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 당신이 갖고 있을 그 의문을. 왜 하필이면 <아레나>가 조성모를 인터뷰하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 말이다. 뮤지션으로서 그는 각종 뮤직 차트를 휩쓰는 10대 아이돌도 아니고, 마초들이 본능적으로 지지하는 우직한 로커도 아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오히려 많은 남자들이 그에게 은근히 적대감(?)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 아니겠는가. <출발 드림팀>에서 1년 내내 훨훨 날아다니던 그가 어느 날 느닷없이 공익 판정을 받고, 뭇 여인네들의 눈물을 뒤로한 채 가볍게 가요계를 떠나고 말았으니.
그렇다고 조성모가 역사책의 두터운 갈피 속에 가볍게 묻혀버리고 말 그런 존재는 아니다. 1990년대 한국 가요계의 역사를 언급할 때 이 남자를 빼고는 도저히 이야기를 진행할 순 없다. 그래서 결심했다! 군 제대 후 30대를 훌쩍 넘어 가요계에 컴백한 그를 맞이하며 모든 것을 샅샅이 해부하고 분해해보겠다고. 일부 남성들이 그에게 반감을 갖는 이유와 공익근무에 대한 항간의 의혹,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온 심정까지 남김없이 말이다.
인터뷰 내내 그는 유난히 나이를 자주 언급했다. 그는 이제 32세다. 20대 내내 수백만 장의 앨범을 우습게 팔아치우며 최고 자리에 있던 그는 서른을 넘어 마주한 자기 자신이 무척 낯설다고 말했다. 바로 이 아래 문장에서부터 조성모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아레나>와 때론 날카롭게, 가끔은 30대에 어울리는 느긋함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조성모의 치열한 인터뷰 전투기가 펼쳐진다.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했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 예능 프로그램의 트렌드가 확 바뀌었는데 긴장되지 않았나.
관리할 이미지라는 게 있어야 긴장도 되지 않겠나.(웃음) 촬영 전 우연히 유세윤 씨를 만났을 때 “할 말 많습니다”라고 했는데도 별로 두렵지는 않았다. 이젠 어디에서든 그저 즐겁게 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선다. 20대에 거길 나갔으면 힘들었을 거다. 그때는 나 자신이 아니었으니까. 기획사에서 그 이상은 말하지 말라면 그렇게 했고, 이미지도 귀엽게 가야 한다니까 따랐고. 그런데 이미지라는 게 너무 잘 보이려고 하면 오히려 실수가 더 커진다. 공백기 동안 나를 솔직하게 드러낼 때 설득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요즘은 사람들이 그런 솔직한 모습에 친근감을 갖지 않는가? 예전엔 “잘생기셨어요” 하면 정색하며 “아유 감사합니다”라고 유난을 떨었다면 이제는 “알고 있어요. 지금 알았어요?”라고 되받아치는 그런 분위기? 요즘엔 겸손하게 구는 사람을 오히려 재수 없어 하는 것 같다. “이 얼굴 만들려고 노력 많이 했어요” 뭐 이런 대답을 해도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로 바뀌었다. 차라리 마음 편하다.
“솔직히 옛날 같았으면 앨범 나오고 2주 정도면 이미 1등을 차지했을 거다.
그런데 아니잖나. 자신에게 물어봤다. 분하니? 그런데 안 분하더라. 이 템포가 맞다.
천천히 가는 게 맞다. 그래도 예전에 누리던 게 있으니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잘하고 싶다.”
음악 트렌드도 바뀌었다.
맞다, 음악 경향도 크게 바뀌었다. 특히 가사가 그렇다. 예전엔 진심을 담은 노랫말이나 시적인 가사의 발라드를 당연히 여겼다면 이제는 ‘훅’이 있고 독하고 직선적인 노래들이 대세다. 발라드도 ‘벌 받을 거야’ ‘총 맞은 것처럼’ ‘복수할 거야’ 뭐 이런 가사가 나오고. 예전에는 거의 안 쓰던 표현이다. 그걸 사람들이 공감하며 받아들이는 걸 보면 세상이 많이 바뀌긴 한 것 같다.
이번 앨범 만들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공을 많이 들인 걸로 아는데 노래를 들어본 사람들 중에는 ‘자기 길을 찾았다’는 평가도 꽤 많다.
