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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외수

올 한 해만큼은 소설가가 아닌 `만능 엔터테이너`라는 단어가 더없이 어울릴 정도로 TV와 CF를 넘나들며 종횡무진했던 이외수 선생이 라디오 DJ라는 새로운 직업에까지 도전을 선언했다. 이유는 단 하나. `요즘 것`들과의 소통 범위를 더 넓히고 싶기 때문이란다.<br><br>[2008년 12월호]

UpdatedOn November 22, 2008

Photography 보리 Retouching 신호준 Set Styling 노제향 Feature Editor 박지호 Fashion Editor 민병준

“자네, 또 왔는가? 이 늙은이한테 뭐 얻어먹을 게 있다고 귀찮게 자꾸 찾아와? 지난봄에도 지구온난화니, 뭐니 하는 어려운 주제를 떡하니 던져놓고는 가뜩이나 몸도 안 좋은 판국에 골머리까지 썩게 만들었잖나. 이번에는 또 뭐가 궁금한 건가?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요즘 ‘젊은 것’들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비결을 듣고 싶다고? 이런, 젠장. 난 또 얼마나 대단한 걸 물어보러 왔다고. 자, 요즘 기력이 딸려서 딱 한 번만 이야기할 터이니 막힌 귀 잘 뚫고 똑바로 듣게. 먼저 ‘요즘 아이들’ 운운하는 자네 그 말버릇부터 좀 고치게. 이제 갓 서른 넘긴 주제에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가는 게 얼마나 우스워 보이는 줄 아나? 꼭 어설프게 인생을 탕진해온 것들이 아랫세대에게는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곤 하지. 쓸데없이 나이나 강조하면서 젊은 애들 기나 죽이고 말이야. 그런 걸 두고 바로 ‘속 빈 강정’이라고 하는 걸세.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 아닌가? 이미 젊은 시절을 치열하게 관통해온 기성세대가 요즘 세대의 코드에 맞추는 게 훨씬 더 빠른 길이라는 것 말일세. 아직 살아보지도 못한 ‘나중 인생’을 요즘 젊은이들이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겠나. 세대 간의 격차?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 그런 건 전혀 중요치 않아. 키포인트는 바로 ‘감성’일세. 자신만의 감성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감성에도 쉽게 공감하고, 코드를 제대로 맞출 수 있다는 거지. 그게 내가 휴대폰도 잘 터지지 않는 이 산골짜기에 정착해 굳이 ‘감성마을’이라는 것을 세우려고 하는 이유야. 이 사회가 이렇게까지 삭막해지고, 소통이 꽉 막힌 데에는 ‘감성’이 사라지고 있는 탓이 크다네.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니까 ‘첫 직장에 들어가는 순간 감성 지수가 60%는 하락한다’는 기사가 실렸더군. 당연하지. 약육강식이 자연스러운 세상에 첫발을 들여놓았는데 제 정신을 지킬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 아니겠나. ‘감성 회복’이라는 거 별것 아냐. 그냥 1박 2일 동안 별빛, 달빛, 물소리, 바람 소리 등 자연을 마음껏 체험하고 돌아가라는 거야. 최소한 몇 달은 버텨낼 힘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난, 요즘 세대가 참 마음에 들어. 혹자는 ‘어릴 때부터 돈이나 취직에만 목을 매는 이기적인 세대’라 질타를 하던데 다 공염불에 불과해. 아니 이 사회가 물질주의에 찌든 게 어디 하루 이틀 일인가? 이미 십수 년 전 ‘부자 아빠가 되자’ 어쩌고 떠들어댔던 게 누군데 말이야. 젊은이는 기성세대의 거울이야. 아버지의 욕망이 그대로 반영되는 존재라고. 스스로 겸허하게 반성하고 건강성을 회복할 생각을 해야지. 자신의 잘못을 요즘 세대에게 뒤집어씌운다고 어디 하늘이 손바닥으로 가려지느냐 말일세.

그나저나 자네들에게도 작은 불만이 하나 있어. 너무 이것저것 재고, 따지다가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는 거네. 아니, 꼭 그렇게 완벽한 조건을 다 갖출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누구라도 병뚜껑을 10년만 모으면 자신만의 철학이 생기는 것 아니겠나? 병의 종류는 물론, 병 속에 들어가는 내용물, 시장의 동향 등등. 그 분야에서만큼은 확실한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다고. 아니, 다른 걸 다 떠나서 아내와 자식들을 굶기기 일쑤였던 ‘막장 인생’의 대표 격이었던 이외수도 이만큼 해냈는데 훤칠하고, 똑똑하기까지 한 자네들이 해내지 못할 일이 도대체 무언가.
내가 수십 년째 써먹고 있는 비장의 무기가 하나 있는데 어디 들어볼 텐가? 난 젊은 시절, 삶이 너무나 고달플 때마다 네덜란드 화가 고흐를 떠올리곤 했다네. 깡촌 출신에, 학벌도 없고, 자기 손으로 귀를 자를 정도로 성질까지 더러운 고흐도 저토록 위대한 작품을 남겼는데 최소한 나는 그보다는 훨씬 마음 편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어떤가? 자네들도 한 번 써먹어보지 않겠는가?”

Arena Says

지금 한국의 문화 지형도에서 이외수 선생만큼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인물을 또 찾아볼 수 있을까? 그는 핵심을 꿰뚫는 명쾌한 문장으로 극렬 마니아를 양산해온 대가이건만, 지금까지는 대중적인 영향력을 갖춘 사회 저명 인사라 칭하기엔 무언가 미진한 구석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2008년 들어 천지가 개벽하듯 모든 것이 달라졌다. 강호동의 <황금어장-무릎팍 도사>에 등장해 거침없는 입담을 자랑한 다음날, 포털 사이트 검색 순위 1위에 등극하며 기염을 토한 선생의 행보는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 출연으로 이어졌다. ‘DC 인사이드’에 기상천외한 댓글을 남기며 네티즌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가 싶더니 ‘초특급’ 모델의 전유물로 여겨져왔던 휴대폰 광고를 넘나드는 등 올 한 해 가장 현란한 활동을 펼친 셀러브리티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을 정도다. 발간하는 책마다 꼬박꼬박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이 시대 최고의 문장가이자, 인터넷 세대의 ‘외계어’를 똑같이 원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문필가인 선생은 오늘도 이렇게 외친다. “하악하악, 고단한 현실 앞에 ‘쩔’지 말고 제대로 살아남으라고!”

Profile 경남 함양에서 태어나 미인대회 출신을 아내로 맞은 소설가 이외수는 끼니조차 잇기 힘든 현실에 굴하지 않고 부단히 문장을 갈고닦은 끝에 시대를 대표하는 문필가의 위치에 올라섰다. 타고난 ‘자유 정신’을 주체하지 못해 ‘요즘 것’들과의 교류와 대화를 삶의 낙으로 삼고 있으며, 최근에는 아예 강원도 산골짜기 자택에 방송 설비를 들여 ‘이외수의 언중유쾌’라는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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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Photography 보리
Photography 신호준
Set Styling 노제향
Feature Editor 박지호
Fashion Editor 민병준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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