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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宅 일박 이일

황금 같은 주말. 집에서 허송세월하기엔 너무 아쉽다. 한옥에 가보자.서양 건축물에 밀리고, 좁고 춥다는 이유로 우리 곁에서 사라져갔지만 그 애틋한 정서만은 고스란히 남겨두었다. 온돌방 아랫녘이, 그곳에 누워 즐기는 여유가 그리워지는 지금.한옥은 그런 면에서 일박 이일 여행지로 꽤 그럴싸한 선택이다.<br><br>[2008년 2월호]

UpdatedOn January 24, 2008

Photography 김정호 Editor 이현상

서울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선비의 풍류, 락고재

멀리 가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북촌에 자리 잡은 락고재에서 하룻밤 묵자.
호젓한 아름다움을 도심에서 느낀다.

당호인 락고재(樂古齋)의 뜻을 풀이하면 ‘옛것을 누리는 맑고 편안한 마음이 절로 드는 곳’이다. 실제로 가보면 왜 그러한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다. 삼청동과 가회동 등 종로구 북촌 일대가 우리의 전통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인 건 유명한 사실. 한옥 보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고, 향이 좋은 전통차를 우려내는 찻집도 군데군데 자리 잡았다.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구워지는 부침개와 진하다 못해 걸쭉한 동동주를 맛볼 수 있는 곳도 많다. 락고재도 조선시대의 옛 정취를 고스란히 간직한 계동에 위치했다. 3호선 안국역의 제동초등학교 담벼락을 타고 좁은 골목을 30m 정도 올라오면 아담한 대문과 돌로 지은 담벼락을 두른 락고재가 나온다. 집 뒤로는 현대 사옥이 자리를 잡고 있다. 시끄러운 경적 소리도, 화려한 네온사인도 자취를 감춘다. 도심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 너른 마당과 함께 대청마루가 보일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담벼락 대나무 아래로 장독대가 옹기종기 모여 있고, 좁은 골목길이 아담하다. 그곳을 빠져나와서야 전체적인 락고재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본채와 별채가 붙어 ‘ㄷ’자 형태를 이루고, 그 맞은편에는 작은 정자가 있다. 그리고 본채 건너에 행랑채가 위치해 있다. 1백3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옛 진단학회 한옥을 개조해 2003년 5월에 개관했는데, 기본 골격은 남겨두고 새롭게 지어 올려 현대적 양식에 옛 한옥의 정취와 전통을 고스란히 품었다. 숙박은 2개의 안방, 건넌방, 정자, 별채 등 5개의 방에서 이루어진다. 최신 보일러 시설을 가동해 현대 주택에서 자는 것만큼 따뜻하다. 각 방마다 편의시설을 갖춰 추운 겨울 밖으로 나가 ‘일’을 봐야 하는 불상사도 없다. 각 방은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가구들과 장신구들로 분위기를 한껏 살렸다. 전깃불을 사용하나 불을 켜고 끄는 스위치조차 나무로 짠 덮개로 덮는 등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썼다. 방마다 전통 차를 마실 수 있는 다기를 마련해두었다. 숙박을 할 경우엔 식사가 무료로 제공 되는데, 정성을 담은 한국 전통 식사와 토스트, 커피 등을 내놓은 서양식 중 선택이 가능하다. 천기토로 만든 장작 찜질방은 락고재의 백미.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방을 데운다. 문을 여는 순간 정성스레 말린 쑥 향이 코끝을 자극한다. 쑥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짚으로 엮은 자리를 깔아준다. 그곳에 누워 땀을 내고 나면 맛있는 동치미가 절로 생각난다. 밤에는 주안상을 내오는데 계절에 따라 직접 빚은 술을 마시며 밤을 날 수도 있다. 숙박하지 않더라도 정갈한 식사를 맛볼 수 있는데, 고등어 정식(1만5천원)과 갈치구이 정식(2만5천원), 간장게장 정식(3만원)이 대표. 단 사전 예약을 해야 하며 최소 인원 수 제한이 있다.

