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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주제인 ‘쓰다’ ‘입다’ ‘매다’ ‘신다’
중 ‘신다’를 골랐다.
2005년에 출간한 단편집
<귀뚜라미가 온다>에 ‘구두’라는
소설이 있다. 내 소설 중에서 가장 유명하다.
구두에 관한 소설을 한 편 더 써야겠다고
예전부터 생각했다. ‘구두’는 복잡한 소설이다.
부부가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데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다. 그래서 부인이 식당에 일을 나간다.
그런데 사실 몸을 팔러 다닌 거다. 남편이 그
사실을 알고 가족을 모두 죽인다. 딸까지.
그러고 나서 본인도 자살을 하려고 집 밖으로
나가는데 한 여자를 따라가게 된다. 그 여자는
맹인 안마사다. 그 여자 집까지 쫓아가서 그
여자를 강간하고 죽인다. 그리고 그 집에서 목을
매단다. 그런데 맹인 여자가
죽지 않는다. 하지만 보이지
않으니까 남자가 자기 집에서
목을 매고 죽은 걸 모른다.
맹인 여자가 남자의 구두를
만지면서 소설이 끝난다. 그
남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맹인 여자가 만진 구두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된다. 죽은 남자가 남겨놓은 한
켤레의 구두가 남자의 삶을 대변하는 것이다.
숨 막힌다.
이번엔 구두를 무기로 사용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쓸 거다. 여자 한 명과 남자 한 명이
등장한다.
오, 무기?
구두로 사람을 때리거나 찌르는 게 아니라,
신발이 가진 치명적인 힘에 대해 쓰려는 거다.
구두가 무기가 되고 힘이 되는 배경, 그런 삶이
있어야 한다. 지금 그걸 찾는 중이다. 구두를
한 켤레만 가진 남자와 구두를 수십 켤레 가진
여자를 대비시키려고 한다.
뭔가 굉장히 흥미롭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신발을 좋아해서 많이
갖고 있는 남자는 바람기도 많다. 그런데 여자는
다르다. 신발이 많은 여자는 욕망만 많다. 남자는
실행을 하지만 여자는 실행을 안 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에서 연구한 얘기다.
그래서 내가 신발이 많은가?
전문직에 종사하면서 노처녀인 여자를
등장시키려고 한다.
남자는?
남자는 아직 안 정했다. 그런데 구두가 한
켤레라는 건 그의 삶이 그만큼 피곤하다는
거겠지. 구두를 잘 안 바꾸는 남자는 고집이
세고, 엄청난 욕망이 구두에 담겨 있을 수도
있다. 음… 신발이 많은 남자는 야욕이 크지
않다. 바람이나 피우고 마는 거지. 신발은 의미가
상당히 복합적인 대상이다. 인물을 어떤 관계로
엮을 건지는 아직 생각을 못했다. 발현하지 못한
욕망의 압축 상징물로써 신발이 등장한다.
거기까지. 더 얘기하면 스포일러니까. 문지
블로그에서 소설을 읽고 확인하겠다.
내 소설의 인물은 대부분 주변 사람들이다.
그들이 온전히 재현되는 건 아니고 그들이 가진
어떤 면이 합쳐져서 등장인물이 되는 것이다.
지난달에 김중혁, 정용준 작가와 인터뷰하면서도
느꼈는데 소설가는 대상이 가진 현상보다는
본질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구두를 가지고 소설을 쓴다면 패셔너블한
대상으로 놓고 이야기를 전개할 것 같다. 그런데
당신도 김중혁, 정용준 작가처럼 구두의 본질을
본다. 이 부분이 흥미롭다.
나는 그게 시와 소설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시는 압축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그건 독자
입장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쓰는 사람에겐 반대다. 무슨
얘기냐면 시는 본 것을 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시인이
모자를 봤다면 모자에서부터
세계가 확장되고, 그걸 쓴다.
