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림색 재킷은 미샤, 검은색 보디수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검은색 구두는 생로랑, 목걸이와 귀고리 모두 젬앤페블스 제품.
현아는 달랐다. 쏟아지다 못해 넘쳐나는 아이돌 그룹 속에서도, ‘섹시’의 껍데기만 공허하게 외쳐대는 걸 그룹 사이에서도 현아는 달랐다. 어떤 무대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가 춤추기 불편하다며 힐을 벗어버렸던 장면 하나가 오래 남았다. 학습되고 훈련된 표정이나 몸짓으로 만들어진 무대에 서는 섹시 콘셉트 걸 그룹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자기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나.’ 같은 여자로서 ‘섹시’가 싫다는 게 아니라 이왕이면 ‘멋진 섹시’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현아를 좋아한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표현하는지, 무엇을 전달하는지, 당신에게 무엇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지, 현아는 안다. 환상과 현실, 콘셉트와 루머, 스타와 대중 사이에서 아슬하게 경계를 넘나든다. 남자들에게 ‘대상’으로서 어필하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같은 여자들에게 ‘워너비’로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저마다 ‘현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그리고 현아는 계속해서 또 다른 이미지를 새로 더하려 한다. 그렇게 ‘현아’라는 이름은 고유명사에서 대명사로 옮겨가고 있다. 또다시 현아의 시간이 오고 있다.
◀ 흰색 시폰 롱 셔츠는 올세인츠, 보디수트는 월포드, 구두는 샬롯 올림피아 by 라꼴렉씨옹, 귀고리는 케이트앤켈리 제품.
오랜만에 솔로 활동을 앞두고 있다.
그래서 더 신경 쓰이고 긴장된다. 그동안 곡 작업에 참여해왔는데, 이번엔 비중이 좀 더 늘었다. 곡을 쓰는 동안에도 작곡가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갖으려 노력했고.
포미닛과 트러블 메이커, 그리고 현아의 솔로 작업까지 꾸준하게 자신을 표현해왔는데 이번엔 어떤 점이 달랐을까?
예전보다 생각이 더 많아졌다. 몇 달 동안 작업실에서 지내면서 의견도 공유하고, 편하게 수다를 떨다가도 좋은 이야기가 나오면 곡에 반영하고 그랬다. 특히 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반영했다. 이번 앨범에선 나에 대해 좀 더 진솔한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노래와 자신 사이의 거리가 굉장히 가깝다고 느끼는구나.
타이틀곡을 들으면 ‘아, 이거 현아네. 현아밖에 할 수 없는 거네’ 하는 느낌이 있다. 나에게 잘 맞춰진 옷을 입은 느낌이다.
포미닛과 트러블 메이커, 솔로 활동으로 표현할 수 있는 부분들에 기준 같은 게 있을까?
의식적으로 기준을 정해놓으려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러다 보면 한쪽으로 치우치게 마련인데 나는 그게 무섭다. 그때그때 주어진 곡과 스타일에 맞춰 나 자신이 변신하고 흡수되길 바란다. 여기선 이걸 보여주고, 여기서 못한 건 다른 활동 시 하고…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더 어려워진다. 포미닛이든 트러블 메이커든, 솔로 활동이든 끝날 때까지 한 가지에만 올인하고 집중한다. 내 에너지가 100이라면 그때그때 그 100을 다 쓰려고 한다. 나중에 다시 충전해 또다시 100을 채우더라도 매번 내가 가진 모든 걸 쏟고 싶다.
한국 가요계 역사상 현아 같은 캐릭터가 없었다. 특히 여자는. 그룹 활동과 유닛 활동, 솔로 활동 모두 성공했다. 힘들 땐 없나?
