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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한 출장이든 넉넉한 출장이든, 회사에서 캐리어를 끌고 나와 공항의 공기를 마시는 순간, 우리는 모두 딴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삼삼오오 걸어가는 스튜어디스를 보며, 면세점을 가득 메운 여자들을 보며, 비행기 옆옆 좌석이나 뒷좌석의 여자를 보며 외국에서의 뜨거운 하룻밤을 꿈꾸기 시작한다. 하지만 어떻게? ‘특급 호텔의 바는 여자를 만나기에 최적의 장소다. 비즈니스를 위해 호텔에 머무르는 여자들은 도시를 둘러보면서 외로움을 느끼며, 바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은밀한 유혹을 기다린다’란 글을 인터넷에서 본 적이 있다. 작업의 제왕으로 등극해 세미나까지 열고 계신 분이 쓴 글의 한 대목이라는데, 혹여나 이런 말에 현혹되어(혹은 할리퀸 소설이나 로맨틱 코미디에서 얼핏 이런 장면을 본 기억만 믿고) 출장 중 호텔 로비와 바를 헤매지 마시길. 실제로 그렇게 해보면 미모의 여자들을 많이 만나거나 섹스를 하게 되긴 한다. 현금으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지만 말이다. 그건 정말 최후의 수단 아니겠는가! 출장 중의 원나잇 스탠드는 당신이 지금까지 해온 원나잇 스탠드와 크게 다르지 않다. 편안하고 방심한 마음에 노력과 우연이 협동을 해야 하며, 상대방과 끊임없이 교감하고 결정적인 카운터 펀치도 날려야 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여질 때가 있다. 하지만 호텔 프런트에 ‘놀기 좋은 곳’을 물어보면 자세히 알려준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 결과는 담담히 받아들여라.
홍콩 출장 - 재사용이 가능한 로또 당첨권 3월의 홍콩은 참 좋다. 공기는 물기를 품어 뿌옇게 보이지만, 날씨는 덥지도 춥지도 않다. 망고주스 한 잔 손에 들고 걸으면 살짝 꿈을 꾸듯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여름의 홍콩이 한증막 지옥이라면 3월의 홍콩은 천국과 비슷하다. 그래서 매년 3월의 홍콩 출장은 가벼운 마음으로 가게 된다. 작년 3월에도 그랬다. 오후 늦게 호텔에 도착해 애매한 시간을 즐겨보기 위해 란콰이퐁으로 갔다. 저녁이 되면 거리가 바(Bar)로 변신하는 란콰이퐁. 유치하지만 <중경삼림>의 한 장면도 떠올려보면서 술집에 앉아 한두 잔 마신다. 해는 지고, 네온사인은 켜지고, 사람들은 흐느적흐느적 걷기 시작한다. 옆자리 사람과 한두 마디 해볼까 하며 고개를 돌렸다. 남자네… 여자 없나. 100% 남자뿐이다. 밤 10시의 나이트 매상룸도 아닐진대 어찌된 일인가. 게다가 이 남자들, 대단히 친밀하다. 아차, 게이 바다. 호모포비아는 없다. 게이 친구도 있다. 그러나 디저트처럼 짧고 즐거운 원나잇 스탠드를 꿈꾸는 서른한 살의 스트레이트 남자가 란콰이퐁 게이 바에서 맥주를 두 잔째 마시다니! 재빨리 일어나서 계산을 끝내고 나의 무대를 찾아 출입구를 나서는 순간, 한 동양 여자가 들어섰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눈길이 가는 얼굴, 길게 올라붙은 눈꼬리와 쇄골에 눈이 간다. 등골이 찌릿하게 달아오르고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게이 바에 놀라 움츠러든 나의 작은 뻐꾹새들을 전서구 삼아 날려보낼 때가 된 것이다. 푸드득, 푸드득.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지만, 여하튼 그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그녀에게 멘트를 날렸다. 아니 멘트가 아니었을 것이다. 게이 바에서 탈출해 처음 보는 여자에게 던지는 나의 진심, 고백, 간증 뭐 그런 거였다. 그녀는 날 재미있어 했고, 우리는 ‘게이 바에서 스트레이트 만남’을 축하하기 위해 샴페인을 마시러 갔다. 그녀는 잠시 출장 온 일본 여자였고, 게이 친구를 만나러 바에 들렀다고 했다. 점점 재미있는 얘기가 오갔고, 샴페인은 한 병, 두 병 비워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꾸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대다가 문득 내 목에 숨결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억나는 것은 창밖의 야경을 보며 받았던 펠라치오와, 그녀의 쇄골 밑에 감춰진 놀라운 세계. 