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안을 기웃거린다. 스마트폰으로 ‘월드와이드웹’을 헤매는 것도 마찬가지. 하루 종일 기웃거리다 지친 몸 잠깐 누이는 곳을 ‘홈(Home)’이라 칭해야 할지 ‘하우스(House)’라 칭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고 만다. 안정과 정착이란 개념은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가까운 미래엔 더할 것이다. 우리는 도시 안을 떠돌며 영혼을 빼앗긴다. 온전히 둘 곳이 없어서다.
영화 <퍼펙트 센스>에서 세상은 특이한 과정을 거치며 종말을 맞는다. 사람들은 처음엔 후각을, 다음엔 미각을, 이어서 청각과 시각을 차례대로 잃어간다. 인간은 냄새로 모든 것을 기억한다. 이를 테면, 어렸을 적 할머니 무릎에 앉았을 때 맡았던 담요 냄새나 첫사랑의 푸른빛 내음 같은 것 말이다. 후각과 함께 잊히는 기억에 어린아이처럼 울음을 터트리던 사람들은 또 다른 방식의 삶에 적응해 살아간다. 감각을 하나씩 잃을수록 맞닥뜨리는 감정도 다양하다. 영화에서 각 감각의 상실 사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대사는 이렇다. “Anyway, life goes on.” 어떻게든 삶은 계속 된다는 것이다. 모든 감각을 잃은 인간은 마침내 삶의 본질과 희망에 기뻐한다. 이제 남은 건 서로를 만질 수 있는 촉감뿐이지만 이전의 풍족한 생활에서 느끼지 못했던 생(生) 자체의 환희에 기뻐하며 눈물을 흘린다.
▲ ‘Falling Light’ LEDs, Brass and Aluminium, Motors and Controls, Swarovski Crystal lenses, 205×150×70cm, 2014.
트로이카의 전시장에 들어서며 나는 이 영화를 떠올렸다. 인간은 더 이상 넘어설 수 없는 순수 예술 창작의 벽이 분명 존재한다고 느낄 때쯤, 미켈란젤로든 비틀스든 찰리 채플린이든 그 어떤 선구자도 더 이상 나타나지 않을 거라 체념할 때쯤, 이렇게나 차가운 디지털 코드를 통해 따뜻한 작품을 만날 수 있구나 싶은 거다. 삶은 어떻게든 계속 되니까.
대림미술관에서 진행되는 <트로이카: 소리, 빛, 시간 – 감성을 깨우는 놀라운 상상>展에 아티스트 트리오 트로이카의 조각과 드로잉, 설치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대표작과 신작이 최초로 한자리에 모였다.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전 세계를 무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트로이카는 이성적 사고에 시각적, 공간적 체험을 더해 인간의 감성적 경험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하는 아티스트 트리오다. 과학과 예술을 교차시켜 기술과 감성을 융합한다.
◀ ‘Small Cloud’ Flipdots, Aluminium, Electronic Components, 250×150×70cm, 2014.
특히 이번 한국 전시를 위해 특별 제작해 공개할 예정이라는 소식으로 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이들의 대표작 ‘클라우드(Cloud)’가 드디어 대림미술관 전시장에 새롭게 전시된다. 런던 히드로 공항에 설치되어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유튜브 백만 뷰를 기록했던 바로 그 작품이다. ‘클라우드’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구름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4천6백38개의 반짝이는 원형 플립 장치들로 표현한 디지털 조형물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기차역과 공항에서 발착 시간을 알려주는 간판에 사용되었던 구형 전자식 플립 도트에서 착안한 이 작품은 간판들이 튕기듯 회전할 때 들리는 특유의 소리를 통한 청각과 어디론가 흘러가는 구름을 형상화한 시각을 공감각적으로 형상화한다. ‘클라우드’ 공개와 함께 제2의 시작을 알린 <트로이카: 소리, 빛, 시간 – 감성을 깨우는 놀라운 상상>展. 도시의 유목민들이 일상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거나 인식하지 못했던 질문을 이곳에서 대면하게 될 것이다.
시끌벅적 미술관 대림미술관 D PASS
대림미술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트로이카: 소리, 빛, 시간 – 감성을 깨우는 놀라운 상상> 전시와 연계된 디 패스는 전시가 진행되는 27주 동안, 매주 토요일 저녁, 다양한 분야의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형식의 프로그램이다. 디 패스가 진행되는 매주 토요일 전시는 저녁 8시까지 연장된다. 6월 28일에는 일러스트레이터 밥장과의 토크가, 7월 5일에는 대림미술관 기획자들의 진로 특강이, 7월 12일에는 오영준과 함께하는 재즈의 밤, 7월 19일에는 건축가 임형남의 서촌 이야기가 예정되어 있다.
참가비 6천원(전시 관람료 별도)
photography: 대림미술관
EDITOR: 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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