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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실 습격 사건 - BMW 코리아 대표이사 김효준

그렇다. 사장실을 기습했다. 이 네 명의 CEO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색창연한 대기업 `사장님`들과는 180도 다른 존재들로 새로운 감각, 디자인, 패셔너블, 크리에이티브 등 새 시대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워 각 분야에서 최고의 실적을 거두고 있는 `21세기 트렌디 CEO`의 전형이라 판단해서다. 이들의 잔잔하면서도 확신에 찬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다른 걸 다 떠나서 무릇 블랙칼라 워커라면 이 정도 수준의 기사는 읽어줘야 하지 않나?<br><br>

UpdatedOn September 05, 2009

파란색 체크 재킷 휴고 보스, 은은한 녹색 베스트 란스미어, 갈색 팬츠 브룩스 브라더스, 스웨이드 소재 슈즈 체사레 파조티, 갈색 레더 벨트 S.T.듀퐁, 하늘색 셔츠·파란색 도트 포켓치프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솔직히 말하자. 지금껏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것이 사실이다. TV만 틀면 등장하는 각종 탈세 의혹, 무려 13년 동안 이어온 한 대기업의 경영권 불법 승계 논란 등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기업이란 ‘오직 자기 이익 실현만을 목표로 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집단’이라는 고정관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빌 게이츠를 비롯한 미국의 대표적인 갑부들이 공화당의 감세 정책에 맞서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부자들에게 막대한 상속세를 매겨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에피소드는 말 그대로 먼 나라 이야기에 불과한 걸로만 느껴졌다.

당신도 익히 알고 있다시피 BMW 코리아는 대한민국 기업 마케팅 역사에 큰 획을 그은 회사 중 하나다. 아트와 패션, 영화, 음악 등 동시대에 가장 ‘핫’한 문화양식을 자동차와 결합해 첨단 유행을 창조하는 노하우를 선도적으로 실현해온 기업인 것이다. 애초에 김효준 대표와 마주 앉았을 때는 BMW만의 세련된 감각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그런데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 보니 어느덧 이야기는 ‘기업 시민’이라는 김 대표만의 독특한 가치관을 거쳐 모든 것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는 동양 사상의 근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기업이란 사회 구성원, 또는 시민사회와 함께 호흡하는 유기체’라는 지극히 기본적인 가치를 실현하는 한국 기업을 드디어 만날 수 있었다는 뜻이다. BMW만의 새로운 감각을 온몸에 체현하고 있는 김 대표식 트렌디함의 비결은 바로 ‘상식’을 준수한다는 점에 있었다.

▶ 김효준 대표는 인터뷰 내내 ‘상식’의 힘을 강조했다. 기본을 지키는 삶이란 그만큼 대단한 것이다.

가끔 BMW라는 회사는 종잡기 힘들 때가 있다. 분명 세계 최고의 자동차 메이커인데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술에 대해 자랑하는 건 극히 삼간다. 또한 ‘키드니 그릴’ 등 1백 년이 넘는 전통을 계속 고수하면서도 상상을 뛰어넘는 디자인 혁신을 시도해 보는 이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도 한다.

어찌 보면 BMW는 중소기업이라 할 수도 있다. 1년에 5백만 대, 1천만 대씩 생산하는 회사가 아니라, 1백50만 대 내외로 생산량을 딱 정해놓고 운영하는 메이커라는 뜻이다. 우리는 상용차에 관심이 없다. 오로지 고급 승용차에만 집중한다. ‘딱딱하면서도 부드러운 드라이빙’이라는, 직접 타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BMW만의 운전 쾌감을 극대화하는 데 우리의 모든 촉수가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신기술을 내놓을 때마다 업계에서는 ‘도대체 언제부터 연구를 시작한 것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는 반응을 내놓곤 한다. 우리는 최소한 10년 뒤의 트렌드를 미리 읽고 새로운 기술을 준비한다. 수소자동차 하이드로젠 7을 이미 25년 전부터 개발해온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인간’에 대한 관심을 항상 놓지 않기에 미래에는 어떤 디자인이 사람들에게 어필할지를 끊임없이 고민한다. 새로운 제품을 접했을 때 처음에는 낯설지만 결국 최신 트렌드와 딱 맞아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끊임없이 입증해왔다. 이런 자신감은 1백 년 가까이 한 분야만 파온 프로페셔널 정신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BMW 코리아는 서울 컬렉션 등 패션쇼 지원, 아티스트와의 다양한 협업, 단편영화 제작 등 문화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해왔다. 기본적으로 이윤 추구를 목표로 할 수밖에 없는 일개 기업이 사회의 문화 발전을 위해 막대한 투자를 감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짧은 기간에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뤘다. 하지만 개개인의 문화적 소양은 서구에 비해 현저히 뒤떨어진다. 철학, 역사 등 인문학에 대한 지식 또한 마찬가지다. 나 또한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 심포지엄에 참여했을 때 참석자들과 저녁을 먹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거의 없었다.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그들이 나누는 정치, 경제, 철학, 역사, 심지어 오페라까지 넘나드는 폭넓은 대화에 끼어들 엄두도 내지 못했다. 경제란 기본적으로 인간의 삶의 질을 풍요롭게 만드는 도구다. 이제 우리도 문화의 풍요로움에 포커스를 맞출 때가 되었다.

