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무늬 로브는 스니저 퍼레이드, 흰색 셔츠는 프레드 페리, 검은색 팬츠는 보스 블랙, 검은색 뿔테 안경은 수퍼 by 주크, 들고 있는 랜턴·바닥에 널려 있는 식기·테이블은 모두 노스케이프, 자전거는 온오프 제품.
검은색 코트를 입은 김주혁이 앞에 앉았다. 방송에서 보던 패딩 차림이 아니다. 단지 그뿐인데 어눌한 큰형의 느낌이 아니다. 맞다. 김주혁은 어눌한 큰형이 아닌 배우였다. 잠시 잊었다. 잊을 만큼 <1박 2일> 속 그의 모습이 요즘 친숙하다. 자신만 모른다. 그는 단지 열심히 할 뿐이라고 말한다. 맞는 말인데, 새롭게 다가온다. 경력 좀 있는 배우가 낯선 예능 프로그램에서 열심히 뭐든 하는 모습이라니. 그게 김주혁을 다시 보게 했을 게다. 아니, 그는 똑같은데 환경이 바뀐 것뿐이다. 그 환경 속에서 뭐든 열심히 하는 김주혁이 달리 보인 거다. 자몽에이드를 빨대로 빨아 마시며 그가 말했다. “명백히 난 신인이니까.” 역시 맞는 말인데, 새롭게 다가온다. 우리가 아는 김주혁이 맞는데, 모든 게 새롭게 다가온다. 모스콧 뿔테 안경을 고쳐 쓰고, 그가 소감을 말한다.
반응이 뜨겁다.
난 잘 모른다. 내가 지금 사람을 만나야 말이지, 하하. 별로 체감은 못한다. 식당 같은 데 가면 다르긴 하다.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다가온다고 할까.
<1박 2일> 나온다고 했을 때 놀랐다. 어, 이런 결정을?
결정하는 데 나도 힘들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한 편견도 있는 것 같고, 사극을 한 2년 했더니, 너무 ‘올드’한 느낌도 있고. 이런 부분을 해소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분명히 있다. 이제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 사람들이 날 역할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점이 분명히 있을 거다. 하지만 뭐, 어떻게든 극복해야 할 부분이니까. 오히려 자극제가 된다고 생각하고 그냥, 시작한 거다. 뭣도 모르고.
◀ 글렌 체크 스리피스 수트는 로드앤테일러, 바나나 무늬 셔츠는 그레이하운드, 안경은 새빌로우 by 주크, 검은색 시계는 쌍뜨오노레 by 갤러리어클락, 왕관 반지는 저스틴 데이비스, 들고 있는 국자·식탁에 놓인 랜턴·식기는 모두 노스케이프 제품.
프로듀서와 처음 만났을 때가 궁금하다. 왜 날? 이런 반응이 아니었을까?
서로 말하진 않았지만, 서로에 대한 불신? 하하하. 의심? 그런 느낌은 있었다. 서로 전혀 확신하지 못했으니까. 그쪽에서 그냥 편하게 하세요, 그러더라. 한 가지, 나를 포장하려고 하진 말아달라 부탁했다. 그러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 편집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편하게 하라고.
그들도 첫 방송을 보고 놀랐다고 했다. 그들도, 될까? 한 거다, 하하하.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전 시즌이 별로여서 안도감이 생겼을 수도….
사실 시청률 욕심은 없었다. 좀 젊은 모습을 보여주자 정도였다. 그것만으로 만족한다고 생각했다. 빵 터지는 거?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사극을 많이 했으니까 이미지를 바꾸려고.
그러고 보니 사극에 오래 나왔다. 긴 터널에서 나온 기분이었겠다.
긴 사극이었으니까. 더럽게 힘들었다, 하하하. 얼마나 힘든지 아마 상상도 못할 거다. 2년 연속 사극을 한다는 게. ‘허준’이니까 한 거다. 딴 사극이면 절대로 안 했다.
배역은 캐릭터가 있고 그걸 표현하면 됐다. 하지만 예능은 본능으로 받아쳐야 한다.
