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움직임
A. 해밀턴은 지난 1787년 6월 제헌의회에서 “자유가 존재하는 한 불평등이 존재하며, 그것은 자유 전체의 피할 수 없는 결과임은 확실한 진실”이라고 말했다.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것은 곧 차별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속담에는 “떡이 별떡 있지 사람은 별사람 없다”는 말이 있다. 떡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사람은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곧, 차별받을 이유가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을 사회 전체 구성원의 노력으로 줄여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가운데 최고의 흥행 성적을 기록한 영화는 <학교 가는 길>이다. 모두에게 당연한 교육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먼 곳에 있는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를 위해 발 벗고 나선 장애 학생 부모들의 용기 있는 행보를 담았다. 이 영화는 지적장애 특수학교인 서진학교 학부모들의 실제 이야기다. 서진학교는 설립을 앞두고 지역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고 학부모들은 무릎을 꿇고 눈물로 호소해 지난해 3월 개교할 수 있었다. 특수학교 개교가 어려운 이유는 용지 확보가 쉽지 않기 때문. 특수학교를 기피 시설로 인식하고 인근 주택 가치 하락 등을 우려해 반대하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어 학교 용지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서울 등 대도시는 대규모 부지 확보가 더 어려운 실정이다. 이 같은 어려움 속에서 2002년 서울 종로의 경운학교 개교 이후 17년 만인 2019년 강서구에 서진학교가 문을 열게 됐다. 서진학교는 적은 공사비 등의 한계를 극복하고 완성도 높은 건축물로 탄생해 서울시 건축상 대상을 받기도 했다.
매스컴은 많은 이들의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 아이의 성별과 상관없이 스스로 성 가치관을 정립하게 하려는 스타들의 소신 있는 교육법은 하나의 육아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여자는 분홍색, 남자는 파란색이라는, 색상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부터 치마를 입고 싶어 하는 아들에게 과감하게 치마를 입히는 젠더리스 육아법이 떠오르고 있다. 이를 대표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방송인 김나영. 두 아들 신우와 이준이를 키우는 그는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요하지 않는 교육법으로 육아를 이어간다. 단발머리를 한 아들의 머리를 양 갈래로 묶어주는가 하면 공주풍의 원피스도 자유롭게 입힌다. 배우 봉태규는 본보기로 치마를 입는 모습으로 공식 석상에 선 뒤 “자녀 교육의 일환”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뿐만 아니라 아들 시하에게 귀찌와 백설공주 원피스를 입혀 성별에 따른 복장이라는 하나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렸다.
우리 곁에 있는 성소수자
우리 사회에서 차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들 가운데 성소수자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서울시 인권위원회가 서울시의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이하 ‘퀴어조직위’) 법인설립 불허 처분’에 대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소수자를 차별해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 처분”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불허가처분을 취소하고 비영리법인의 설립허가에 대한 지침을 개정할 것을 서울시장에게 권고했다. 퀴어조직위는 법인격을 갖추기 위해 지난 2019년 1월 서울시에 비영리법인 설립허가 신청을 했지만, 시는 지난 8월 불허가처분을 했다. 대한민국 최초 성소수자 남성 그룹도 등장했다.
그 주인공은 4인조 신인 남성 그룹 ‘라이오네시스’. 리더 ‘배담준’은 여러 장의 앨범을 발매한 가수이며, 멤버 ‘강한’은 성악계의 실력파 카운터테너, ‘사막여우’는 아이돌 연습생 출신, ‘이말랑’은 팟케스트이자 화가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첫 데뷔곡 ‘Show me your pride’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채 혼자 살아가는 이들에게 힘이 돼주겠다는 따뜻한 내용을 담고 있다. 공개 일주일 만에 유튜브 조회 수 2만 9,000여 건을 기록했고, 해외 언론에서도 이들의 활동에 주목했다. 배담준을 제외한 3명의 멤버는 아직 가족들에게조차 성 정체성을 밝히지 못했지만, 오로지 음악으로 세상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성소수자 자식을 둔 부모들의 이야기를 4년에 걸쳐 담아낸 다큐멘터리 영화 <너에게 가는 길>도 주목받고 있다. 성소수자 부모들은 “커밍아웃을 받다”라는 표현을 쓴다. 자식이 부모에게 커밍아웃하는 것을 그렇게 말한다고 한다. 실제로 자식이 부모에게 커밍아웃 하는 경우는 20~30%. 가장 든든한 내 편이라고 생각하는 부모에게조차 말하기 두렵고 어려운 현실이라는 것을 방증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들이 느끼는 불안과 고민은 얼마나 컸을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너에게 가는 길>에서 자식에게 커밍아웃을 받은 부모들은 자녀들의 가장 든든한 조력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 누구도 불행할 이유가 없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평등은 말로만 존재할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분명 차별을 없애려는 노력을 실천하는 이들이 있기에 사회는 변하고 있다. 이제 우리 모두가 여기에 작은 힘을 보탤 때다.
