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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 옴므 플러스 5월호 에디터 레터

그리하여 삶이란

지인들로부터 현실 왜곡이라는 핀잔을 종종 듣게 하는 왼쪽의 저 사진. 지금으로부터 약 4~5년 전, 내가 에디터로서 한창 전성기를 달리고 있을 때(라고 소소하게 자족한다. 굳이 핑계 삼자면 누군가 그랬듯 기억은 항상 본인 중심으로 편집되기 마련이니까) 어느 행사장이었나, 아니면 촬영 도중 시간이 남아 무료하게 하품을 쩍 하고 있을 때였나,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덜컥 찍힌 컷이다.

UpdatedOn May 06, 2013

아레나 옴므 플러스 편집장 박지호







지인들로부터 현실 왜곡이라는 핀잔을 종종 듣게 하는 왼쪽의 저 사진. 지금으로부터 약 4~5년 전, 내가 에디터로서 한창 전성기를 달리고 있을 때(라고 소소하게 자족한다. 굳이 핑계 삼자면 누군가 그랬듯 기억은 항상 본인 중심으로 편집되기 마련이니까) 어느 행사장이었나, 아니면 촬영 도중 시간이 남아 무료하게 하품을 쩍 하고 있을 때였나,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덜컥 찍힌 컷이다. 왜 굳이 ‘나도 모르게 찍혔다’고 표현하느냐면 예나 지금이나 사진에 내 모습을 담는 것이 무척 어색하고 싫기 때문이다. 굳이 이유를 달자면 과잉된 자의식 탓인지, 모든 사람이 셀카와 자신 중심의 사진에 열광하고 집착하는 사회 흐름에 반기를 들기 위해서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어쩌면 어릴 적 졸업 사진을 망친 것에 대한 콤플렉스 탓인지도. <아레나> 고정 필자인 심리학자 장근영 박사에게 한 번 심리 분석을 요청해야겠다) 여하튼 그렇다.

삶은 참 아이러니한 것이 그렇게 본인의 사진은 찍기 싫어하는 내가 연예인부터 각종 셀러브리티와 전문가, 일반인에 이르기까지 왜 그렇게 포즈를 못 취하느냐, 그런 과장된 웃음 말고 명치끝부터 올라오는 삶의 소회가 담긴 잔잔한 미소를 띨 수는 없느냐(?), 눈망울에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담아달라(?) 등등 닦달을 한 끝에 십수년간 무수한 촬영을 해치우며 이 자리에까지 왔다는 거다.

그러고 보면 삶은 참 강퍅하기도 하다. 무엇보다 사람을 만나는 게 힘들고 버겁다. 뭐, 하루에도 십수 명, 많을 때는 1백 명이 넘는 사람을 만나며 능숙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일정을 조율하는 당신이 그게 힘들다는 게 말이 돼, 라고 반문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종종 버거운 건 사실이다. 아니, 사실 정해진 루틴으로 누군가를 만나고 적절한 멘트를 던지고, 젠틀한 웃음으로 마무리하는 건 너무나 쉽다. 안전하기 때문에. 어린 시절 사람과의 만남을 힘들어해본 이라면 알 것이다. 누군가를 안다는 것, 더 깊이 안다는 것, 그 사람의 고뇌와 콤플렉스와 다른 취향에 때로 부딪히고 상처 입고, 상처를 준다는 것. 무엇보다 그 사람의 깊은 심연을 나만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건 어찌 보면 뿌듯함보다는 크나큰 공포에 가깝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들은(정말 대다수의 사람들 말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점차 사람에 대해 담담해진다. 아니 냉랭해진다. 서로 적당한 벽과 거리를 두고 살아간다. 그게 편하니까. 안 그래도 하루하루 치열한 생존경쟁으로 내몰려야 하는 한국 사회에서 안전한 루틴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길을 걷는다는 건 그 자체로 공포일 테니까.

저 사진을 찍어준 사람은 사진가 보리다. 얼마 전 각종 매체를 통해 당신이 익히 부고를 들었을 바로 그녀다. 사실 그녀와 많이 친하지는 않았다. 아니, 얼굴조차 보지 못한 지 이미 수년째다. 그녀와 이제 막 빛을 발하기 시작한 배우 하정우를 모델 삼아 가로수길을 10시간 동안 카메라를 들고 누비던 기억. 그 어떤 피사체를 앞두고도 진솔하게 첫인사부터 하고 카메라를 들던 모습. 감정의 기복에 따라 카메라가 흔들리기도 하고, 슬쩍 눈물도 비쳤다가, 그런데도 모델에게는 계속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묘한 카타르시스로 촬영을 마무리하던 그 광경이 지금도 종종 머릿속에 떠오르곤 하지만 이젠 그저 기억일 뿐이다.
그녀는 참 독특한 존재였다. 소식이 끊겨도, 얼굴 한 번 보지 못해도, 그 웃음과 표정과 말투가 어느 날 갑자기 툭하고 떠오르곤 하는 신기한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전화 한번 못했다. 사는 건 그런 거니까. 잠깐 상념에 잠겼다가도 곧바로 무수하게 쏟아지는 업무 메일을 체크해야 했으니까. 그렇게 계속 후순위로 밀리다 보니 결국 지금까지 왔다.

조용히 장례식장 한구석에 앉았다. 조화와 조의금은 정중히 거절한다고 했다. 역시 마지막까지 그녀다웠다. 한구석에 생각 약간, 기억 조금, 거기에 애잔한 마음을 조용히 올려놓고 왔다. 차마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이 사진은 그러고 보니 어느 복잡한 행사장에서 찍혔던 것 같다. 당시 큰 촬영 하나를 그녀와 함께하기로 했다가 펑크를 내버린 나는 미안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귀찮은 마음에 차일피일 연락을 미루었다. 저 멀리서 그녀가 총총 뛰어왔다. 뭐라고 말을 걸 겨를도 없이 특유의 미소로 저쪽에 잠깐 앉아보란다. 창밖을 보라고 했다. 그대로 딱 1분만 방심하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때 찍힌 컷이다. 그랬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다. 보리 누나.
다시 한 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부디 그 성품 그대로 그곳에서도 행복하시길. 믿어 의심치 않는다.

CHEIF OF EDITOR: 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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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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