한 가지 힘든 점이 있다면, 계속 기분이 ‘업’돼 있어야 한다는 거다. 좀 힘들어서 쉬고 싶은데… 이럴 수 없는 거다. 나머지 애들도 다 힘들어한다. 그냥 다 업돼 있는 거다.
<1박 2일>에 설정이 있다면 업돼 있다는 거다. 설정이라기보다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멤버들과 친하지도 않았을 텐데, 업돼 있으려면….
일단 애들이 잘해줬다. (데)프콘이나 이런 애들이 사교성이 좋다. 원래 멤버이기도 한 태현이나 종민이도 있어 든든했다. 준영이만 어리지 나이도 별 차이 없다. 다 서른아홉, 마흔, 마흔 하나, 이런데 뭐. 애들이 상대를 배려할 줄 알고 유하더라.
세게 굴면, 셀 수 있는 사람들인데.
아, 센 애들이 없다. 세게 굴려고 하는 애들도 없고. 서로 의지하려는 게 보인다. 그래서 잘된 거 같다. 처음부터 누구 하나 더 잘하려고, 나만 보일래, 이렇게 했으면 망했을 거다. 부족한 애들끼리 모여 서로 의지하면서 했다. 누가 재미있게 하면 막 웃어주고 얘가 너무 안 나왔다 싶으면 좀 밀어주고.
하하하, 계 타듯이!
억지로 그러는 게 아니라 애들 성품이 전반적으로 그렇다.
▶ 잉크를 뿌린 듯한 무늬가 독특한 수트는 엠비오, 검은색 레터링 니트는 겐조,얼룩 무늬 슬립온은 아니마스코드, 안경은 새빌로우 by 주크, 자전거는 온오프 제품.
그래도 처음에는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이러지 않았나?
아니다. 그런 건 없었다. 어차피 하려고 마음먹으면 후회하진 않는다. 하기 전에 많이 고민할 뿐이다. 설사 망하더라도 내가 선택한 거니까. 아, 나 왜 그랬을까, 이런 걸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
남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성격인 듯하다.
아니다. 남 신경 무지하게 쓴다. 안 쓰는 척하는 거다. 그러다 보니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부분이 크다. 내가 가려고 하는데 누가 지나가면 먼저 가세요, 이러고. <1박 2일> 애들도 좀 그러더라. 그러니까 맞아떨어지는 거다. 처음에 누가 함께하는지 멤버들 이름 들었을 때, 내가 하면서도 안 되겠다 싶었다.
애들도 저마다 다 그렇게 생각했다고 하더라. 그러다 첫날 찍고 방송 나간 거 보고서야 되는구나 싶었다.
말도 안 되는 미션을 다 해야 한다. 당황하겠다.
이왕이면 제대로 하려고 했다. 시작할 때부터 폼 잡을 생각 자체가 없었다. 폼 잡지도 못하는 놈이고. 그냥 닥치는 대로 하자.
열심히 하자! 난 이 분야에 완전히 처음 들어온 신인이다. 신인이면 신인답게 해야 한다. 내가 뭘 안다고. 종민이 같은 경우는 <1박 2일> 처음부터 지금까지 해온 애고, 다른 애들도 예능이나 코미디를 많이 한 애들인데, 내가 어디 걔들 앞에서 거만 떨겠나. 지금도 하면서, 혹시 내가 애들한테 예의에 벗어나게 행동할까봐 걱정한다. 내가 나이는 많아도 신인이라고 생각하니까. 내가 애들을 가르치려 들거나 그런 짓은 절대 안 한다는 거다. 애들은 내가 이런 줄 절대 모르겠지. 카리스마 부리거나 승부욕이 너무 넘치는 큰형이면 애들이 부담스러워할 거다. 불편한 형 되는 거지.
방송을 보면 실제 성격이 많이 묻어난다고 확실히 느껴진다.
내 본모습이 나오는 것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배우에게 신비주의가 있지도, 필요도 없는 시대다. 다음 역할이나 작품을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부담만 있다. 내가 어떻게 보이는 건, 똥 누는 거 나와도 상관없다. 다른 건 못해도 일할 때만은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난 일 외에는 열심히 못한다.
