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츠는 H&M, 티셔츠는 본인 소장품.
2006 년인가? 알고 지내는
매니저가 프로필을
내밀었다. 미국에서
유명 트레이너로 활동하던 남자라고 했다.
마동석이었다. 몸도 얼굴도 호랑이 같았다.
인상이 워낙 강렬해서 그 후에 마동석이
나오는 드라마와 영화를 챙겨 보았다. 나는
마동석이 한국에서 배우로서 존재감을 갖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몸이 너무 커서, 가늘고
곱상한 배우들 속에서 그저 근육으로만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비유는 결례다.
하지만 마동석이
초반에 맡았던 역은 비중이 작은 형사나
깡패였다. 문제는 형사나 깡패 그 자체에 있지
않았다. 의지가 없는 존재였다는 게 문제다.
드라마나 영화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역이었다.
배우의 특별함을 드러내기에는 배역이 너무
작았다. 그러나 마동석은 자신의 존재감을
스스로 획득했다. 특히 <부당거래>에서
형사 대호는 시나리오 상의 역할을 넘어서는
게 아니었을까?
물론 그 영화는 황정민과
류승범, 그리고 유해진의 영화였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그 영화를 보면서
대호라는 형사의 다른 이야기가 궁금해진
건 나뿐이었을까? 지금은 아무도 마동석의
역량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가 가장 많이 맡은
역은 깡패였지만 적어도 우리가, 혹은 관객이
그를 제대로 보고 있다면, 그의 지적인 면모를
알아채야 한다.
그의 연기가 강렬함을 주는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가 욕과
근육과 무서운 눈빛을 앞세우기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것들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연기를 보면 그가 무엇인가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호들갑 떨 일은 아니지만 그가 최근에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찍었다. 당연히 그 영화는
해외 영화제에 출품될 예정이다. 굉장한 일이
생길 것 같다.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좋아하는
배우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마동석을 좋아하지
않는 게 어떻게 가능하느냐고 되묻겠다.
여기 사진이 몇 장 있습니다. 출연하신 영화에서 캡처한 거예요. 다 기억나요?
그럼요. 아, 이거, 오래된 거네.
마음에 드는 배역을 세 개만 골라주세요.
잠깐만요, 이거랑 이거. 그리고 저거.
* 마동석은 <비스티 보이즈> <퍼펙트 게임> <이웃사람>에서
캡처한 자신의 모습을 골랐다.
세 개를 고른 이유가 뭐예요?
<비스티 보이즈>에서 처음으로 윤종빈
감독하고 하정우랑 작업했어요. 친한
동생들이랑 찍은 영화예요.
<비스티 보이즈>가 윤종빈 감독 영화였죠!
<군도> 촬영 중이시죠? 윤종빈 감독이랑 하정우
씨를 다시 만났네요.
그때 인연이 된 거예요. 깡패 역할을 많이
했지만 <비스티 보이즈>의 창우 역이 기억에
남아요.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리자는 얘기가
나와서 진짜 깡패처럼 연기했거든요. 그리고
캐릭터는 <퍼펙트 게임> 박만수가 가장 좋아요.
제가 야구광이거든요.
눈물 났죠. 저도 박만수가 가장 좋아요. 그런데
그 얘긴 조금 이따 하고요, 한창 야구 시즌인데
어느 팀 응원하세요? 아, 두산 팬이시죠?
‘OB BEARS’ 어린이 야구단 출신이에요.
그래서 지금도 두산 팬이에요. 이 영화 찍을 때
두산 이원석 선수, 김현수 선수가 형 야구 영화
찍는다고 장비도 보내주고 격려도 해줬어요.
그런데 두산을 응원하긴 하지만 프로야구는 다
봐요. 못 본 경기는 하이라이트 방송으로라도
봐요. 요즘 류현진 선수 경기랑 추신수 선수
경기 챙겨 보느라 잠 설칠 때가 많아요. 전
월요일이 싫어요. 프로야구 안 하잖아요.
<이웃사람>의 옆집 깡패 형도 꼽았네요. 이
역할도 인상적이었죠. 후반부에 살인자를 아주
박살을 내잖아요. 보면서 속 시원했어요.
저한테 여러 전환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영화 <부당거래> 이후에 책을 많이
받았어요.
아, 시나리오요?
네. 시나리오. <이웃사람>을 찍고도 그랬어요.
제가 강풀 작가랑 친분이 있어요. 원작 만화도
좋아했어요. 그래서 영화로 만든다고 했을 때
당연히 같이 하고 싶었어요.
이때 했던 깡패 연기가 굉장히 많이 회자됩니다.
지금도 포털 사이트에서 영상을 찾아볼 수
있어요.
강풀이 전화해서, 형, 내가 깡패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만들어놓은 인물이니까, 형이 정말
깡패처럼 해줘야 해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대사도 바꾸고 말투도 행동도 바꿨어요.
<다이하드>에서 브루스 윌리스가 했던 연기를
좋아해서 그런 식으로 해보고 싶었어요.