이번 앨범은 학교 가는 심정으로 만들었다. 학생이 학교에 가듯 나는 다시 발라드를 불렀다. 사람들이 일단 조성모에게 바라는 건 발라드다. ‘투 헤븐’ ‘아시나요’ ‘가시나무’ 등의 이미지가 아직 강하기 때문에 그런 만족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겉모습은 많이 달라지고 싶었다. 오늘 촬영 콘셉트처럼 말이다. 예전에는 ‘니트왕자’라고 불릴 정도로 똑같은 옷만 입었다.(웃음) 나이가 드니까 겁이 더 없어진다. 계속 어떤 변화를 시도하고 싶다. 내가 제일 잘하는 걸로 첫인사를 드렸다면 이 앨범을 마무리하고 여름엔 확 다른 걸 준비하고 싶다. 보니까 내 노래 중에 여름에 부를 만한 게 없더라고.
예전에도 “그때는 내가 아니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가인>을 발표할 때였나? 하지만 여전히 당신이 변화에 대해서 말하는 게 낯설다.
팬들은 <가인>을 좋게 평가한다. 5집은 작심하고 변하고 싶어서 만든 앨범이다. 따져보면 급변이었다. 그런데 11년째 음악 하면서 단지 창법이나 스타일이 아니라 마음부터 변해야 된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는 노래만 변하고 태도는 그대로였다. 록 스타일 음악도 많았는데 그걸 할 수 없는 시기에 먼저 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땐 능력이 안 됐다. 내 것이 아니니까. 물론 그 앨범이 대상도 받고 많이 팔리기도 했지만 내 생각에는 실패작이다. 완벽하지 못했고 완성하지 못해서. 어쩌면 그 앨범부터 슬럼프랄까, 매너리즘 같은 게 있었다. 뭐랄까, 재미가 없어서? 솔직히 말해서 예전에는 내가 앨범을 냈을 때 3위권 안에 들지 않은 적이 없었다. ‘언제까지 대상만 탈 건가, 재수 없게’ 이런 생각까지 할 정도로. 그때는 김광수 사장이라는 분이 음악과 콘셉트, 뮤직비디오 등 모든 방향을 잡고 결정했다면, 그곳을 떠나 <가인>을 냈을 때는 나 혼자 처음부터 모든 걸 다시 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 즈음에 정말 많이 배웠다.
김광수 사장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자기 자신을 찾았다고 생각하나.
이제야 그렇다. 지금은 그냥 조성모로 살 수 있어서 좋다. 그 어떤 이미지에 좌우되지 않는 그저 가수 조성모니까. 예전에는 망할까봐 못하고 눈치 봐서 못하고 그랬다. 김광수 사장이 워낙 대단하신 분이어서 내 의지를 말하지 못했다. 그때 만든 뮤직비디오는 어찌 보면 정말 거품이었다. 영화 찍을 돈으로 뮤직비디오를 만들었으니. 너무 거대한 기획이었고 크게 포장되는 가운데 자연스레 내가 상품화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런 게 없다. 조성모를 포장하지도 않고 거대한 기획 상품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빈 들판에 홀로 선 1인처럼 마음 한쪽이 휑하긴 하지만 이런 현실이 나를 아티스트답게 만드는 것 같다.
솔직히 당신 목소리는 발라드에 최적화된 느낌이다. ‘To Heaven’의 임팩트가 아직까지 남아 있기도 하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가. 그래도 최고였던 그때 그 순간이 그립진 않나.
나는 준비된 가수가 아니었다. <아시나요> 앨범을 낸 후 내가 봐도 정말 재수 없는 광고가 나갔을 때, 가수 생명이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까지 만든 이미지나 음악 모두 말이다. 그래서 좀 쉬고 싶다고, 딱 2년만 쉬고 싶다고 여러 번 부탁했는데 안 되더라. 오히려 계약 기간을 더 늘리겠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그렇게 계속 달리면서 지친 것 같다. 지금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이며 노력하고 있다. 너무 즐겁게 노래하고 연습하고 공부하고 있다. 솔직히 옛날 같았으면 앨범 나오고 2주 정도면 이미 1등을 차지했을 거다. 그런데 아니잖나. 자신에게 물어봤다. 분하니? 그런데 안 분하더라. 이 템포가 맞다. 천천히 가는 게 맞다. 예전처럼 2주 만에 1등, 이게 뭐냐고.(웃음) 그래도 예전에 누리던 게 있으니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잘하고 싶다고 말한다. 옛날처럼 하고 싶다고 말한다. 난생 처음 이런 감정을 느껴보았다. 이 과정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이런 즐거움을 이제야 알았다.
뭔가 내려놓은 건가, 버리게 된 건가? 그래도 솔직히 믿기 어렵다. 최고란 자리가 그렇게 쉽게 잊혀지는 건 아니잖나.
