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산안경점을 몇 대째 이어오고 있는 건가?
4대째다. 그러니까 나의 증조할아버지가 1883년에 백산안경점을 창립했다.
그렇다면 정확히 언제, 어떻게 백산안경점을 이어받았나?
1972년에 영국으로 유학을 갔는데 그때 안경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1974년 일본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안경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돌아오기 전까지 백산안경점은 자체 디자인을 하지 않았나?
맞다. 흔히 볼 수 있는 수입 안경을 판매하는 일반 안경점이었다. 1975년에 내가 처음으로 디자인을 시작했다. 그렇게 나온 첫 모델이 ‘행크(Hank)’다. 이후 지금까지 모델을 5백 개 정도 만들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안경을 디자인하면서 고수하는 철칙 같은 게 있다면?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은 하지 않는다. 불필요한 요소나 과한 디자인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철칙이다. 사람에 맞춘 디자인, 착용했을 때 편한가를 가장 중요시 여긴다. 오랜 기간 안경점을 운영하며 세운 가치관이다.
어떻게 보면 지금은 하나의 브랜드인데 ‘안경점’이란 이름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나?
오히려 디자인을 하지 않던 아버지 때까지만 해도 백산안경 뒤에 ‘점’을 붙이지 않았다. 굳이 ‘점’을 붙인 이유는 고객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소매점의 인상을 줘서 고객이 더 친근하게 느끼고 부담 없이 찾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대표 모델들을 보면 금속 테보다 뿔테 안경이 많은 거 같다.
전체적으로 보면 7:3 정도로 뿔테가 많다. 아무래도 금속 테는 심플함을 기본으로 하다 보니 뿔테보다 디자인할 수 있는 영역이 넓지 않다. 반대로 뿔테는 굵기나 색, 모양의 변화가 자유로운 편이다.
수요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판매도 하지 않고, 일본 내 매장도 다섯 곳밖에 없다고 들었다.
앞서도 말했듯이 백산안경점은 소매점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나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나 유명세만으로 물건을 팔고 싶지 않다. 안경을 파는 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한국에 단독 매장을 오픈한 이유는?
수입을 원하는 업체는 많았다. 하지만 대부분 많은 안경들 사이에 일부로 들어가야 하는 조건이었다. 그건 아무래도 사후 서비스 측면에서 우리와 맞지 않는 형태다. 아무리 좋은 편집매장이라도 우리의 철학이 다른 브랜드와 섞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한국의 단독 매장은 말 그대로 단독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백산안경 하면 존 레넌을 빼놓을 수 없다. 마지막까지 즐겨 썼다는 것이 사실인가?
먼저 당시 상황이 대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존 레넌이 일본에 오면 꼭 방문하는 빈티지 옷가게가 있었다. 나의 친구가 운영하는 매장으로 그 친구는 내가 만든 안경을 매장 한편에 놓아두었다. 그것을 본 존 레넌이 직접 우리 매장을 방문하길 원했고, 예약을 했다. 한데 팬들 때문에 여건이 좋지 않자, 내가 직접 호텔로 모델을 몇 개 들고 방문해 맞춰주었다.
그 이후에 왜 메이페어 모델을 계속 만들지 않았나?
그의 유품이 되어버린 안경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 고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 역시 존 레넌의 굉장한 팬이다. 그래서 당시 존 레넌이 맞춘 것과 똑같은 모델을 하나만 더 만들어 금고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사실 백산안경점을 보고 가장 놀란 점이 있다면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한다는 것이다. 브랜드 성격상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그런가? 사실 협업 요청의 10%밖에 응하지 않은 거다. 그것도 지인이 운영하거나 친분이 있는 브랜드가 대부분이었다.
가장 반응이 좋은 협업 제품이 있다면?
2005년도에 ‘텐덜로인(Tenderlion)’과 공동 제작한 ‘티-제리(T-Jerry)’를 꼽을 수 있다. 이 제품이 화제가 되자 협업 요청이 쇄도했다. 하지만 안경의 방향성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거절할 수밖에 없다. 협업 자체는 좋아하지만 백산안경점의 지조를 저버
릴 순 없다.
마지막으로 가로수길 백산안경점을 방문하는 이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백산안경점에 오는 모든 이들과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한다. 비록 직접 응대하고 피팅을 할 수는 없지만 그동안 지켜온 서비스 철학은 고스란히 전달할 예정이다. 다시 말하지만 안경을 파는 순간 우리와 고객의 연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존 레넌의 유품
1981년 존 레넌의 아내였던 오노 요코가 발표한 앨범 〈Season of Glass〉의 재킷에는 렌즈에 피가 묻은 메이페어가 등장한다. 시라야마는 이 사진을 보고 존 레넌이 자신의 안경을 착용해줬다는 기쁨과 최후에 쓰고 있었다는 슬픔, 그 두 가지 감정이 교차했으며 특별히 애착이 가는 모델이 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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