감독님도 생각이 같았고요.
그러고 보니 당대의 감독들과 작업했네요.
윤종빈 감독도 그렇고 <부당거래>는 연출을
류승완 감독이 했고, 시나리오는 <신세계>
박훈정 감독이 썼죠.
<감기>는 김성수 감독이 연출했어요. <비트>
기억하시죠? 그 감독님이에요.
제가 이거 캡처하면서 느낀 게 뭐냐면,
마동석이란 배우가 효용 가치가 굉장히 높다는
거였어요.
그거 정말 감사한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 비중이 작은 역할도 많이
했더라고요.
지금도 뭐, 시나리오가 절반은 주연이 들어오고
절반은 조연이 들어오는데, 주연이든 조연이든
따지기 전에 캐릭터가 재미있다 싶으면
시나리오를 따로 뽑아놔요. 그러고 나서
생각해요. 글쎄요, 뭐, 4번 타자도 하고 가끔
대타도 하고 그런 것이죠.
타율이 떨어지면
7번도 했다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해요.
무서운 역을 많이 했죠.
외모 때문인지 그런 역이 많았죠. 그래서 작년에
개봉한 <결혼전야> 같은 경우가 전 참 좋아요.
지금 <상의원>이라는 영화도 찍고 있어요.
유머러스한 역할이에요.
최근에 김기덕 감독님 영화도 찍었다고
들었어요.
네. 열흘 만에 한 편을 찍었어요. 힘들더라고요.
열흘이요?
네. 하루에 한 시간씩 자고 찍었어요. 감독님
영화가 대사가 별로 없잖아요. 그런데 이번
영화는 대사가 많아요.
그래서 잠도 안 자고
외웠어요.
자료를 찾아봤는데, 그 영화에 대해 공개된 게
없더라고요. 제목이 <일대일>이라는 것밖에….
네. 저도 아직 못 봤어요. 감독님께 매일
전화 드려요. 편집 끝났으면 보여달라고. 다음
주에 보여주시기로 했는데, 궁금해요.
정서가 좀 세요.
공공연히 김기덕 감동님에 대해 애정을
표하기도 했죠?
네. 예전에 <악어>라는 작품 보고, 이 영화는
도대체 뭔가, 라고 생각할 정도로 흥분했었어요.
사실 감독님이 전작에서도 불러주셨는데
시간이 안 맞았어요.
김기덕 감독님과 작업을 하면 선택받은
배우라는 느낌이 드나요?
어쨌든 세계적인 거장이시잖아요. 좋죠. 독특한
방식으로 촬영을 하세요. 많이 배웠어요.
니트는 H&M 제품.
독특한 방식이요?
이야기할 게 너무 많아서 음… 연기할 때 어떤
것에 중점을 둬야 하는지, 어떤 부분에서 힘을
빼야 하는지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스타일이 다르시거든요. 그리고
촬영 기법에 따라 드라마를 살리기 위한 연기는
뭐고, 멋있는 모양새를 만들기 위한 연기는
뭔지, 빛이 어떻게 들어오는지 그땐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도 설명해주셨어요. 그리고
카메라 한 대로 직접 찍으셨어요. 기계를 잘
다루시더라고요.
카메라 한 대로? 게다가 직접? 하하하. 이건 뭐,
말 그대로 진기명기인데요.
평창동에 감독님이 지내시는 작업실 같은
집이 있어요. 매일 아침 거기로 모여요. 옷을
갈아입고 다 같이 출발하는 거예요. 끝날
때도 그곳에 모여서 헤어지고. 뭐라고 해야
하지? 그냥 매일 아침 만났어요. 감독님이
재미있으세요. 간단한 유머로 사람들을
설득하세요. 디렉션도 편하게 주시고.
거장은 거장이네요.
네. 원하는 그림이 명확하세요.
빨간 카펫 밟으러 가야겠어요?
어우, 외국 영화제 가면 좋죠. 감독님이 같이
가자고 하셨어요. 당연히 가야죠. 구경 가야죠.
구경이라뇨? 김기덕 감독님 영화를 찍고
카펫 밟는 배우들은 기대를 하잖아요. 그거
있잖아요, 그거.
에이. 김기덕 감독님이라는 거장과 해외
영화제에 같이 가서 셀카라도 찍는다면,
그것만으로도 기념이 될 거예요. 베니스가
되었든 칸이 되었든 배우로서 가보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어쨌든 이번에 가게 될 것
같아서 신이 나요. 하지만 해외 영화제에 갔다
온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나를 더 알아줄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인생이 달라진다고도
생각 안 하고요. 좋은 경험이 된다고,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원래 겸손하세요?
겸손하다기보다 저는 특별히 재주를 가졌다고
생각을 안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재주가 있죠.
그런 것은 하고 싶어요. 감동을 주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거요.
그러니까, 이거요, 이거. 다시 박만수가 나오는
<퍼펙트 게임>에 대해 못다 한 얘기를 하자면,
저는 여전히 이 영화의 캐릭터가 마동석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해요. 인간미 가득한 역할도
능히 소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 말이에요.
