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리 콤판은 밝은 목소리로 악수를 건넸다. 이른 아침이었다. 아침 인터뷰인데도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전날에도 일정이 있었을 게다. 스튜디오를 둘러본 그는 무엇이든 물어보라는 표정으로 에디터 앞에 섰다. 활달한 표정과 말투로 이 순간을 즐기는 듯 보였다. 그럴 만했다. 자기가 만든 한국의 위인 이순신 만화를 들고 한국을 찾았으니까. 아침 일찍 이순신 장군 만화를 들고 선 미국인이라니. 그를 인터뷰하는 한국인으로서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무척 진지하게 질문에 답했다. 이순신 장군은 그에게 진지한 존재였다. 어쩌면 질문하는 에디터에게보다 더. 그는 방한한 이후 수많은 일정을 소화했다. 꽤 많은 매체와 인터뷰했다. 한국 만화계의 거장 이현세도 만났다. 그 일정 속에서 그는 끊임없이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을 강조했다. <이순신: 전사 그리고 수호자>는 그걸 증명하는 첫 번째 결과물이었다. 인터뷰 내내 그는 자기 만화를 들춰보며 하나씩 설명했다. 이순신 장군에 인생을 건 듯 보였다. 과장이 아니었다.
한국에 와서 여러 번 인터뷰했더라. 인터뷰 때마다 강조한 게 있나?
지금 우리 주변에서 끔찍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파리에서 테러가 있었고, 시리아에서도 안 좋은 일이 계속 일어나고, 아프리카에서는 계속 난민이 발생한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암흑 시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난 이런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자 한다. 이순신 장군은 실제로 존재했던 영웅이다. 그분이 한국의 아주 어두운 시기의 영웅이었기 때문에 지금 이 시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을 계속 강조했다.
크라우드펀딩으로 제작비를 모았다. 그때 많이 성원한 한국 사람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자살과 우울증 관련 한국기관에 수익금 일부를 주겠다고 했다. 왜 특히 자살과 우울증 관련 기부를 선택했나?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자살이 큰 문제다. 조사해보니까 한국이 전 세계에서 자살률이 최고라고 한다. 만약 한국에서 자살률을 소폭이라도 낮출 수 있다면 전 세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거다. 난 스스로 이순신의 학생이라고 부르는데, 만일 이순신 장군이 현 상황을 보셨으면 같은 이유로 싸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은 항상 미래를 내다봤다. 임진왜란 때도 한국의 그 누구도 조선에 해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때 해군을 만드신 분이니까. 지금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국이라는 나라가 2750년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순신의 학생으로서 이 일을 위해서 싸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원래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어릴 때 태권도를 배웠다. 재미있어서 매일매일 연습했다. 태권도는 대학교 때 그만뒀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은 그때부터 시작된 거 같다. 그러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보게 되면서 예전에 가졌던 관심이 다시 떠올랐다.”
2750년에 한국이 사라진다는 발표는 뭔가?
BBC에선 한국 출산율이 무척 낮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흔들리기 때문에 생겨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선 학생들이 매일 학교에 가고, 자기를 위해서 시간을 못 쓰고, 졸업 이후에도 취직하기 굉장히 어렵다. 취직한다고 해도 장시간 노동해야 한다. 자기 시간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우울증이 찾아오는 거다. 물론 내가 외국인 입장에서 기사 보고 말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BBC라는 매체가 그래도 한국 사회의 진실에 근접해서 전달하는 거라 생각한다.
이순신 장군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한국에 관심이 생겨 한국 사회 문제에까지 파생된 건가?
2014년에 제작비가 거의 동나서 제작을 중단해야 하는 위기가 있었다. 그때 크라우드펀딩으로 계속할 수 있었다. 당시 한국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지지해주셔서 엄청나게 감동받았다. 그러면서 서울문화사와 출판 계약도 하게 됐다. 그때 내가 받은 것들을 돌려드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사람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돈을 버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 사람들이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책을 많이 팔면 돈도 벌겠지만 기부나 좋은 일을 통해서 내 영혼도 풍성해질 거다.
크라우드펀딩 때 한국인이 3분의 1을 차지했다고 들었다. 나머지 외국인은 주로 동양계 미국인이었나? 문화권이 다른 외국인의 반응이 궁금해서 묻는 거다.
