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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방식

어디서 뭔들 못할까? 또한 뭔들 못 볼까? 전시 공간이 확장되고, 전시를 보는 방식 역시 변한다. 딱히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일단 응원!

UpdatedOn February 0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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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선재센터 웹사이트 시작 화면에서 김영나의 새 작품 ‘임의의 기억’을 전시한다. 작품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엄연한 ‘전시’다.

아트선재센터 웹사이트 시작 화면에서 김영나의 새 작품 ‘임의의 기억’을 전시한다. 작품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엄연한 ‘전시’다.

아트선재센터 웹사이트 ‘www.artsonje.org’에 접속하면 김영나 새 타이포그래피 작품을 볼 수 있다. 김영나가 아트선재센터에 새 작품을 전시하는 걸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아트선재센터는 리노베이션 공사 때문에 휴관 중이다. 하지만 웹사이트에선 ‘아트선재 웹 프로젝트’가 열린다. 아트선재센터 홈페이지의 첫 화면을 활용해 웹을 기반으로 한 작업을 소개한다.

아트선재센터는 1층의 라운지, 옥상, 주차장에서도 프로젝트 전시를 열어왔다. 공간 밖으로 나가 공간을 점유하는 작업은 최근 2~3년간 아트선재센터가 보여준 ‘퍼포먼스’ 중 눈에 띈다. 더 주목받았어야 하는데 못 받았다. 그런 것에 관심 갖는 사람이 별로 없다.

김영나의 작품 타이틀은 <임의의 기억>이다. 1998년부터 현재까지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렸던 전시의 제목을 무작위로 선택해 ‘텍스트’를 조합하고 배열했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관계는 자연스럽게도 읽히고 부자연스럽게도 읽힌다. 만약 과거에 아트선재센터에서 전시를 본 적이 있고, 그 전시 제목을 기억한다면, 마침 그 제목의 일부가 김영나가 만든 이번 타이포그래피 작업에 사용되었다면, 새삼 어떤 기억이 떠오르기도 할 것이다. 김영나는 과거에 열린 전시의 제목들을 통해 그 전시에 대한 기억을 소환한다. 지금, 아트선재센터가 리뉴얼 중이고, 내부에서 아무런 전시가 열리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임의의 기억>이 불러일으키는 기억은 입체적으로 느껴진다.

<임의의 기억> 소개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전시가 없는 뮤지엄 공간에 일정 기간 동안 과거의 유령들이 떠돈다.’ 아주 생경한 문장은 아니다. 더불어 김영나의 타이포그래피 작품만 놓고 판단할 때, 어디까지나 느낌이지만, 뭔가 분명해지려는 의지 같은 게 보이기도 한다. 현대 미술 신 안에서 김영나가 갖게 된 입장일지도 모르겠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박현기 1942-2000 만다라> 전시를 3차원 스캐닝 방식으로 촬영했다. 그런데… 작품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많이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국립현대미술관 웹사이트에서는 <박현기 1942-2000 만다라> 전시를 3D 영상으로 볼 수 있다. ‘3D 영상으로 볼 수 있다’는 문장은 보도자료에서 발췌한 것이다. 이 문장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한데, 틀린 쪽에 가깝다. <박현기 1942-2000 만다라> 전시는 2015년 1월부터 5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렸다. 박현기는 한국 비디오 아트의 거장이다. 전시가 끝났으니 3D 영상으로라도 볼 수 있다면 즐거울 것 같기는 하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문화유산기록보존연구소와 재능기부 업무협약을 맺고, 이 전시를 3차원 스캐닝 방식으로 기록했다. 주로 고건축물이나 문화재 등의 기록에 활용된 방식이다. 전시 공간을 기록하는 데 활용된 것은 처음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전시를 미처 보지 못한 관객을 위해 모니터를 통해서나마 전시 공간을 3차원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너무 사실이다. 정말로, 전시 공간만 3차원적으로 보여준다. 작품은 잘 안 보인다. 작품이 잘 안 보이는데, 공간을 3D 영상으로 보면 뭐하지? 아쉬운 정도가 아니라 안타깝다. 전시장의 동선을 따라 작품을 꼼꼼히 볼 수 있다면 굉장히 놀라울 것 같은데.

전시는 공간을 회의하는 지점에서 빛나고, 창조된다. 공간을 3D로 스캐닝하는 것은 기록 보관의 목적을 갖고 있지만, 전시를 ‘보는-하는’ 새 방식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트선재 웹 프로젝트’ 역시 그렇다. 웹사이트 시작 화면이 전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발상은 낯설고 흥미로운데, 보다 정확한 감정은 절묘하게도 어울린다는 것이 아닐까? 어울린다. 뭘 얼마나 제대로 하고 있는가는 나중에 생각할 문제고, 지금 이 순간 미술 공간의 개념이 확장되고 있는 것은 분명히 반갑다. 전시 공간, 작품을 보는 방식은 전시에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전시가 태어나겠지? 부디.
 

READ & SEE | 이달, 멋지고 소중한 책, 전시.

‘낙하산’ 사진, 혼합재료 설치,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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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소설 작가를 위한 장르 가이드 1·2·3>

    이주라 외 | 북바이북
    이 기가 막힌 책을 봤나. 장르 소설을 쓰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개론서다. 1권은 로맨스, 2권은 판타지, 3권은 미스터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설명한다. 저자는 각 장르의 대표 작가와 평론가다. 이 책은 엄청난 문장가만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웹이 기반이 된 사회에서는 누구나 웹에 소설을 연재할 수 있다. 형편없는 소설이라도 ‘올리는’ 것은 자유니까. 나도 소설이나 한 번 써볼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마션>이 그렇게 태어났다. 이야기로 세상을 들었다 놓겠다는 의지를 가진 이들에게 추천!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

  • <말장난Ⅱ> 박지현 | LIG ART SPACE 한남

    전시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말장난’하는 전시다. 하지만 ‘장난’이라고 스스로 부를 때 그것을 허투루 들을 수 없다. 가벼운 것과 가벼운 척하는 것은 다르니까. 예를 들어 작품 ‘낙하산’에서 낙하산은 하늘에 떠 있지 않고, 잔디 위에 내려앉아 낙하산 모양의 산이 된다. 이 작품은 낙하산이라는 단어를 의심하게 한다기보다는 낙하산이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이미지를 환기시킨다. 우리는 무엇을 낙하산이라고 부를까, 라고 묻는 대신, 우리는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낙하산이라고 부를까, 라고 묻는다. 다르게 물을 수도 있다. 말장난이니까. 첫 번째 <말장난> 전시는 1997년에 열렸다고 한다. 이번이 두 번째 말장난이다.  

<세상의 모든 비밀>

이민하 | 문학과지성사
이민하의 새 시집은 ‘고백’의 시들로 가득 차 있다. 아니다, 그런 시는 5~6편 정도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집을 지배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민하는 오랫동안 일상을 환상으로 변주시키는 방식으로 시를 써왔다. 그것이 이민하에겐 기교가 아니다. 그녀는 본능처럼 이 작업을 해낸다. 나는 그녀가 등단해서 시인이 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는 시인이어서 등단했다. 새로 나온 시집을 읽으며 새삼 이민하를, 이민하의 삶을 생각했다. 이전에 나온 세 권의 시집을 읽을 땐 이민하의 환상을 생각했는데. 그러니까 이번 시집은 시 이전의 이민하를 보게 만든다. 시가 시인의 목소리라면 ‘시 이전의 이민하’는 가장 온전한 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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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CONTRIBUTING EDITOR 이우성

2016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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