예전에도 ‘정점에서 내려와서 편하다’라고 생각했는데 문득 그게 거짓말이란 걸 깨달았다. 마음의 짐을 덜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 욕심이 다시 1등을 하겠다는 건 아니다. <록키 발보아>란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이 안에 뭔가 있는데 참을 수가 없다.” 그 대사에 정말 공감한다. 내게도 아직 끝나지 않은 뭔가 있다. 록키는 이기려고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끝까지 해보고 싶어서 링에 올라간다. 자기 안에 있는 불꽃을 다 태우고 싶어서 12라운드까지 간다. 가늘고 길게? 오히려 난 짧고 굵게다. 아티스트에게는 유통기한이 있다. 20대, 30대, 40대에 각각 할 수 있는 폭과 깊이가 있는 거다. 30대 초반의 나는 이제 개념도 좀 생기고 가야 할 방향도 알고 있다. 실수투성이에 빈볼이나 차다가 운이 좋아서 골을 넣는 게 아니라,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뛸 수 있는 상태라는 거다. 20대에는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일을 하고, 돈이 없어서 일을 했다면 이제는 거기서 좀 자유로워진 거다.
이번 앨범에서 ‘너에게로 가는 길’과 ‘사랑의 역사’, 그리고 ‘Transistor’가 꽤 좋았다. 특히 ‘Transistor’는 당신의 기존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곡이었다. 지금 촬영하는 인터뷰 사진도 그렇고 뭔가 자기의 기존 이미지를 배반하고 싶은 욕구가 있나?
그 노래는 일종의 예고편이다. 뭔가 중요한 얘기를 하기 전에 미리 살짝 깔아두지 않나. 그런 거다. 이 다음에 조성모가 할 것에 대해서 미리 깔아두는 거다. 그게 뭔지는 기다려보면 알게 될 거다.
조성모가 돌아와서 기쁘다는 반응이 있는 반면, 한쪽에선 ‘너무 여전해서 지겹다’는 반응도 있다. 이런 반응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래도 내가 나가는 프로그램 시청률이 오르는 걸 보면 반가워하는 사람들도 많은 듯한데, 하하. 노래는 평가가 즉각 이뤄지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크다. 한때 이 일을 포기할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그렇다고 노래하는 걸 겁내면 안 될 것 같다. 평가에 의연해졌다. 나라는 사람이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웃음) 노래가 좋으면 들으면 되고, 반가우면 공연도 한번 보러 오면 되는 거다. 오히려 평가해주는 것 자체가 고맙다. 무관심이 더 무서우니까. 대신 ‘여전하다’는 평가에 대해선 ‘아, 그래? 그럼 다음에 다시 보자’ 이렇게 된다. 예전에는 안 그랬다. 일단 화부터 났을 텐데(웃음) 이제야 내가 인간이 좀 된 거다. 하하.
<바람의 화원> 스페셜을 통해 정말 오랜만에 노래가 등장했다. 그때 사람들의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일단 발성과 스타일이 너무 달라져서 꽤 놀랐다.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일본인 프로듀서, 마츠모토가 있다. 내가 공연할 때마다 꼭 한국에 들른다. 3개월에 한 번 정도 보는데 그때마다 재미있어 한다. 3개월 만이지만 내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더라. <바람의 화원>에 대해서도 그는 즐거워했다. 내 생각에 죽을 때까지 한 색채로 가는 사람이 있고, 계속 변해가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이고 싶다. 나는 잠깐이라도 생각을 멈춘 적이 없다. 인터뷰를 하는 지금도 그렇다. 극심하게 시간을 아껴 쓴다. 준비된 가수가 아니란 의미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아니다. 준비를 한다는 뜻이다. 아마 여름 즈음에는 정말 달라진 모습을 보게 될 거다.
“아티스트에게는 유통기한이 있다. 20대, 30대, 40대에 각각 할 수 있는 폭과 깊이가
있는 거다. 30대 초반의 나는 이제 개념도 좀 생기고 가야 할 방향도 알고 있다. 실수투성이에
빈볼이나 차다가 운이 좋아서 골을 넣는 게 아니라,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뛸 수 있는 상태라는 거다.”
까놓고 말해서 남자들이 좀 싫어하지 않나. <아레나>에서 인터뷰를 하는 걸 의아해하는 독자들도 있다.
