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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마돈나

지구인 모두의 삶에 개입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희대의 아이콘, 마돈나. 8분 만에 팔려나간 5만 장의 공연표 중 한 장을 손에 넣고 미련 없이 일본 도쿄돔으로 날아간 대한 건아 신승광의 후끈한 공연 관람 후기. 그리고 마돈나와의 음성다중 러브 어페어. <br><br>[2006년 11월호]

UpdatedOn October 20, 2006

Words 신승광(음악대변인) Editor 정석헌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공업도시 디트로이트의 중·하류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자수성가해 이젠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존재. 1년 소득이 수백억원에 달하지만 슬리퍼 한 짝을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가정부의 눈물을 쏙 빼놓는가 하면 호텔방에서 직접 빨래를 하며, 투어 댄서들에게 매달 60만원 정도만 주는 짠돌이 여사. ‘내가 찾아 헤맨 사랑의 결정체’라며 자신의 두 자녀를 끔찍하게 아끼는 어머니지만 관객들에겐 거침없이 ‘마더 퍼커’라는 욕을 퍼붓는 48세의 걸걸한 중년.이렇듯 마돈나는 전혀 상반된 모습을 지닌 기묘한 존재다. 데뷔 후 지금까지 변함없이 세계를 주름잡는 최고의 카리스마로 군림하고 있지만 그녀와 데이트를 해본 남성이라면 모두 입을 모아 ‘내가 알고 있는 한 무대 밖에선 세상 그 누구보다 연약한 여자였다’고 고백한다.
비틀스보다 더 많은 차트 1위곡과 앨범 판매량을 기록한 역대 최고의 가수 마돈나. 지난 5월 마돈나의 일본 공연 확정 소식을 접한 후 9월 20일 도쿄돔에서 마돈나를 직접 만나기로 결심한 내 마음속엔 서늘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끈끈함 같은 게 있었다. 그건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이가 공감할 수 있는 무엇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모습과 그녀의 음악 그리고 그녀의 삶은 크든 작든 지금 이 세상을 사는 모든 지구인의 인생에 소중하게 개입돼 있다. 사실, 지난해 11월에 발매된 최신 앨범 는 개인적으로 너무 트렌디하다는 인상을 받은 탓에 이 시점에서 그녀를 직접 만난다는 것이 조금은 미안하고 망설여지기도 했다. 내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는 ‘Like A Prayer’의 거대한 환영을 갖고 일본까지 달려가는 건 좀 오버 아닌가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자그마치 13년 만의 일본 공연 아닌가. 일본을 너무 사랑해 일식 전문 일본인 요리사도 세계 투어에 대동한다는 마돈나도 13년 만에 일본을 방문한다니, 일단 비행기표부터 끊고 볼 일이다.
일본에 사는 친한 누나를 통해 이번 공연의 표를 가까스로 살 수 있었다. 일본 내에서도 이번 공연에 대한 기대가 엄청났던지 5만 장에 달하는 표가 8분 만에 완전 매진되었다. 8분이었다! 더욱이 무대 앞쪽, 마돈나를 바로 코앞에서 볼 수 있는 좌석은 아예 판매 단계부터 경매에 부쳐 20일 공연의 경우, 최고 2백30만원에 한 좌석이 팔리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에 감탄한 마돈나 측에서 얼마 뒤 추가 공연을 결정했지만, 어찌 되었든 이 도쿄돔 공연은 2006년 마돈나 ‘Confession Tour’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이자 13년 만의 일본 공연이라는 점에서 일본 팬들은 물론 아시아 전역의 팬들을 들뜨게 한 희대의 이벤트가 아닐 수 없었다.
