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 페인 더블브레스트 블레이저·하늘색 셔츠·흰색 데님 팬츠·선명한 주황색 타이·더블 몽크 스트랩 디테일의 로퍼 모두 디올 옴므 제품.
차 안에서 이렇게 인터뷰를 하니 나름 매력 있다. 근데 난 솔직히 우리가 향해가는 파리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요즘엔 해외 어디를 가도 새롭다는 감정이 없다.
아트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파리는 한국에 비해 그런 쪽으로 더 풍부한 곳이다. 그래서 흥미롭게 즐길 줄 알았다. 파리에 와서 개인 시간은 거의 없었지만, 전시 같은 건 봤나?
아직 못 봤다.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둘러볼 생각이다.
어제 퐁피두센터에 간다고 들었던 것 같다.
사람이 많아서 가질 못했다. 사실 난 일 때문에 해외에 갈 땐 일만 하는 게 좋다. 일을 위한 외출을 제외하고 이번에도 계속 호텔에만 있었다.
몰입하는, 확실한 성격이라는 게 느껴진다. 그럼 일 얘기를 해볼까? 어제 디올 옴므 쇼를 같이 봤다. 쇼에 대한 느낌은 어땠나?
론칭 때부터 디올 옴므를 굉장히 좋아했다. 빅뱅 초기 때, 그리 넉넉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돈을 모아 청바지 하나를 사기도 했다. 그 정도로 팬이다.
디자이너 크리스 반 아쉐와 어제 악수도 하고 인사를 나눴다.
쇼 이후, 그를 만났다. 난 그가 만든 스니커즈를 좋아하고 스포티한 옷들에 관심이 있다. 근데 어제 보고 많이 놀랐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디올 옴므가 더 쿨해지고, 더 스포티해진 느낌이었다. 더 젊어진 것 같다.
당신은 그것 때문에 놀랐지만, 난 어제 쇼장에서 당신 옆에 앉았던 이들을 보고 놀랐다. 바이레도의 벤 고햄,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 LVMH의 아르노 회장과 같은 사람들이 옆에 있었으니까. 한국 사람인 당신이 그렇게 당당하게 앉아 있는 모습에 뿌듯함을 느꼈다. 근데 어색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해봤다.
그런 것들에 대해선 참 단순하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 난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가는 게 아직까지도 불편하다. “왜 해외 쇼에 한 번도 안 왔었냐?”란 질문을 많이 받는다. 솔직히 무대 이외에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무대는 내가 표현하는 곳이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선 좀 힘들다. 어릴 때 그런 곳에 갔다 공황장애가 온 적도 있었다. 지금은 그런 증상이 완전히 없어졌기 때문에 이렇게 편히 얘기할 수 있다.
데뷔 10년이 되었는데, 패션을 좋아하는 당신이 이런 쇼를 직접 눈으로 보러 온 게 처음이라는 게 참 의외다.
직접 보는 게 최선이라는 건 알지만, 지금은 사진으로도 손쉽게 컬렉션을 감상할 수 있는 시대다. 근데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나 조각 그리고 가구 같은 것들은 오히려 실물을 꼭 봐야 한다. 사진으로 볼 때는 감흥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 영역이다. 실제로 보면 ‘이 안에 어떻게 이런 영감들을 가득 채웠지?’라는 놀라움과 재미를 느낄 때가 많다. 내가 어릴 때부터 옷을 많이 좋아하다 보니 패션은 사진으로 봐도 어느 정도 오차 없이 판단이 가능하다. 원단이나 입었을 때의 느낌 같은 것 말이다.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옷을 입은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궤도에 올라섰구나.
맞다. 좀 정확한 편이다.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직업이다 보니, 딱 보면 내게 어울릴지 그렇지 않을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어제 쇼에 갈 때와 오늘 화보 촬영할 때 입었던 디올 옴므 2016 서머 컬렉션 룩들은 쇼를 봤을 때부터 흥미를 느꼈던 옷들이었다.
당신이 흥미를 느꼈던 쇼, 그래선지 다 잘 어울렸다. 진짜 보는 눈이 있구나.
그런 편이다. 정확하게 보인다.
