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지 풀오버 아란 크래프트 by 배럴즈, 흰색 옥스퍼드 셔츠·감색 코듀로이 팬츠 모두 이스트로그 by 샌프란시스코 마켓, 뿔테 안경 S.T.듀퐁 by DK 아이웨어 제품.
단편집 <악기들의 도서관>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중 단편 ‘자동피아노’가 나를
살렸다.
왜?
<악기들의 도서관>에 실린 단편소설들이 음악에
관한 것이어서 그랬나 보다.
그런데 왜?
그때 변비였다. 화장실에서 그 소설집을 읽었다.
그런데 ‘자동피아노’를 읽을 때… 성공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음악의 힘이다! 리듬의 힘이다!
내가 새 장르를 만든 건가? 화장실에 비치하기
좋은 소설.
<악기들의 도서관>에 쓴 작가의 말도
인상적이었다. 외울 수도 있다. ‘저는 그때
소리를 붙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소리란, 그리고 음악이란 어디에서
만들어지고 어디로 사라지는 것일까요?’ 그날, 그
순간, 김중혁의 팬이 됐다. 모르겠다고 말해서.
내 소설 중에서 가장 많이 팔렸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좋아한다. <악기들의 도서관>이 음악에
관한 책이었다면 별로 안
좋아했을 것 같은데 음악을
변형해 쓴 소설이어서 흥미를
느꼈던 것 같다. <악기들의
도서관>은 가볍게 쓴
소설이다. 힘줘서 쓴 장편소설
<좀비들>은 망했다.
하지만 <좀비들>은 ‘좀비’를
인간의 본질과 연결한 드문
사례였다. <좀비들>을 오락 소설의 관점에서
평가한 사람들이 이상한 거지.
나는 계속 장편을 쓰고 싶다. 장르를
변형시키는 작업을 해보고 싶기도 하다. 두 번째
장편소설이었던 <미스터 모노레일>은 게임에
관한 소설이다. 지금 탐정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소설도 쓰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탐정 소설과는
다르다. 겉은 좀비 소설, 탐정 소설이지만 속은
다른 소설이다. 순수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장르 문학이라고 생각하고 장르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들은 장르 문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안 팔리나?
바보들. 바보들.
그런데 나는 이 작업이 정말 좋다. 중간에서
버티고 있다.
중간이 열릴 거다. 아직 낯설어서 그럴 뿐이지. 그
부분에 대해 독자의 수준을 믿어야 한다.
중간 지대… 그런데 순수 문학이나 장르 문학이나
지금 다 잘 안 팔린다.
문학과지성사와 <아레나 옴므 플러스>가 함께
기획한 소설 프로젝트엔 어떤 소설을 쓸 건가?
예전에 영국의 한 빈티지 숍에서 가방을 샀다.
예쁜 가방인데 사람들이 관심을 안 가졌다.
왜 그럴까 보니 가방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머레이라고. 나는 그게 좋았다. 사람들이 사지
않는 머레이 씨의 가방을 내가 드는 게 재밌었다.
지금은 잘 사용하진 않고 벽에 걸어놓고 보면서,
머레이 씨는 과연 무슨 일을 했을까, 가방에
무엇을 넣고 다녔을까 생각한다. 머레이 씨의
얘기를 소설로 쓰면 어떨까 구상 중이다. 제목은
정했다.
뭐지?
십자말풀이 클럽 지금 계속 굴리고 있는 단계다.
굴리고 있다고?
십자말풀이 클럽, 십자말풀이 클럽, 십자말풀이
클럽… 공 굴리듯이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먼지도 묻히고 하다가, 부풀어 오르면 쓰기
시작하는 거지.
굴릴 때 메모도 하나?
메모할 때도 있는데 나는 그냥 굴리는 게 좋다.
기록하는 순간, 그 기록에 영향을 받는다.
상상의 폭이 좁아진다. 굴릴 때는 메모하지
않고, 자유롭게 날아가거나 내려앉도록 놔둔다.
그러다가 정리됐다고 느껴지는 때가 오면 기록을
하고 소설로 쓴다.
기억력이 좋아야 소설도 쓰나
보다.
아침에 눈을 뜨면 30분 동안
이불 속을 왔다 갔다… 나는
그걸 ‘구들링’이라고 하는데,
정말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그 30분 동안에 많은
것을 쓴 것 같다. 그러다가
졸리면 또 잔다.
구들링하기 전에 굴릴 만한 최초의 무엇이
필요한데, 그런 것은 어떻게 얻나?
다른 작가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단편도
그렇고 장편도 그렇고 늘 쓸 게 3~4개 쌓여
있다. 작업을 해나가다 보면 예를 들어 소설을
쓰기 위해 조사하고 굴리다 보면 한 소설에 담지
못하는 이야기가 생긴다. 그럼 그걸 빼놓는다.
그것들이 다른 소설의 동기가 된다. 소설을
쓸수록 쓸 게 생기는 거지.
그런데 아침에 눈뜨자마자 구들링을 하는 건
작가로서의 압박 때문은 아닐까? 써야 한다는….
그런 거 없다. 난 작가인 게 좋고 소설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좋다. 장편소설을 쓸 때 특히 좋은데
내가 장편소설 속의 무대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출판사에서 출간해야 할지, 언제 출간해야
할지, 얼마나 팔릴지 등에 대해 생각하면 머리
아프지 않나?
그런 생각은 책을 내야 할 때, 그 순간부터 들기
시작한다. 책이 물질로 느껴지는 순간이 온다.
책이라는 물질이 요물이다. 작가를 들었다 놨다
한다. 사실 목적을 정해놓고 쓰는 작가는 많지
않을 것 같다. 일단 자기 충족을 위해, 자기가
만든 세계가 더 완고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는 것이지.
큰 맥락에서 미래에 어떤 소설을 쓰고 싶은지
궁금하다. 어찌됐건 이 인터뷰는 예고편이니까.
하지만 무엇인가 굉장히 아름답게 느껴진다.
예를 들면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데
문장들이 되게 문학적이어서 읽는 사람들이
우주를 유영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다.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고 내가 좀 더 무르익으면
쓸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아, 김중혁은 아름다운 작가구나. 자, 다시 가방
얘기로 돌아가자. 가방에 무엇이든 넣을 수
있다면 무엇을 넣고 싶나? 가방을 들고 아무도
없는 섬에 가야 한다.
우선 손톱깎이. 그거 없으면 글을 못 쓰거든.
왜?
손톱이 길면 난 이상해.
아, 예민해.
몇몇 부분만 예민하다. 노트북도 챙겨야겠지.
써야 하니까. 그리고 작은 오디오와 이어폰. 좋은
헤드폰까진 없어도 된다. 책은 안 가져 갈 거다.
내가 쓰면 되지. 그런데 무인도에 전기가 있나?
있나?
종이와 펜을 가져가야겠다. 그것만 있어도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그림도 그릴 수 있고. 그리고
맥주. 아, 난 맥주가 정말 좋다.
Editor: 이우성
photography: 김태선
Stylist: 김재경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