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 코르뷔지에와 샤를로트 페리앙이 디자인한 부엌, 1940년대.
- 마가레테 쉬테-리호츠키가 디자인한 부엌, 1926년.
건축가는 독재자다. 건축가는 건물로 사람의 의식과 생활을 바꾸려고 한다. 길들인다, 사람을. 그렇지만 건물은 커다란 허울일 뿐이며, 모든 건물은 옆 건물 옆에 있는 건물이다. 그래서 건축가는 도시를 설계한다. 믿거나 말거나 ‘도시건축’이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데 건축가는 망상만 해대는 정치인보다 옳다. 독재자인 것은 마찬가지지만 건축가는 눈에 보이는 것이나마 만들 줄 안다. 도시를 만들고 건물을 만들고 의자와 조명도 만든다. 그리고 부엌도 만든다.
오스트리아 최초의 여성 건축가 마가레테 쉬테-리호츠키가 만든 ‘프랑크푸르트 부엌’은 현대 부엌의 원형으로 손꼽힌다. 1926년 설계된 이 부엌은 당시 새로운 주거 공간의 필요성과 그 해결책을 보여준다. 공간을 압축적으로 활용한 것이 인상적이다. 동선도 짧다. 그리고 건축학도가 아니더라도 한번은 이름을 들어봤을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도 부엌을 디자인했다.
샤를로트 페리앙과 함께 디자인한 빌트인 부엌 가구는 간결한 형태와 합리적인 기능, 그리고 색이 돋보인다. 1940년대에 디자인된 이 부엌은 프랑스 마르세유에 건축한 아파트 ‘유니테 다비타시옹’에 설치되었고 널리 알려졌다.
금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키친>은 20세기의 부엌을 전시한다. 담배 럭키스트라이크를 디자인한 미국의 디자이너 레이먼드 로위의 부엌, 이탈리아의 모더니즘 가구 디자이너 조 콜롬보의 초현실적인 미니 키친도 볼 수 있다. 부엌은 엄마의 공간이다. 그래서 ‘부엌’이란 단어는 낯설다. 그런데 쟁쟁한 디자이너들은 굳이 왜 부엌까지 디자인했을까? 부엌이 집의 요체라고 생각했을까?
르 코르뷔지에는 인간을 계몽하는 것이 디자인 즉, 건축의 소임이라고 생각했다. 수레를 끌고 가던 구부러진 길을 지우개로 쓱쓱 지우고 차가 지나다닐 크고 곧은길을 그렸다. 그는 사람들이 변화된 도시에 맞춰 삶의 의식과 생활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합리주의다. 그러나 사람들이 합리주의에 회의를 느낀 건 시간이 많이 흐른 후다. 르 코르뷔지에는 도보에 규칙적으로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로수가 탄생한 것이다. 낯설게 문득 서 있는 나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건 마찬가지로 시간이 많이 흐른 후다.
- 레위먼드 로위가 디자인한 부엌, 1950년대.
- 옌스 크비스트가르가 디자인한 아이스 버킷과 접시.
<키친>은 그저 부엌에 관한 전시일 수도 있고, 20세기 디자인사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했을 ‘주거 공간’에 대한 전시일 수 있고, 비로소 도시가 건축되던 시기를 살았던 천재 건축가들이 고민한 세계에 대한 전시일 수도 있다. 지금 와서 보면 모든 것이 아름답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마지막에 드는 생각은 건축가는 정치인과는 비교도 안 되게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6월 29일까지 금호미술관 전관은 부엌이다.
photography: 조성재
editor: 이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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