그래서 박만수 같은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를준비하고 있어요. 이런 캐릭터로 영화를 만들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것들이 있는데 그게
하나둘 진행되어가고 있어요.
직접 제작하는 거예요?
그건 아니고 기획을 하는 거예요. 시놉시스 같은
게 떠오르면 포스트잇에 기록을 해둬요. 그런
것들을 제작사나 감독한테 역으로 제안하고
같이 내용을 짜보는 거예요.
와.
박만수 같은 주인공이 나오는 영화도 그렇게
준비하고 있고요, 형사물도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요. 2005년도에 있었던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인데, 제 후배 중에 형사가 몇 명 있거든요.
그중 한 명이 겪은 얘기예요. 시나리오도 나왔고
밑그림도 거의 다 그렸어요.
배우가 감독이나 제작자에게 어떤 내용의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고 이야기하면 그들에게도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배우만이 느끼는
감정이 있을 테니까요.
제가 가지고 있는 여러 아이디어에 대해 주변
분들이랑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해요. 제가
출연하지 않더라도, 재미있겠다 싶은 게 있으면
이야기를 해요.
마동석이란 배우가 외모와 몸만으로 지금과
같은 역량을 가지게 된 건 아닌 거 같아요. 큰
그림을 그릴 줄 안다는 것은 굉장히 비범한
점이에요. 어떤 배우가 그렇게 시놉시스를 쓰고
스케치를 하겠어요.
제가 이걸 왜 시작했냐면요, 예전에 단역을
주로 할 때는 하루 찍고 나면 저는 끝이잖아요.
그래서 그때부터 이 역할이 영화에 계속 나오면
어떤 모습일까, 생각한 거예요. 시나리오와
캐릭터에 대한 구상은 앞으로도 계속
해보려고요.
아까 매니저한테 계속 캐물은 게 있어요.
뭐예요?
미국에서 살았잖아요. 해외에서 지내는
게 불편하지 않을 텐데, 활동 반경을 넓힐
생각은 없어요? 실제로 해외에서 제의가 오고
있다면서요?
그냥 접촉을 하는 거죠. 동양인인데, 근육도
있고 액션도 되고 영어도 하는 배우를 찾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배우가 드물죠.
드라마든 영화든 조그만 역할이라도 하고
싶긴 해요.
그런데 왜 하고 싶은 거예요? 해외 진출을 꼭
해야 하나요?
외국 배우들이랑 연기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새로운 경험이잖아요. 한국에서 잘
시도하지 않는 장르의 영화도 해볼 수 있고.
하지만 미국에서 살면서 배우 일을 하고
싶진 않아요. 그럴 거면 한국에 들어오지도
않았겠죠.
배우를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한국에 돌아온
거예요?
미국에서 트레이너를 하고 보디빌더를 하는
동안에도 배우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다가
2005년 한국 영화에 캐스팅돼서 들어온 건데,
본격적으로 연기자가 되려고 하니 사람들이 제
몸무게가 110kg이어서 힘들 것 같다고 했어요.
맞아요, 그때 정말 그랬어요. 저도 매니저한테
프로필을 받았어요. 죄송한데 그때, 이분 너무
커서 안 될 것 같은데요, 라고 말했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큰 몸으로 어떻게 배우를
하겠느냐 해서 나는 살은 빼면 된다고 했고,
30kg 빼겠다고 했어요. 저는 미국에서
계속 운동을 했고, 운동하는 사람들 속에
있었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렇게 큰 줄
몰랐어요. 저는 배우는 어쨌든 연기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르건 크건 간에 일단 연기를
잘해야 살을 빼든 말든 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연기를 잘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이제 마동석이라는 배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어요.
운이 좋았죠. 지나간 것은 끝난 것이고. 앞으로
잘해야죠.
포털 사이트에서 연관 검색어 보신 적 있어요?
보죠. 이게 무슨 말이야, 눌러볼 때도 있고.
연관 검색어 중에 ‘마동석 깡패’라는 것도
있어요.
어찌됐건 영화에 나오는 캐릭터를
좋아해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괜찮아요.
상관없어요.
일 때문에라도 깡패를 만나본 적이 있거나
교류를 쌓은 적이 있나요?
많죠. 일로도 많고 개인적으로도 많고. 어렸을
때 운동을 했잖아요. 같이 운동했던 친구
중에 그쪽 일을 하는 친구도 있고 저쪽 일을
하는 친구도 있으니까. 그중엔 형사도 있고요.
그래서 제가 형사 역을 몇 번 더 할 거예요.
재밌는 소재가 많아요. 형사들이 직접 얘기해준
거예요.
한국 영화사에 족적을 남기는 배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동석은 마동석이잖아요.
제가 가진 이미지가 약점일 수도 있고 장점일
수도 있어요. 늘 현명하게 행동해야 해요.
photography: 임한수
editor: 이우성
Stylist: 이원해
Hair: 박세미
Make-up: 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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