바쁜 게 좋다. 바쁜 일정에 적응을 잘 못했던 시간도 있다. 그런데 성격 자체가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이 생겼는데, 내일 할 수는 없는 거다. 내가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안 할 수도 없는 거고. 그럴 땐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잘해볼까 생각하는 편이 내 마음도 편하고 옆에 있는 사람들도 편한 길이란 걸 알았다. 모두 나를 위해 일해주는 고마운 분들인데 그들 앞에서 인상 쓰고 싫은 티 내면서 나 힘들어, 속상해, 하고 싶지 않은 거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얼마 안 된다. 책임감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이제 활동을 앞두고 스케줄이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그런 걸 받아들이는 게 예전과 비교해서 많이 달라졌다.
검은색 스팽글 원피스는 페이우, 귀고리는 블랙뮤즈 제품.
표현하고 싶은 게 잘 안 됐단 말인가?
당시엔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게 뭔지도 몰랐다. 그냥 열심히 해서 당장 다가오는 주간 평가, 월말 평가를 준비하는 게 최선이었다.
지난번보다는 더 잘하고 싶고, 이번보다는 다음에 더 잘하고 싶고… 그러다 보니까 진짜 요~만큼씩 늘어갔다. 데뷔할 때만 해도 ‘아, 이젠 무대에 나가고 싶다, 준비가 된 것 같은데?’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그때도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것 같다. 나머지 비어 있는 부분들은 무대 경험을 통해 지금도 계속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퍼포먼스를 준비하면서 특별히 더 집중하는 부분이 있나?
사실 솔로 활동할 때 노래 중간에 ‘댄스 브레이크’를 꼭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좀 있었다. 사람들의 기대치는 높아지는데 어느 순간 만족을 못 시키면 실망하게 될까봐. 그런데 그런 생각보단 곡에 맞춰가는 게 좋겠다고 마음을 비웠다. 이번 신곡 스타일과 잘 맞게 준비하고 있다. 사람들이 나에게서 어떤 걸 보고 싶어 하는지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것저것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이번 솔로 활동을 함께할 댄서들을 공개 오디션으로 모집한다고 들었다.
이번엔 좀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타이틀곡뿐 아니라 여러 가지 앨범 수록곡들 자체를 무대 퍼포먼스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색깔과 포지션의 안무팀이 많이 필요해지는 거다. 아, 그럼 새로운 식구들을 찾아보자, 이렇게 됐다. 오디션으로 선정한 친구들과 함께 연습해서 첫 방송 무대를 꾸밀 생각이다.
멋진 아이디어다. 재미있겠다.
항상 함께하는 크루들이 있는데 춤추는 사람들 사이에선 많이 있는 일이다. 이걸 방송 무대에서 시도하는 게 국내에선 내가 처음일 뿐 해외에선 이미 많은 뮤지션들이 새 앨범을 낼 때마다 이런 식으로 크루를 같이 선정한다. 나도 이번엔 조금 색다르게 새로운 식구들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추진하게 됐다. 정말 재밌을 것 같다.
지금의 현아를 만든 시작은 ‘춤’이었을까?
사실 우리 아빠가 예전에 연기를 너무 하고 싶었다면서 “아빠는 재능이 없는 거 같은데 대신 네가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 하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으셨는데 내가 하겠다고 했다더라. 그때 내가 일곱 살이었고, 엑스트라 연기를 먼저 시작했다. 뭘 했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난다. 그러다 초등학교 1~2학년 때 아빠가 나를 대학로에 데려가주셨는데 거기서 춤추는 사람들을 처음 봤다. ‘나도 저런 걸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바로 춤을 배우러 다녔다. 그때부터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졌다. 워낙 내가 언니들을 좋아해서 언니들이랑 어울려 춤추고 싶은 마음에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호기심으로 춤을 시작했는데 여기까지 왔다.
내가 잘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냥 좋았다. 사람들과 춤을 추고, 잘 안 되는 동작을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걸 보며 익히고, 공연 다니고 하는 게 너무 좋은 거다. 내가 ‘프로’가 될 거란 생각을 못했다. 사실 오디션 통과하고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도 잘 안 됐다.