눈이 좋다. 아트나 가구 등등 몰입하고 파고드는 스타일이라 들었다. 어떻게 공부를 하나?
집안의 여성이 모두 미술을 한다. 대부분 화가 출신들이라 곁에서 항상 그림을 많이 봐왔다. 어릴 때 강압적으로 미술을 배우기도 했는데, 난 그리는 것보다는 보며 느끼는 걸 더 선호했다. 개인적으론 음악이나 영화에 더 관심이 많았다. 내 몸으로 직접 표현하는 게 나에겐 더 잘 맞는다 생각했던 것 같다. 미술은 자기의 정체성이나 창조적인 생각을 하나의 그림이나 조각 그리고 설치로 표현하는 것인데, 난 내 스스로를 표현하고 싶었다. 미술을 하길 바랐던 가족에게 어릴 때 반항도 많이 했다. 음악을 하려는 날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른들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냥 어른들이니까, 시대가 변할 것을 직관적으로 느끼지 못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바라는 대로 연기와 음악을 다 하게 됐다. 근데 그런 걸 속된 말로 ‘싹수’라고 말한다. 주변에서 ‘얘는 정말 음악이나 그런 방면에 재능을 갖고 있구나’라고 누가 알려줬나?
스스로 느꼈다. 이건 정말 처음 하는 얘기다. 중·고등학교 때 단체 생활을 잘 못했다. 그래서 학교도 많이 안 가기도 했는데 특정한 무언가에 대한 반항이 아니었기에 정말 힘들었다. 다 같이 앉아서 내가 관심 없는 분야를 억압적으로 배워야 하는 체계가 힘들었다. 이제 와서 친구들이 가끔 묻곤 한다. “너는 어릴 때부터 자기에 대한 확신이 강했어.”라고 말이다. 당시 친구들은 날 자기애가 매우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난 항상 음악으로 성공할 거야를 반복적으로 얘기하곤 했으니까. 허황된 꿈을 꾸는 아이로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지금 그런 얘기를 하면 교만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나 자신에 대한 확신 같은 게 있었다. 내가 갈 길이 열세 살, 열네 살 때부터 머릿속에서 보였고, 그때부터 확신이 있었다.
그 나이에 우르르 친구들과 몰려 다니다 보면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이 적을 수밖에 없다.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던 게 미래를 내다보는 눈을 갖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
자아 성찰을 많이 하다 보니 그런 게 가능한 것 같다.
생각이 많은 당신이다. 음악이나 영화를 할 때 심사숙고의 시간이 참 길 것 같다.
음악 작업을 하고, 어떤 작품을 선택하고 표현하는 걸 운명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계획적으로 이번 무대에선 이렇게 보여주겠다는 것보단 내가 하고 싶은 그 순간의 감정에 충실한다. 그게 운명이라 생각한다.
빅뱅은 시작부터 달랐던 거 같다. 만들어지기보단 개개인의 성향 그대로 성장한 것 같은 느낌이 강하다.
연습생 때부터 음악을 만들고 곡을 쓰면서 항상 하고 싶은 음악을 그때그때 해왔던 팀이다. 우리가 하고 싶은 20곡을 양현석 사장님께 들고 가면 그가 객관적으로 큐레이팅해줬다. 우린 당연히 객관적일 수 없으니까. 우린 다른 아이돌 그룹과 묶기엔 체계가 다른 팀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 같다.
빅뱅은 비정형화된, 그래서 한국에선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세계 시장에서 그 위상을 인정받고 있다.
누구도 예상했던 결과가 아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YG는 섭섭해할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열정의 힘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깊이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진심이 통했고, 깊이를 인정받았다. 결국 소통을 이뤄낸 것이겠지.
내 생각엔 가수로서는 정점을 찍었다. 아직 갈증이 느껴지나?
욕심에 차지 않는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이전에 더 작았을 때도 그랬다. 시야를 좁혀서 내가 아는 분야만 생각하고, 창조적으로 생각하고, 새롭게 표현하고 만드는 쪽에 관심이 있을 뿐 쓸데없는 욕심에 대해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하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런 계산이 없으니 쓸데없는 에너지 소비를 안 할 수 있었다. 그게 우리의 음악에 반영됐고, 덕분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현실에 대한 만족도는 높은 편인가?
