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무늬의 보트넥 블라우스· 편안한 실루엣의 검은색 팬츠 모두 아페쎄, 새틴 소재의 싱글 코트 로리엣 제품.
단편 소설 <몬순>으로 올해
이상문학상을 받았다. 새삼
프로필을 뒤적이다 놀랐다. 상복이
있다.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세상이 내게 너무 무관심한
거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들지 않을 정도로, 딱 그
정도로 상을 받았다. 복 받은 거지.
이번에 ‘신다’로 소설을 쓴다.
족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족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건 바닥에 신발 자국이
나지 않는다는 것인가?
그렇다. 발자국이 남지 않게 신발 밑창에 뭘
붙인다거나, 어떤 장소에 들어갔을 때 자신의
자국을 남기고 싶지 않은 사람인 거지.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주변의 여러 동기에 의해 싹이 트는 거다.
뉴스에서 본 게 씨앗이 되기도 하고.
편혜영은 씨앗마다 모두 굉장히 섬뜩하단 말이지.
나한테서 발아되는 씨앗의 토양이 다르고
정이현, 손보미한테서 발아되는 씨앗의 토양이
다르고, 전부 조금씩 다른 것 같다. 언젠가
강출판사에서 서울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는데,
아홉 명의 여성 작가들이 참여했다. 나하고
하성란, 권여선, 김숨, 강영숙, 김애란, 이혜경
작가가 참여했는데 그 사람들이 쓴 서울이
제각각이었다. 서울이라는 소재는 같은데 다른
서울의 모습이 튀어나온 거다.
이 소설, 쓰고 있나?
응.
편혜영다운, 무서운 소설이 탄생하겠다.
오래전부터 ‘아파트먼트’라는 제목의 소설을
쓰려고 했는데….
아파트먼트?
아파트먼트.
아, 아파트?
응, 아파트. 쓸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아파트와
연결해서 재밌게 써보고 싶다.
이런 질문은 결례겠지만, 밝은 이야기를 써볼
생각은 없나?
그러니까… 그러고 싶은데 잘 안 된다. 작년에
이상문학상을 (김)애란이가 탔다. 수상집에
들어간 애란이의 작가 초상을 내가 썼는데,
그 글이 재밌었나 보다. 소설도 그런 식으로
유쾌하게 써주면 안 되겠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에세이는 되는데 소설은 안 된다.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일상에서의 자아와
소설을 쓰는 자아가 철저히 분리돼 있다. 내 안의
시니컬한 자아가 소설을 쓰는 것이다.
이 소설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작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묻고 있다. 궁극적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나?
모르겠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공식적으로
준비돼 있지 않고, 아직 고민하는 과정이라
모르겠다는 말밖에….
모르겠다고 이야기한 건 당신이 처음이다.
정말 모르겠어. 어떤 이야기에 도달하게 될지.
공식, 비공식을 떠나 솔직한 대답인 거지?
책이 나올 때가 되면 다음에 뭐를 써야 할지
고민한다. 단편 하나를 끝냈을 때도 다음엔
어떤 걸 쓸지 고민하고. 그런데 ‘궁극적으로’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고민을 하며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상태라고밖에는 대답할 수 없을 것
같다. 직무유기지?
아니.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상태인지는 알 것 같다.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지. 모든 이야기가 다
그러니까. 하지만 그게 굉장히 큰 주제잖나. 그
주제를 내가 어떻게 파고들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쓰는 작품을 통해 길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지도
앞에서 바로 앞의 땅을 파는 느낌이다. 그래서
가끔 막막하기도 해.
우리가 자주 만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몇 번 봤다.
그때마다 유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진지하고 고민 많고 약간 우울해 보인다.
아까 말한 소설 쓸 때의 자아가 지금의 자아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소설에 관한 고민을 말할
땐 능청을 못 떠는 것 같다. 등단한 지 10년도
넘었으니까 ‘그까이꺼’ 대충 써, 이런 식의
얼버무림이나 대처를 할 수도
있을 텐데, 그게 잘 안 된다.
