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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존재

크로캅이 말했다. 한국 팬들이 알아줬으면 한다고. 자신이 여전히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UpdatedOn September 29, 2015

본명은 미르코 필로포비치.

본명은 미르코 필로포비치.

본명은 미르코 필로포비치.

우리에게는 크로캅으로 더 알려져 있다. 10여 년 전 내무실 TV로 처음 크로캅을 봤다. 분대원들은 모두 크로캅에 빠져들었다. 상대가 누구든, 크로캅을 응원했다.

그는 달랐다. 다른 선수들처럼 문신으로 몸을 채우거나, 화려한 쇼맨십으로 기선 제압을 하지 않았다. 강해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단지 상대를 지그시 노려봤을 뿐. 그건 정말 강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오라였다. 우리는 그러니까 분대원들은 표도르가 이길거라고 확신했지만, 그럼에도 크로캅을 응원했다. 그가 더 멋있었으니까.

세월이 지나도 크로캅의 멋짐은 퇴색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해졌다. 그는 여전히 링에 오르고, UFC 서울 대회를 위해 <아레나>의 인터뷰에도 응했다. 인터뷰실의 문이 열리고 크로캅이 나타났다. 문을 가득 채울 정도로 큰 덩치에 우리는 압도당했다. 그는 표정이 없었다. 웃지도 않고, 인상을 쓰지도 않았다. 낯설고 불편해 보였다. 인터뷰하는 내내 그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눈을 마주치려 하지도 않았다. 나는 미안했다. 반복되는 기자들의 질문이 지겹고, 진저리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런 그가 눈을 반짝이며 긴 문장을 내뱉을 때는 오직 한국 팬에 대해 답하는 순간이었다.

Q.2000년대 초반, 한국에 MMA가 정착될 무렵 당신은 스타였다.
매우 감사한 일이다. 그런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선수로서 매우 뿌듯하다. 기분이 상당히 좋다. 한국에 내 팬층이 굉장히 두껍다는 것은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다시 한 번 팬들에게 감사하다.

Q.국내에는 크로캅의 인터뷰나 경기 외의 모습들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경기를 통해 본 크로캅에 대해 몇 가지 선입견을 갖고 있다. 예를 들면 당신은 상남자라 말이 없고, 농담도 전혀 안 할 것 같다.
잘못 알고 있다. 나는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다.

Q.11월 28일 ‘UFC 파이트 나잇 서울 79’에서 앤서니 해밀턴과 경기가 예정되었다. 앤서니 해밀턴과의 시합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나?
당연히 이길 계획이다. 이겨서 세 번째 경기로 나아가겠다는 기대를 갖고 있다.

Q.경기에 앞서 어떤 훈련들을 하고 있나?
막바지 경기 준비 훈련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Q.그럼 앞으로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춰 훈련할 것인가?
음, 일단은 체력을 끌어올려야 한다. 그게 가장 기본이다.

Q.20년 넘게 현역 선수로 활동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20년 동안 다양한 훈련을 해왔을 것이고, 경험을 통해 축적한 자신만의 훈련 방법도 있을 것이다. 체력을 끌어올리는 크로캅만의 방법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훈련 방법을 공개하는 건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내 훈련 노하우를 알려면 인터뷰로는 부족하다. 다시 스케줄을 잡고 와서 일주일간 내 훈련 모습을 봐야 할 것이다.

Q.힘든 훈련을 어떻게 버티고, 참아내나?
해야 되면 하게 된다. 나는 주로 집에서 훈련하는 편이다. 집 지하에 굉장히 큰 훈련장을 마련해놓았거든.

Q.사람들은 당신에게 표도르와의 경기에 대해 계속 물을 것이다. 또 라이벌로 칭하는 경우도 매우 많을 것이고. 10년 전 일이지만 여전히 회자된다. 이제는 그런 소리가 지겹지 않을까?
사람들이 관심 갖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표도르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또 그가 UFC에 다시 복귀할지 나는 모른다. 계약서에 사인한 것도 아니다. 만약 언젠가 그와 대전이 잡힌다면 나는 최선을 다해서 싸울 테지만, 지금은 언급할 단계가 아닌 것 같다.