일에 있어서 만족은 없다. 하지만 상업적 욕심을 갖거나 계산적이진 않다.
순수하다.
그 순수함의 힘이라는 게 가장 크다. 모든 걸 계산해 여기까지 왔다면 그건 정말 아인슈타인처럼 천재임에 틀림없다.
비행기에서 대본을 보며 왔다고 들었다.
연말에 촬영할 건 이미 정했다. 그리고 몇 개를 더 고민하고 있다.
특별히 원하는 캐릭터가 있는가?
그런 건 없다. 그래도 진지한 걸 좋아하는 건 분명하다. 진지한 것들이 내 마음을 움직인다. 그리고 또 누구나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은 안 하려고 하는 반항심이 아직 남아 있다. 항상 뻔한 것들을 피해왔던 이유다. 근데 그러기엔 20~30대 배우들이 할 만한 소재들이 우리나라 영화계엔 많이 없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영화를 찍고 나서 캐릭터에 몰입해 굉장히 힘들었던 적이 있다고 들었다.
항상 그런 편이다.
그게 힘들지 않나?
힘든 거 맞다. 하지만 그런 자극이 없으면 재미가 없다. 이번 빅뱅 앨범을 만들 때도
소위 ‘아티스트’라 불리는 사람들은 어찌 보면 되게 까다로운 이미지인데 촬영장에서 본 당신의 모습은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난 지나칠 정도로 예민한 성격이다. 어릴 때부터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둥글둥글해지려고 많이 노력했고, 달라지긴 했다. 하지만 아직도 그런 부분이 있다. 예민한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 잘 알기에 사람들에게 더 장난을 치려 한다. 안 그러면 생각이 많아져 감당하기 힘들어진다. 사람들을 웃기는 건, 내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을 버리려 하는 방어적 행동이다.
스스로 힘들게 하는 스타일이다.
어릴 땐 그랬는데, 이제는 노하우가 생겼다.
SNS를 훔쳐봤다. 아트에 대한 풍부한 관심과 지식이 담겨 있었다. 아트와 관련된 일을 할 생각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국과 일본 작가들을 계속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다. 젊은 미술 작가들 중 의미 있는 작품들을 선보이는 이들이 여럿 있지만, 마케팅 부재로 주목받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그런 작가들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올해 많이 있을 거 같다. 아직까지 비밀인데 꽤 큰 프로젝트가 될 거다.
이거 기사로 써도 되나?
써도 된다. 아마 굉장히 놀라게 될 거다. 젊은 작가들을 후원하는 프로젝트인데 제대로 계획하고 있다.
빅뱅 10주년이니까 빅뱅 10주년으로서 하고 있는 것은 또 뭐가 있을까?
앨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작년 6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싱글로 냈던 걸 정규 앨범에 다 담아서 낸다. 그리고 또 다른 작업들을 이어나가고 있다.
당신 인스타그램의 콘텐츠들이 재밌었다. 사람들이 깜빡 속을 수 있는 멘트와 사진들이 난무한다. 많이 웃었다.
난 전혀 심각하지 않게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황당해하는 모습을 즐긴다. 지인들 중에도 개구쟁이 같은 친구들이 있지 않나? 난 그런 스타일이다.
아까 촬영장에서 크루아상이 일본 빵이라고 농담했을 때, 프랑스 거라고 반박하려고 했다. ‘상’으로 끝나는 단어라 떠올린 농담이라는 걸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어쨌든 스태프들은 촬영장에서 모델들이 즐거워 보이지 않으면 불편함을 느낀다. 근데 당신 덕분에 오늘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아마 그런 사람들은 장난치는 방법을 잘 몰라서 그럴 거다. 내가 즐거워 보이지 않으면 모두 날 선 상황이 되고, 나도 우울해질 것 같아서 분위기를 즐겁게 주도하려 노력한다. 만약 모델이 너무 무게 잡고 있다면, 한마디 던져봐라. “장난 좀 쳐보세요”라고 말이다. 그럼 신경질적인 게 없어지지 않을까?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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