미국에서 크라우드펀딩을 처음 시작했을 때 시기적으로 좋지 않았다. 이미 너무 많은 제작자가 펀딩에 나선 상태였다. 난 매우 늦게 시작했다. 만약 한국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목표액을 다 채우지 못했을 거다. 한국에서 5천 개나 트위터에서 리트윗돼 큰 원동력이 됐다. 한국인의 지지가 컸다고 미국이나 전 세계 시장에서 인기가 없었다고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국 만화 컨벤션을 40여 곳 다니면서 4만5천 부를 팔았다. 출판사나 유통사 없이 판 거다. 이 부분은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위인전에 관심 많았나? 2005년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보고 나서 이순신 장군에 관심이 생겼다고 들었다.
원래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어릴 때 태권도를 배웠다. 재미있어서 매일매일 연습했다. 태권도는 대학교 때 그만뒀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은 그때부터 시작된 거 같다. 그러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을 보게 되면서 예전에 가졌던 관심이 다시 떠올랐다. <불멸의 이순신>이 너무 좋았다. 크게 영감받았다. 그걸 보고 나서 이것보다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불멸의 이순신>은 1백 부작이 넘는다. 미국인이 보기에 길고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렇다면 나만의 만화책을 만들 수 있겠다 생각했다. TV보다 간결하면서 재미를 잃지 않는 만화책을 만들 수 있겠다고.
만화를 보니 색감이 인상적이었다. 이국적이기도 하면서 한국에 익숙한 색채들도 있었다.
처음부터 모든 걸 계획대로 짜나갔다. 모든 페이지를 계획과 의도를 담아 구성했고, 감수성이 섬세한 독자들을 대상으로 작업했다. 글자를 읽지 않고 그림만으로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말이다. 사람들이 이 책을 다른 시각에서 봐줬으면 좋겠다. 흡사 영화를 감상하듯이 접근하길 바란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는 등장인물을 설명하고 제작자를 소개하는 인터뷰를 넣었다. 감동이 배가될 거라 생각했다.
제작진이 다국적이다. 작화는 이탈리아인이, 채색은 아르헨티나인이 맡았다. 색다른 느낌의 만화를 만들기 위해서 팀을 꾸렸나?
처음에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제작진을 모을 생각은 없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을 모으다 보니까 그렇게 됐다. 그 당시에는 유명하지 않은 사람들이었더라도 재능은 뚜렷하게 드러났다. 제작자에 대해 물어봐줘서 고맙다. 지오바니 팀파노는 이탈리아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이다. 업계에서 능력이 거의 최상이다. 채색 작업하는 아드리아나도 아르헨티나에서 디지털 페인팅에 관해서는 굉장히 뛰어난 실력자다. 또 레터링 전문가 조엘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데도 의지가 강하고 앞을 내다봐 팀에서 주축 역할을 맡고 있다. 데이비드 앤서니 크래프트는 팀의 2인자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없이는 어떤 의사 결정도 내릴 수 없다. 거의 모든 신을 작업할 때마다 인내와 끈기 있게 소통하면서 작업한다. 업계에서 경력도 많은 분이라서 힘이 된다.
역사적 인물을 다루긴 하지만, 만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시각을 담아야 한다. 외국인의 눈으로 바라봤을 때 달라진 부분도 있었겠다. 만화기에 강조할 부분이 따로 있기도 할 테고. 위인전 특성과 만화 재미 사이에서 어떻게 조율했나?
당연히 위인전 요소와 재미 요소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이순신에 대해 완벽하게 조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잘 알지 못하면 유연성을 발휘한 최상의 작품이 나올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의 핵심적 측면은 전투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한산도대첩의 학익진 같은 경우는 이순신 장군의 전투에서 결정적인 장면이다. 인물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기도 하고. 많은 사람이 이순신 장군 하면 거북선만 생각하지만 그는 굉장히 현명하고 모든 것에 통달한 인물이다. 아주 다양한 전략이 머릿속에 있다.
미국 만화 특징을 가미한 부분이 궁금하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이순신 장군 이야기는 잘 아니 그 특징이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다.
좋은 질문이다. 1960년대는 미국에서 만화 관련해서 거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그때 마블 방법(Marvel Method)이라는 접근법이 정립됐다. 각각 신별로 접근하는 방법이다. 신 하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논의하고 다음 신으로 넘어가는 방식이다. 물론 전체 책을 어떻게 전개해나갈지는 사전에 논의해놓는다. 그 상태에서 각 신을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로 보고 그 신에서 최상의 결과물을 어떻게 이끌어낼 것인지 생각한다. 시간이 굉장히 많이 걸리는 접근법이다. 최상의 작품을 만들어내고 싶기 때문에 이 접근법을 택했다.
미국 반응이 재미있더라. 마블 영웅들보다 낫다는 평도, 순수하게 재밌다는 평도 봤다. 미국 만화를 좋아하는 순수 독자들이 동양적인 전투 이야기를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이는지 궁금하다.
