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개봉했던 영화 <마돈나>에는 두 명의 주연 배우가 있었다. 서영희와 권소현. 권소현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마돈나는 권소현이 분한 주인공, 미나의 별명이다. 가슴이 커서 그렇게 불렸다. 미나는 처절하고 절박한 여자였다. 인간으로서 마땅한 자존감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약자가 됐다.
미나는 화장을 짙게 하고 파격적인 옷을 입고 혼자 있을 때면 폭식을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먹고 입는다던 여자는 비극의 결말로 향하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붙박인, 무조건적인 약자다. 배신, 강간에 의한 임신, 살인 미수. 이 모든 비극이 미나에게 벌어진다.
<마돈나>에서 미나는 얼굴보다 먼저 목소리로 등장했다. 목청도 울리지 않고 뇌까리는 듯 가늘고 조심스러운 목소리. 듣기만 해도 미나가 보이는 것 같았다. 권소현은 2015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시상식에서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마돈나>는 권소현의 첫 영화다.
미나는 언제부터 그런 목소리를 가지게 됐을까. 그래도 태어날 땐, 큰 소리로 ‘응애’ 하고 울었을 텐데. 권소현을 만났을 때 나는 가만히 그녀를 살피고만 있었다. 목소리가 궁금해서. “미나는 자존감이 바닥인 여자여서, 목소리 톤을 올려 가느다랗게 만들었어요.” 생기 있고 따뜻한 소리. 미나는 여기에 전혀 없다. 권소현은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했고 무대에만 오른 배우다.
<마돈나>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땐, 다른 터에서 연기를 해보게 됐다는 사실에 떨었다. 연기라면 어디서든 하고 싶었으니까. “살집 있는 배우가 필요했대요.” <마돈나>의 신수원 감독은 권소현이 친구들과 함께 만든 작은 영화를 우연히 IPTV에서 보고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그때까지 권소현은 무대에서 극이 진지하게 이어질 때 숨통을 트이게 하는 역을 주로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기능적으로 연기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나 왜 이렇게 재수 없게 연기를 하지? 기능만 부리고’하며 괴롭던 때에 감독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거예요.” 미나는 권소현의 마음에 새로운 불씨를 피웠다.
그녀는 무대에서 하던 방식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했다. 미나에 관한 책을 만들기도 했다. 책에는 질문을 4백 개쯤 적었다. “미나가 공장에서 일하게 됐을 때 무척 화려하게 입으려고 애써요. 사실은 촌스러운데. 그런 설정에는 이런 질문을 썼어요. 그럼 속옷은 뭘 입을까? 향수도 뿌릴까? 어떤 향을 뿌릴까? 쥐어짜면서 만들고, 다 만든 다음에는 그냥 던져놨죠.”
조명을 비추자 그녀는 빛을 읽었다. 빛을 쓰는 일에 익숙해 보였다. 어떤 조명 아래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얼굴에 새어드는 조명을 어떤 눈으로 받으면 좋을지, 몸으로 알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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