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촬영장 풍경은 이렇다. 연예인이 매니저를 비롯한 수많은 스태프를 대동하고 나타난다. 늘 북적이는 사람들 속에서 홀연히 등장해야 ‘아, 오늘 만날 사람이 저 사람이구나’를 깨닫게 마련인데, 이날 풍경은 조금 달랐다. 스튜디오에 웬 장정 한 명이 슬그머니 들어왔다. 트레이닝복을 걸치고 어슬렁 혼자 나타난 그가 오늘 우리가 만날 ‘연예인’ 황찬성이었다. 현직 아이돌 그룹 막내이자 연기자인 그는 얼마 전부터 곧잘 혼자 다닌다고 했다. 쉬는 시간에도 다음 활동을 위해 몸을 만들면서 엄격하게 자기 관리를 하던 세월이 어언 8년이었다. 어느 순간 ‘놀 수 있을 때 확 놀아버리자’는 마음으로 무작정 쉬었더니 훨씬 홀가분해졌다고. 최근 드라마 <욱씨남정기>에서 ‘자발적 백수 청년’ 남봉기 역할을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소화하고 있는 그는 부쩍 주변 사람에게서 ‘편안해 보인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오늘을 재미있게 보내다 보니 삶이 더 즐거워졌다고 말하는 황찬성의 별일 없이 사는 얘기를 들어봤다.
얼마 전 어느 브랜드 행사에 혼자 운전하고 가서 ‘발레 파킹’하는 장면을 많은 사람이 목격했다. 행사장에서도 아는 사람 이름 큰 소리로 부르면서 ‘자유인’처럼 행동했다던데?
그렇게 자유롭게 다닌 지 좀 됐다. 그 행사에는 (조)권이도 왔는데 매니저랑 동행했더라. 매니저가 당황하면서 “찬성아, 왔으면 전화라도 하지 그랬어.” 하하. 브랜드 담당자가 아는 누나라 ‘시간 되면 와달라’고 했는데, 마침 시간이 돼서 간 거다.
그래도 ‘2PM’ 황찬성인데, 매니저랑 같이 다녀야 하는 거 아닌가? 오늘도 촬영장에 혼자 오고.
매니저랑 같이 다니는 게 더 불편할 때가 있다. 내가 성격이 급해서, 어디를 가려면 딱 지금 출발해야 직성이 풀린다. 누구를 기다렸다가 언제 가나 싶어서 혼자 막 다닌다.
출연 중인 드라마 <욱씨남정기>의 반응이 좋다. 정작 고등학생 때부터 일을 시작한 중견 연예인인데, 하릴없는 백수의 느낌을 어떻게 찾았나?
올 초부터는 스케줄이 한가해 쉬는 시간이 생겼다. 보통은 그런 시간에 운동하고 바쁘게 지냈는데 이번엔 사람들 만나 술 마시고 하면서 정말 ‘백수’같이 지냈다. 그 시간이 확실히 ‘봉기’를 연기하는 데 좋은 영향을 준 것 같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 안 하고 막 놀았다는 뜻인가?
쉴 때도 휴식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그동안은 쉬는 시간도 스케줄의 연장이었다. 계속 다음을 준비하면서 8~9년 지내다 보니까 진짜 쉬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아무것도 안 했다. 그렇게 지내도 ‘뭐 큰 사단이 나진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유독 이번 드라마에서 ‘연기 같지 않은 연기’를 보여준다.
주변에서도 그런 이야기 많이 하더라. 솔직히, 막 하고 있다. 하하. ‘막 한다’는 것은 ‘이렇게 해도 될까?’라는 고민 없이 툭툭 던지듯 연기를 한다는 의미다. 연출을 맡은 감독님의 스타일에도 영향을 받았다. 분명 리허설이라고 해서 편하게 연기했는데, 갑자기 “이거 좋은데요”라고 하면서 오케이 사인을 내리신다. 그래서 더 마음 놓고 연기를 하게 된다.
10대 시절에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JYP와 계약을 맺은 뒤 아이돌로 데뷔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셈인데, 누구보다 몸을 사리며 사는 ‘자발적 백수’ 캐릭터를 어떻게 생각하나?
