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청춘들은 줄곧 예쁜 옷을 입었다. 간명하도록 우아하진 못해도 그 불친절함이 자꾸 뒤적이게 만들었다. 위태롭고 불안정하고 공허한 영혼들이 멋대로 조합해낸 의외의 것들은 눈에 들고도 남았다. 딱 요즘 쇼장 앞에서 노닥거리는 모델들처럼 보이는 이 사진 속 남자들도 수십 년 전의 남자들이다. 있는 대로 멋을 부리고 각을 잡고 무리를 지은 이들은 테디 보이로 불렸다.
당시로서도 꽤 트렌디한 집단이었는데, 1940년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일부 10대들이 1900년대 초반 에드워디안 룩을 따라 입으면서 시작됐다. 드레이프 재킷과 드레인 파이프 팬츠로 시작해 곧 칼라와 소매, 주머니에 트리밍을 더하고, 바지는 더 좁거나 넓어졌으며, 두툼한 밑창이 달린 비틀 크러셔를 신었다. 머리는 요란하게 물결치는 형태였는데, 오리 엉덩이를 닮았다고 해서 덕 아스(Duck Arse) 스타일로 불렸다. 이들 대부분은 노동 계층의 자녀들이었음에도 새빌로에서 맞춘 고급 옷들을 고집했다.
궁핍과 가난, 현실적인 문제를 리듬&블루스와 장식적인 에드워디안풍의 옷으로 회피했다. 뻑적지근하게 차려입은 테드들은 담배를 삐딱하게 물고 무리를 지어다니며 아마 켄 매킨토시의 ‘The Creep’을 흥얼거렸을 것이다. 테디 보이는 옷의 형식이라기보다 태도를 이야기했다. 특정 스타일을 갖춰 입는 10대 집단의 초시이며, 이를 시작으로 틴에이지 마켓이 열리게 됐다는 점, 또한 불만 가득한 폭력 집단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꽤 사회적인 의미를 지녔다.
폭력성에 대한 논란, 1960년대 모즈의 유행 등으로 테디 보이들은 차츰 사라져갔다. 그러다 1970년대 로커빌리 붐이 일며 테디 보이들이 다시 등장한다. 이 중심에 말콤 맥라렌과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있다. 그들이 운영하던 가게에선 1950년대 테디 보이 스타일 옷들을 팔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페티시적인 성향을 집어넣고, 요란한 장식을 더하거나, 클리퍼에 페인트를 칠하는 등 테디 보이와 펑크를 미묘하게 섞은 옷들로 인기를 얻는다. 이때부터 테드와 펑크는 예민하게 닮아가면서도 서로를 부정했다.
그들의 근간은 음악으로 구분할 수 있지만, 옷의 형태는 물과 술처럼 뒤섞여갔다.
추상적인 프린트들의 범람, 스포티즘과 힙합, 여유롭고 한적하거나 예민하도록 날카로운 남자들을 위한 옷들 틈에서 테디 보이를 척하니 내놓은 생 로랑은 난데없었다. 에디 슬리먼은 테디 보이의 심상을 영리하게 이용했다. 그리고 그가 그려낸 테드들은 테드와 펑크가 신경전을 벌이던 시절보다 어쩌면 더욱 모호하고 포괄적이었다. 에디는 테디 보이 특유의 장식적이고 과시적인 스타일에 여러 서브 컬처를 접목했는데, 이를테면 펑크, 신스 팝, 글램 록, 디스코 등 질적으로 찬란했던 지난 세기의 문화들을 이리저리 끌어왔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어떠한 장면들, 혹은 제임스 딘, 존 트래볼타, 데이비드 보위, 데이비드 개헌의 가장 위대했던 순간들. 그리고 캡 캘러웨이의 주트 수트, 뉴욕 돌스의 볼로 타이와 반다나, 페이턴트 팬츠, 데이비드 실비언의 머리 모양과 볼레로 재킷, 브렛 앤더슨의 가죽 팬츠, 클리프 리처드의 이브닝 룩 등 시대와 목적이 뒤섞인 옷들은 15분 남짓한 런웨이 동안 타당성을 갖추며 조합되어 나갔다. 각목처럼 홀쭉해서 당장 집어 들기엔 머뭇거림이 있지만 두고 보고 감탄하고 싶은 게 에디 슬리먼의 옷에는 있다. 스트레이 캐츠의 ‘Rock This Town’을 틀면 그 기분은 더할 테고.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