반대로 독자는 확장된 세계가
모자로 수렴되는 과정을 읽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은 애초에 모자가 없다.
소설가는 사람에 대해서만 쓴다. 소설가는 그
인생을 어떤 그릇에 담을지 찾는다. 이번엔 그게
구두다. 구두 안에 사람의 인생을 담는 거다. 이게
압축이지.
반대로 독자들은 구두에서부터 확장된
어떤 사람의 인생을 읽는 게 되니까 확장되는
것같이 느낀다.
뭔가 굉장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당신이 느낀 본질은 이런 것이다. 당신이 소설가의
이야기를 듣고 구두를 먼저 떠올리지 않고, 사람
혹은 사람의 인생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그것을
본질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니까 소설가는
굳이 신발이 아니어도 괜찮다. 가장 적합한
그릇을 찾는 것이니까.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구두에 대한 예고편, 잘 들었다. 이제 소설가로서
백가흠의 인생을 들어볼까. 백가흠이 궁극적으로
쓰고 싶은 소설에 대한 예고랄까.
50세부터 60세까지 10년 동안 쓸 것을 준비하고
있다. 매년 한 권씩 출간할 거다. 대하소설이라면
대하소설이지.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쓸 거다. 동학….
동학?
동학이 일어났던 해부터 시작해서
1990년대까지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삼대나
사대의 가족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공부 시작한 지
꽤 됐다. 큰 소설을 쓰고 싶다.
갑자기, 빈 운동장 한가운데 선 느낌이다.
50세까지, 지금 같은 속도로 쓰면 장편 소설을
15권 정도 낼 것 같다. 40세니까. 50세부터는
1년에 한 권씩 이것만 쓸 거다.
소설책을 많이 출간해야 훌륭한 소설가일까?
아니다. 말년에 별로인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가
얼마나 많은가.
롤모델로 삼을 작가가 있으면 좋겠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를 좋아한다.
헤밍웨이도. 둘 다 말년까지 훌륭한 수준의
소설을 발표했다. 10년 동안 동학에 대한 소설을
쓰고 난 후에, 나도 말년에 정말 괜찮은 소설 서너
권만 더 낼 수 있으면 좋겠다.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지.
헤밍웨이는 66세에 권총으로 자살했다.
내가 볼 때는 자기 자신을 잘 알았던 것 같다.
헤밍웨이는 정말 힘들어했다. 언제부턴가 소설이
안 써져서, 그것 때문에 미쳐간 거다. 그래서
소설이 잘 써졌던 시절에 살던 곳에 가서 지냈다.
쿠바, 마이애미. 그런데 미국에 돌아온 지 3년
만에 자살한다. 그게 내가 생각하기에는 소설
때문이지 않나… 작가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말년까지 좋은 작품을 발표한 작가로 남고
싶다. 대표작을 말년에 낼 수 있으면 좋겠다. 60대
때 소설사에 길이 남을 소설을 세 권 정도, 그런데
두 권만 내도… 아니 한 권만 내도 성공이다.
더 자주 더 많이 써야지. 말년에 외로워하려고
그러나? 발표를 띄엄띄엄하면 사람들한테
잊힌다. 그래서 별로인 작품이라도 계속 발표를
하는 거고.
그렇지. 적게 발표하면 잊히겠지. 그렇기 때문에
그전에 꾸준히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작가로서의 신뢰다.
소설가로 사는 거, 힘들구나.
그런데 몇몇 노시인들이 좋은 선례를 보여주고
있다. 황동규라든가 문인수라든가, 이런 시인을
보면 새 시집을 발표하는 주기가 짧지 않다.
4~5년 정도다. 젊었을 때 시집을 발표했던 간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간격에 답이
있지 않나 싶다.
이 시간을 견뎌야 한다. 더 오래
관조하는 것, 기다리는 것, 내게도 이런 의지가
필요하다.
Editor: 이우성
Photography: 김태선
Stylist: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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