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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실 습격 사건 - 엠넷미디어 대표이사 박광원

그렇다. 사장실을 기습했다. 이 네 명의 CEO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색창연한 대기업 `사장님`들과는 180도 다른 존재들로 새로운 감각, 디자인, 패셔너블, 크리에이티브 등 새 시대의 가치를 전면에 내세워 각 분야에서 최고의 실적을 거두고 있는 `21세기 트렌디 CEO`의 전형이라 판단해서다. 이들의 잔잔하면서도 확신에 찬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다른 걸 다 떠나서 무릇 블랙칼라 워커라면 이 정도 수준의 기사는 읽어줘야 하지 않나?

UpdatedOn September 05, 2009

회색 줄무늬 재킷·줄무늬 팬츠 모두 S.T.듀퐁, 짙은 남색 타이 랄프 로렌, 검은색 슈즈 본인 소장품.

엠넷미디어는 대기업인 CJ 계열사다. 지난해 말, 에어워즈 수상자 선정을 위해 대한민국 대표 CEO들에게 인터뷰 요청 공문을 넣으면서 새삼 깨달은 거지만 대기업에는 여전히 한국식 상하 질서가 시퍼렇게 살아 있다. 물론 바쁜 일정 탓도 있지만, 그들이 공식 인터뷰 요청을 고사한 속사정은 대체로 비슷했다. 오너의 눈치가 보인다, 또는 같은 계열사 사장들이 인터뷰에 나서지 않는데 굳이 나만 정면에 나서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유독 CJ만은 조금 달랐다. ‘온리 원’ 정신이라는, 남들과 다름을 추구하는 기업 문화 탓인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인 엔터테인먼트 사업이 주력 업종인 탓인지 출장 일정만 아니라면 꼭 응하고 싶었는데 아쉽다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트렌디한 CEO들을 만나보겠다는 이번 특집을 머릿속에서 기획할 때부터 적임자로 떠오른 엠넷미디어 박광원 대표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음악이라는 최신 트렌드의 집결체를 다루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인지 트렌드나 창의성에 대해 할 말이 꽤 많다고 했다. 20대 젊은이들이 보다 더 삐딱한 시각을 가져야만 한국 사회에 발전이 있을 거라는 멘트 또한 잊지 않았다.

미국 방송국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해서인지 박 대표는 한국식 ‘도제 시스템’과 철저히 거리를 두고 있었다. 앞서 가는 선배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하고, 고민하는 게 도대체 회사에 어떤 보탬이 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 그만의 근본적인 의문인 것이다. 그것이 바로, 수트를 입으면서도 야구모자를 끝끝내 포기하지 않는 그만의 고집이며, 사장단 회의에 가서도 남들과 다른 와이셔츠 스타일만큼은 꿋꿋하게 고수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 박광원 대표는 지금도 트렌드를 연구하기 위해 최신 카페에 나가 사람들을 구경한다. 음악은 최신 트렌드의 집결체이기에 유행과의 일상적인 접촉은 필수라는 것이다.

미국 유학 생활 때부터 미디어에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를 아우르는 일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사실 대학생 때부터 기자가 되고 싶었다. 저널리즘을 전공했는데 아무래도 격동기인 1980년대를 보내다 보니 수업에 몰두하기가 힘들었다. 결국 좋은 스펙을 갖춘 채 상식 문제를 달달 외워 언론사 시험을 보는 건 나와는 거리가 먼 세계라는 결론을 내리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배우는 저널리즘은 한국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똑같은 주제인데도 고답적인 학문으로 접근하는 한국과 실제 체험과 현장 해석을 중심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미국은 너무나도 달랐다. 결국 그대로 주저앉아 보스턴에 있는 WABU라는 방송국에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때마침 결원이 생겨서 정규직이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인종 차별이 심한 보스턴에서 첫 동양인 저널리스트로 발령받은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길이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엠넷미디어는 한국 음악 시장의 위기상황에서 음악 전문 케이블의 최강자로 등극했다. 누구나 다 어렵다는 시기에 오히려 음반유통 사업, 엔터테인먼트 사업 등 영역을 확대하기까지 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본사에서 영화 쪽에 대규모 투자를 집행했던 것과 같은 이유다. 예전에 충무로를 ‘영화 바닥’이라고 부르지 않았나. 그만큼 전근대적인 산업이었다는 거다. 심지어 영화표 정산 시스템조차 부재해 얼마나 수익을 거뒀는지 집계하는 것도 불가능한 상태였으니까. 음악계도 마찬가지였다.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 그 혜택을 집중적으로 받는 분야가 바로 문화 산업인데 오히려 음악 시장은 붕괴 직전까지 몰려 있는 상황이었다. 누구나 P2P의 문제를 지적했지만 해결책을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단 방송국의 흑자보다는 음악 시장 자체를 키워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정상적인 온라인 유통 구조를 활성화하는 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한 끝에 드디어 지난해 온라인 음악 시장이 17%나 성장하는 쾌거를 이뤘다. 일단 파이가 커져야 작곡가도, 가수도, 음악 관련 종사자도 모두 살아나지 않겠느냐는 우리의 원칙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케이블 열풍이 한 풀 꺾이면서 대다수 방송국들은 더 자극적인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손쉬운 길로 나아갔다. 하지만 엠넷은 오히려 ‘음악 중심’을 강화하는 것도 모자라 해외 진출까지 활발하게 모색하기 시작했다. 적자가 뻔히 예상되는 상황에서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무모한 짓 참 많이 했다.(웃음) 하지만 엠넷마저 음악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난해 한·중·일을 아우르는 음악 시상식을 처음으로 론칭했는데 무려 5억 명이 시청하는 성과를 얻었다. 석 달 전에 ‘비’와 함께 중국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원래 그는 드라마 <풀하우스> 탓에 배우로 더 유명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 때문에 중국 팬들이 하나같이 비를 가수로 또렷하게 인식하고 있는 것이었다. 비도 뿌듯해하고, 나도 기쁘고. 참 보람 있는 일을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슈퍼스타 K>라는 프로그램을 론칭했다. 누구나 빅스타를 캐스팅하려는 요즘, 역발상으로 접근해보자고 생각했다. 40억원이라는 큰돈을 투자할 테니 전국에서 노래 잘하는 사람은 모두 다 모여보라는 콘셉트다. 평범한 학교 동창, 옆집 누나들이 등장하는데도 엠넷이 창립된 이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음악이라는 최신 트렌드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의 시도는 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음악은 최신 트렌드의 집결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것 같다. 트렌드를 빠르게 캐치해내는 비결이 있다면.

