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ds 장근영(심리학박사) Illustration 장재훈 Editor 이지영
슈렉은 떠벌이 당나귀 동키에게 양파를 집어 들고 이렇게 말한다. “있잖아 오우거들은 양파와 같아. 껍질을 벗기면 그 안에 또 다른 껍질이 있다고.”
그의 비유는 매우 정확하다. 그리고 그건 오우거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양파다. 아무리 벗겨도 계속 껍질이 나온다. ‘솔직한 인간’이라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인간은 원래 ‘기만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생각의 대부분은 지금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한 추론이다. 그리고 그 추론 결과에 맞추어서 내 행동을 조절한다. 주어진 상황에 맞춰 자신의 생각과 기분과 행동을 변형하는 능력은 인간의 본능이다. 이 본능을 학자들은 ‘사회성’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 동전의 다른 면에는 기만이라고 쓰여 있다. 그렇다. 인간의 사회생활은 기만의 연속이다. 물론 가끔은 기만을 모르는 인간도 있다. 자폐아들이 그렇다. 그들은 남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따라서 자기가 원하는 것만 한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사회성이 없다. <거짓말쟁이는 행복하다>의 저자 데이비드 리빙스턴 스미스가 “지나친 정직은 반사회적이다”라고 말한 것도 결국 같은 맥락이다. 물론 정상적인 사람도 온전히 솔직해질 때가 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거나 생각할 때다. 기계가 말썽을 일으킬 때, 혼자서 수학 문제와 씨름할 때, 우리는 솔직해진다. 기계를 상대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나 엔지니어는 기만의 기술을 충분히 습득하지 못했기에 연애를 하거나 사교 생활을 하는 데도 지장을 받고 소위 ‘공돌이’라 불리는 괴짜 집단에 머문다. 이들 자폐아와 공돌이의 반대편에 연예인이 있다. 연예인은 애초부터 사람을 대하는 직업이다. 그것도 될수록 많은 사람의 시선을 모아야 한다. 그런 이들에게 솔직함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대중매체 앞에서? 천만에 말씀. 적어도 대중매체에서 단독 샷을 그렇게 오랫동안 받을 수 있는 지위에 오른 연예인이라면 그들에게 솔직함을 기대하느니 차라리 마른하늘에서 날벼락을 기대하는 것이 낫다
솔직한 모습은 포기하자. 하지만 ‘솔직해’ 보일 수는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나? 평소에는 보여주지 않던 말이나 행동을 하면 된다. 물론 스스로 원해서 아니라 상황에 이끌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는 알리바이도 필수 요소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자리를 만들어주느냐가 문제다. 그리고 그것이 ‘무릎팍 도사’가 한 일이다. 이 코너는 제목 그대로 점술가의 면접실을 표방한다. 지금까지 그 어떤 토크쇼에서도 사용하지 않던 세팅이다.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세팅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전과는 다르게 행동하게 만든다. 고민을 상담하러 온 출연자라는 설정부터가 이미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이다. 다시 말해 이제까지 “무슨 일로 오셨나?” “제 고민은…” 이런 식으로 시작하는 토크쇼는 없었다. 시작이 다르면 진행과 결말도 달라지게 마련인 것이다. 이 설정에는 또 다른 장점이 있다. 바로 점술가 앞에서 우리는 그 누구 앞에서 보다 솔직해진다는 점이다. 점술가는 우리와 같은 세계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를 찾아온 여린 백성의 입장에서 점술가에게는 그 어떤 사회생활도 필요하지 않다. 점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관계는 신과의 관계이지 인간과의 관계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도 점술가에게는 체면을 차릴 필요도, 거짓말을 할 필요도 없다. 그에게는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다. 그는 우리 사회와는 무관하게 사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점술가 앞에서 지금까지 사회생활을 하며 사용하던 기만을 잠시나마 벗어버릴 수 있다(이건 상담 의사들도 배워야 할 점이다. 의사의 상담 치료와 처방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세속과 무관한 권위가 필요하다). 물론 ‘무릎팍 도사’는 진짜 점술가가 아니고, 출연자도 그 사실을 안다. 그래서 비록 그들이 다른 토크쇼에서 말한 적이 없는 언행을 할지라도 지킬 것은 지킨다. 하지만 이걸 보는 우리 시청자는 다르다. 