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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예능?

<아트 스타 코리아>를 미술가는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미술가가아닌 한 명의 대중으로선 어떻게바라보아야 할까? 이 글은 어떤미술가의 사견이다. 하지만개인적으로 읽히진 않는다.

UpdatedOn April 30, 2014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아트 스타 코리아>(이하 <아스코>)에 대해 글을 쓰겠다고 담당 에디터와 얘기를 끝냈을 때는 이 위화감의 정체를 드러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40여 분짜리 프롤로그 방송을 본 후로는 난처해졌다. 뭘 기대했단 말인가. 위화감을 느꼈다기보다 다소 멋쩍었다. 이상하게 떨떠름했다.

오쓰카 에이지의 <캐릭터 소설 쓰는 법>에 따르면 여러 가지 미션을 수행하고 난 후 하나의 성취를 얻는 것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 구조다. 이런 이야기 구조는 이목을 끈다. 드라마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라마는 캐릭터가 이끌어간다. 각각의 캐릭터가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자신만의 기지를 발휘하면서 드라마를 직조해 나가기 때문이다. 즉 주어진 미션을 모두 수행하면 하나의 성취를 쥐어준다는 큰 구조가 이미 마련되어 있고, 그에 들어맞는 소재와 다양한 캐릭터를 투입하면 이야기 구조는 무한 반복적으로 재생산될 수 있다.

방송이라는 매체는 이 오래된 이야기 구조를 차용해 서바이벌이라는 방송 패턴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한국의 방송은 이 구조를 수입해서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 시리즈 가운데 이번에 새로 수입, 제작된 것이 <아스코>다. <아스코>는 ‘슈스케’나 ‘도수코’와 마찬가지로 방송용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는, 돌처럼 단단하고 동일한 패턴 속에 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패턴에 패션, 아이돌을 끼워 넣듯 현대 미술을 하나의 소재로 활용하는 것이다. 패턴을 이루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캐릭터다. 어느 예능 프로를 봐도 캐릭터 싸움이라고 할 만큼 나름 치열하다.

<아스코>에도 벌써 초긍정 캐릭터, 10차원 캐릭터, 트러블메이커, 처음엔 눈에 안 띄다가 나중에 실력을 발휘하는 캐릭터, 핸디캡을 가진 캐릭터 등이 형성된 것처럼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나름대로 또 다른 패턴의 조합을 이룬다. 이들 가운데 전체 프로그램의 큰 반전을 이끌 캐릭터와 톡톡 튀면서 뒷받침해줄 캐릭터 등이 갈리면서 드라마의 큰 줄기가 형성될 것이다. 출연진의 말이나 행동의 단편이 편집을 통해 하나의 성격을 만들어갈 때 비로소 시청자들은 아주 쉽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다. 우리는 이 구도에 너무나도 익숙하다. 반전도 감동도 여기에서 나온다. 더불어 출연진이 치열하고 도발적일수록 드라마는 좀 더 흥미진진해진다.

떨떠름함이 남는 건 미술이 예능의 소재로 사용되었기 때문이 아니다. 이게 방방 뛸 일은 아니지 않나. 대결 구도 안에서 겨룰 수 있는 것 가운데 재능만큼 훌륭한 드라마 제조기도 없고, 생각해보면 그 많은 재능 중에서 ‘예술적 재능’만큼 매력적인 것도 없다. 그렇지만 예능은 예능일 뿐이다. 여기서 미술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 방송의 8할은 캐릭터와 드라마고 미술은 단지 프로그램을 ‘돌리기’ 위해 깔아놓은 설정에 불과하다. 미술은 애초에 미술이 아니어도 된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아스코>에는 미술이 없어도 그만이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결국 우리가 시청하는 것은 또다시 서바이벌 프로그램일 뿐이다. <아스코>의 정체성은 딱 그 정도다.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간단해진다. <꽃보다 할배>나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보듯이 <아스코>를 보면 그만이다. 사회자의 패션 센스나 그날의 게스트가 누구인지를 살피고 캐릭터에 몰입하고 흥분하면서 재밌으라고 만든 프로그램이니까 재밌게 시청하면 그만이다. 그러니까 <아스코>의 제작진과 심사위원들이 현대 미술의 대중화, 젊은 작가를 위한 전폭적인 지원 운운하는 대신, 현대 미술을 소재로 한 오락 프로그램인 것을 뻔뻔하게 인정했다면 훨씬 더 나았을 것이다. 최소한 오해는 없어지기 때문이다.

