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장 단추 장식의 짙은 남색 재킷·짙은 남색 니트·파란색 체크 셔츠·갈색 팬츠 모두 브룩스 브라더스, 페이즐리 문양의 회색 타이 폴스미스, 갈색 로퍼 크로켓&존스 제품.
방일석 대표를 직접 만나보기 전까지만 해도 올림푸스라는 기업은 내게 ‘미스터리’라는 단어와 동일시되는 존재였다. 그리 큰 규모도 아닌 회사가 창립 이래 줄곧 폭발적인 성장세를 지속해왔고, ‘마이 디지털 스토리’라는 구호를 앞세워 지금의 디카 문화를 사실상 창출했으며, 심지어 최근에는 ‘펜’이라는 야심작을 내세워 한국에서도 테크 제품을 사기 위해 밤새 매장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을 만들어냈다.
방 대표는 첫인상부터 남달랐다. 혹시나 싶어 스태프가 미리 준비해온 의상을 보더니 한참 동안 옷을 뒤적이는 데 여념이 없었다. “오, 나에게 프레피 룩을 입히려고요? 흠. 이런 스타일은 지금껏 시도해본 적이 없는데. 어디 한 번 해봅시다. 이것도 도전일 테니까.”
솔직히 한국 사회에서는 해당 업종에 종사하지 않는다면 패션에 조예가 깊은 CEO는 그리 많지 않다.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고 말한다. 더군다나 37세라는 젊은 나이에 대표 자리에 올랐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더 노숙해 보이는 스타일을 고집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대신 주말이면 꾹 눌러 참아왔던 욕구를 풀기 위해 10년 이상 젊어 보이는 스타일만 고집했다고 한다. “전 스키니 팬츠만 입습니다. 다리가 가는 편이기 때문에 통이 나풀대는 느낌이 참 싫어요. 피트함에 대한 고집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어요. 심지어 장교로 군복무할 때도 육군본부 앞 매장에서 피트하게 떨어지는 옷감으로 군복을 맞춰 입을 정도였으니까.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패션 아이템은 바로 넥타이입니다. 전 가벼우면서도 라인이 딱 떨어지는 에르메스만 맵니다. 넥타이는 남자의 중심과 자신감을 잡아주는 대표적인 아이템이에요. 그만큼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죠.”
말문이 트이자마자 패션에 대한 자신의 소견을 줄줄이 늘어놓는 방 대표는 스타일리시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러기 위한 노력은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옷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도 없이 현재의 트렌드와 문화를 어떻게 꿰뚫어볼 수 있겠느냐는 것. 자, 이제부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문화 마케팅의 귀재’라고 불리는 이 남자의 머릿속을 함께 헤집어보자.
▶ 방일석 대표는 지금도 자투리 시간이 나면 프라이빗 공간에서 홀로 사색에 잠기곤 한다. 그만의 창의성을 뽑아내는 비결이다.
<아레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21세기 기업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는 패셔너블함, 그리고 세련된 감각이라고. 그리고 CEO 스스로 이런 감각을 체화하고 있지 못하다면 기업 또한 그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거라고.
맞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지금은 스타일리시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남성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패션이 한 사람의 캐릭터를 결정하는 요소를 넘어, 문화의 위치까지 획득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 자신이 옷을 썩 잘 입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런 건 있다. 젊었을 때부터 각종 출장 탓에 외국을 수시로 드나들 수밖에 없었다. 외국의 독특한 문화를 접하면서 새로운 감각, 특히 트렌드를 읽어내는 능력은 키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컬러, 즉 색깔을 감별해내는 방법도 덩달아 배웠고. 이런 트렌드에 대한 호기심이 실제 기업 경영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올림푸스를 직접 한국에 들여와 론칭했고, 지금껏 분신처럼 회사를 키워왔다. 일본 본사 마케팅 본부장, 아시아 중동 총괄 CEO 등을 역임했을 정도로 올림푸스 본사와 운명을 같이 해왔다. 이 회사에 특별한 애착을 보이는 이유가 있는가.
올림푸스는 새로운 문화, 즉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해온 회사다. 1959년 오리지널 펜이 처음 등장했을 때 세계인의 삶은 그야말로 ‘상전벽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 전까지 카메라는 비싼 것, 일부 전문가들만 사용하는 어려운 기기라는 인식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누구나 들고 다닐 수 있는 콤팩트함과, 같은 값에 기존 필름보다 2배를 더 찍을 수 있는 실용성이 사람들에게 어필했다. 결국 전 세계적으로 1천7백만 대나 팔려나갔고, 사진이 인간의 삶에 한 걸음 더 가깝게 다가서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2000년도에 올림푸스 한국을 론칭하면서 ‘마이 디지털 라이프’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이유도 간단하다. 우리는 무릇 기술이란 새로운 문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드는 데 일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추억’이라는 테마를 삶에 깊숙이 끌어들이는 데 ‘사진’만큼 좋은 콘텐츠는 없다고 생각했고, 우리의 기술력을 총동원해 그걸 실현해낸 것이다. 올림푸스의 등장 이후 한국에 ‘디카 문화’라는 것이 새롭게 창조된 것에 대해 지금도 자부심을 느낀다.