요금 방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 대략 1인당 12만5천원부터 20만원까지. 별채는 4인에 45만원(숙박 요금엔 찜질방, 주안상 또는 아침·저녁 식사 포함)
찾아가는 길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로 나와 직진,
오른쪽에 제동초등학교와 제동학원 사이 골목길로 30m
문의 02-742-3410,
www.rkj.co.kr

아름답게 늙은 옛 사랑채의 정취, 명재고택

양반집 사랑채에 앉아 풍광을 감상하며 고즈넉한 초봄의 운치를 느끼고 싶다면 하루쯤 딱딱한 바닥을 잠자리 삼을 수 있다. 논산에 위치한 이곳에서 선비의 정갈한 기품이 느껴진다.

뻥뚫린 천안-논산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논산시 노성면의 이곳은 17세기 말 소론파의 지도자였던 명재 윤증 선생의 사가인 명재고택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윤증고택이란 이름으로 알려졌으나, 고인의 이름을 집 이름으로 사용하는 게 옳은 일이 아닌지라 그의 호를 딴 명재로 고택의 이름을 바꿨다. 우리를 맞이한 사람은 명재 선생의 13세손인 윤완식 선생. 처음엔 거쳐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인지 귀찮은 듯 무뚝뚝하게 대하는가 싶더니, 이내 마음을 연다. 이야기를 해가며 사진 찍기 좋은 장소를 알려주려는 듯 조심스레 빗장을 하나하나 연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외부에 노출돼 있는 사랑채와 그 옆에 펼쳐진 장독의 끝없는 행렬. “몇 개나 됩니까?” 출발 전 사전 조사를 한 터라 개수를 알고는 있었으나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물었더니, “이 양반들 여기 오면서 공부도 안 해왔구먼” 하며 질책을 한다. “아마 6백 개가 넘을 거야.” 양반집 하면 으레 떠올리는 으리으리한 ‘대감님의 집’과는 전혀 다른 느낌. 아담하고 소박하다. 아마 생전의 윤증 선생의 청렴한 생활이 그대로 사가에 남아 있었을 터. 한옥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은 손님을 맞이하던 사랑채. 3개의 방과 누마루가 있는 사랑채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제법이다. 툇마루에 올라 정면을 향하면 아담한 연못이 보인다. 봄이 되면 꽃이 피고, 새들이 찾아온다. 오른쪽으로는 위엄 있는 향교가 보이며, 왼쪽에는 위에 언급한 6백여 개의 장독 행렬이 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3백 년째 그 자리를 지켰다. 구수한 냄새가 매서운 겨울바람을 타고 코끝을 에인다. 침 고이는 냄새를 실어서 그런지 차가운 바람이 마냥 매섭지만은 않다. 함박눈이 내릴 때엔 6백 개의 작은 봉우리가 생긴다. 애초부터 편안한 잠자리를 기대하진 말자. 그래도 ‘잘 만’하다. 방에 불을 넣으면 돌덩이처럼 차갑던 방에 이내 온기가 돈다. 두꺼운 솜이불이 구비되어 있다. 뜨거운 온돌방 아랫목에 이부자리를 깔고 누워 과거를 추억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현대식 화장실과 샤워실을 갖춰 이용하는 데 전혀 불편함도 없다. 예약을 하면 5천원에 한 상 가득 차린 아침과 저녁을 먹을 수 있다. 정갈한 한식이다. 특히 여기에선 직접 담근 전통 간장과 된장을 구입할 수 있는데, 묵은 장에 해마다 새로 담근 장을 섞은 되매기 장이다. 수백 년째 같은 맛이다(전독간장 1800ml 5만원, 전독된장 1.8kg 2만5천원).

요금 방의 크기에 따라 6만원부터, 사랑채 전체 대여는 30만원
찾아가는 길 천안-논산 간 고속도로를 타고 정안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23번 국도 논산 방면으로 40km 이동한다(서울 기준 2시간 30분 소요)
문의 041-735-1215,
www.yunjeung.com

한옥의 현대적 재해석, 라궁

삐걱거리는 나무 대문을 들어서면 한옥의 또 다른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이곳은 한옥의 외양을 지닌 ‘호텔’이다. 하룻밤에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호사가 천년 고도 경주에 있다.

