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가윤은 집중하고 있었다. 카메라 렌즈와 그녀 사이에는 어떤 막도 없었다. 그녀는 한복의 치마 끝을 바라봤다가 다시 하얀 동정을 매만졌다. 어깨와 등을 고양이처럼 천천히 말았다가 다시 꼿꼿이 펴기도 했다. 누구도 그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허가윤은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자갈 사이를 흐르는 물처럼. 집중하는 사람의 얼굴 주위로는 시간이 멈춘다. 포토그래퍼의 어깨너머로 시선을 던지고 다시 걷어와 렌즈를 응시할 때, 그녀의 눈을 또렷이 봤다. 달도 없는 밤 같았다. 그때 잠깐, 허가윤은 엷게 웃었던 것 같다. 지금 자신이 어떤 눈빛을 짓는지, 카메라 건너편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영화를 촬영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무한도전>에서 박명수 씨가 카메오로 참여했던 그 영화라고요.
맞아요. <아빠는 딸>이라는 영화예요. 1월 말쯤 촬영을 마칠 것 같아요. 주연인 정소민 씨의 친구 역할이죠. 영화도 처음이고, 카메오 아닌 진짜 조연도 처음이에요. 언젠가 꼭 영화 연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좋았어요. 영화 촬영은 연기자와 감독님, 스태프가 서로 세세하게 대화 하면서 진행되잖아요. 굉장히 디테일한데, 그게 너무 좋아요. 현장에서 다 같이 밥 먹는 것도 재미있고요.
처음 영화 출연하는 사람들은 상영관 스크린에 자기 얼굴이 크게 걸릴 때 무척 묘하대요.
저는 더할 거예요. 화장을 거의 안 하고 나오니까요. 데뷔 이래 처음이에요! 필요한 분장이 있으면 영화팀 내부의 메이크업 스태프에게 받아요. 제가 감독님께 이렇게 말했어요. “사람들이 허가윤인 줄 몰랐으면 좋겠다”고요. 차라리 아예 못 알아보는 게 더 좋아요. 그저 ‘누군지 모르겠지만 정소민 친구였던 그 사람! 그게 허가윤이었구나’ 하고 기억되면 좋겠어요. 그게 전부예요.
그 정소민 씨 친구는 어떤 여자예요?
제 역할 자체가 영화의 내용이 되어버려서 구체적으로 언급하긴 조금 어려워요. 일단은 모범생이에요. 그리고 어려요. 안경을 쓰고 교복을 입어요. 열일곱 살 여자애예요.
실제 열일곱 허가윤은 모범생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하하하. 맞아요. 저는 예체능반이었어요. 가수가 꿈이고 옷 좋아하던 여자애였죠. 다른 사람들이 입지 않는, 튀는 옷들을 주로 입었어요. 바람막이 점퍼가 유행하면 전 절대 바람막이 점퍼를 안 입었죠. 유행하면 꼭 그게 하기 싫더라고요. 그러니까 ‘범생이’는 아니었어요, 분명히.
14세 때 연습생 생활을 시작했잖아요. 어떤 사람은 꿈을 제대로 정하지도 못할 나이예요.
전 누군가 꿈을 물으면 늘 가수라고 했어요. 아주 어릴 때부터 단 한 번도 꿈이 바뀐 적이 없어요. 보아 선배님 활동할 때 제가 초등학생이었는데, 그땐 댄스 가수도 하고 싶었어요. 그때부터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싶었죠.
‘가수가 꿈이었던 여자애’의 모습을 추석에 방송했던 <듀엣 가요제 8+>에서 제대로 보여줬어요.
그 방송 이후에 방송국 피디님들도, 작가님들도 그런 말씀 많이 해주셨어요. ‘너 그렇게 노래하는 줄 몰랐다’고요. 저는 계속 노래해왔지만, 포미닛이 퍼포먼스 위주이다 보니 메인 보컬의 사운드를 제대로 기억하기 어려운가 봐요.
그 무대에서 마이크 잡은 손을 떨기도 하던데. 많이 떨렸어요?
