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구 소격동에 아트선재센터가 있다. 미술관이다. 아트선재센터엔 ‘사무소(samuso)’라는 팀이 있다. 팀이라는 표현이 적절한가? 부서라고 해야 할까? 이 팀은 전시 기획, 주관 등을 한다. 직원들은 늘 전시를 보러 다니고, 어떤 전시를 어떻게 할지 궁리한다.
나는 그들이 공부하는 사람들이어서 좋다. 미술관에 이런 팀이 있다는 것도 좋다. 그리고 ‘사무소’라는 이름에선 격식, 오래된 정서, 친근함이 함께 느껴진다. 사무소가 주관한 전시 <동송세월>이 최근 끝났다. 이 전시는 비무장지대 접경 마을 동송읍에서 열렸다. <동송세월>은 올해 4회째인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의 일부 전시라고 할 수 있다. 동송 상업 시설 등에서 구역 경계 없이 열렸다.
뭔가 말이 복잡한데 정리하면 이렇다. 어느 날 동송 마을 곳곳에 미술 작품이 걸렸다. 동네 사람들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현대 미술이란 게 사실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는 영 미술 같지 않다. 예를 들어 모니터에서 낯선 장면이 정신없이 깜박인다. 보고, 동네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 이건 뭐야, 하지 않았을까? 이게 뭔 미술이야, 라고 말하는 어르신도 있었을 것이다. 리서치와 퍼포먼스는 동시대 미술의 주요한 표현 방식인데, 이런 것들을 이해할 사람들은 동송 말고도 어느 마을이든 소수다.
이 전시에 관한 기사를 찾아보니 역시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주민들 의견을 기자가 일일이 물어서 쓴 기사다. 정작 기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기사엔 드러나지 않는다. 아, 그 기자의 입장은 ‘어렵다니까 쉽게 만들어라’라는 거였다. 아, 그래야 하는구나. 그래야 하는 거였어? 어려우니까 쉽게 만들어야 하는 거였어? 그러면 기자는 왜 있고, 언론은 왜 있을까? 작품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도와주라고 존재하는 거 아닌가?
물론 이 말은 관객과의 접점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작가의 의무를 망각하라는 게 아니다. 또한 기획자들 그리고 주관한 사무소의 책임을 덜어주려고 하는 말도 아니다. 아트선재센터 1층과 3층, 한옥과 정원에서 <동송세월>을 확장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모두 53명(일부는 팀)이 참여한다. 동송에 전시됐던 작품들도 아트선재센터로 옮겨왔다. 전시 공간이 변화할 때 작품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작품이 놓인 환경은 작품의 의미를 풍성하게 한다.
관객은 아마도 비무장지대라는 공간을 상상하며 작품을 볼 것이다. 우리는 전쟁이 끝나지 않은 국가에서 분단된 상태로 무사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역설적이다.
역설적인 모든 것들은 미학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분단 세월은 이제 단순한 접근으로는 그 총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데 쉽게라니? 미술이 동시대의 것이라면 미술가들이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것은 (물론 상징적인 의미로) 당연하다. 동시대 작가들이 이러한 상황을 연구하고, 표현한 전시가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다. 회화, 사진, 영상, 사운드, 장소 특정적 설치, 퍼포먼스 형태로 구현된다. 의심할 바 없이 이러한 ‘복합적인 방식들’은 미술의 발달을 의미한다. 그저 ‘쉽게’라는 말로 이것들을 해체하거나 설명할 수 없다. 어떠한 것의 총체가 ‘쉽게’ 드러나던가?
한 해에 이런 거대한 전시가 자주 열리지 않는다. 하물며 장소를 옮겨가며 열리는 전시다. 이 정도 규모의 전시를 이 정도라도 꾸려낼 수 있는 미술관이 대한민국에 몇 군데나 있을까? 나는 감히 사무소의 힘이라고 말하고 싶다.
동송에서 열리는 전시는 끝났지만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전시는 이제 시작됐다. 가서 보고 판단하자. 작품이 쉬워야 한다는 생각, 이해해야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잠깐 그 생각들을 미술관 바깥으로 밀어내보자. 우리는 지금 분단의 낯선 맥락을 보고 있다. 쉬운 일이 아니다. 11월 29일까지 열린다.
READ&SEE | 이달 멋진 읽을 것, 볼 것.
1 파리의 우울 보들레르, 문학동네
역자가 황현산이다. 이 이름만으로 신뢰를 주기에 충분하다고 느껴진다. <파리의 우울>은 50편의 산문시, 헌사, 에필로그로 엮었다. 그리고 딱 이 정도 분량의 주해가 수록됐다. 책의 절반이 주해인 셈. 주해도 황현산이 썼다. 번역에 대해 첨언하면 황현산은 직역을 고집한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그는 번역되는 언어의 의미 맥락과 맞닿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수년 동안 이러한 과정과 싸워왔다. 그러므로 이 책은 보들레르의 위대한 시와 한 번역자의 오랜 믿음이 합쳐진 결과다.
2 사십사 백가흠, 문학과지성사
백가흠의 소설집 <사십사>가 나왔다. 백가흠은 삼십대 후반부터 이 단편들을 썼다. 그에게 사십 대란 어떤 것일까? 이 시대 사십 대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그렇다고 철없는 청춘도 아닌, 불혹이 아닌 사람들을 뜻하는 단어일까? 미혹의 세대. 이 책에 실린 단편들을 그런 맥락에서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백가흠이 사십 대가 된 그 어느 시점부터 한국 소설의 흐름이 굉장히 변화했다. 불혹의 백가흠이 미혹의 나이를 소설가로서 어떻게 살아가게 될지 궁금해진다.
3 토비 지글러 전시 PKM GALLERY
토비 지글러는 알루미늄 위에 그림을 그린다. 그린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페인트를 입히고, 전기 사포로 간다. 그 위에 다시 색을 입힌다. 작품을 완성시키는 것은 아마 빛이다. 빛의 방향에 따라 알루미늄 위의 형상들은 여러 가지 의미를 생성한다. 토비 지글러는 1972년에 태어났다.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 예술대학을 졸업했다. 영국을 거점으로 삼고 있는, 지금 40대인 작가들은 현대 미술의 논쟁적인 당사자들이다.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만하다. 10월 7일부터 11월 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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