다음 날 그녀와 나는 아침을 먹고 헤어졌다. 한국에 돌아와 친구들에게, 게이 바에서 나오다가 게이 바에 들어서는 여자(로 추정되는 인간)에게 말을 걸고 그래서 환상적인 펠라치오를 받았다고 말하면, 모두들 그날은 로또를 샀어야 하는 날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다음 날 중요한 미팅에서 그녀와 명함을 주고받게 되었다고 하면 이구동성으로 시트콤 작가로 데뷔하면 망하겠다고 치를 떤다. 그리고 8개월 후 쌀쌀한 어느 초겨울날, 그녀가 한국에 와서 나에게 전화했다고 하면, 나의 스킬에 어떤 특장점이 있는지 물어보고, 언젠가 꼭 관전해보고 싶다고 한다. 거짓말처럼, 그녀는 11월의 어느 날 한국 출장길에 전화했다. 저녁에 맛있는 단팥죽을 사달라며.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8개월 전처럼 돌아갔다. 적당한 음식과 취기, 귓속말을 하다가 귓불을 물어버리는 그녀의 입술, 서소문의 서비스드 레지던스에서 좋은 펠라치오와 세 번의 절정. 아침에는 그녀가 끓여주는 홍차를 마셨다. 그렇게 3일을 같이 보내고, 그녀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물론 그날 이후 서로 연락하지는 않는다. 원나잇 스탠드가 언제나 그렇듯이. Lesson 1 : 영화와 달리 특급 호텔의 바보다는 시내의 복닥복닥한 유흥가가 확률이 높다. 생각해보라. 호텔과 시내 중에서 어디가 더 오픈 마인드일지. Lesson 2 : 해외 출장 중 한국인이 아닌 사람과 어떤 일이 생기기는 참 힘들다. 왜냐하면 당신의 경쟁 상대가 백인과 흑인이기 때문이다. 그랜저TG가 아무리 좋아도 BMW의 네임밸류에는 어쩔 수 없는 것. 다행히도 최근 한류 덕분에 아시아 내에서의 인지도는 그리 나쁘지 않으니, 기회가 왔다고 느껴지면 필살의 무공 초식을 펼쳐 그녀를 취하라. 백인과 흑인에게 빼앗기기 전에. Lesson 3 : 서로의 연락처를 남기지 않는 것이 쿨한 관계의 종료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진정 쿨하다면 연락처를 남기고 원나잇 같은 매니나잇을 가질 수 있다. 단, 같은 국적의 사람이라면 ‘몇 다리만 건너면 다 튀어나온다’는 법칙을 반드시 기억할 것. Lesson 4 : 노력하고, 노력하고, 노력하라! 누구도 당신에게 다가와 “여기가 원나잇 스탠드 명소입니다”, “저랑 오늘 섹스를 하시죠”라고 말하지 않는다. 장소를 옮기고 말을 걸고 시도하라. 고진감래하다 보면 일취월장할 것이다.
밀라노 박람회 - 도약을 위한 실패의 쓴맛 공항에서 출장으로 집결할 때부터 한 명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20대 후반쯤 되었을까. 굵은 웨이브 머리에 살짝 두툼한 입술, 귀여운 인상과 나름대로 털털한 성격, 시원시원한 옷차림. 명함을 교환해보니 나와는 전혀 다른 업종에서 일하고 있다. 여자 보스와 같이 왔고 밀라노 출장은 처음이라며 살짝 들떠 있는 그녀를 보며, 차근차근 원나잇의 꿈을 키웠다. 밀라노 특급 소방수 부삼희 3일 계획. 달뜬 여인들이여, 부삼희가 책임지겠다. 실은 그런 매력 때문에 전시회 출장은 패키지를 통해 가는 것을 즐긴다. 교통편과 숙소, 심지어 식사까지 해결되며 가이드까지 있어서 편리하다. 무엇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어 좋다. 특히 경험상 밀라노 전시회는 여자의 비중이 높다. 디자인 직종의 비율이 높아 수와 품질 면에서 홍대와 버금간다고 할 수 있다(절대 Cebit 같은 곳은 추천하지 않는다. 그곳은 정말 일만 하러 가는 곳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같이 있을 수 있고, 자연스런 명함 교환으로 연락처를 알게 되고, 심지어 방 호수까지 알 수 있다. 포도는 무르익었다. 주인은 졸고 있다. 할 일은 담장을 넘어 포도를 따서 입에 넣고 씹는 것. 아니면 포도주를 담가 마시든가! 할렐루야 패키지, 할렐루야 밀라노. 내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비행기로 이동하는 첫째 날은 패스. 둘째 날 얼굴을 익히고 친분을 쌓고, 셋째 날 모 브랜드에서 주최하는 파티로 이끌고 가서 늦은 밤을 보내고 그날 밤에 골인! 원나잇 스탠드라고 하기엔 좀 쑥스럽지만, 잘 조절만 하면 쿨하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같은 방을 쓰게 된 30대 후반의 ‘실장님’이 계획에 방해될 위험이 있었으나, 방에서 얘기해본 결과 내가 점찍은 그녀의 보스를 ‘해치우겠다’며 전의를 불사르는 중이었다. 훌륭한 파트너십까지 이루어졌다. 의외로 계획은 잘 들어맞았다. 