을 벌고 지하철 버스킹을 해 득음한 끝에, 지소울은 유일무이한 목소리를 가진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가 되어 돌아왔다. 사람들은 그의 지난 시간을 무척 안타깝게 바라본다. 또래 친구들이 10대 시절 일찌감치 데뷔해 ‘중견 가수’가 되는 동안 R&B에 단단하게 뿌리 내린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3개의 미니 앨범과 래퍼 산이와의 프로젝트 싱글을 거쳐 최근 <멀리 멀리>로 펑키한 솔을 보여주는 지소울을 만났다. 옛날 이야기는 아주 조금만 했다. 대신 미래 지향적인 이야기를 길게 나눴다.
얼마 전에 <라디오 스타>에 출연했다. 작년과 달리 굉장히 적극적인 활동인데?
단 한 번도 방송하기 싫다거나, 대중을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하하. 어쩌다 보니 이번에 (박)진영이 형이랑 (조)권이랑 (민)효린 누나까지 함께 방송에 출연하게 됐다. <라디오 스타>라는 프로그램에 대해선 알았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파급력이 얼마나 엄청난 지 몰랐다. 나는 녹화장에 가서 권이가 춤추고 진영이 형이 발로 피아노 치는 걸 구경하기만 했는데, 엄청 재미있더라.
지소울 목소리는 R&B에 특화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레게풍의 펑키(Funky)한 노래 ‘멀리 멀리’와도 참 잘 어울린다.
작년 겨울 뉴욕에서 작업한 노래다. 프로듀싱하는 친구들과 음악을 듣다 레게풍 노래가 있어 즉흥적으로 멜로디와 가사를 써봤다. 영어 가사는 온전히 사랑을 노래했다. 한국에 와서 회사에 노래를 들려줬더니 너무 좋다고 하면서 한국어 가사를 써보라고 하더라. 너무 생각이 안 나서 오래 걸렸다. 당시 주변에 ‘이별’을 겪는 친구가 많아서 실연에 관한 가사를 적었다.
슬픔을 레게풍으로 살랑살랑 풀어낸 것이 재미있다.
진짜 슬픈 곡을 썼는데 그건 샤이니 태민에게 팔았다. ‘멀리 멀리’도 슬프지만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혼자만의 이별 여행을 다뤘다. 또 다른 수록곡 ‘우리 이젠 어디로’는 이별인지 뭔지 모르겠는 답답한 상황을 그렸다. 친구들 얘기를 듣고, 내 경험담도 녹여내고 그랬다.
작년에 발표한 앨범 중에선 〈Dirty〉가 참 좋았다. 미국 냄새 물씬 풍기면서 세련됐다는 느낌이다.
‘딥 하우스’라는 장르로 프로젝트를 해야겠다 생각한 것이 3년 전이었다. 당시엔 ‘디스클로저(Disclosure)’에 푹 빠졌었는데, 나에게 새롭고 낯선 장르라 더욱 그랬다. 그러다 디제이 프란츠를 알게 됐고 그와 함께 앉자마자 만든 노래가 ‘Dirty’였다. 우리 미니 앨범 하나 해보자고 얘기한 후 회사에서 지원을 안 할 것이라 생각하고 독립적인 프로젝트로 진행했다. 펀드나 예산도 없이 진짜 자유롭게 만든 앨범이라 가장 애착이 간다.
회사에서 자유롭게 내버려두나?
내가 회사를 설득하는 입장이다. 누가 이런 걸 해야 한다고 하면 정반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피곤한 성격이다. 하하. 시키면 몸이 거부해서 더 못한다. 끊임없이 여러 가지 도전을 하다 보니 회사에서도 이제 ‘너는 이것저것 다 해야 되나 보다’라고 체념한 것 같다.
지소울의 목소리는 정통 발라드보다 변칙적인 장르에서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자칫 소수 마니아층을 위한 음악이 될 수도 있다.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
결국 사람들은 노래에 담긴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나? 그래서 사운드는 내 방식대로 가져가되 가사에 집중하는 편이다. 친구에게 ‘어라운드’라는 모바일 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들이 익명으로 아무 글이나 올릴 수 있는 건데, 10개 중 8개는 이별 내용이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그래서 탄생한 프로젝트가 바로 싱글 앨범 <멀리 멀리>다.