경부고속도로를 4시간 정도 달렸을까. 톨게이트에 ‘경주’란 두 글자가 시야로 들어온다. 이상하리만치 숨이 가쁘고, 맥박이 빨라진다. 역사의 현장에 들어섰다는 설렘과 유년 시절 수학여행을 추억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시내를 조금 벗어나니 기와집투성이다. 현대 건축물조차 꼭대기엔 기와지붕을 달았다. 그래서 더욱 역사 도시 분위기가 흐른다. 천년 신라시대를 고스란히 간직한 경주에 전통을 계승한 특급 호텔이 들어섰다. 바로 라궁. ‘신라의 궁전’이란 뜻을 가진 이 한옥 호텔은 2007년 개장한 역사 테마 공원 ‘신라 밀레니엄 파크’의 일부. 기존 우리가 생각하는 전통 한옥과는 사뭇 다르다. 최첨단 시설을 곳곳에 박아놓은 것이 흡사 서울의 특급 호텔과 비슷하다. 온돌방이 깔려 있는 것 정도가 다를 뿐. 입구를 거쳐 현관에 들어서자 전통 신라시대 복장을 한 직원이 미소로 맞는다. 특급 호텔이라고 해도 유명한 호텔처럼 으리으리한 맛은 없다. 한옥의 소박하고 정갈한 기운을 이어받아 아담하다. 그러나 신라시대 왕족의 장신구를 진열하거나, 전통의 멋을 살린 가구를 배치해 호텔의 위용을 갖췄다. 로비가 속한 관리동을 지나면 ‘ㄴ’자 형태의 스위트룸이 나온다. 라궁의 숙박은 모두 단독 객실 형태. 16개의 스위트룸이 한데 합쳐져 전체 한옥을 구성한다. 호수를 끼고 있는 누마루형이 있고, 마당을 끼고 있는 마당형 스위트룸이 있다. 그리고 2개의 로열 스위트룸도 있어 선택의 폭이 넓다. 전통 한옥 양식을 그대로 계승한 덕에 ‘못질’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또한 나무 대문이 인상적인 현관부터 누마루, 안방, 대청마루가 직선으로 뻗어 있다. 여름엔 사방의 문을 열어놓으면 시원한 바람을 맞기에 좋다. 창문마다 삼중창 설계를 해 한겨울에도 온기를 잃지 않는다. 스위트룸 하면 으레 훌륭한 욕실을 떠올리는데, 라궁 역시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단지 욕조를 밖으로 끄집어냈다. 바로 노천 온천. 석재 욕조 안에 뜨거운 온천수가 채워지고 그곳에 앉아 고개를 들면 신라의 별이 보인다. 겨울밤 차가운 공기는 욕조의 더운 온기와 금세 어우러져 오묘한 기운을 내뿜는다. 낙원이다. ‘ㅁ’자 한옥이라 외부와 단절되어 프라이빗하다. 아침 식사로는 정갈한 죽이 제공되며, 저녁은 제주산 갈치구이와 소갈비찜 등 푸짐한 한정식이다. 확 트인 마당과 전통 가옥의 운치를 느끼며 즐기는 식사 시간은 마치 신라시대의 왕이 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 복잡한 도시를 떠나 하룻밤 최고의 호사를 누리고 싶다면 조금 비싼 돈을 지불하고도 도전해볼 만하다. 자연을 느낄 수 있고, 정신을 치유할 수 있는 시간도 충분히 허락한다. 초대형 PDP 텔레비전도 거기선 무용지물이다.

요금 스위트룸 30만원, 로열 스위트룸 40만원(2인 기준, 인원 추가 시 1인당 8만원에서 16만원의 별도 요금 부가, 아침·저녁 식사와 테마파크 입장권, 입욕제 포함)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경주 톨게이트로 나와 보문관광단지로 이동. 불국사 가는 길에 위치
문의 054-778-2000,
www.shillamillennium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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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Photography 김정호
Editor 이현상

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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