1970년대 디스코의 향수가 짙게 배인 ‘Confession Tour’ 투어는 10억원 상당의 거대한 미러볼을 시작으로 무대 정중앙과 무대 양옆으로 펼쳐진 5개의 초대형 스크린을 통해 다양한 영상을 펼침으로써 단순한 쇼 이상의 ‘설치미술적’ 감흥을 이끌어냈다. 또한 마돈나의 절친한 친구이자 전폭적 후원자로 알려진 장 폴 고티에와 돌체&가바나의 화려한 의상이 가미되어 그 시각적 완성도를 더했다. 도쿄 공연에서만 1백억원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알려진 이번 투어는 전 세계적으로 약 2천억원 이상의 수입을 거둬들여 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그토록 고대하던 마돈나 공연을 직접 관람하면서 난 영상으로만 접해온 그 거대한 실체를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거친 야생마를 길들이는 마돈나의 카리스마 넘치는 오프닝 영상이 투사되면서 시작된 공연. 하늘에서 내려온 거대한 미러볼 안에서 우아하게 모습을 드러낸 마돈나의 손에는 채찍이 들려 있다. 검은 가죽 팬츠를 입고 입에 재갈을 문 채로 그녀 주위에 기어드는 댄서들. 마돈나는 그들에게 올라탄 후 거침없이 채찍을 휘두르다 어느 순간 그 위에 살포시 몸을 기댄다. 그러다 매몰차게 바로 댄서를 발로 차버리는, 말하자면 그런 식이다. 사람의 몸을 빌린 신이 현세에 있다면 바로 이런 데서 이런 식으로 신자들의 영접을 받을지 모른다.
언제나 화제를 몰고 다니는 마돈나지만 이번 투어에서 행해진 일명 ‘십자가 퍼포먼스’는 특히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런저런 뉴스를 통해 이 십자가 퍼포먼스라는 게 마돈나가 십자가에 몸을 붙이고 음란한 동작을 펼쳐 보이는 것으로만 세상에 알려졌다. 바티칸 교황청에서는 성명을 내고 이 퍼포먼스를 중단해주기를 마돈나 측에 정식 요청했다. 러시아 공연 전에는 마피아 두목의 살해 협박까지 있었다. 하지만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이 십자가 퍼포먼스는 영 다른 내용이었다. ‘Live to tell’을 부르면서 십자가에 매달린 마돈나 위로 숫자들이 보이며 결국 ‘현재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로 죽어가는 아동의 숫자는 1만2천 명에 달한다’라는 문구가 펼쳐졌고, 그 뒤를 이어 이들을 후원할 수 있는 인터넷 주소가 오랜 시간 공개됐다. 투어 후 마돈나의 일침처럼, 공연도 보지 않고 그딴 얘기 좀 하지 마!
공연이 진행되면서 점점 공연 전체의 규모와 파워에 강렬하게 압도당했다. 명실공히 세계 최고라는 마돈나의 댄서들은 가히 넋을 빼놓을 태세로 숨막히는 기인열전의 작태를 펼쳐 보였다. 결정적으로 신념에 가득 차 있는 동작들, 그 매서운 눈매에서 뿜어져나오는 범상치 않은 포스는 웬만한 해외 정상급 발레단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마돈나의 노래는 물론 안무, 조명, 무대 장치, 음향, 진행 모두 당대 대중예술의 최고 접합점이라는 마돈나의 무대를 입증해 보이듯 완벽했다.
일본인 특유의 경직된 관람 분위기 탓에 들끓는 댄스의 욕구를 해소하지 못한 텁텁한 마음을 잡아 싸들고 그렇게 숙소로 들어오던 지하철 안에서 내 머릿속에 자리 잡은 생각은 단 한 가지였다. 이렇게 빼어난 완성도와 거대한 스케일의 공연이 우리나라에서도 꼭 열려야 한다! 마돈나 같은 정상급 아티스트들의 내한공연이 자주 성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공연이 열려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연을 본 관객들의 보는 눈과 듣는 귀와 생각하는 수준이 그만큼 높은 곳을 향하니까. 그렇다면 응당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기획하는 이들의 눈도 그만큼 따라가기 마련이니까.
현재 우리나라 음악 관련 종사자들의 레퍼런스(Reference)는 단연 일본이다. 패션, 광고, 식음료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일단 뜨고 있는 음악이라면 표절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많은 평론가들이, 일본이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음악 산업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던, 우리가 만족하는 음악들을 줄줄이 만들어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으로 전세계 훌륭한 뮤지션들의 끊임없는 내일(來日) 공연을 꼽는다.