떨려서 떤 것이 아니었고요. 방송 무대에서 혼자 노래한 게 처음이었거든요. 긴장을 엄청 했죠. 그런데 마지막 고음 파트를 잘 끝내고 나니 안도감에 몸의 힘이 탁 풀리더라고요. ‘아, 됐다. 잘 끝났다’ 했던 거죠. 그 순간 갑자기 마이크가 무겁게 느껴졌어요. 손이 덜덜 떨리더라고요.
그전에는 혼자 노래한 무대가 없었어요?
네. 아, 혼자 애국가 부른 적은 있었어요. 대한민국이 카타르랑 축구 경기 치를 때요. 애국가야 뭐 가사 까먹을 일이 없어서 힘들지 않게 했어요. 그래도 워낙 관중이 많아서 좀 떨리기는 했죠. 사실은 혼자 노래하는 것에 트라우마가 있거든요. 예전에 실수를 한 번 해서요.
어떤 실수요?
제가 마리오 오빠의 노래에 피처링을 하려고 무대에 선 적이 있어요. 백지영 선배님 대신이요. 그때 가사도 까먹고 정말 실수 많이 했거든요. 그 이후로 혼자 노래하는 게 무섭더라고요.
트라우마는 생겨버리고 나면 완전히 극복하는 일이 쉽지 않잖아요.
트라우마는 상처이기도 하지만 스스로 만든 틀이잖아요. <듀엣 가요제 8+>에서 무대를 잘 마치고 나니 조금 틀을 깬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하고 싶은 곡들도 다시 생겨나고요. 얼마 전에 아르헨티나 공연을 다녀왔는데, 그때 무대에서 ’Crazy in Love’라는 곡을 불렀어요.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에 수록되었던 버전을 새롭게 편곡한 거예요. 요즘은 이런 느낌의 노래가 하고 싶어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OST 중 ‘The Weekend’라는 곡도 무척 좋아해요. 다시 노래에 욕심나요. 노래로 끝을 본 건 아니니까. 그런데 막상 하면 또 어떨지 모르겠어요.
겁이 없는 사람은 아니구나.
본성은 그렇지 않아요. 저 진짜 겁 없어요. 뭐든 새롭게 시도하는 걸 즐기고요. 근데 한번 잘못되거나 상처 받는 일이 생기고 나니까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멋모를 때는 그냥 막 해버리고요. 그래서 지금 영화에서 연기를, 멋모르니까 재미있다면서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는 신이 있으면 거침없이 울고요. 언젠가 경험이 쌓이고 머리가 커져서 깊이 알게 되면 그때에야 이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깨닫겠지요.
원래 알아갈 때가 제일 재미있잖아요. 좀 알게 됐을 때는 당연한 일이 되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노래가 당연한 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에요. 사실 포미닛 자체가 퍼포먼스 팀이다 보니 노래할 기회가 많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아요. 원래는 솔로를 굉장히 하고 싶었는데 팀으로 활동하다 솔로 앨범을 낸다는 것이 굉장히 힘든 일이더라고요. 저에게 맞는 곡을 찾기가 힘들었어요. 처음 만드는 솔로 앨범인 데다 그전에 그룹으로 활동할 때 보여줬던 색깔이 있으니까 작곡가들도 저에게 맞는 방향을 못 잡으시더라고요. 노래를 받아보기는 했는데 안 맞는 것들이 많았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노래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된 것 같아요. 너무 어렸을 때부터 가수만 보고 온 터라 그런가 봐요. 제게는 인생의 유일한 꿈이 가수였잖아요.
슬픈 이야기네요.
제가 이 이야길 하면 멤버들도 다 그렇게 말해요. “왜 그래, 슬프게. 아직 끈을 놓지 마.” 물론 노래는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제는 어떤 성과를 올리고 경지에 오르고 그런 게 목표가 아니에요. 그냥 부르고만 싶어요. 노래에 많이 데었거든요. 노래만 잘한다고 되는 세상도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사람들은 점점 보는 음악에 흥미를 갖고, 뭐든 화려해야 눈길을 보내죠. 조금 어렸을 때는 이런 사실이 되게 섭섭했어요. 노래를 더 돋보이게 하는 음악을 하고 싶기도 했고요. 이제 받아들이고 있어요. 시대가 변했구나.