이 만화가 굉장히 인간적인 접근법과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었을 거다. 사람들 또한 그런 영감들을 많이 기다렸다. 1960년대 마블에서 스탠 리가 누구나 공감할 만한 영웅들을 소개하면서 이런 이야기의 저변이 많이 확대됐다. 그런데 많은 제작자가 편집 과정을 거치면서 초점을 잃는다. 나는 반대로 아주 단순하게 이순신 장군이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사람들에게 영감 주는 일에 집중했다. 마블의 역사가 나 같은 많은 제작자에게 큰 기회를 열어준 측면이 있다.
“당연히 위인전 요소와 재미 요소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이순신에 대해 완벽하게 조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잘 알지 못하면 유연성을 발휘한 최상의 작품이 나올 수 없다. 이순신 장군의 핵심은 전투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이순신: 전사 그리고 수호자> 첫 부분에 스탠 리의 추천 글도 있더라.
마블의 스탠 리를 굉장히 존경해 서문을 그에게 부탁했다. 만화계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그가 이순신이라는 영웅을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스탠 리는 마케팅과 홍보 분야에서 굉장히 탁월한 능력이 있다. 그 부분을 많이 배웠고 이번에 작업하면서 적용하기도 했다.
어떤 부분인가?
지금 함께 작업하는 데이비드 앤서니 크래프트는 1970년대에 스탠 리와 함께 오랫동안 일했다. 지금 나와 작업하면서 어떻게 만화를 이끌어 나가야 하는지 굉장히 많이 가르쳐주고 있다. 내가 아이디어와 비전을 제시하면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하는지 알려준다. 과거 스탠 리에게 배웠던 많은 부분을 내게 전수해주고 있다.
만화 콘퍼런스를 40여 곳 돌아다녔으면 일반 독자도 많이 만났겠다. 이순신 장군을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 만화를 소개할 때 어떤 부분을 부각했나?
콘퍼런스에 참여한 많은 사람이 지나가는 사람들 눈도 잘 보지 않고 책상 뒤에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다. 그런데 난 사람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만났다. 내가 전하려는 이야기에 1백 퍼센트 자신감을 갖고 이 일에 임했다. 사람들이 책을 사지 않고 지나가도 크게 개의치 않고 계속 사람들에게 책을 알렸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의 힘 자체가 강하기 때문에 통할 거라 생각했다. 우리 팀의 결과물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 만화를 작업하기 전에도 이런 큰 작품을 해본 적 있나?
큰 작품은 이게 처음이다. 이전에 만화책 하나를 낸 적은 있다. 완전히 엉망이었다. 그 실패를 통해 어떻게 해야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을지 깨달았다. 실패가 성공을 부르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원래 미국 만화계는 작화가나 채색 담당, 레터링 디자인 담당으로 팀을 꾸려 작업하나?
팀을 꾸리는 일이 그렇게 흔한 일은 아니다. 우리 팀을 보면 언어적 장벽도 있다. 서로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채색이나 레터링 작업이 의도와는 거리가 있는 결과물을 내놓은 적도 있다. 그런 과정을 조율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데이비드와 사전에 많이 논의했다. 작품에 통일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역사 속 실존 인물이기 때문에 통일성을 유지하는 점은 굉장히 중요했다.
<이순신> 시리즈는 총 12권을 낸다고 들었다. 이후에 다시 작업해보고 싶은 한국 위인이 있나?
<이순신> 시리즈를 확장해 시리즈에 등장한 다른 인물을 다뤄보고 싶긴 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만화가 김정기 선생과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 김정기 선생의 예전 작품을 보면서도 <이순신> 시리즈에 대한 영감을 많이 얻었다. 그는 너무 바쁘겠지만 함께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곽재우나 다른 영웅에 대해 다뤄보고 싶다.
이순신 장군과 그 시대 세계관에 인생을 걸다시피 한 건가?
조지 루카스 감독이 연출한 작품은 열 개가 채 안 된다. 하지만 그가 만든 시리즈는 지금도 영향력을 발휘한다. <스타워즈> 시리즈 같은 것 말이다.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이 시리즈에 전 세계 사람들이 열광한다. 마찬가지로 나도 이순신 장군 이야기가 하나의 닻처럼 중요한 기반이 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역작에 대해 오해한다. 그 역작을 만들어내기까지 뒤에서 들인 시간과 노력이 엄청나다. 난 많은 작품을 쏟아내는 건 독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수준이 높은 작품을 정성 들여 만들고 싶다.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얘기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이순신 장군과 그와 얽힌 인물들은 그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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