단순히 탁월한 마케팅 기법만으로 올림푸스가 지금의 위치를 획득하지는 못했을 텐데.
맞다. 당연히 기술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올림푸스는 큰 기업은 아니다. 대신 90년 동안 광학 기술의 외길만 파온 회사다. 원천 기술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렌즈를 만들 수 있기에 ‘내시경’을 세계 최초로 창조해냈다. 결국 선진 기술을 통해 인류의 삶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카메라라는 외길만 팠기에 사진을 통해 풍족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었다. 굳이 다른 기업이 아닌 올림푸스를 한국에 갖고 들어온 이유는 간단하다. 컨버전스 기업은 이미 삼성, LG 등 쟁쟁한 그룹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굳이 한국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기업을 들여올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광학 분야는 달랐다. 제대로 된 원천 기술 하나 보유하고 있지 못한 한국의 상황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었다.
외국계 기업은 한국을 판매 시장 정도로만 여긴다는 일각의 비판도 있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면 문제는 다 해결된다. 진정한 세계화는 지역화, 즉 로컬라이제이션이 병행되어야 실현 가능하다. 원래 글로벌 기업에는 본사 개념이 없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면 그 지역이 곧 본사가 되는 것이다. 한국만의 특성과 접합한 ‘온라인 인화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한국이 이 플랫폼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1억불 수출 탑’까지 수상했을 정도로 올림푸스는 한국 경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시각을 넓히면 그만큼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
“진정한 세계화는 지역화, 즉 로컬라이제이션이 병행되어야 실현 가능하다. 원래 글로벌
기업에는 본사 개념이 없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면 그 지역이 곧
본사가 되는 것이다. 한국만의 특성과 접합한 ‘온라인 인화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탁월한 디자인 감각, 트렌드를 정확히 짚는 마케팅 능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 감성을 획득하려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한국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신제품을 론칭하는 업무만 맡아왔다. 새로운 콘셉트의 제품을 소개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일은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불면증에 여러 번 시달려야만 간신히 아이디어를 짜낼 수 있다. 다만, 이런 건 있다. 게으른 크리에이티브 능력보다는 꾸준한 고민이 훨씬 더 나을 때가 많다는 것. 이번에 ‘펜’ 광고 콘셉트를 짤 때도 마찬가지였다. 몇 달간 밤을 지새며 고민한 콘셉트를 광고대행사에서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가장 생각을 많이 해본 사람이 가장 좋은 결과물을 도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과 네트워킹을 강화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홀로 조용히 앉아 과거를 돌아보고,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을 갖는 건 무척 중요한 일이다. 내가 굳이 드럼을 두드리는 공간, 정원을 가꾸는 공간, 음악을 듣는 공간 등을 따로 두고 자투리 시간이 날 때마다 들르는 이유는 홀로 사색에 잠기는 여유가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 트렌드를 간파하기 위해서는 핵심을 제대로 찌를 줄 알아야 한다. 연못 한가운데에 제대로 돌을 던져야만 커다란 동심원이 형성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번에 ‘펜’을 출시했을 때 올림푸스라는 회사명을 드러낼 것인가, 감출 것인가 고민이 많았다. 결론은 깨끗하게 들어내는 거였다. 콤팩트 카메라도, DSLR도 아닌, 제3의 신인류가 탄생했다는 것을 만천하에 선포하려면 기존 올림푸스 제품 또한 구세대에 속한다는 것을 우리가 먼저 인정해야 하니까.
이력을 보면 삼성에서 시작해, 일본 주재원을 거쳐, 젊은 나이에 올림푸스 한국의 대표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 인생을 살아왔다. 인생의 결정적인 위기나 전기 같은 건 없었나.
사람들은 흔히 나를 마케팅 전문가로 분류하지만 원래는 엔지니어 출신이다. 대한민국에 반도체 산업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삼성반도체에서 엔지니어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아마 남들과 똑같이 생활했다면 지금껏 현장에서 엔지니어의 삶을 펼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기회는 준비되어 있는 사람에게 오는 것 같다. 입사했을 때 최소 3년은 아무 생각 말고 최선을 다하자는 결심을 했었다. 그때 직속 상사가 마케팅 부서로 발령이 나면서 평소 관심 있게 지켜본 나를 데려갔다. 솔직히 인생에 있어서 행운이나, 운도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그 순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행운 또한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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