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y 보리 Retouching 신호준 Set Styling 노제향 Feature Editor 박지호 Fashion Editor 민병준
“그러니까 이런 겁니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키드> 보셨죠? 꼬마 하나가 ‘쨍그랑’ 유리창을 깨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태연하게 뒤돌아서지 않습니까? 찰리 채플린은 그 아이를 발로 한 번 ‘뻥’ 걷어차고는 마치 애크러배틱을 하듯 기묘하면서도 경쾌한 걸음걸이로 페이드아웃 하잖아요. 영화 <멋진 하루>의 시놉시스를 받자마자 그들의 뒷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3백50만원이라는 돈을 받기 위해 1년 전 헤어진 남자친구를 찾아온 극중 희수와 병운의 묘한 관계에 그 풍경을 대입해보면 연기 톤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덧붙여 뜬금없는 썰렁함이 돋보이는 우디 앨런의 작품들과 짐 자무시 감독의 <브로큰 플라워>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관계를 쿨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맺고 끊는 주인공의 행동을 의식적으로 떠올리며 연기에 집중했죠. 그 결과물이 바로 <멋진 하루> 안에 오롯이 담겨 있는 겁니다.
너무 다작(多作)하지 않느냐고요?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볼지 모르겠지만 전 항상 철저히 계산을 하고 작품에 들어갑니다. 비록 작은 역할이지만 굳이 홍상수 감독님의 작품에 자원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죠. 컷 분할을 하지 않고 마치 연극을 하는 것처럼 긴 호흡의 연기를 추구하는, 그 특유의 질감을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어요. 대학 시절, 처음 연극 무대 위에 섰던 그 초심으로 돌아가보고 싶다는 욕구도 물론 있었고요. 무엇보다 한국 영화의 기반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는 요즘, 작은 힘이라도 합쳐야 한다는 의무감도 작용했죠.
역시 <비스티 보이즈>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군요. 이런저런 뒷말들이 여전히 많다죠? 전 실패한 작품이라는 일부 평자들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분명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에는 윤계상이라는 배우의 연기 속에 미세한 디테일이 바짝 살아 있다는 것을, 윤종빈 감독 특유의 세심한 심리 묘사 덕에 영화 전반에 생생한 숨결이 살아 뛴다는 것을 제대로 평가받는 날이 올 겁니다. 물론 제 개인적으로도 의미가 큰 작품입니다. <추격자> <멋진 하루>와 더불어 ‘서울 3부작’이라는 틀로 묶을 수도 있겠죠. 나중에 한참 나이를 먹고 나면 ‘알파치노 컬렉션’이나 ‘로버트 드 니로 컬렉션’처럼 하정우라는 이름을 딴 ‘DVD 세트’가 발매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요? 하하. 그냥 농담처럼 내뱉는 말이 아닙니다. 평생 배우라는 길을 올곧게 걸어갈 수 있도록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하겠다는 일종의 오기가 담겨 있는 멘트죠.
맞습니다. 전 욕심이 많아요. 한일 합작 영화 <보트>에 출연했던 건 ‘일상의 힘’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일본 영화 시스템의 저력을 체감해보고 싶었기 때문이고, 장기 펀드에 투자해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건 필름 메이커로서 제가 지향하는 영화만을 마음껏 만들어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청담동 한복판에 갤러리와 도서관을 만들고 싶은 이유는 ‘서울의 중심’이라 자부하는 이곳에 바나 카페만 줄줄이 늘어서 있는 모양새가 한심하게 느껴지는 탓이기도 하지만 항상 저에게 자극을 주는 ‘훌륭한 테이스트를 갖춘’ 사람들을 주변에 두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버릴 수 없는 욕심은 이겁니다. ‘한국 영화계에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배우가 되고 싶다’는 것. 데뷔 초기부터 공공연히 밝혀왔던 ‘영화 1백 편을 찍기 전에는 절대 은퇴하지 않겠다’는 말은 절대 공언이 아닙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가다 혹 지쳐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느냐고요? 괜찮습니다. 전 언제쯤 지칠지, 그 타이밍까지도 세심하게 계산하고 있으니까요. ‘영화 속 손짓 발짓뿐 아니라 자신의 인생 전반까지도 면밀하게 컨트롤할 수 있어야만 좋은 배우’라는 누군가의 언명을 전 가슴 한구석에 깊숙이 새겨 넣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Arena Says
영화 <멋진 하루>의 한 장면을 묘사하던 하정우는 급작스럽게 말을 끊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겅중거리며 주변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영화 <국가대표>의 주 촬영장인 무주에서 새벽에 상경하는 바람에 피로를 못 이겨 잔뜩 구겨진 표정을 하고 있었던 게 언제였냐는 듯 얼굴에는 생동감이 하나 가득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러니까 찰리 채플린의 경쾌한 리듬을 약간 죽이고, 힙합의 느낌을 살짝 섞는 겁니다. 손을 자연스럽게 앞뒤로 흔들면서 살짝 휘파람을 부는 듯한 느낌. 어떤가요? 능글맞으면서도 순수함이 살아 있는 병운이라는 캐릭터에 딱 들어맞는 액션 아닌가요?” 그렇다. 하정우는 천생 배우밖에 할 게 없는 남자다. 차를 타고 갈 때마다 발음 연습을 위해 일일이 거리의 모든 간판을 읽으면서 지나가고, 무대 위에서 관객들에게 시선을 제대로 분산시키기 위해 화장실에서 일을 볼 때마다 벽에 점 5개를 찍어놓고 1분씩 뚫어져라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그런 남자라는 거다.
Profile 1978년생인 배우 하정우는 어릴 때부터 미술, 수영, 피아노, 무용, 외국어 등 다양한 영역을 섭렵한 끝에 최종 목표를 배우로 잡은 뒤 지금껏 그 외길로 정진해왔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9편의 개봉 영화에 주연급으로 출연했고, 그 사이 2편의 드라마까지 찍었다. 현재 촬영 중이거나 개봉 대기 중인 작품만 3편. 그가 왜 지금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배우인지는 통계 자료로도 입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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