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트렌드가 없다는 게 트렌드가 돼버렸지만 현재를 아우르는 어떠한 ‘공기’는 적어도 있다. 압축해서 도출해내진 못해도 감지할 순 있단 얘기다. 지금의 공기에는 ‘댄디즘’이라는 코드가 비중 있게 존재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댄디즘을 지닌 콘텐츠들이 남자들의 여러 방면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마치 공기처럼 은연중에.
‘댄디하다’는 것은 때론 잘못 쓰이곤 했다. ‘깔끔하고 말쑥한’ 정도로 두루뭉술하게 묶였는데, 댄디즘의 본질은 ‘잘 차려입은, 격식 있는, 정중한 태도’에 관한 것이다.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실체로는 완벽하게 재단된 스리피스 수트, 벨벳 슬리퍼, 포마드로 정리한 머리 등이다. 스웨터에 치노 팬츠를 깔끔하게 입었다고 댄디즘의 패션 본질과 일맥상통하진 않는다는 얘기다. 오히려 흔히 ‘클래식하다’라는 형용사가 붙는 것이 대부분 댄디즘에 가깝다.
댄디즘이라 불릴 만한 옷을 입는 남자들이 등장한 건 18세기 런던과 파리에서다. 그리고 지난 수십 년간, 신사의 가치를 중시하는 남자들은 히피와 힙합과 미니멀리즘이 급습해도 끊임없이 댄디즘을 주장했다. 아마 이들이 지역 테일러들을 먹여 살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가장 신사적인 옷의 정의를 잃었을 것이며, 최근의 ‘트위드 런’이나 ‘재즈 에이지 론 파티’처럼 댄디즘을 복기시키는 이벤트를 기대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남성복은 지금보다 재미가 없었을 것이다. 댄디즘은 그 어떤 패션 카테고리보다 과거를 공경하고 지향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댄디즘은 태도이지 패션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다행인 건 ‘클래식 패션’이라는 유난스런 유행이 한국 남자들을 서두르게 했지만 결국 안착했다는 것, 그래서 과거 남자들의 행적을 좇으며 그들의 옷차림과 문화를 엿보면서 쌓아온 개인적 아카이브가 댄디즘의 본질에 접근하는 도구가 됐다는 것이다. 아일랜드산 싱글 몰트위스키나 쿠바산 시가 애호가들이 확연히 증가한 것이나 전통과 품질, 이야기가 담긴 물건을 경외하는 태도도 그 영향의 일부다.
패션에 목을 맨 것처럼 보이던 남자들이 자신이 입는 옷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것과 밀접한 문화를 향유할 줄 알게 되었기에 댄디즘의 실체는 더욱 뚜렷해졌다. 고급 문화에 대한 이해와 개인의 기호를 찾아나서는 행위, 신사적 태도를 행하려는 의지가 댄디즘을 얄팍하지 않게 만드는 것이다.
마침 블로그 ‘더 댄디 포트레이트’를 운영하는 사진가 로즈 캘러핸과 저널리스트 너새니얼 호손은 <아이 앰 댄디 : 더 리턴 오브 디 엘리건트 젠틀맨>이란 책을 출간했다. 이 듀오는 57명의 댄디한 남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책에 실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57명의 남자 어느 누구도 자신을 ‘댄디하다’라고 얘기하지 않았다고 한다. 옷, 태도, 철학, 취향이 온전히 우아하고 정중하다면 댄디즘의 실체를 굳이 의식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댄디즘은 어떠한 경향을 지칭하는 키워드에 그치는 것이 아니며 라이프스타일로서 위화감 없이 녹아들어야 한다.
아이 앰 댄디
57명의 댄디한 남자들을 인터뷰해 엮은 이 책은 패션뿐만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로 접근해 댄디즘의 본질을 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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