최근 컴백한 엄정화가 마돈나와 유사한 쇼트 팬츠를 입어 논란이다. 미국까지 가서 마돈나의 이번 투어를 관람한 것으로 알려진 엄정화 본인이 이 논란에 대해 자유로울 리 만무하다. 하지만 이건 우리나라 대중이 음악인들에게 가지는 이해의 폭 혹은 비판의 폭이 그만큼 좁고 얕다는 걸 보여주는 생생한 반증이다. 엄정화는 왜 마돈나를 따라 하느냐가 비판론이라면, 엄정화가 마돈나와 유사한 의상 콘셉트로 잡았다고 한들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게 옹호론이다. 자, 그렇다면 결론을 먼저 말해볼까. 그런 논란 자체가 무의미하다.
지난 광복절에 내한공연을 가진 메탈리카의 공연 후기를 검색하다 한국 그룹 버즈와 메탈리카 팬들끼리 격론을 벌이는 걸 보고는 정말 맥이 빠진 기억이 난다. 엄정화와 마돈나의 쇼트 팬츠에 대한 논란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뮤지션으로서 엄정화를 무시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마돈나가 출연한 영화가 모두 상업적으로 실패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 그러나 이것을 두고 ‘엄정화가 마돈나보다 더 뛰어난 영화배우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같은 맥락이다.
데이터상으로 마돈나의 최신 앨범은 우리나라에서 1만 장 정도도 팔리지 않았다. 엄정화의 앨범 판매고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 적어도 한국에서는 마돈나보다는 엄정화가 훨씬 유명하다고 보는 것이 맞다. 여기서 모든 기준이 비틀어진다. 일본의 경우 마돈나의 최신 앨범이 4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이 정도라면 지금 일본에서 최고 유명 여가수라는 코다 쿠미의 최신 앨범 판매고와 별로 다를 게 없다. 이런 경우, 만약 코다 쿠미가 무대에서 마돈나와 같은 쇼트 팬츠를 입는다고 했을 때 모르긴 해도 어떻게 해서든 마돈나와 다른 분위기를 연출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이 문화 주변국이라는 현실 속에서 비로소 창작이라는 예술의 본질이 발현되는 부분 아닐까.
만약 누구든, 감히 ‘한국의 마돈나’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고 싶은 이가 있다면 예술가의 양심을 걸고 한국의 현실을 극복해야 한다. 단순히 그녀의 패션을 따라 한다거나, 뇌쇄적인 몸짓으로 비슷한 포맷의 뮤직 비디오를 찍는 것으로 그 타이틀을 거머쥐려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명예뿐만 아니라 마돈나의 이름 또한 더럽히는 일이 될 것이다.
마돈나는 뉴욕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 전시된 프리다 칼로의 작품 <나의 탄생>을 알아보지 못하는 손님들은 절대 친구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녀의 혁신적인 예술 행위들은 이렇듯 철저한 자기 주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그녀는 결혼 전 천재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와 깊은 관계였다. 숀 펜과의 결혼식에 초대된 그녀의 친구들은 앤디 워홀, 키스 헤링, 데비 마자 등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그 시대를 풍미한 최고의 아티스트였다. 가장 먼저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하며 약속 시간에는 절대 늦지 않는 철저한 프로 근성과 수익성 높은 투자를 모두 마다하고 가장 안정적인 정부의 채권을 사들인다는 뛰어난 사업가 기질, 거기에 현대 문화의 뼈대를 추려내는 능력과 다른 예술가들과의 성공적인 연대까지….
마돈나의 재능은 그녀를 단순히 가창력으로만 판단하려 하거나 단편적인 뉴스를 곡해하려 드는 천박한 인식 체계를 단번에 거세시키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성모 마리아’(Madonna)라는 자신의 본명을 내걸고 “난 돈이 좋아” “처녀처럼, 후! 첫경험의 느낌이에요”라고 목청껏 불러댈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는 이가 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공연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며 다시 한 번 차분히 그녀에 관한 상념을 정리하자니 공연 당일 도쿄돔 천장에 맥없이 뻗어나가던 나의 외람된 비명 한번 더 외치고 싶다. “마돈나 아줌마! 아이러브유~.
오래 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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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 신승광(음악대변인)
Editor 정석헌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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