Q.대중은 누가 누구와 경기하는지에만 관심을 갖는다. 또한 라이벌 구도를 만드는 것도 선수가 아니라 프로덕션과 미디어다. 정작 선수들은 상대 선수에 집착할 것 같지 않다. 개인 종목이란 자신과의 싸움일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정작 당신을 긴장하게 만드는 상대는 바로 자신일 것 같다.

Q.혹시 전문 파이터인가?
전혀. 내가 그래 보이나?
전문 파이터가 할 법한 질문을 해서 그렇다. 사실 파이터는 여느 스포츠 선수들과는 다른 측면이 있다. 혼자 5,000m를 뛰어야 하는 육상선수라면 아마도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할 것이다. 하지만 파이터는 정신을 놓으면 상대에게 당하고 만다. 집중하지 못하면 상대가 나를 쓰러뜨린다. 그렇기 때문에 싸울 때는 반드시 상대에게 집중해야만 한다.

Q.어렸을 때 당신의 경기를 본 기억이 있는데,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당신은 경기를 치르고 있다. 그리고 어느덧 40대다. 그동안 은퇴를 고민해본 적이 있었나?
내가 언제 은퇴할지는 신만이 알 것이다.

Q.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UFC다. 국내 팬들과 참가 선수들에게 의의가 있었으면 한다. 당신 역시 두터운 국내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을 테고.
여전히 내가 위험한 존재라는 것을 한국 팬들에게 각인시켜주고 싶다. 또 나는 누구든 이길 수 있는 선수라는 것도 보여주고 싶다.

Q.당신의 방한과 경기는 한국 청년들에게 큰 즐거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요즘 한국 청년들은 많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으니까.
음, 일단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좋은 날은 반드시 올 거라고 믿는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나 역시 많이 패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절대 무너지지 않았고, 훈련 강도를 더 높여서 다시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다. 어려운 시기마다 생각한다. 태양은 다시 뜬다고.

Q.서울에서 치르는 경기가 당신에게 특별한 추억이 되었으면 한다. 서울에서 하는 훈련이나 경기 이후 시간 모두 말이다.
사실 서울을 잘 모른다. 그래서 특별히 하고 싶은 건 없다. 이번 스케줄 중에는 훈련할 시간이 없을 것 같고, 다음에 경기하러 올 때 해야 할 것 같다. 그때는 아마 아침에는 조깅을 하고, 잠깐 휴식한 후 트레이닝을 할 것이다. 몸을 만들어야 하니까 따로 시간을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Q.그런 당신도 쉬는 시간들이 있지 않을까? 집에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 말이다.
특별할 것은 없다. 선수 외의 내 모습은 평범한 남편이자 아빠다. 두 아들과 여섯 마리의 개를 키우고 있다. 종종 아들들과 개를 데리고 숲으로 산책을 나간다. 아이들과 노는 시간이 소중한 보통 아버지다.

Q.듣기만 해도 다정하다. 패밀리 맨이다.
맞다.

Q.다시 경기 이야기를 하자. 이번 ‘UFC 파이트 나잇 서울 79’에서 우리가 기대할 점은 무엇인가? 앤서니 해밀턴보다 우월한 당신의 강점을 알려달라.
내가 그보다는 조금 더 나은 파이터다. 원래 경기에서 이기려면 상대보다 잘해야 하는 건 당연하다. 이기고 싶다면 절대 지면 안 되니까.

Q.당신의 시원한 하이킥을 기대하면 될까?
경기 상황에 따라 달라질 테니 확답할 수 없지만, 볼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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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PHOTOGRAPHY 이상엽
EDITOR 조진혁

2015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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