음악 장르에는 당연히 최신 트렌드가 집결할 수밖에 없다. 일단 가장 신선한 멜로디와 리듬이 담겨야 하고, 가장 ‘핫’한 패션을 걸친 가수들이 등장해야 하니 말이다. 최신 트렌드를 간파하려면 스스로 독특하고 특별한 존재여야 하지 않을까? 엠넷에는 소주, 맥주, 복분자를 섞은 핑크빛(엠넷의 상징색) 폭탄주가 따로 있다. 최소한 자신의 회사를 대표하는 술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딱 한 잔, 우리만의 술을 원샷 하고 나면 각자 주량에 맞게 알아서 술을 따라 마신다. 현재 한국 최신 트렌드의 집결지인 청담동에 사옥이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어찌 보면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충무로’라 불러도 좋은 동네니까. 나를 포함한 임직원들은 틈만 나면 최신 카페에 나가 사람들을 구경한다. 어떤 옷을 입는지, 무엇을 보는지, 무엇을 듣는지. 요즘 친구들이 즐기는 그 모든 것이 우리의 관심 대상이다.

“음악이 한 사회의 수준을 대변하듯 20대 또한 그 사회의 가능성을 웅변하는 존재이다.
20대는 당연히 기존의 가치관과 체계를 부정할 줄 알아야 한다.한 사회의 수준은 20대가
기존의 체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가치를 어떻게 창출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음악 미디어 그룹의 대표는 어떤 장르의 노래를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힙합이다. 힙합만큼 다양한 즐거움을 주면서 배울 거리가 많은 장르도 드물다. 조만간 리쌍 앨범이 나올 텐데 너무 기대가 된다. 드렁큰타이거, 다이나믹 듀오, 윤미래, 바비 킴 등 한국의 힙합 가수들은 정말 최고다. 더군다나 다른 장르와는 달리 한국만의 자생력을 갖추고 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원래 힙합은 미국 흑인 사회의 스트리트 컬처를 반영하고 있잖은가. 과격한 표현이나 욕도 많이 들어가고. 하지만 한국식으로 변형되면서 가사가 거의 시 수준까지 올라갔다. 독창적인 리듬감이 가미된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20대와 잘 맞아떨어지는 힙합 장르가 한국 20대의 가능성을 웅변하는 것 같아서 더욱 뿌듯하다.

20대의 역할이랄까, 20대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음악이 한 사회의 수준을 대변하듯 20대 또한 그 사회의 가능성을 웅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 사회의 문화를 창조하는 것은 바로 20대일 수밖에 없다. 10대는 입시 준비에 여념이 없고, 30대 이상은 세파에 찌들어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20대는 당연히 기존의 가치관과 체계를 부정할 줄 알아야 한다. 1960년대 서구 사회가 이른바 ‘반문화’의 기치 아래 환골탈태했듯 한 사회의 수준은 20대가 기존의 체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가치를 어떻게 창출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요즘 20대는 패션 감각도 좋고, 똑똑하지만 고민 또한 머릿속에 너무 많이 담고 살아간다. 네이버 지식인 서비스가 호황을 누리고, 인생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드라마나 영화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다 20대들이 고민에 대한 해답을 갈구하고 있기 때문 아닐까? 엠넷은 20대들에게 라이프스타일, 패션, 트렌드 전반에 대해 조언을 주고, 의지할 곳을 마련해주는 것이 목표다. 그게 바로 우리의 기치인 ‘M 스피릿’의 핵심 테마이기도 하고. 우리가 20대 친화적인 사업을 꾸준히 펼쳐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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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박지호
PHOTOGRAPHY 안주영
STYLIST 이진규
HAIR&MAKE-UP 이은혜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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