회사에서 하자고 하는 대로 잘 따르는 편이에요?
2012년에서 2013년으로 넘어갈 때 생각을 바꾸었어요. 그전에는 할 말이 있어도 잘 안 하고, 내색도 안 했어요.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일단은 참고요. 언젠가는 아시겠지, 해주시겠지 하며 기다린 거죠. 그게 예의라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2013년부터 ‘이러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하고 싶은 것을 분명히 말하기 시작했어요.
계기나 목적이 있었어요?
돌아보니, 2009년에 데뷔해 3년 동안 계속 제자리걸음이었던 것 같더라고요. 포미닛은 커가고요. 저 자신은 그대로였어요. 그러면서 점점 더 작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말하기 시작했어요. “저 패션 쪽으로도 무척 관심 있어요. 도와주세요” 해서 그때부터 화보도 곧잘 찍고 그랬어요.
1년 전, 스물여섯이 되던 순간에는 무슨 생각 했어요?
더 이상 스물다섯이 아니구나. 꺾였구나.(웃음) 주변 오빠들한테 ‘너 이제 정말 꺾였어. 부인할 수 없는 20대 후반이야’라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남자들은 꼭 그렇게 이야기하더라.
오빠들이 애교 떨면 안 되고 실수도 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실수해도 이제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어리다고 봐줄 나이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했고요. 근데 꼭 사람들의 말 때문이 아니라, 포미닛이 ‘미쳐’로 활동할 때 음악 방송 하러 가서 보면 저희가 제일 선배 팀이더라고요. 후배들은 정말 어리고요. 그래서 느꼈어요. ‘나 이제 더는 어리지 않구나. 잘 행동해야 하는구나. 이젠 어떤 게 예쁜 행동인 줄 아는 나이니까. 그렇게 해야겠구나.
벌써요? 자신의 어떤 행동이 예뻐 보이고 이상해 보이는지를 다 알 것 같아요?
적어도 지난해, 스물여섯 때는 다 알고 한 것 같아요. 예쁘고, 예쁘지 않은 것에 대한 생각도 많이 변했어요. 영화 촬영할 때 데뷔 이후 가장 연한 화장을 했던 것이 방점을 찍었죠.(웃음) 물론 역할을 위해 필요하니 당연히 연하게 했어야 하는 거지만, 그냥 수수한 그 모습이 저 스스로도 좋더라고요. 예전에는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예쁨’의 틀에 저도 같이 파묻혀 있었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아요.
영화 촬영이 끝나고 나면 포미닛의 새 앨범 발매일을 향해 달려가겠네요.
아마 2월 말쯤 새 앨범이 나올 거예요. 앨범 준비와 영화 촬영에만 집중하면서 보내고 있어요. 이전에는 쉬는 날에는 집 밖에 절대 안 나갔거든요. 요즘은 서점 가는 걸 즐겨요. 여행 에세이를 가장 많이 읽어요. 여행을 무척 가고 싶은데 못 가니까, 책으로 대리만족하는 거죠. 최근에는 <파리 로망스>랑 <조용한 흥분>을 읽었어요. <조용한 흥분>은 스물셋 청춘인 유지혜 작가가 유럽 여행을 하면서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사진과 글을 묶어 낸 책이에요. 그걸 읽으며 책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저도 사진 찍는 것 좋아하고 일기도 매일 쓰거든요.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 스물세 살에는 뭘 했지?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데. 이 사람은 책도 썼네.’ 이런 걸 보면 스물셋의 저와 스물일곱의 저는 분명 다른 것 같아요.
가윤 씨와 비슷한 시기의 청춘들 중에는 자신만의 길을 찾아 방황하는 이들이 많아요. 그래도 가윤 씨는 그 길을 어느 정도 찾은 상태니까, 꽤 많은 것을 이룬 것 아닐까요?
아직 전 어린가 봐요. 어쩔 수 없이 자꾸 앞사람만 보여요. 꼭 제 앞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만큼 해야 하는데’ 하죠.
스물일곱에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누군가 계속 보고 싶어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계속 궁금해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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