뭘 어떻게 써야 할지, 아직
긴장하고 있는 상태다.
이상문학상을 받은 <몬순>
말인데, 제목이 상징적이다.
상징성만을 놓고 볼 때 요즘
젊은 작가들은, 물론 한
부류로 묶는 건 모순이지만,
아무튼 몇몇은 소설을 쉽게 쓰는 것 같지 않나?
나는 쉽게 쓰는 소설이 좋은데.
그렇지? 그렇지…. 나도 그런 변화가 좋다. 그런데
당신이 대답을 쉽게 하면 내가 당황하잖아!
나도 바뀐 것 같다. 등단 초기엔 공력을 들여 쓴
소설이 좋았다. 그런데 요즘은… 쉽게 쓴 소설이
읽기도 편하지 않아? 내가 힘줘서 쓴 소설을
남들이 얼마나 힘들게 읽었을까 이런 생각을 이제
와서 하는 거다.
아, 이거, 왜, 마음 어딘가 짠해지는 기분이 들지.
하하.
그런데 인터뷰를 할 때 보통… 말을 더 길게 한다.
나도 길게 하고 있다.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작가나, 배우나, 보통…
질문을 툭툭 던지면 대답도 툭툭 나오는데,
지금은 잘 안 온다. 그래서 내색은 안 하지만 내가
당황하고 있다.
아, 진짜?
그래서 하는 말인데 독자를 위해 하나 던져주자.
문학과지성사와 <아레나 옴므 플러스>가 함께
기획한 소설 프로젝트에서 편혜영의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까지는 아니더라도, 편혜영의
소설을 기대하게 만들 미끼를 적을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아, 있다. <몬순>이라는 단편이, 내가 작년에
내내 장편을 연재했기 때문에 거의 1년 반 만에
쓴 단편이다. <몬순> 그리고 1년 반 전에 쓴 단편
소설, 이번 프로젝트에 쓸 소설, 이렇게 합쳐서
의심과 의혹에 대한 3개의 단편 소설을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실체가 없는 의심에 대해
계속 써보고 싶었는데, 이 세 편으로 그걸 하게 된
거다.
오! 낚인다.
낚이지?
2000년에 등단했으니까 14년 차다. 웃긴
질문인데, 그 사이에 소설이 늘었나?
14년이지만 등단하고 3년을 쉬었기 때문에
깎아야 한다. 청탁이 없어서 3년을 쉬었다.
편혜영도 흑역사가 있구나.
그런데 아까 그랬잖아. 쉽게 쓰는 게 쉽게 읽히는
것 같다고. 그런 식의 무게 조절이랄까, 이런
걸 알게 된 것 같다.
어릴 때 단편 소설 하나에
목맸다면 지금은 넓게, 여러 작품이 이루는
맥락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아….
작품 하나에 실린 무게가
분산된다고 할까? 힘을
분배하는 것? 그것 말고는
시간이 지났다고 달라진 것은
없다. 소설은 별로 익숙해지지
않는 노동이라서 매번 같은
강도로 반복된다. 다만 등단
초기에는 이 작품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다. 지금은 조금 가벼워질 수 있게
된 거지. 잘 쓰게 돼서 가벼워진 것이 아니라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가벼워질 수
있는 거지.
그 말이 역설적으로 지금도 계속 공들여 소설을
쓰고 있다는 말로 들려서 좋다. 그런데 독자들이
당신 얼굴을 보고 놀라지 않나? 소설 분위기와 안
어울리게 미인이어서.
예쁘게 생겨서 놀라는 것은 아니고, 멀쩡하게
생겨서 놀란다. 내가 일상적으로 만나면 농담도
하고 잘 웃고 그러잖아. 그래서 나한테 발랄한
칙릿 소설을 써줄 생각 없냐고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래서 농담 삼아 말했다. 명품 백에
장도리 넣어가지고 다니는 여자 이야기를
써볼까?
오! 진짜 재밌겠다.
진짜 써?
Editor: 이우성
Photography: 김태선
Stylist: 김재경
Hair: 재황(에이바이봄)
Make-up: 재희(에이바이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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