일상 속 차별 언어 순화하기
1 결정장애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오래 고민할 때 ‘결정장애’라는 말을 사용한다. 장애라는 말이 ‘부족하고 열등하다’, ‘곧 잘하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다. 누구에게는 상당히 불편할 수 있는 표현이다. ‘어려운 결정’, ‘우유부단’ 정도로 대체할 수 있다.
2 유모차
‘어린아이를 태워서 밀고 다니는 수레’라는 사전적 의미의 유모차. 육아가 비단 여성만의 역할은 아니라는 목소리가 일면서 ‘유아차’라는 표현으로 고쳐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3 머리 올린다
골프를 시작한 뒤 처음으로 필드 라운딩에 나가는 것을 지칭하는 말이다. ‘머리를 올리다’의 사전적 의미는 ‘어린 기생이 정식 기생이 되며 머리에 쪽을 진다’는 뜻으로 엄연히 차별 표현이다. ‘첫 라운딩’이라는 표현으로 대체할 수 있다.
4 흑형
‘흑인 형’의 줄임말로 흑인들이 운동도 잘하고 음악적 재능도 뛰어나다는 친근감을 나타내지만 피부색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표현은 명백한 차별이다. ‘백형’이나 ‘황형’이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낀다면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서울 시내에 위치한 환대의 공간
퀴어 프렌들리 바 ‘색다른 한잔’
퀴어들은 물론 논퀴어들에게도 활짝 열려 있는 술집. 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운영자의 마음이 그대로 반영된 공간이다. 직접 큐레이팅한 50종의 주류와 20여 종의 수제 맥주를 만날 수 있다. 여기에 다양성을 상징하는 형형색색의 조명이 음주의 분위기를 한층 더했다. 이곳만의 특징은 비건 주류다. 각종 비건 커뮤니티에서 유명세를 탄 만큼 다양하고 맛있는 비건 주류를 맛볼 수 있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독막로2길 35
비건 카페 ‘더 클로짓’
유제품과 젤라틴이 주재료인 ‘푸딩’을 비건 디저트로 만날 수 있는 ‘더 클로짓’은 비건·펫·퀴어 프렌들리 플레이스다. 각종 커피, 음료가 준비돼 술을 즐기지 않는 퀴어들과 청소년 퀴어들이 편하게 모일 수 있는 공간. 여성주의 작가를 비롯해 다양성에 대해 논하는 작가들의 작품 전시를 무료로 지원해 즐길 거리도 풍부하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4길 25
복합문화공간 ‘무대륙’
‘모든 차별에 반대한다’는 슬로건을 가진 차별 없는 카페 겸 펍.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이곳은 방문하는 이들이 가장 편안하고 근사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데 의미를 뒀다. 사람, 동물 등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는 ‘무대륙’은 커피는 물론 맥주, 와인 등 주류와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메뉴를 선보인다. 대화, 작업, 공상 등 무엇이든 상관없다. 타인의 시선이 개입되지 않는 철저히 자유로운 공간임을 자랑한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토정로5길 12
모두에게 열린 카페 ‘슬금슬금’
나이, 성별, 성 정체성, 성 지향성, 장애, 피부색 등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부류의 차별을 지양하는 카페 ‘슬금슬금’은 차별은 지우고 환대를 키우는 공간이다. 가장 큰 특징은 카페 내 모든 메뉴가 비건이라는 데 있다. 또 환경문제에 대한 의식 제고 차원에서 다회용컵을 이용해 지속 가능한 공간을 지향한다.
주소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북로 75 2층