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s 최민규(
스몰 볼(Small Ball)은 한 점을 내기 위해 도루, 희생 번트, 히트 앤드 런 등 다양한 작전이 구사되는 야구다. 그리고 지난해 한국 야구에서 스몰 볼만큼 부침을 겪은 단어도 드물다. 3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스몰 볼은 한국 야구의 힘과 저력을 나타내는 단어로 떠올랐다. 당시 미국 언론에서 ‘스몰 볼’에 주목한 건 WBC 흥행의 키를 쥐고 있는 일본 야구에 대한 관심과 함께 불성실한 미국 팀에 대한 비판이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프로야구 정규 시즌이 열린 뒤에 상황은 역전됐다. KBO는 WBC에서의 쾌거가 야구장에 관객을 불러모을 것으로 기대했다. 기대는 어긋났다. 2006년 관중 수는 3백4만 명으로 전년 대비 10.3% 감소했다. 대형 구장이 있는 롯데와 LG가 7, 8위에 머문 게 결정타였다. 하지만 비난의 화살은 우승팀인 삼성 선동열 감독에게 더 많이 돌아갔다. 삼성의 경기당 득점은 2005년 4.9점에서 2006년 4.3점으로 줄었다. 팀 홈런은 10년 만에 두 자리 숫자로 떨어졌다. 전통적으로 화끈한 공격력이 특징이던 삼성 야구는 권오준과 오승환이라는 불펜 콤비에 의존하는 ‘지키는 야구’로 돌변했다. 그리고 대구 구장의 관중은 31.2% 감소했다. 선동열식 스몰 볼은 ‘이기는 야구’이긴 하지만 ‘재미있는 야구’가 아니라는 게 비난의 핵심이었다. 시즌이 끝난 뒤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대표팀이 연신 희생 번트를 대다 3위에 머무르자 스몰 볼에 대한 증오는 더 심해졌다.
올해는 1위를 달리고 있는 SK가 지난해 삼성이 받았던 비난을 덮어쓰고 있다. 규정 타석을 채운 타자가 드물고 한 경기에 투수가 평균 4.7명 등장하는 ‘전원 야구’ 내지 ‘출석 체크’ 야구다. 그래서 ‘이기긴 하되 재미없는 스몰 볼’이다. 하지만 SK 입장에선 억울하다. SK는 팀 득점 1위, 팀 홈런 1위에 올라 있다. 이런 팀이 스몰 볼을 한다? 물론 SK 야구는 인기가 없다. 케이블 TV 야구 중계 편성에서도 아직 찬밥 대접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2류 프랜차이스였던 인천 팀에 당장 ‘전국구 인기’를 기대하는 것도 우습다. 문학 구장이 워낙 커서 스탠드에 빈자리가 눈에 쉽게 띄지만 벌써 인천 연고 구단 관중 동원 기록을 깼다.
‘스몰 볼=이기는 야구=재미없는 야구’라는 등식은 과연 정당할까. 올 시즌을 앞두고 SK 신영철 사장을 인터뷰할 때 “지난해 ‘재미없는 야구’라는 비난이 많지 않았나”라고 물었다. 그는 “스몰 볼이 좋으냐, 빅 볼이 좋으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사실 관심도 없다”고 말했다.
과거 자료를 들춰본다면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 1999~2003년은 4년 연속 리그 전체 홈런이 1천 개를 넘었던 ‘빅 볼의 시즌’이었다. 이 기간 평균 관중은 경기당 5천2백11명이었다. ‘재미없는 야구’를 했다던 지난해(6천32명)보다 적다. 메이저리그는 ‘빅 볼’을 한다. 특히 1990년대에는 스테로이드 복용이 일반화되며 홈런이 쏟아졌다. 1990년대 메이저리그 관중은 1980년대보다 24.3% 늘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스몰 볼’을 했던 1980년대 관중은 1970년대보다 35.8% 늘었다. 1998년 마크 맥과이어가 70홈런을 때려내자 미국 언론들은 “홈런이 파업 후유증으로부터 야구를 구했다”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그해 관중 증가율은 그전 2년 평균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게 진실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베이브 루스가 홈런의 시대를 열며 야구 붐을 일으켰다는 말도 의심스럽다. 베이브 루스는 1920년 전인미답의 54홈런을 치며 전설을 시작했다. 하지만 전해인 1919년 메이저리그 관중은 전년 대비 112.1% 증가했다. 1920년대 야구 붐의 진짜 이유는 1차 대전 종전과 뒤이어 찾아온 호황이었다.
과연 팬들은 어떤 야구를 재미있어할까. 삼성 팬들은 이만수, 장효조, 김성래, 양준혁, 이승엽으로 상징되는 화려한 야구를 사랑한다. 2004년 삼성은 정규 시즌을 2위로 마친 뒤 한국시리즈에서 현대와 명승부를 벌인 끝에 아깝게 준우승했다. 하지만 그해 대구 구장 평균 관중은 역대 최저인 2천9백23명으로 떨어졌다. 2004년은 바로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난 첫해였다. 삼성은 심정수를 대안으로 생각했지만 계산은 틀렸다. LG 팬들은 버려진 옛 스타들과 건설 도중 무너진 짧은 전성기를 너무나 사랑한다. 그래서 최근 ‘암흑기’에 대한 부정 심리가 강하다. KIA 팬들은 LG 팬들보다 두 배는 더 과거의 ‘해태 야구’를 사랑한다. ‘우·동·수 트리오’ 이후의 두산 팬들은 매년 열악한 환경에서도 기적을 만들어내는 야구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한화 팬들은 그들의 팀이 최강의 자리에 다시 오르기를 바란다. 1988~92년의 ‘다이너마이트 타선’ 시대가 너무 강렬했던 탓인지 늘 중위권에서 씨름하는 최근의 야구는 매력적이지 않다. 롯데 팬들은 빅 볼도 좋고 스몰 볼도 좋다. 가을에도 경기를 할 수 있는 야구라면 무조건 오케이다. 연고지 구단들에게 자주 배신을 당한 인천 팬들은 잊어버린 열정에 불을 붙일 수 있는 야구를 사랑할 것이다. 수원 구장의 관중들은 유감스럽게도 ‘홈 팀이 지는 야구’를 사랑한다. 2004년부터 올해까지 현대의 관중 동원 실적은 ‘성적이 좋으면 떨어지고 성적이 나쁘면 좋아지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홈 경기 평균 관중은 2004년(정규 시즌 1위) 1천9백55명, 2005년(7위) 2천5백52명, 2006년(2위) 2천6명, 2007년 8월 9일 현재(6위) 2천4백80명이다.
팬들이 야구에서 느끼는 ‘재미’는 어느 팀을 응원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화끈한 공격 야구도 재미있을지 모른다. 슬러거가 없는 야구보다는 있는 야구가 좋다. 하지만 ‘재미있는 야구’를 위해서는 아마추어 저변 확대, 열악한 구장 시설 개선, 구단의 마케팅 환경 개선, 내실 있는 2군 운영, 야구 이론과 기술의 발전 등이 더 근본적인 대안이다. 물론 당장 해결될 문제는 아니고, 그라운드 안에서도 ‘재미있는 야구’를 해야 한다. 한 KBO 관계자는 “두산은 홈런이 적고 도루와 희생 번트가 많다. 스몰 볼이다. 하지만 두산 야구는 재미있다.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야구가 좋아 죽겠다는 듯이 뛰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재미있는 야구’는 결국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팬들에게 인정받는 야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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