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인공위성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된 퍼포먼스,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1980년대의 패러다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전 세계가 위성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제공받는 시대가 도래한 것을 단편적으로 알려준 것이므로. MTV와 각종 매거진들이 넘실대고 비디오테이프로 복제 가능한 수많은 정보와 이미지들의 파급 효과는 그 이전 시대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새로운 물결은 음악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1980년대 음악의 특징이라고 하면, 역시 클럽 문화의 본격적인 시작과 그에 따른 댄스테리어(Danceteria: 1980년대 뉴욕의 유명 나이트클럽으로 뉴웨이브 팝 문화의 중심지. 마돈나, 비스티 보이스, 키스 헤링 같은 아티스트들의 놀이터이자 은신처였다. 오늘날에는 1980년대 클럽 음악들을 지칭하는 일반명사로 사용되기도 한다) 음악의 등장 및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미 1976년에 등장한 12인치 레코드 싱글(이 포맷은 디제이를 위한 것이었지만)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댄스 음악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상징하는 매개체가 되었다. 그리고 대규모의 라이브 디스코 밴드들이 장악하던 디스코 클럽은 점차 스튜디오에서 전자악기로 제작된 12인치 댄스 레코드 싱글을 플레이하는 디제이들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이것은 음악 산업과 시장에 있어서도 혁명이었다. 이전 음악이 라이브 무대와 사람 손으로 연주되는 수동 조합이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들이 클럽에서 재생되는 구조였다면, 1980년대는 클럽에서의 플레이를 위해 제작되고 기계의 카운트에 맞춰서 프로그래밍된 음악들이 팝 차트를 석권하게 된 것이다. 클럽을 통해, MTV와 각종 매체를 통해 1980년대 뮤지션들은 과거보다 더 큰 이미지 파급과 재생산력을 가지게 되었다. 오디오뿐 아니라 화면을 통해 그들의 모습에 환호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 예로 마돈나의 데님과 치렁치렁한 액세서리, 앤서니 프라이스(듀란듀란의 스타일리스트)가 만들어낸 듀란듀란의 뉴-로맨틱 스타일은 오늘날까지도 1980년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1980년대 스타일을 설명해주는 그 시절 대표 팝 스타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풍성한 시도가 존재한다.
말콤 맥라렌과 펑크록 패션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함께 1970년대 영국 펑크 신과 그 스타일을 이끌었던 말콤 맥라렌. 그런데 1980년대 댄스 음악, 아니 심지어 올드스쿨 힙합 스타일을 이끌어낸 장본인도 바로 그였다. 1983년 발매한
키드 크레올 앤 더 코코넛스와 복고 패션
어거스트 다넬(August Darnell)은 뉴욕 브롱크스(Bronx) 출신으로 ‘문화의 용광로’인 그곳에서 다양한 문화권의 음악과 스타일에 영향을 받았다. 음악 프로듀서로서 1974년에는 디스코 밴드인 ‘닥터 버자드 오리지널 사바나 밴드(Dr. Buzzard’s Original Savannah Band)’를 결성하여 큰 히트를 기록하고 수년간 많은 디스코 히트 싱글의 제작에 관여했으며, 1980년에는 자신의 예명을 ‘키드 크레올(Kid Creole)’로 정하고, 디스코와 라틴, 캐리비언, 빅 밴드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발전적으로 조합한 댄스 음악 밴드인 키드 크레올 앤 더 코코넛스를 만든다. (참고로 예명 Kid Creole은 엘비스 프레슬리 주연의 영화
런 디엠시와 힙합, 스트리트 패션
뉴욕 퀸스(Queens) 출신의 이 세 명의(이제는 전설이 된) 엠시들이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가득 채운 젊은이들 앞에서 히트 곡 ‘My Adidas’를 부르는 순간, 수많은 젊은이들은 신고 있던 아디다스 슈퍼스타(Adidas Superstar)를 벗어 들고 함께 따라 불렀다. 그리고 런 디엠시는 아디다스와 엄청난 금액의 홍보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 사건은 스트리트 패션의 시작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원래는 농구화로 만들어진 이 신발이 스트리트 패션의 아이콘이 되고 역으로 패션의 하위 문화를 재생산하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1980년대 도시 하위 문화를 극적으로 주류에 진입시켰다. 카잘(Cazal) 선글라스와 캉골(Kangol) 버킷 해트(Bucket Hat), 나이키 에어 조던 시리즈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새로운 유행을 매일같이 만들어내면서 힙합을 하나의 패션 스타일로 자리 잡게 했다. 오죽했으면 아류인 ‘My Fila’ 같은 곡이 나오고 ‘Cazal Boys’ 같은 팀명이 등장했겠는가? 그렇게 시작된 힙합 패션은 다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스타일이었다.
듀란듀란과 뉴 로맨티시즘
우리나라에서 유독 인기가 많기에 가끔 간과되는 ‘듀란듀란(Duranduran)’이지만, 그들은 태생 자체가 스타일리시했다. ‘듀란듀란’이라는 이름은 B급 영화의 전설 바바렐라(Barbarella)에 등장하는 인물 ‘Dr. Durand Durand’에서 따온 것이며, 초기 스타일은 글램록의 계승자, 데이비드 실비앙(David Sylvian)의 전설적인 밴드인 ‘Japan’에서 영향받은 것이라고 한다. 언제나 화제를 불러일으킨 그들의 패션 스타일은 빈틈이 없었다. 롤링스톤스(Rolling Stones), 록시 뮤직(Roxy Music), 루 리드(Lou Reed)에 이르는 거장들의 스타일링을 담당했던 앤서니 프라이스는 듀란듀란의 절제되면서도 고급스러운 스타일에 주름과 장식 띠를 가미해 뉴 로맨틱 룩을 완성했다. 록 뮤직에 언제 ‘예쁜 소년들’이 등장한 적이 있었던가? 뉴 로맨티시즘은 사실 더 광범위하게 보자면 영국 펑크에 대한 ‘애증’에서 시작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해적 룩’으로 대변되는 애덤 앤 디 앤츠(Adam & the Ants) 밴드의 의상을 만들고, 수지 앤 더 밴시스(Siouxsie and the Banshees)의 수지 수는 ‘고딕’으로 일컬어지는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이 모든 유행은 펑크 패션의 변형에서 시작되었으며, 패션 파워 하우스로서 런던의 영향력을 꾸준히 확대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1 1980년대 올드스쿨 힙합 스타일을 끌어낸 말콤 맥라렌. 2 Zoot Suit로 대표되는 스타일을 추구한 키드 크레올. 3, 5 록뮤직계의 ‘꽃미남’들로 뉴 로맨티시즘의 대표주자, 듀란듀란. 4, 6 과장되고 섹시한 글램 룩을 선보인 마돈나. 7 영국 펑크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펑크 스타일의 섹스 피스톨스. 8 넓은 어깨를 강조한 재킷으로 유명한 마이클 잭슨. 9 록그룹 특유의 슬리브리스와 슬림 팬츠의 매칭을 즐겨 한 본 조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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