가사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지소울은 왜 만날 사랑 이야기만 쓰나?
하하. R&B라는 장르 자체가 사랑 노래 아닌가. 그리고 내 음악적 뿌리는 언제나 R&B니까 자연스레 사랑을 주제로 잡게 된다. 연애할 때 가장 감정적이 되니까, 결국 사랑이 나에겐 가장 큰 영감을 주는 존재다. 사랑 없으면 좋은 곡이 안 나올지도 모르겠다. 하하.
대한민국은 지금 힙합 열풍이다. 가만 보면 지소울의 특이한 보컬은 힙합 뮤지션이 열광하는 타입이다. 러브콜이 엄청났을 것 같은데, 어떤가?
연락은 굉장히 많이 왔었다. 실제로 산이 형과는 올해 2월 ‘Smooth Operator’라는 싱글을 발표하기도 했고. 그런데 나랑 딱 맞는 노래, 그러면서도 타이밍까지 맞는 노래를 찾자니 결국 아무것도 못하게 됐다. 작년에 계속 녹음실에서 내 앨범 작업에만 몰두했기에 더욱 그랬다. 기회만 된다면 언제든지 협업하고 싶다.
아직도 사람들이 ‘지소울의 15년’을 이야기한다. 지겹지 않은가?
작년에 데뷔하고 나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15년이 너무 길었다’고 말한다. 길다면 진짜 긴 세월이기에 사람들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정말 신경도 안 쓰는 문제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뭐든지 하루아침에 되는 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가 뭐라 하건 나는 이제 데뷔 1년 차인 신인 가수일 뿐이다. 음악은 어렸을 때 기량을 뽐내고 은퇴하는 운동 종목이 아니니까. 15년 동안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 아니라 모든 경험이 다 나의 음악적 자산이 됐다. 평생 할 음악이기에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에 더 집중하고 싶다.
맞다. 데뷔를 언제 하느냐보다 언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음악을 완성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다. 지금 지소울이 더 채워야 할 점은 뭔가?
와, 굉장한 질문이다. 회사에 음악을 들려주고 가장 많이 듣는 피드백은 ‘어렵다’라는 말이다. 내 음악이 어렵다는 얘긴데, 그게 어떤 의미인지 정확히 알고 싶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속으로 ‘내가 왜? 뭐가?’라는 생각을 한다. 하하.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가 아니라는 의미 아닐까?
어! 맞는 말 같다. 지금 나에게 굉장한 이야기를 해주신 거다. 난 데뷔 앨범을 만들기 전까지 송라이터의 역량에 관심이 거의 없었다. 그전까지는 거의 노래에 미쳐 있었으니까, 노래에 대한 연구도 많이 했다. 그래서 노래 테크닉에 집중했지, 따라 부르기 쉬운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와, 정말 좋은 조언을 얻었다.
도움이 됐길 바란다. 요즘 뉴욕에 있는 친구들은 어떤 노래를 듣나?
요즘엔 인터넷 때문에 지역의 경계가 없어졌다. 작년에는 UK 뮤지션이 미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다. 요즘 내가 진짜 좋아하는 아티스트는 ‘갤런트(Gallant)’다. 그가 부른 ‘Weight In Gold’를 계속 듣는 중이다. ‘나오(Nao)’라는 아티스트도 정말 좋아하고.
요즘엔 음악을 듣는 지역의 경계뿐 아니라 음악 장르의 경계도 없어졌다.
문화적이나 음악적으로 다양함이 공존할 수 있는 시절 같아서 참 좋다. 예를 들어 메이저 아티스트인 리한나만 봐도 새 앨범에서 블루스, 어번 등 자신의 관심사를 골고루 다룬다.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다양한 음악으로 각자의 마켓을 점유하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데뷔가 좌절되고,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분명 있었을 것 같다. 다른 일을 하면서 편하게 살고 싶은 적은 없었나?
뭘 하면 편했을까? 어떤 일이건 스트레스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 이렇게 음악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아 마땅하다. 안정적인 길이 아니었기에 더 재미있었고, 이 모든 게 내 열정이고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되게 좋다.
만약 오늘 하루 음악을 들을 수 없게 스피커를 뺏어버린다면?
노래를 들을 수 없다면 부르면 되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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