우리는 모두 쉽게 무장 해제 당하는 점술가의 면전이라는 상황을 표방한 이 코너에서 출연자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무장 해제할 것이라 기대한다. 그래서 출연자의 새로운 언행은 한 꺼풀 벗겨진 솔직함으로 다가온다. 그뿐 아니다. 이 코너는 시작을 잘했다. 최민수와 신해철이라는 대표적인 괴짜 연예인을 불러들여 그들의 다른 면을 보여줌으로써 코너의 성격을 명확하게 한 것이다. 이 코너는 출연자에게도 시청자에게도 그리고 당연히 방송사에도 이익이 된다. 출연자의 입장에서 이 프로그램은 간단히 말해 자신에게 주어진 2D의 이미지를 3D로 변신시켜주는 곳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한쪽 면에서만 볼 때, 그 사람은 2D의 평면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하지만 우리가 그를 보는 시점을 조금 달리하거나, 그가 몸을 돌리면 평평한 이차원이던 존재가 갑자기 3차원의 입체물이 되어 눈앞으로 튀어나온다. 연예인이 꾸준히 이미지 변신을 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대중에게 조금이라도 새로운 면을 보여주지 못하는 연예인은 조만간 2차원의 평면적인 존재로 전락해 배경 인물이 되어버린다. 물론 이는 시청자에게도 즐거운 일이다. 평면체가 입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겁지 않겠나. 이제 연예인은 무릎팍 도사에 출연해서 이전에는 보여주지 않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새로운 3차원의 이미지를 창출할 기회를 얻고, 시청자는 그 과정을 지켜보며 즐길 수 있다. 윈-윈 게임이 아닌가. 이 코너의 성공에는 강호동의 캐릭터도 한몫했다. 그에겐 수많은 루머가 따라다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그가 그동안 너무 비슷한 모습을 보여왔다는 의미다. 그는 비슷한 포맷의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지나치게 성공했다. 그 결과 그는 2D가 되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살아 움직이는 3D로 느끼기 위해 뭔가 다른 모습을 원했고 그 결과 그에 관한 루머는 대단한 접착력을 얻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런 루머는 그를 괴롭히는 진드기였을지 모르나 무릎팍 도사에서는 좋은 자원이다. 원래 이런 일은 상호적이어서 내가 뭔가를 해야 상대도 그에 걸맞은 무엇인가를 내놓기 마련이다. 강호동은 필요할 때마다 자신의 루머를 소재로 삼아 까발리고 상대방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것을 요구한다.
그래도 아쉬운가? 당연하다. 우리는 솔직함을 기대한다. 우리 자신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한데도 남에게는 그 솔직함이 있으리라 기대한다. 오스카 와일드는 “영원한 사랑이란 유령과 같아서 아무도 본 적은 없지만 다들 그에 대해 한마디씩은 한다”고 말했다. 솔직함도 마찬가지다. 솔직함은 그것이 너무도 희귀한(혹은 불가능한) 속성이기에 그만큼 다들 대단하게 여긴다. 무엇보다 우리는 믿음이 필요하다. 그것이 나와 상대방의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상대의 모습이 모두 기만이라면 그가 앞으로 어떤 기만을 펼칠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렇다면 안심하시라. 기만에도 규칙이 있다. 기만은 우리를 예측 불가능하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더 쉽게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인간의 진정한 내면은 변덕으로 가득 차 있다. 솔직함은 결코 신뢰성을 주지 못하며 오히려 그 반대다. ‘무릎팍’에 출연한 연예인도 순전히 거짓으로 일관하지는 않았다. 기만은 100% 거짓이 아니다. 변형된 진실일 뿐이다. 심지어 진심이 담기지 않은 기만은 별 효과도 없다. 성공한 연예인의 대부분은 진정성이 담긴 연기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서 기만이 사회생활의 윤활유라는 누군가의 지적은 옳다. 하지만 기만이 완전히 제거된 솔직함은 사회생활의 파괴를 초래한다. 지금까지 내가 본 바에 의하면 무릎팍 도사에서 진짜 솔직했다고 생각된 사람은 딱 한 명이었다. 가수 김건모. 그는 거기서 알코올 중독 수준에 이른 자신의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의 솔직함은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보다는 화나게 만들었다. 그날 프로그램이 무척 썰렁했음은 물론이다. 그는 아마도 연예계에 별다른 미련이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 뭐든 마음대로 저질러버리자는 솔직한 심정이 되었고 그 결과 모두 당황케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바로 이런 게 솔직함의 파괴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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