<아스코>는 철저히 예능의 룰을 따르는 프로그램이다. 그렇게 닫혀 있다. 패턴화되어 있으며 여러 가지 흥행 요소가 삽입된, 시청률에 민감한 프로그램이다. <아스코>가 서바이벌이라는 너무나도 동일한 방송 패턴 속에서 도발이니 반항이니 고정관념의 틀을 깨니 마니를 말할 때 ‘도수코’의 도발이나 ‘슈스케’의 반항 정도와 의미가 다를 바 없다. 한 음료 광고의 카피처럼, 말을 하고 있지만 전혀 의미를 알 수는 없는 ‘뭔가 크리에이티브하고 유니크한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는 에티튜드’에 불과하다. <아스코>에서 현대 미술은 잘 정돈해놓은 방송 소스다. <아스코> 첫 방송이 전파를 탈 때쯤 잠시 흥미로운 뉴스를 접하기도 했다.

한 출연자가 자신의 SNS를 통해 방송계약서를 공개하는 파격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아주 잠시 <아스코>라는 닫힌 계에 균열이 생기는 줄 알았지만 역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계약서 내에 충분히 문제가 될 법한 조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제작진도 출연자 본인도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출연자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요구했던 도발적인 트러블메이커로 일찌감치 캐릭터를 형성했고 그 누구보다 안전하게 프로그램에 착지했다. 되레 그가 영리하다는 사람도 있었다. 상승 효과라는 구조 안에 유연하게 포섭당한 채 프로그램도 띄우고 더불어 자신도 뜨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그는 캐릭터와 드라마를, 그러니까 이 프로그램의 핵심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예능 시청자의 마음으로 빙의해 <아스코>를 볼 수는 있지만 그렇게 웃다 보면 슬쩍 기분이 더러워진다. <아스코>를 보는 내내 미술의 무능력함을 목격하는 듯하다. 방송 매체를 통해서 현대 미술을 이해시키려는 기획, 그마저도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는 오락물로 포장하고 나서야만 대중을 설득시킬 수 있으리라는 아이디어는 너무 쉽다. 오히려 아무 노력도 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진다. 앞서 말했듯 이야기라는 구조는 사람들로 하여금 안심하게 만들고 심정적으로 동조하기 쉽도록 하는 힘이 있다. 서바이벌은 경쟁 구도라는 너무나도 익숙하고 관습적인 패턴 속으로 젖어들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하고 명료한 이야기를 직접 해주기보다는 이야기라는 구조의 힘을 빌려 대충 얼버무리는 것도 가능해진다.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것이 대체로 그런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오쓰카 에이지의 표현대로라면 ‘정확히 그 사안이 무언지 설명할 수는 없지만 동조할 수는 있는 상태’로 만든다. 아름다운 MC와 특별 게스트들이 사라지고 감정을 조절시키는 BGM이 꺼졌을 때, 반짝 동했던 마음도 함께 사라져버린다. <아스코>가 끝나고 나서 남는 것을 한번 보라. 잘게 잘린 관전 포인트나 수다 포인트만 창궐한다. 느낌적인 느낌만 남는다.

Words: 이미연(미술가)
Editor: 이우성
Illustration: 이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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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Words 이미연(미술가)
Editor 이우성
Illustration 이자경

2014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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