BMW는 자동차 회사다. 차를 통해서 사회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회사라는 뜻이다. 동시대의 문화를 새롭게 재해석해 삶의 질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도 기업의 주된 임무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BMW는 이미 40년 전,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해 앤디 워홀, 리히텐슈타인, 캔 돈 등 유수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아트 카를 제작한 경험이 있다. 일부는 르망 레이스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차의 성능을 자랑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는 데 일조할 수 있어야 진정한 드림 카라는 확고한 원칙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다. 한국에서도 7명의 아티스트들에게 BMW를 분해한 후 각자 상상력을 발휘해 재구성해달라는 미션을 발주한 적이 있다. 그 놀라운 상상력을 미래 자동차의 원형으로 삼을 수도 있는데 그 어떤 투자가 아깝겠는가?

그렇다면 사회의 변화를 재빨리 읽어내고 새로운 감성과 감각으로 무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인가?

바로 ‘상식’에서 시작한다. 직원들이 최고의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일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바로 상식이다. 만약 아침에 영어 공부를 하고 싶다면 10시에 출근해 그만큼 더 늦게까지 일을 하면 그만이다. 새로운 자동차를 고민할 때 그것을 타는 ‘사람’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것도 바로 상식이다. 늘 사람, 그리고 그 사람들의 집합인 사회의 풍요로움을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기업의 역할이다. 나는 이 원칙을 ‘기업 시민’이라는 나만의 용어로 규정한다.

“경제란 기본적으로 인간의 삶의 질을 풍요롭게 만드는 도구다. 이제 우리도 문화의
풍요로움에 포커스를 맞출 때가 되었다. BMW는 차를 통해서 사회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회사다. 동시대의 문화를 새롭게 재해석해 삶의 질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도 주된 임무다.”

‘기업 시민’이라는 건 정확히 무슨 뜻인가?

새로운 기술을 만들건, 새로운 문화 코드를 만들건, 윤리 경영을 하든, 사회를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바로 기업의 역할이라는 뜻이다. 대한민국에서도 윤리 문제를 등한시하다가 무수한 기업이 쓰러져가는 것을 이미 다 지켜보지 않았는가. 이제 환경, 문화, 사회 빈곤 등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기업의 존립이 불가능한 시대가 열리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 한국 기업들은 당장 적자를 면하는 것만도 버겁다는 하소연을 늘어놓곤 한다.

BMW가 지금껏 걸어온 길을 잘 들여다보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남아프리카에 학교를 지어왔다. 25년 전부터는 화석연료가 곧 고갈될 것이라는 예측 하에 수소자동차를 개발해왔다. 세계의 그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일을 일개 기업이 진행해온 것이다. 관련 기술 다 공개할 것이다. 그러니 충전소도 같이 만들고, 사회 시스템도 같이 바꿔 나가자는 것이다. 오랫동안 공을 들인 하이드로젠 7을 굳이 한국에 갖고 들어온 이유도 간단하다. 환경부와 끊임없이 협력해 법까지 개정해가며 수소 충전소도 설치했다. 결국 중학교 교과서에까지 이 사례가 실려 친환경 자동차 이슈가 전 사회에 확산되는 계기를 만든 것이다. 이것이 바로 21세기에 기업이 진정코 수행해야 하는 역할이다. 이번 경제 위기처럼 구시대의 경영 방식으로는 자칫 모두 다 망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

요즘 젊은이들은 옷도 잘 입고, 똑똑하고, 심지어 영어도 잘한다. 하지만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10년, 20년 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토플과 학점 관리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이 들려온다. 한국 기업들의 의사결정 구조가 지나치게 수직적이라 창조성을 죽인다는 평가도 여전하고.

맞다. 하지만 현상에 대한 비판, 과도한 욕심에 앞서 인내심을 키우는 것 또한 중요하다. 나는 상고를 졸업하고 처음 취직해 회식 자리에서 술병 세고, 담배 심부름하곤 했다. 하지만 나에겐 목표가 분명했기에 몸을 낮춘 채 끊임없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다. 이른바 ‘등고자비(登高自卑)’의 정신이다. 인생의 성공은 40세 이후에 온다. 꾸준히 학습하고, 호기심을 갖고 주변을 관찰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기회는 반드시 오게 마련이다.

동양 고전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책 읽기를 워낙 좋아한다. 특히 <명심보감>을 좋아한다. 2000년 전에 쓰인 이 작은 책자 안에 세상을 살아가는 원칙이 올곧이 담겨 있다. 자, 글로벌라이제이션은 어떻게 이룰 수 있는가? 이미 공자는 ‘등태산 소천하’라는 말로 충분히 설명해놓았다. 능선에서와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다를 수밖에 없다. 진정한 글로벌라이제이션은 산 정상에서 오픈 마인드로 바라봐야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동양사상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화이부동’이라는 표현은 또 어떤가? 이질적인 존재이지만 손잡고 같이 걸어간다. 바로 전략적 제휴의 정신을 뜻하는 말이다.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비슷하다. 그것이 바로 ‘상식’이다. 세상의 모든 창조력은 다 상식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젊은이들이 깨달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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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박지호
PHOTOGRAPHY 안주영
STYLIST 이진규
HAIR&MAKE-UP 이은혜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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