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백 <너의 손>
방향, 다짐, 어둠, 심정, 변신, 한강, 귀가, 바람…. 앨범을 펼치면 두 글자의 낱말들이 한 땀씩 기록된 삶처럼 늘어선다. <너의 손>은 두 글자 단어로 된 열한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두 삶의 단어들이다. 방백은 기타리스트이자 영화음악 감독인 방준석과 화가이자 가수인 백현진이 결성한 프로젝트 듀오다. 방백이라는 말은 연극에서, 등장인물이 말을 하지만 무대 위의 다른 인물에게는 들리지 않고 오로지 관객만 들을 수 있는 대사를 뜻한다. 무대 위의 인물과 이를 지켜보는 모두가 약속한 대사. 멀리서 듣는 이의 귀에 대고 전하는 말. <너의 손>에서는 특별할 것 없는 삶이 남긴 소박한 흔적들이 천천히 들려온다. 쥐어짜거나 굳이 고개를 바닥으로 떨어뜨리지 않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서서도 이렇게 담백한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걸 방백이 보여준다. 방준석은 한 음악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백현진과 나의 ‘방백’은 우리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빌리 카터 〈The Yellow〉
빌리 카터. 중년의 백인 남자를 연상시키는 이 이름은 완벽한 속임수다. 빌리 카터는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런던 길거리에서 거리 공연을 벌이던 두 여자에서 발화한 블루스 밴드다. 런던 길거리를 전전하던 두 여자, 김지원과 김진아는 영화 <시드 앤 낸시> 속에 등장했던 공연장이자 섹스 피스톨스가 활동했던 펍인 ‘The Spice Of Life’의 오픈 마이크 무대에 서기도 하고 포토벨로 마켓 스테이지에 오르기도 하면서 음악적 바탕을 다졌다. 이들이 한국으로 돌아와 드러머 이현준과 손잡은 것이 지금의 빌리 카터다. 첫 번째 EP에서는 어쿠스틱 기타를 놓고 일렉트릭 기타를 들었다. 블루스, 힐빌리, 컨트리, 로커빌리, 펑크를 넘나들었다. 6개월 만에 다시 발표한 이번 앨범 〈The Yellow〉에서 빌리 카터는 다시 본래의 장르로 회귀했다. 이현준이 두드리는 리듬 위에 다이내믹하게 생동하는 어쿠스틱 사운드다.
얀 티에르상 〈Infinity〉
얀 티에르상은 프랑스 북서안 먼 바다에 놓인 웨상 섬으로부터 여정을 시작했다. 웨상 섬은 얀 티에르상의 고향이다. 영국의 콘월, 덴마크령인 페로 아일랜드 등지를 지나 아이슬란드로 갔다. 얀 티에르상의 여덟 번째 스튜디오 앨범인 〈Infinity〉는 이 긴 여정에 관한 일지다. 녹음은 대부분 여정의 종착지인 아이슬란드에서 했다. 한여름의 초저녁, 미끄럽고 단단한 바위, 각색의 석조와 광물들. 앨범에는 여행 중 그에게 맺힌 많은 것들이 녹아 있다. 깨질 듯 얼어붙은 풍경, 자연의 조각과 언어를 표현하기 위해 소리는 더욱 잘게 부수었다. 보컬을 곁들인 곡도 있다. 제목은 ‘Meteorites(운석)’. 그룹 아랍 스트랩(Arap Strap)의 에이던 모팻(Aidan Moffat)이 보컬로 참여했고, 아이슬란드어와 페로어, 브르타뉴어로 녹음했다. 모두 얀 티에르상이 여정 속에 지나온 땅의 언어들이다.
밤신사 <실화를 바탕으로>
밤신사는 7천4백원짜리 카세트테이프를 만들어 첫 앨범을 발표했다. 낭만이 소멸된, 김빠진 사이다 같은 시대에 다시 낭만의 이름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다. 얄개들의 메인 송라이터였던 송시호,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와 논(Non)에서 활동한 정주영, 소규모 아카시아 밴드에 드러머로 참여했던 이재규가 뭉쳤다. ‘음악은 자기 전에 듣는 것.’ 밤신사의 음악은 이 한 줄로 설명된다. 어떤 곡으로 시작하든 기어코 도시의 밤을 어슬렁거리는 남자들의 모습이 떠오르고 만다. 청춘을 비켜난 남자들이 청춘의 이름으로 뚜벅뚜벅 걸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하얀 달이 지금 여길 보고 있어/ 머릿속을 새하얗게 태워보자/ 익숙해진 사람들 뒤로하고/ 어슬렁어슬렁 이 길을 몰아보자/ 숨길 수가 없는 거친 마음/ 익숙해진 거릴 뒤로하고/ 뚜벅뚜벅 이 길을 몰아보자.”
졸라 지저스 〈Taiga〉
졸라 지저스는 어린 나이부터 클래식과 오페라를 섭렵하며 음악적 토양을 다져온 러시아계 미국인 싱어송라이터다. 싱글 앨범인 〈Nail〉과 〈Hunger〉를 거치는 동안 졸라 지저스는 굵직한 보컬을 실험적인 사운드 위에 펼쳤다. 그녀의 이름은 종종 비요크 혹은 플로렌스 웰츠(플로렌스 앤 더 머신의 프런트 우먼)와 함께 언급됐다. 지난해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나는 1990년대가 낳은 아이예요.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스파이스 걸스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죠. 머라이어 캐리, 알라이야,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같이 파워풀한 여성 보컬들도요.” 최근 그녀는 거주하던 LA를 떠나 고향인 위스콘신으로 돌아왔다. 차가운 유리창 너머로 얼어붙은 만을 보며 지냈다. 자연스럽게 졸라 지저스는 고향 땅, 러시아를 떠올렸고,〈Taiga〉는 이로부터 맺은 엔딩이다. 타이가는 유라시아 대륙에서 북아메리카를 띠 모양으로 둘러싼 침엽수림을 뜻한다. 앨범에는 시리고 뾰족하고 힘 있는 열한 곡의 팝송이 담겨 있다.
데이비드 보위 〈Black Star〉
이것은 죽음일까, 또 다른 부활일까. 데이비드 보위의 25번째 정규 앨범 〈Black Star〉는 그의 생일인 1월 8일에 태어났다. 그로부터 2일 후인 1월 10일에는 간신히 분신이 태어나길 기다렸던 것처럼, 데이비드 보위가 세상을 떠났다. 보위는 18개월 동안 투병했다. 유작이 된 〈Black Star〉는 그가 고통과 싸운 시간을 오롯이 관통했을 것이다. 2014년 봄 어느 일요일 저녁, 데이비드 보위는 색소폰 연주자 도니 맥캐슬린의 재즈 콰르텟 공연을 봤다. 〈Black Star〉의 밑그림은 그때 그렸다. 2015년 1월, 보위는 도니의 그룹을 매직 숍 스튜디오로 불러들여 작업을 시작했다. 3년 전, 〈The Next Day〉를 녹음했던 그 스튜디오에서 말이다. 데이비드 보위는 이번 앨범을 로큰롤이 아닌 어떤 것으로 완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앨범에는 슈나이더 오케스트라와 함께 빅밴드 재즈곡으로 풀어낸 몽환적인 곡도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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