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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그녀는 그래왔다. “전, 아직도… 아직은… 아닌걸요…”, “아니에요, 전 잘 몰라요”, “삼십부터는 여배우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잘 찍는다고요? 에이, 그냥 사진 찍는 재미에 푹~ 빠진 것뿐인걸요”라고 말이다. 오늘의 첫 마디도 그랬다. “아니요, 패션 잘 몰라요. 음… 패션지를 본 지도 제법 된걸요. 이럴 땐 조금은 난감해요. 촬영 현장에서도 이젠 경력이 많으니까 감독님이 그냥 맡겨버리는데… 난 그래도 조금 더 디테일하게 연기 지도나 감독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요.” 오늘은 늘 듣던 그녀의 겸손한 ‘아니오’에 태클을 걸어본다. “그래서? 감독님은 두나 씨가 분석한 연기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나요?” 두나 씨, 살짝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오케이는 하셨어요.”한다.(그것 봐요! 두나 씨, 잘하면서 뭘!) 지금 막, 촬영을 끝낸, 아시아가 주목하는 기대작 <괴물>에 대해서도 이렇게 표현한다. “전 그저 <괴물>이라는 영화에서 연기를 한 거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요.” 두나 씨를 보이는 대로, 말하는 대로 인정해버리면 곤란하다. 그 무심한 매력을 두고 무성(無性)의 이미지라는 둥, 외계인 같다는 표현으로 얼렁뚱땅 뭉뚱그려서 배두나의 이미지를 정형화시키는 건 딱 지금까지여야만 한다. 사진작가 뺨치는 감도 높은 사진 실력을, 동료 연기자 박해일의 결혼 부케를 직접 만들어줄 만큼 엽렵한 손재주를, 찌개와 김치 파스타를 뚝딱 만들어내는 능란한 요리 솜씨를 그녀는 우리에게 제대로 보여주지 않았던 것뿐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나, 여자예요’하는 거예요. 남자 앞에서 그냥 맥없이 허물어지거나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 나약한 이미지로 보이는 것, 정말 싫어요. 이건 옷을 입는 스타일에도, 여행, 사진 찍기 등 나의 모든 취향과 연결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남자친구를 마음대로 리드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상대방을 만나다 보면 자연스러운 감정선을 타면서 교류하는 것 같아요. 저도 내숭이 있죠. 가끔은 할 줄 알아도 모르는 척, 힘이 있어도 그냥 힘이 없는 척… 그냥 상대방을 만나면 느껴져요. 무엇을 원하는지, 지금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러다가 결정적인 어느 순간에는 엄마 같은 강인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요. 나, 이제 스물일곱. 그런데도 작년까지 스크린에서 교복을 입었고 그렇게 어색하지 않았어요. 영화 <린다린다린다>에서 일본으로 유학 간 한국인 여고생 역할이었죠. <고양이를 부탁해>, <청춘> 등 성장 영화가 좋은 이유는 그런 작품을 할 수 있는 나이는 정해진 것 같았고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에요. 솔직히 이미지 속에 갇힌 나, 스크린에서 보여준 캐릭터는 사적인 배두나가 전혀 아니에요. 고백하건대, 사이월드나 홈페이지에서 보여주는 나조차도 사적인 배두나는 아니라는 거죠. 팬들과의 교감 장소이면서 내가 먼저 느끼거나 알고 있는 것들에 대해 의견을 담아서 제안하는 것뿐이에요. 영화 <린다린다린다>의 감독님도 저를 보고 놀라셨다고 해요. 영화 속의 캐릭터와 너무 달라서 ‘아, 쟤가 연기를 했구나!’라고 느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난 그래요. 무엇이든지 진심을 담아서 해요. 처음 모델 생활을 할 때도 내 몸짓 하나, 동작 하나하나에도 진심을 담아서 포즈를 취했고 연기를 할 때도 이 자세와 마음가짐은 마찬가지였어요. 캐릭터에 정확하게 다가서지 못해 조바심을 내고 펑펑 울기도 하지만, 난 진심으로 그를 이해하고 진심을 담아서 캐릭터를 소화했을 뿐이에요. 진심을 담은 캐릭터를 벗어버리면 그냥 사적인 배두나로 돌아올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착각하는 것 같아요. 나른하고 모호한 스크린 속의 캐릭터가 배두나일 거라고요. 사적인 배두나? 아주 현실적이면서도 이성적이에요. 언젠가 동료 연예인 김남진 씨가 평가한 ‘두나는 뜨거운 심장을 가진 컴퓨터다’라는 말에 많은 지인들이 공감을 한 적이 있고, 스스로도 사적인 배두나에 가까운 표현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적인 배두나, 가장 나다운 배두나라면… 예전의 남자친구도 내게 이런 말을 했어요. ‘너의 그 담백한 표현에 폭발적인 파괴력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강아지보다는 고양이를 닮았어요. 일상 속에서는 ‘나른한 고양이’처럼 살다가 어느 순간에는 ‘소파에 앉아 있는 도도한 페르시안 고양이’처럼 있기도 해요. 그리고 또 귀엽고 짓궂은 장난꾸러기 러시안 블루 고양이처럼 굴기도 하죠. 얼마 전 아빠한테 전화를 하면서 느닷없이 말했어요. ‘아빠, 우리 형제를 너무 잘 키워주셔서 감사해요’라고 말이에요. 맞아요. 어릴 때부터 문화 자양분을 제공해주신 우리 부모님께 감사드려요. 다섯 살 때부터 드나들었던 연극 공연장의 느낌과 다양한 문화 공연을 접할 기회를 주신 부모님, 그리고 경주·부여·충무 등지로 떠난 가족 여행을 통해 타고난 여유를 보여줄 수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여행은 비싼 호텔에서 좋은 와인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공간에서나 서울에 있는 것처럼 노는 거예요. 관광지를 돌거나 박물관을 봐야만 하는 강박관념의 여행이 아니라 오감을 열어놓고 내 것으로 받아들이거나 체화시키는 여행이 좋아요. 세계적인 도시라든가 낯선 공간에 앉아서 하늘을 바라보는 것, 일기를 쓰는 것, 음악을 듣는 것… 모두. 그것이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예요. 그리고 난 절실한 것, 내가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완성하려고 해요. 내가 지금 사진에 빠진 이유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그림을 그리는 재주는 전혀 없거든요. 정물화를 그리라고 한 선생님으로부터 추상화를 그렸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서툴렀는데 사진을 찍다가 알아버렸어요. 사진작가 앙리 까르띠에 브뢰송의 말처럼 ‘사진은 또 하나의 그림’이라는 사실을요. 사진에 내 마음을 듬뿍 담아서 찍으니까 아주 예쁜 그림이 완성되는 걸 느껴요. 나를 두고 겸손하다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거예요. ‘나는 상대적인 자신감보다는 절대적인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라고요. 그래서 파괴적이면서 도발적인 것,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것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거죠. 무한한 잠재력 속에서 결정적인 순간에 폭발해버리고 싶은 완벽한 욕심은 있어요, 나. 그래서 지금의 나는 무조건 내지르지 않을 수 있고, 완성되기 전에 감출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완벽한 여자가 되는 날을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로 그녀는 끝인사를 대신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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