좋은 건데, 좋지만은 않다.
사회생활이나 사람 관계, 이런 거 되게 못한다. 지금 이 일 한 지 15년이 넘어가는데 업계에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감독들 자주 만나서 친분 쌓거나 제작사들 다 아는, 그런 건 전혀 못한다. 이런 사회에서 지금까지 이 일을 하는 내가 용하다.
뱀피 무늬 코트는 리차드 리콜 by 무이, 안경은 새빌로우 by 주크 제품.
애칭도 생겼다. 그런 점에서 <1박 2일>에선 관계를 잘 맺고 있다.
애칭이 있어서 좋다기보다 애칭을 만들어준 애들에게 고맙다.
웃고 그냥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을 집어 애칭을 만들어준 거다. 리얼은 리얼인데, 애들이 그런 걸 미리 생각하고 있다는 거다. 그런 점에서 걔네들이 선배인 거다. 난 그런 걸 만들지는 못한다. 뭘 해야 방송에서 더 재밌어진다는 걸 그들은 아는 거다.
멤버에 대해 말할 때마다 애정이 넘친다.
이제 그만두지도 못한다. 솔직히 짧게는
6개월, 길어야 1년 하고 그만둘 생각이었다. 하고 보니, 반응이 좋아서가 아니라, 한 명만 빠지면 이 팀은 끝날 것 같다. 애들도 다 느끼는 점이다. 방송국에서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해야겠지.
해보니까 다른 예능 프로그램도 욕심이 생기나?
절대. 하면 상도에도 어긋난다. (끝나고 다른 걸 한다고 해도?) 재미없을 거 같다. 내가 재미없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재미없어 할 거다. 분명히 실패할 거다. 대중이 이제 예능 좀 알지? 하면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모습을 기대할 테니까. 하지만 난 똑같거든.
그래서 하면 안 된다.
아무튼 <1박 2일>에 참여한 건 옳았다.
무엇보다 배를 잡고 웃을 수 있어서 좋다. 살면서 하루 종일 웃을 날이 얼마나 있겠나. 그냥 적당히 재미있네, 정도지 정신 놓고 웃지 않는다. 하지만 촬영장에 가면 그렇게 웃게 된다. 방송을 보는 사람도 웃지만, 하는 우리가 너무 웃겨서 웃는다. 그렇게 웃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어서 고맙다.
2주에 한 번 <1박 2일> 촬영하러 가는데, 안 가는 주엔 집에만 있나?
촬영 가는 주나 안 가는 주나 집에 있다, 하하하. 어서 연애해서 빨리 결혼해야 하는데, 집에만 있다. 아, 연애도 못할 것 같고.
무슨 그런.
<1박 2일>에서 결혼하고 싶다고 막 얘기했는데 어떤 여자가 만나겠나. 만나면 바로 결혼해야 할 거 같잖나. 만나서 결혼하면 상관없는데 또 헤어지면, 내게 데미지가 너무 크다. 난 단지 사귀던 여자와 두 번 헤어졌을 뿐이다. 하지만 대중이 다 아는 여자들이어서 남보다 훨씬 큰 데미지를 받는다. 연애하는 기사가 또 나고 또 안 맞아서 헤어진다? 좀 문제가 있다는 거다. 그래서 딜레마다.
결혼하려면 여자를 만나야 하는데 처음 만나자마자 결혼하자고 하며 만날 수 있는 건 아니잖나. 만나야 사귀든가 말든가 하지. 소개팅은 또 싫고. 방법이 없다.
아, 정말 고민이다. <1박 2일> 얘기할 땐 활기찼는데, 지금은 어둡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으니까. 일단 조급해하지 않고 편안하게 생각해야지.
Photography: 안주영
Editor: 김종훈
STYLIST: 박만현
HAIR: 현정(스타일플로어)
MAKE-UP: 테미(스타일플로어)
ASSISTANT: 박소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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