나 역시 JYP 들어오기 전에는 이렇다 할 꿈이 없었다. 그냥 하루하루 즐겁게 살았다. 그러다 <슈퍼스타 서바이벌>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JYP 연습생이 됐고, 그때부터 조금씩 명확해진 것 같다. 지금 내가 연기하는 캐릭터는 못하는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특출하게 잘하는 것도 없는 친구다. 어떻게 흘러가야 할지 인생 방향은 알고 있지만 그냥 좋은 대로 살고 있는 사람인 거다. 뭐든지 깊숙하게 발 담그지도 않고 욕심 내지도 않는다. 딱히 불행할 것도 없이, 충분히 행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욕심 내지 않고 가수와 배우 활동을 할 수 있나?
나는 욕심을 가진 사람이다. 그래서 늘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분야를 끝까지 파고들기도 하고, 취미를 즐기더라도 남보다 더 잘하고 싶다. 원하는 만큼 이루지 못한다고 해서 불행하다 느끼는 건 아니지만, 작은 일도 잘해내고 싶은 욕망이 크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더 크다. 결국 자기만족을 넘어서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것 같다.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는 어떤가?
그런데 늘 생각대로 되지는 않는다. 늘 슬럼프라고 볼 수 있다. 하하.
‘2PM’ 이전에 이미 전설의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을 통해 연기자로 데뷔했다. 그 때문인지 코믹한 역할을 많이 제안받지 않나?
<거침없이 하이킥>은 내가 처음 ‘연기가 재미있다’ ‘계속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고마운 작품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내 이미지가 어떤지, 신경을 쓰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 그에 대한 염려로 내가 좋아하는 역할을 선택하지 못하는 게 더 싫다. 다른 거 생각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걸 하고 싶다.
배역 미팅할 때, 연출자나 작가가 첫인상에 대해 어떤 코멘트를 주로 하나?
‘생각보다 리딩을 잘한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하하. ‘기대하지 않았는데 괜찮다’, 이런 얘기도 종종 듣고. 아무래도 아이돌 가수라는 것, 인지도와 지목도가 높아서 캐스팅 물망에 오른다는 배경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사를 한 번 읽어보면 정말 이 역할을 맡겨도 될지 판가름 난다. 내가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졌다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결국 배역에 적합한 인물인가다.
2008년 2PM은 ‘짐승돌’이라는 트렌드를 만들었다. 어떤 의미로 가요계에 인상적인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다. 배우로서도 뭔가 남겨야 하지 않을까?
와,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작품 나올 때마다 내심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들이 ‘내가 나인 줄 몰랐으면 좋겠다’고. ‘저 배우 괜찮은데? 누구야?’라는 얘기를 듣고 싶다. 한마디로, 식상하지 않은 배우가 되는 것? 그게 지금으로선 이루고 싶은 목표다.
같은 시간대에 2PM의 준호가 출연하는 드라마가 방송 중인데, 신경 쓰이나?
준호가 먼저 드라마 출연을 확정지었고, 이후에 내가 출연 결정을 하게 됐다. 생각해보니 동 시간대 다른 방송국 드라마인 거다. 서로 시청률에 신경을 쓰기는 한다. 하하. 얼마 전에 준호가 촬영하는 현장으로 커피 차를 보냈다. ‘잘되나 보자’는 문구를 크게 적어서. 하하. 서로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
이제는 같이 활동한 세월이 길어서 동지애, 전우애를 느끼겠다.
다들 알고 있듯 많은 일을 겪은 사이 아닌가. 그래서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진한 동지애가 생겼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뭔가 해탈하게 됐다. 어렸을 때 했던 생각이 조금씩 정리되는 느낌이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한다. 지금의 마음 그대로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 그만큼 지금이 좋다.
뭐가 그렇게 좋나?
예전에는 스트레스 받던 것들이 많았다. 그런 것들을 하나씩 툭툭 털어가면서 지내다 보니까 생활이 편해졌다. 사고도 굉장히 유연하고 자유로워진 느낌이다.
이제 성공의 의미도 달라졌겠네? 배우로 성공한다는 건 어떤 모습인가?
꾸준히 연기할 수 있는 것이 성공 아닌가 싶다. 외국 배우 보면 작은 역할이라도 자기 마음에 들면 하더라. 주연 하던 사람도 역할이 맘에 든다면 기꺼이 조연을 한다. 자신의 위치에 얽매이지 않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나도 즐거워야 남들도 즐겁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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