하하. 내게 남성성이 많다고 생각한다. 다 콘티가 만들어낸 부작용이다. 원래 안 그랬던 애가 좀 이상해진 거지.(웃음) 그저 승리하려고 노력하고, 성공하려고 애썼을 뿐이다. 이 시대의 모든 남자들처럼. 세상은 나를 편하게 살게 놔주지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가장 노릇을 했다. 지금 경기도 어렵고 다들 살기 힘들다. 나도 마찬가지다. 이 상황을 꿋꿋하게 돌파해 한 남자로서 제대로 서고 싶다. 예전엔 그냥 무대에 서는 게 재미있고 신기했다면 지금은 책임감이 커졌다. 날 믿고,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있다. 오히려 내가 남성지와 꽤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왔다. 사람들은 높은 곳에서 떨어져본 경험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솔직히 높은 곳에서 떨어질수록 더 많이 다친다. 나는 그 마음을 충분히 안다. 그래서 여기서 다시 그 산을 오르려고 한다. 그런 과정에서 동시대 남자들과 공감대가 생기지 않을까. 그게 아니면 여성지와 인터뷰를 했겠지.(웃음)
직접 이야기를 나눠보니 굉장히 다혈질로 보인다. 혈액형이 뭔가.(웃음)
우하하. AB형이다. 이러면 모든 얘기가 끝나지 않나. 한때 나는 ‘천재 기’가 있어서 우울증이 있다고 믿었다. 아아,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한 거지. 난 다혈질이다. 우울증이 있을 리 없다. 녹슬어서 없어지는 것보다는 닳아 없어지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일부 남자들이 조성모에게 거부감을 가지는 건 공익 판정 때문일지도 모른다. 악의적인 루머도 있었고. 물론 습관성 탈골이 티도 안 나고 고치기 불가능한 병인 건 잘 알고 있다. 궁금한 건 여전히 이런 반응이 있다는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거다.
솔직히 <출발 드림팀>은 팔이 아니라 다리로 뛰었다.(웃음) 그런데 그 프로그램 하면서 많이 다쳤고, 그것 때문에 탈골이 생긴 거다. 물론 거기에 대해서 더 할 말이 없다. 내가 무슨 말을 하겠나. 남들보다 편하게 군 생활했다. 또 죄송하다. 그 검사 결과에 대해 반박하고 현역으로 갔어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도 했다. 그냥 사람들이 욕하면 욕먹으면서 살아야 할 것 같다. 그 정도 욕은 또 먹어야 하지 않을까.(웃음) 사실 공익 다녀온 게 노래하는 거랑은 전혀 상관이 없으니 그것 때문에 낙심할 일도 없다. 오히려 그걸로 욕하는 사람들이 더 걱정된다. 그 시간에 자기 자신에게 더 관심을 가지고 발전하려고 애써야 하지 않나.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사람이라고.(웃음) 내가 AB형이라서 그런지 남이 뭐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다.
의외로 자신에게 냉정하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게 중요하다. 남들보다 더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나를 보는데 그러면 어쨌든 발전하리라고 믿는다. 한마디로 이제야 사람이 된 거지.(웃음)
그건 어른이 되었다는 뜻인가. 그냥 ‘가오’만 잡는 걸 말하는 게 아니란 건 알겠다.
그렇다. 어른이 되면 오히려 고개를 숙여야 할 때가 많다. 스무 살 때는 누가 한 대 치면 몇 대 더 쳤을 거다. 그런데 지금은 동료, 가족, 스태프들과 나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준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가수 조성모는 어디까지 갈 것 같은가. 스스로 기대하고 바라는 바가 있나.
나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오래 해먹었는데, 뭐. 우하하. 내가 이렇게 오래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아까도 말했지만, 가슴 안에 있는 불이 꺼질 때까지 할 거다. 그게 꺼지면 미련없이 그만둘 거다. 그땐 적어도 음악을 일로 하진 않을 것이다. 모자라다고 생각하는 게 채워지면, 참아둔 걸 다 했다고 생각되면, 그날로 딱 끝낼 수 있다. 그리고 다른 길을 찾겠지. 예전에 김병현 선수가 한 인터뷰에서 “공 잘 던지는 것 말고 다른 걸 잘했으면 그걸 했을 거다”라고 한 말에 너무 공감한다. 노래 말고 다른 걸 잘했으면 그걸 했을 거다. 노래밖에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이게 다 채워질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야지.
12라운드 중에서 지금이 대충 몇 라운드인 것 같나.
하하. 이제 막 시작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많이 맞을 거고, 나도 많이 때릴 거다. 다운도 되겠지. 어쨌든 끝까지 가서 결과를 기다릴 때, 정말로 하얗게 다 태우고 싶다. 12라운드는 단지 시간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정신력으로 버티는, 그런 정점. 그때까지 정말 열심히 할 생각이다. 지켜봐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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