둘째 날 저녁식사 중 50대의 ‘사장님들’은 폭탄주를 돌렸고, 그녀가 난감해하던 찰나, 자연스레 흑기사로 나섰고 그 덕에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셋째 날에는 같은 테이블에서 둘이 아침을 먹게 되었고 자연스레 저녁 일정에 파티가 있다, 그리고 같이 가면 재미있을 거라고 부추겼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공연 그리고 샴페인. 환상을 불어넣으며 invitation을 한 장 주었다. 그녀는 살짝 들떴으며 나의 밀라노 관광 가이드 제안도 흔쾌히 수락했다. 이날 오후는 ‘밀라노의 연인’을 찍어도 될 법한 그림이었다. 몇 번 와본 밀라노였기에 초행인 그녀를 가이드했다. 파티가 열리기 전까지 전시회는 제껴두고 부에노스 아이레스 거리와 명품 거리를 다니며 쇼핑을 하고, 중간중간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를 보며, 서로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씩 안겨주며, 두오모에서 같이 초를 켜서 기도하고. 시간은 어느덧 저녁이 되었고, 조금 늦게 도착한 파티에서 우리는 비좁게 서서 서로의 숨결을 느끼며 샴페인을 마셨다. 몽롱한 음악과 어둑한 조명, 살짝 상기된 볼과 차가운 손끝, 쇄골과 그 밑에 보이는 바스트 라인, 귓불의 탄력.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노라고 말한 뒤 나는 준비물을 다시 한번 체크했다. 카드와 택시비, 그리고 콘돔. 3분쯤 지났을까? 다시 자리로 돌아왔을 때 음악은 빠른 템포로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헤맨 끝에 구석 자리에서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한 백인 남자와 뜨거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는 24hours party animal이고, 훌륭한 먹잇감을 발견한 후 이미 나는 잊었다. 3일간 가꾼 텃밭인데, 웬 놈이 3분 만에 씨 뿌려서 열매를 따먹는 시추에이션. 3분 즉석국은 봤지만, 3분 즉석 떡은 처음이다. 발끈해서 그들에게 다가갔지만 그녀는 나를 본둥 만둥 그 백인 오빠의 모든 것을 느끼는 눈빛으로 대화하고 있었다. 나는 패배한 것이다. 혼자 호텔로 돌아오니 방에는 아무도 없었고 문은 잠겨 있었다. 룸메이트 실장님께 전화를 하니 옆방에서 나오신다. 굉장히 가벼운 차림으로. “미안해… 술 먹다 보니 허허.” 진짜 고수는 실장님이셨다. 나와 그녀가 밤을 즐기겠다고 나간 사이, 와인병 하나 들고 ‘적적한데 술이나 한잔’이라는 멘트로 그녀의 보스 방에 침투한 것이다. 그리고 3시간 만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나의 3일은 실장님의 3시간을 위한 것이었으며 그녀의 3분을 위한 것이었다. 정말 화가 나는 것은 나의 3일은 배고팠으나 그들의 3시간과 3분은 배불렀다는 것. 공항에서 리무진 버스를 타기 전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게 웬 고등학생 수학여행 같은 스토리인가 싶다. 지난 10여 년의 섹스 라이프를 통틀어 가장 유치하고 비합리적인 순간이 아닐까. 내가 왜 그랬을까? 머리를 뜯고 또 뜯었다. Lesson 1 :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패키지로 출장 가서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심사가 틀린 거다. 수많은 일행의 시선은 도덕적인 부담감만 키운다. 룸메이트가 있어서 누구의 방으로 가기도 힘들다. 일정이 있으므로 내키는 대로 행동할 수도 없다. 패키지는 최악이다. 후일담이지만, 혼자서 모든 예약을 했던 출장에서는 의외로 쉽게 일이 풀렸다. “아, 저는 혼자 왔거든요.”, “제 방에서 한잔 하실래요?” 같은 뻔한 멘트가 의외로 임팩트가 좋았다. Lesson 2 : 로맨스와 원나잇 스탠드는 구분하자. 친절한 이미지로 천천히 접근하는 것은 로맨스를 위한 방법이겠다. 여자들은 나쁜 남자를 좋아한다는 뻔한 이야기의 이면에는, 착한 척하면서 시간 끌다가는 놓치기 쉽다는 진실이 있다. 고상하게 개 풀 뜯어먹는 소리를 일삼으며 2박 3일 동안 우아하게 파고들어가는 싱크로나이즈드 어프로치는 소개팅에서 하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이 밤, 그녀에게 비수를 꽂아야 한다! <미션 임파서블 3>에서 이단 헌트가 2분 만에 작전을 수행하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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