상 함께하는 크루들이 있는데 춤추는 사람들 사이에선 많이 있는 일이다. 이걸 방송 무대에서 시도하는 게 국내에선 내가 처음일 뿐 해외에선 이미 많은 뮤지션들이 새 앨범을 낼 때마다 이런 식으로 크루를 같이 선정한다. 나도 이번엔 조금 색다르게 새로운 식구들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추진하게 됐다. 정말 재밌을 것 같다.
흰색 셔츠는 자라, 검은색 재킷은 폴앤엘리스, 귀고리는 젬앤페블스 제품.
LA에서 리타 오라도 만나보고 왔으니 잘 알겠지만 아무리 ‘한류, 한류’ 해도 미국 팝 시장에 비하면 여자 솔로 가수에 대한 제약이 많은 게 사실이다. 여자 가수의 섹시 콘셉트에 열광하면서도 사생활은 조신하길 바란다. ‘여자’ 가수이기 때문에 콘셉트에 한계를 느끼거나 선정성 시비에 휘말리거나, 이런 점에서 썩 쾌적한 환경은 아닐 것 같다.
처음엔 나도 정말 어려운 부분이라고 느꼈다. 뭐가 맞는 거고 틀린 건가 항상 고민스러웠다. 그런데 언제까지 겁만 내고 있을 수만은 없는 거다. 고민하는 상태로 무대에 오를 순 없으니까. 결론을 내야 한다. 춤을 추면서 ‘내가 지금 이렇게 해도 돼?’, 예쁜 표정을 지으면서 ‘나 지금 예쁜 거 맞아? 나 못생긴 거 아니야?’ 하면 아무것도 안 되는 거다. 차라리 확실한 게 좋다고 생각한다.
일단 나부터 자신감이 넘쳐야 다른 사람들의 ‘워너비’가 될 수 있는 거다. ‘쟤는 항상 뭔가 뚜렷해. 기분이 좋아 보여.’ 이런 얘기를 듣고 싶다.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사랑해줄 순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을 믿고, 그 사람들이 나를 더 많이 사랑해줄 수 있도록 하는 것뿐이다. 그게 앞으로도 내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어렵게 생각하다 보면 끝이 없다. 항상 걱정만 하면서 ‘이건 이래서 사람들이 싫어할 거고, 저건 저래서 싫어할 거야’라고 하면서 시작도 못해보고 끝내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 어떤 생각을 하나?
잘하고 내려와야 한다는 부담감이 클 때가 많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꼭 안 되더라. 연습실에서처럼 식구들과 기분 좋게 한 만큼 그 기운을 나눠주고 내려오자, 하는 생각으로 무대에 올라가면 조금 마음이 편해진다. 요즘엔 해외 콘서트 무대에 서면서 관객들과 소통하는 재미도 알게 됐다. 나라마다 다른 분위기나 정서를 캐치하는 것도 재미있고, 리허설하면서 멤버들과 조명 맞추며 우리가 원하는 게 이게 맞나, 이런 걸 확인하는 것도 너무 신기하고. 분명 2년 전까지만 해도 몰랐던 것들이다. 멤버들이, 그리고 내가 이렇게 성장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예전엔 몰랐던 것들이 보이니까 재밌으면서 한편으론 머리 아플 때도 있다.
온 힘을 쏟아내고 나면 허전하진 않나?
이번 노래 가사가 그렇다. 솔직하게 당당하게 무대에 서봤다가, 조명이 꺼지고 뒤돌아서는 관객들을 보고 날 떠나지 말라고 얘기도 해봤다가, 갑자기 혼자 신나서 춤도 춰봤다가… 이런 스토리다. 신나고 화려하면서도 슬프다. 하지만 실제 내 삶에선 공허함을 느끼기엔 시간이 너무 아깝고, 대중에게 외면당할 날을 걱정하기엔 나는 아직 너무 어리다.
Editor: 조하나
photography: 하시시박
STYLIST: 정설
HAIR: 진이(레드카펫)
MAKE-UP: 이은주(레드카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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